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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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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751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8.16 17:30
조회
40
추천
6
글자
12쪽

애매한 고백

DUMMY

어두운 표정의 마존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앉은 당당의 등 갈기만 한동안 쓰다듬고 있었다.


“알았다. 어차피 내뱉는 말들은 죄다 거짓말뿐일 테니, 따로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이곳에 있든지 어디로 가든지, 원하는 대로 하도록 그냥 가만히 두어라.”


“네, 마존. 알겠습니다!"


진소가 나간 후 마존이 다시 당당을 바라보았다.


“범유 장군을 잊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아. 참 안 닮은 딸 인건 알지만, 그래도 혈육이니 어떡하겠느냐... 한 번만 더 참아주는 수밖에!”


뒤이어 당당도 가만히 일어나더니, 진소가 나간 곳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 나가버렸다.


“쫌생이 삼두견!”


마존이 당당에게 기대어 있던 바닥에 그대로 앉아, 침이 가득 묻은 만년거목송의 뿌리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범유 장군... 당신도 이해 해주길 바래. 그 아이가 너무 많은 혼을 해치고 있어... 더 이상은 안 되겠지?

정말 주워온 딸이야? 왜 이렇게 닮은 구석이 없어!"



****



삼계에서 가장 분주하고 가장 많은 규칙이 존재한다는 명성에 걸맞게, 중천에는 가장 많은 세상이 곳곳에 열려 있었다.


천유원에서 걸러진 혼들 중 환생의 기회를 얻은 혼들은, 그들의 차례가 되어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까지 인간결 안의 수많은 세상들 중에서,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들은 그들이 선택한 세상에서, 천상의 인연에서부터 지상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고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해선궁의 대전으로 들어선 전신과 태자가 상좌에 앉아있는 상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상제의 눈은 그들과 함께 들어 선 자운만을, 박힌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상제께 인사 올립니다.”


손님을 의식한 상제의 입가가 힘겹게 당겨지며 미소를 지어내고 있었다.


“지난번 논의에 참석하지 못해서, 전신과 태자를 여기까지 오게 하는 수고를 끼쳤소!"


옥호가 의례적인 인사를 하며 천계의 손님을 맞이하였다.


“아닙니다. 자운공주가 천계에 머무는 동안 태자와 검 대련을 수시로 하였습니다. 천제께서는 공주님 덕에 태자의 검 수련에 많은 힘이 되었다고, 오히려 고마워하셨습니다."


전신의 차분한 대답에, 의아한 듯 잠시 실눈으로 바라보던 상제가 다시 눈길을 고쳐 뜨며 말을 이었다.


“천제의 배려하심에 감사드리오. 그런데 천제께서 다치셨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보내어 주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백현이 잠시 주춤하자, 성운이 말을 이었다.


“만수산에 잠시 내려가셨다가, 마귀들의 고육책에 당하셨습니다.”


옥호의 눈빛에 깊고 은밀한 어둠이 솟구치고 있었다.


“하여 천제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혼란시기 때 까지는 천제의 내력이 온전하지 못해서 아마도 천계와 구중천을 두루 살피기에 힘이 부족하실 테니, 오룡이 모두 힘을 합쳐 광진을 펼쳐야 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 ... 이렇게 쉽게 ?'


상제의 입가가 떨려오고 있었다.


“물론이지.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전신도 흑룡의 원신이니, 내력을 잘 보존토록 하시게."


" 명심 하겠습니다 상제. 그리고 청룡은... 가장 강한 청룡의 원신인 자영상선께서 인간계에서 정령의 겁을 겪고 계시니, 청룡의 자리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 ... 알겠네.”


여전히 인자한 웃음기를 머금은 상제가, 이제 막 바쁜 걸음으로 대전으로 들어선 자원을 쳐다보았다.


“중천의 태자는 천계에서 오신 손님들을 잘 모시고, 자운과 함께 부족함이 없도록 대접 하도록 하여라 !”


“네, 아바마마!"


