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독아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독아
작품등록일 :
2020.05.23 17:48
최근연재일 :
2020.06.03 18:3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340
추천수 :
7
글자수 :
68,280

작성
20.05.26 19:45
조회
24
추천
0
글자
12쪽

우리, 영화배우였던 것은 아닐까?

DUMMY

*** 우리, 영화배우였던 것은 아닐까? ***



총을 든 박정준 형사.


아들에 대한 기억을 찾고 흥분해서 나를 몰아붙이던 때처럼 몹시 분노한 표정의 그는 그가 쫓던 두 사람이 달아난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들어가 보자.”


내가 옆에 함께 숨어있던 남자를 향해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려 있는 검은색 대문을 지나자, 조금 허름해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 덜컹 -


건물로 들어가는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건물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대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자물쇠로 문을 가지고 나올 정신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억 속의 나도 그런 의문이 들었는지, 건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 문이 열려 있어!”


ㄷ자 모양의 건물 가장 안쪽, 열려 있는 문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꽤 깊숙한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 반쯤 열린 커다란 철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철문 안으로 들어가자, 길게 이어진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의 모습은 마치 작은 병원을 연상케 했다.


복도 양편에 늘어진 방들. 그중에서도 복도 끝, 우리의 정면에 있는 방이 가장 눈에 띄었다.


굳게 닫혀 있는 다른 방들과는 달리, 문이 열린 채 불이 켜져 있었다.


“뭔가 있는 것 같아.”


우리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커다란 로비처럼 생긴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으로 가는 문들이 몇 개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가장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있던 한 사람이었다.


‘준호씨.’


쓰러져 있던 남자는 분명 박정준 형사의 아들이라던 준호씨였다.


“형, 의식이 없어! 숨이 멎은 것 같아!”


나는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의 말을 듣고 급히 준호씨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꿈을 꾸듯 기억을 보면서도, 반쯤 깨인 정신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바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준호씨가 여기 쓰러져 있는 거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도망치던 두 사람.


그리고 총을 들고 쫓던 박정준 형사.


그리고 이곳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준호씨.


‘아마, 박정준 형사를 피해 도망치던 두 사람이 준호씨를 살해했고, 그 모습을 발견한 박정준 형사가 눈이 뒤집혀 그 둘을 쫓았다?’


어느 정도 들어맞는 추측이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아직 부족한 정보가 많았다.


그들이 준호씨를 살해한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고 준호씨와 박정준 형사와는 무슨 관계인지.


‘우선, 기억을 더 지켜봐야겠는데.’


기억 속에서는 내 동생으로 추측되는 남자가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부르려 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


그때,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그 남자의 팔을 저지했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부위를 다쳤어.”


내가 준호씨가 머리 뒤쪽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는 상태인 것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또 뭐지? 잠깐, 그리고 이건 또 뭐야?’


할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보다도 더 의문스러운 광경이 내 기억을 통해 보였다.


‘뭐야,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나는 준호씨의 근처에서 허공에 대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형, 뭐 하려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듯, 어딘가에 홀린 듯, 마치 무언가를 빚어내듯이 잡고 당기고, 누르고 하는 동작을 하는 내 모습이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잠깐, 어쩌면 기억이 왜곡되고 있는 건가?’


문득, 기억 복원 시작 전의 안내문이 생각났다.


[3. 기억 복원을 통해 복원된 기억은 이용자의 상태에 따라 다소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나는 내 기억이 왜곡되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 이게 뭐야.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면 지금까지 본 기억을 전부 믿어도 되는 건가?’


혼란스러움에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던 그때, 기억 속의 내가 이상한 손놀림을 멈추더니, 허공에 무언가를 잡는 듯 손을 가볍게 쥐고는 천천히 준호씨의 몸쪽으로 손을 가져댔다.


“우선 데려가야 해. 내가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해볼게. 같이 옮기자.”


기억 속 내가 또다시 놀라운 말을 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도대체 어디에다가 옮기자는 거지?’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준호 씨가 다시 숨을 쉬는 듯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극도로 혼란스러워진 나는 도대체 이 광경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분명 죽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다시 숨을 쉬는 거지? 내 이상한 행동 때문에? 내가 무슨 주술사도 아니고 도대체···.’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도, 기억 속의 나, 그리고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준호씨를 둘이서 낑낑거리며 옮기면서, 어느덧 검은 대문을 나오는 모습이었다.


“형, 괜찮겠어? 이렇게 해도 오래 버티기 어렵지 않아?”

“괜찮을 거야. 버티지 못한다 해도 다시 빚어 넣으면···.”


기억 속 나는 그렇게 말하며, 준호씨의 몸을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꾹꾹 누르는 듯한 모습을 유지한 채, 어디론가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덧, 우리가 타고 왔던 것으로 보이는 차량에 준호씨를 태웠다.


기억 속의 나는 뒷좌석에 준호씨를 앉히고, 그 옆에서 그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다.


“형, 연구센터로 가는 거지?”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차에 시동을 걸며 물었다.


“응.”


- 삐 -


내 대답과 동시에 짧은 비프음이 들렸다.


기억 속의 내가 아닌 현실의 기억 관리 장치를 통해 들린 소리 같았다.


[기억 복원 30분경과]

[계속해서 복원하시겠습니까?]


기억 속 장면과 겹치며 기억 관리 시스템의 메시지가 보였다.


“아니요.”


[기억 복원을 종료합니다.]


복원되던 기억의 장면이 점점 어두워지며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기억 속에서 나와 기억 관리 장치에 앉은 채, 다시 두 눈을 떴다.


