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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아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독아
작품등록일 :
2020.05.23 17:48
최근연재일 :
2020.06.03 18: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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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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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수 :
68,280

작성
20.05.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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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할아버지

DUMMY

*** 할아버지 ***


준호씨의 커다란 비명이 신경 쓰였지만, 계속되는 거대한 진동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계단 난간을 꽉 붙잡고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진이 이제 소강상태를 맞았는지 건물을 강타한 큰 진동이 멈추었다.


“준호씨, 아저씨 괜찮으세요?”


나는 즉시 뒤를 돌아보며 준호씨와 아저씨의 상태를 물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힘겹게 난간을 붙잡은 채, 아저씨가 나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였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준호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준호씨!”


나는 급히 계단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계단 코너를 돌자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준호씨의 모습이 보였다.


“준호씨! 괜찮아요?”

“윽, 괜찮습니다.”


준호씨는 괜찮다고 대답은 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다리를 붙잡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충격에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처럼 보였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이 정도 다친 것쯤은···.”


준호씨는 내 팔을 붙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친 한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게 된 듯, 절뚝이며 다시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하마터면 준호씨의 휘청임에 그를 부축하던 나 역시 쓰러질 뻔했던 그때,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아저씨가 준호씨를 가까스로 잡아주며, 넘어지지 않도록 부축해 주었다.


“저, 대표님.”

“네, 준호씨.”

“저는 괜찮으니, 저희 아버지께서 무사히 도망쳤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준호씨는 기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나름 자신의 아버지라며 그에게 애정을 보여준 박정준 형사가 걱정되었는지 나를 향해 부탁했다.


그저 예전 기억이 복원되고 있던 것이었지만, 그 당시의 내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나는 그런 준호에게 걱정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준호씨, 괜찮겠어요?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수혁아, 이 분은 내가 어떻게든 함께 안전한 곳으로 부축할 테니까 먼저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니?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도와준다고 해도 어차피 이동하는 데에는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래요, 대표님. 두 분이 같이 부축해 주시는 것보다 한 손은 이렇게 난간을 잡고 이동하는 편이 더 편할 것 같아요.”


준호가 한쪽 팔로 난간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우선 구급대라도 불러놓을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휴대전화에 떠 있는 메시지를 보고 나는 구급대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서비스 영역 이탈]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조금 전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통신 서비스가 마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쩔 수 없겠네요. 직접 발로 뛰면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외에는···. 전기도 끊긴 것 같아서 우선 1층으로 내려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출구로 빠져나가죠. 제가 먼저 내려가서 아래쪽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고 있을게요. 두 분은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먼저 1층을 향해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


계단을 내려가는 사이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1층 출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출입구 쪽을 향해 다가가던 그때였다.


- 쾅 -


큰 굉음과 함께 건물이 또다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려 열려있던 출입구 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지만, 그들 중 박정준 형사가 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내벽의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잔해들로 인해 흙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방 경보음이 울리고 스프링클러에서 물줄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정준 형사의 기억에서 봤던 그때 그 상황에 나도 그의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 퍽 -


그리고 박정준 형사의 기억 속 그가 충격을 받고 쓰러진 그 장면처럼, 누군가 둔기로 박정준 형사를 공격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진이 조금씩 잦아들자, 나는 몸을 낮춘 자세로 조심스레 1층 출구 밖으로 향했다.


퍽 하는 소리 이후로 1층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그 사이에 밖으로 나간 건가?’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조심스레 엎드린 채 쓰러진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쓰러진 남자가 박정준 형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사님!”


박정준 형사는 머리를 둔기로 공격당한 듯, 뒤통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형사님 일어나보세요!”


다급한 마음에 박정준 형사를 흔들고, 깨우려던 그때였다.


- 퍽 -


내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기억 속의 내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박정준 형사의 기억처럼 나 역시 뒤에서 누군가에 의해 습격을 당한 듯, 시야가 흐려지며 화면이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젠장, 내 기억도 여기서 끝인 거라고?’


완전히 검은 어둠 속에 갇힌 듯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거익의 재생이 멈추겠거니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 시야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 검은 어둠만 가득했지만, 귀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음성.


또렷하게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누군가의 음성이 내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누구지?’


박정준 형사, 준호씨, 그리고 정체불명의 아저씨,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분명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리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윽.”


음성에 계속 집중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애쓰던 그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지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머리가.’