상제에게 대답하던 자원이, 태자에게 한쪽 눈을 찡긋 하며 미소를 지어 보냈다.


잠시 후 이들이 들뜬 기분으로 대전에서 우르르 물러나자, 한쪽 벽에 서 있던 세오가 상제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마계에서 머물다 왔다는 말이지?”


상제가 미간을 좁히며 세오에게 차갑게 묻고 있었다.


“네, 상제 ! 여장들과 함께 마계로 간 후에, 공주님은 천천히 있다가 오겠다고 하면서 장군들 먼저 돌아가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번 천제의 생신연회에 다녀온 후로, 수시로 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있었기에, 빈틈없는 유란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운을 마계에 두고 올 생각을 하였단 말인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리던 상제가, 잠시 후 무겁게 세오를 내려 보았다.


“ 먼 후일, 구중천의 주인이 될 태자의 옆에 운이가 함께 한다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존이 현빙화의 기운을 알아본 것인가...!'



**


이들이 세정전 앞 정영지에 다다르자, 자원이 태자의 소매를 살짝 잡아 이끌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성운제군, 누님이 키우는 극락조와 화안 금작새를 보여드릴게요. 깃털을 부채처럼 펼치면 깃털 끝으로 생겨나는 물방울 같은 불꽃이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정영지로 이어진 풀숲 사이로 자원이 성운을 끌 듯이 데려가고 있었다.


“아, 알았어 자원. 자운도 얼른 와!”


성운이 자원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전신과 함께 서두르지 않는 운에게 신경이 쓰인 탓에,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운도 웃음기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하려 할 때였다.


“... 천하창생을 위한 일이라면, 천제의 명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하지만 내 마음이 원하는 일에는 어떤 이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의 앞길을 막아선 전신의 그늘 앞에서 깜짝 놀란 자운이, 자리에서 뻣뻣이 선 채로 까만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전신의 매끈하면서 거칠게 튀어나온 목젖이 긴장한 듯 깊숙이 내리 앉았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 네... 그러셔야죠. 백현성군... 당연하죠."


갑작스러운 전신의 말에, 스스로도 애매한 대답이라고 생각이 든 자운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전신의 옆을 스쳐 지나려 하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천제의 생각을 피할 마음도 없지.”


“아, 네... 그것도 그렇죠... 네?"


이번엔 전신의 말도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라는 거야? 전신은 아직도 내가 그때 일을 마음에 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가?’


자운이 낮은 헛기침을 뱉으며, 머쓱한 듯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전신, 제가 봐도... 그때 천제께서 너무 하셨어요. 몇 십 만년 동안이나 순결을 지키며 고귀하게 살아오신 분께, 갑작스럽게 생각도 없는 짝을 운운 하시다뇨.

그만 잊으시고, 마음 푸세요! 아유... 제가 민망해서 혼이 났었어요. 풋...!"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를 스쳐가는 자운의 한 쪽 팔을 전신이 재빠르게 잡아채며, 그의 앞으로 돌려세웠다.


“이러니까...!”


“네...?”


자운이 뭘 놓쳤는지, 그녀를 뚫어질 듯이 바라보는 전신의 눈길을 피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을 더듬고 있었다.


'뭐가... 이러니까야...?'


“이러니까, 시작이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잖아...!"


그의 '이러니까!' 에는 알 수 없는 홧기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네?... 무슨...?


전신에게 붙잡힌 양쪽 팔에서, 그의 손끝의 떨림이 미묘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강렬하게 뿜어나는 그의 눈빛과는 다르게, 전신답지 않게 약해빠진 웅얼거림이 나지막하게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에게, 그냥 하라고 하면 되는 게 아니잖아.!"


"... ?..."


"시작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원해서 해야 하는 거야. 어떤 결말이 되더라도...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 이여야 하지 않겠어?"


'... 우 리...?'