‘기억 복원 때문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 복원의 후유증 탓인지, 복원된 기억이 너무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인지 나는 두 눈을 뜨자마자 어지러움을 느끼고, 장치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봐, 괜찮아?”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자, 내 눈앞에 박정준 형사가 서 있었다.


“아저씨.”

“스크린을 통해서 다 봤어···.”


박정준 형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하···. 이거 완전 엉터리 아니야?”

“네?”

“당신의 기억이라고 나온 장면들 말이야.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는 가만히 박정준 형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그냥 상상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기계인지, 가상 현실 게임인지 순 엉터리라고.”

“그래도 상상하는 장면이라기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어요.”

“그게 그거지 뭐, 상상 못 했던 걸 상상하는 게 상상이지 뭐. 내가 보면서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이야. 이거 그냥 방송 같은 거 찍는 게 아닐까?”

“방송이요?”

“그래, 그런 거 있잖아. 리얼 버라이어티 쇼 같은 거. 기억을 잃게 만들어서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든가 하는. 어쩌면 우리가 배우나 연예인일지도 모르지.”

“하하. 그게 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왜? 우리 정도면 배우 할 만하지 않아? 형사 역할로 딱 맞잖아? 당신은 뭐 악역으로 나오기에 딱 맞고.”

“하하.”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저렇게 농담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인 게 당연한가.


‘뭐, 일단은 조금 받아줘 볼까···. 어쩌면 이런 대화 속에서 정말로 기억과 관련된 힌트가 나올지도 모르니.“


내가 굳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박정준 형사는 내 생각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계속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자, 생각해보라고. 기억 속에서 본 말도 안 되는 장면들 말이야. 우리가 영화배우라서 영화를 찍은 거라면?”

“영화라···. 어쩌면···.”

“그렇지? 그럴듯하지 않아?”


그럴듯한 가정이라고 볼 수는 있었지만, 그의 생각에는 허점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지 않았나요? 영화 촬영이라고 하기엔 카메라나 스텝들도 하나도 없던 게 이상하잖아요. 영화를 봤던 기억이라면 모를까.”

“아, 그래! 우리가 찍은 영화를 우리가 본 거지! 그 뭐야 영화 시사회라고 하나? 많이 하잖아?”


박정준 형사의 생각에는 그 외에도 허점이 많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크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사실, 이성적인 판단은 아닐지 몰라도, 기억을 복원하면서 받았던 느낌과 직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저씨,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되는데요.”

“그런데?”

“이 상상도 못 했던 기억이 저는 그냥 영화도 뭐도 아니고, 진짜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

“기억이 복원될 때는 저도 이거 진짜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깨어나고 보니까 그 기억들이 진짜 제 기억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박정준 형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 느낌이 뭔지 나도 알 것 같아. 기억 속에서 준호를 봤을 때의 감정. 그건 진짜였어. 연기하는 기분도 아니었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을 수도 없겠지.”


박정준 형사가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기억 복원은 왜 중단했던 거야?”

“아,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정리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정리 좋지. 뭐 정리할만한 게 많진 않은 것 같지만···.”

“잠시만, 생각 좀 정리해볼게요.”

“그래, 그러자고.”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그리 오래 필요하지 않았다.


기억 관리 시스템을 통해 복원된 기억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지금까지 복원된 기억만 가지고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인 우리가 이곳에 갇힌 이유와 탈출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시간 동안 가정한 우리의 추측은 기억 관리 시스템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첫째, 박정준 형사의 기억 복원이 바이탈 체크 부적합으로 인해 중단된 것으로 봤을 때, 기억 복원 중 감정의 변화로 인해 기억 복원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


둘째, 기억 복원 종료 후 기억 복원을 다시 이용하기까지는 1시간의 제한 시간이 있다는 것.


셋째, 기억의 흔적이 뚜렷한 기억부터 차례대로 복원된다는 기억 관리 시스템의 안내처럼 박정준 형사는 실종되었던 아들을 찾은 기억이 당연히 뚜렷하고 인상 깊었을 것이 당연하지만, 내 기억이 다른 가족들이 아닌 준호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은 준호라는 사람에 대한 내 현재 감정의 불안감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넷째, 기억 복원이 왜곡될 수 있다면, 내 기억이 실제로 왜곡이 된 것인지 맞는지.


“준비되셨어요?”


네 질문에 기억 관리 장치 위에 앉은 박정준 형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지금, 내 기억이 과연 왜곡된 것인지 맞는지, 그리고 왜곡된 것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준호의 흔적을 따라 지금 이 장소와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다시 박정준 형사의 기억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또, 그 남자 20.06.03 17 0 12쪽
12 잠입 20.06.02 24 0 11쪽
11 흑막 20.05.31 19 0 12쪽
10 복원 기록 20.05.30 15 2 12쪽
9 할아버지 20.05.29 17 0 11쪽
8 지진 20.05.28 23 0 11쪽
7 아저씨와 괴한들 20.05.27 35 2 12쪽
» 우리, 영화배우였던 것은 아닐까? 20.05.26 25 0 12쪽
5 아저씨 형사 맞아요? 20.05.25 27 0 12쪽
4 기억 관리 장치 20.05.24 26 0 12쪽
3 상자 밖의 상자 20.05.24 24 0 12쪽
2 상자 안의 두 사람 (2) +2 20.05.23 28 0 12쪽
1 상자 안의 두 사람 (1) +1 20.05.23 61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