기억 재생 장면 위로 [바이탈 체크 부적합]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윽고 바이탈 체크 부적합으로 인해 기억 복원을 중단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억 복원 장치 위에서 눈을 뜨던 그 순간, 내 눈에 누군가의 실루엣과 희미한 얼굴이 겹쳐져 보이며 곧 사라졌다.


의문의 실루엣과 얼굴.


그 순간 내 뇌리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할아버지.’


희미한 흔적만 보였을 뿐이지만, 내 기억은 내 본능은 그것이 할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억 복원 장치 위에서 완전히 정신이 깨어난 내 앞에는 할아버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박정준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수혁씨, 아무래도 그 괴한들에 의해 감금된 것이 맞는 모양인데···.”


박정준 형사가 나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지만, 뇌리에 스친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혁씨, 괜찮아? 왜 그래? 어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저씨.”


나는 그제야 박정준 형사를 바라보며 기억 복원 장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제 정신이 들어서 다행이네. 상태가 이상해 보여서 걱정했다고.”

“아저씨, 마지막에 나타난 잔상, 아저씨도 보셨어요?”

“잔상이라니? 어떤 잔상을 얘기하는 거야?”


박정준 형사는 무슨 이야기를 하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제가 쓰러지고 난 뒤에 희미하게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니, 화면이 깜깜해지고 나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화면이 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수혁씨가 깨어날 기미가 없어서 걱정했어.”


박정준 형사의 말대로라면 마지막에 보았던 그 형상은 기억 복원과는 관계가 없이, 내가 스스로 생각해 낸 모습, 내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기억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억 그 자체가 아닌 그저 내가 상상해낸 형상일 수도 있겠지만, 내 뇌리를 스쳤던 할아버지라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는 내 기억 속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 혹시 기억 복원 장치로 본 기억 말고 다른 기억이 떠오른 건 없었나요?”

“아니,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다른 기억은 생각나지 않아.”

“혹시, 복원이 종료될 때, 뭐 다른 형상이나 장면을 본 것도 없구요?”

“그래, 그냥 컴컴한 화면에서 끝이 났다니까 그러네.”


박정준 형사는 꼬치꼬치 캐묻고 있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어쩌면, 저 기억이 되돌아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네, 마지막에 기억 복원 장치를 통해 본 기억이 아닌 제가 스스로 기억하고 있던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럼, 기억의 단서를 찾은거야?”

“어쩌면 단서가 될지도 몰라요.”

“그 기억이 뭔데? 설명을 좀 해보라고.”


박정준 형사는 내 이야기에 무언가 희망을 찾은 듯 밝은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요.”

“뭐?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왜?”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니 그러니까, 할아버지 모습이 떠오른 게 뭐 어떻다는 거야?”

“마지막에 제가 쓰러지고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목소리 같은 게 들렸거든요.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리다가 기억 복원이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고요.”


박정준 형사가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다.


“그 목소리가 들렸다는 건 아마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럼, 수혁씨 말은 수혁씨 할아버지가 지금 우리 사건과 관계되어 있다는 이야기야?”


나는 박정준 형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아버지가 저희를 감금한 범인 일지도 몰라요.”

“수혁씨 할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저도 그냥 그런 예감이 들어서 말하는 거지 완전히 확신은 못 하겠어요.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할아버지와 연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할아버지가 관계가 있다는 것 외에는 여전히 진전된 것이 없다는 말이구먼. 그것조차도 확실하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할아버지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봐야겠어요.”

“휴, 그래 뭐 별다르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수혁씨 말대로 해보자고.”

“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나는 그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기억 복원 장치 위에 올라갔다.


“수혁씨, 그런데 기억 복원 한 번 한 뒤에는 1시간 동안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니었어?”


박정준 형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박정준 형사가 기억 복원을 연속으로 하려다가 1시간의 대기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 그러게요.”


다시, 기억 복원 장치를 벗고 내려놓으려던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홀로그램 화면의 버튼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급 기능], 그리고 Master 계정 이용자인 나는 고급 기능을 사용 가능하다던 그 메시지.


나는 장비를 그대로 착용한 채, 손을 뻗어 [고급 기능] 버튼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급 기능 메뉴가 로딩되었고, 그 하위 메뉴 중에서 [사용 기록]이라는 항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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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자 밖의 상자 20.05.24 24 0 12쪽
2 상자 안의 두 사람 (2) +2 20.05.23 28 0 12쪽
1 상자 안의 두 사람 (1) +1 20.05.23 6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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