이제, 그의 눈빛과 그의 말투가, 그녀의 심장을 점점 불규칙적으로 뛰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 쉬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았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 그녀의 얼굴위로 붉은 열감이 함께 솟구치고 결국은, 한없이 잔잔한 그의 표정 앞에서 또다시 '켁켁-' 거리는 기침이 끊이지 않고 한동안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꼬꾸라진 허리위로 전신이 연신 등을 두들겨 주자, 잦아 든 기침과 함께 허리를 펴고 일어선 그녀의 얼굴빛은 터져버릴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자운... 괜찮은 거야?”


딱한 눈빛으로 자운을 바라보던 전신이 자운의 붉게 달아오른 열감을 식히기 위해, 차갑게 운기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붉고 통통한 볼 살을 살포시 감싸 주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전신의 눈빛이 느껴지자, 또다시 놀란 자운이 그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기 위해 살짝 뒷걸음질을 하였다.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가볍게 힘이 들어간 전신의 두 손바닥 안에서, 자운의 붉은 입술이 이른 아침 펼쳐진 작은 꽃봉오리처럼 살짝 벌어진 채로 뾰족이 튀어나왔다.


짓궂은 미소와 함께, 자운의 입술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전신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위로 짙은 그늘을 만들며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마치 자운의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 나온 것처럼 '쿵 쿵-' 하고 뛰는 소리가 두 귀로 느껴진다는 착각까지 들고 있었다.


‘이건... 전신의 심장소리야!’


누구의 심장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엔 온몸에 힘이 빠져 나가던 자운의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온 ‘딸꾹!’ 이라는 소리에, 심장소리도 함께 묻혀 사라졌다.


웃음 짓던 전신이, 여전히 미소를 놓지 않으며 자운의 볼에서 두 손을 걷으며 물러났다.


“자운, 눈을 좋아하던데, 아직 인간계는 겨울이니 다음 그믐날에 찾아갈게. 함께 눈을 맞자 !”


“ 아, 네... !"


자운이 불쑥불쑥 뿜어나는 딸꾹질 탓에 대답을 마저 잇지 못하고 있는 사이,


숲속 입구 쪽에서 이 모양을 마땅치 않게 바라보던 태자가, 큰소리로 둘을 향해 손을 들어 소리치고 있었다.


“사부님, 어서오세요. 화안 금작새가 참 이뻐요!”


고개를 끄덕여주는 전신은 부끄럼도 없이 잘도 웃고 있었다.


“자운, 기분이 참 좋아 보이는걸. 어서 손님을 안내해 줘야지?”


‘이런, 능구릉이 같은 흑룡...!’


자운의 속내를 알아 듣기라도 한 듯이, 전신이 한층 짓궂은 미소를 흘리며 앞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



앞도 안 보일만큼, 짙은 검 회색빛의 안개가 가득 엉겨있는 곳으로 한참을 따라 걸은 것 같았다.


더 이상의 길은 세상의 끝이 될 것처럼, 아무런 기대가 들지 않을 것 같은 공간속을 계속 헤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빛나는 육체가 뿜어내는 윤곽이라도 없다면, 분명 속아서 세상의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중 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은근히 솟구치는 신경질에 입이 들썩거릴 때쯤, 다행히 그녀가 익숙하도록 들어오던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힘겹고 아픈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안심이 되는 듯이 보연의 입 언저리에 미소가 번졌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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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04 22:39
    No. 1

    아니 백현성군. 천제 앞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시더니... 고백하신 거예요?ㅎㅎ
    저는 마존 편이라 응원해드리기는 어렵지만 우리 덜렁이 운이 잘 봐주세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05 01:54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마존편으로 마음을 정하신것 같아요.^^
    전신도 참 멋있고 능력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너무 완벽한 남자는 편안한 감이 없는것 같아요~~ㅋ
    운이와 마존을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님~~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계획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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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상심석의 응답 22.09.09 37 5 11쪽
64 마존 형님 +2 22.09.08 44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8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39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9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7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4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7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1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39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6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1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40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3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2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6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1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1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6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2 6 12쪽
» 애매한 고백 +2 22.08.16 41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1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5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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