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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아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독아
작품등록일 :
2020.05.23 17:48
최근연재일 :
2020.06.03 18: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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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80

작성
20.05.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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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억 관리 장치

DUMMY

*** 기억 관리 장치 ***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의문의 장치에는 상표도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여기 치과야?”


박정준 형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하.”


나는 박정준 형사의 말에 가볍게 웃어주며, 장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치과 치료용 의자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 모습은 그것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보통 치과 치료 의자의 머리 받침대 위로 붙어있는 조명 장치 대신에 머리에 쓰도록 설계된 듯한 헬멧 모양의 장치가 붙어있었다.


“이야, 이거 쿠션감 죽이는구먼?”


박정준 형사는 어느새, 수상한 장치에 앉아있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형사라고 보기에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허술한 행동들. 그리고 잔뜩 긴장하다가도 갑자기 이렇게 긴장이 풀려 대책 없이 움직이는 모습들까지.


“아저씨, 조심하세요. 괜히 건드렸다가 또 무슨 일이라도···.”


- 삐 -


그때, 장치 뒤편의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스크린에서는 마치 컴퓨터 부팅 단계의 화면처럼 로딩 바가 나타났다.


“뭐, 뭐야?”


당황한 박정준 형사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 고개를 돌려 스크린 쪽을 바라보았다.


로딩 바의 메시지는 0%에서 시작해서 생각보다 빠르게 100%까지 올라갔다.


<기억 관리 장치. Prototype.>


“기억 관리 장치···?”


상상도 못 했던, 그리고 그마저도 믿기 힘들었던 장치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게임기 같은 거 아니야?”


어쩌면 박정준 형사의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기억을 관리하는 장치라는 것은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거 뭐야 가상 현실 게임 같은 건가?”

“네? 가상 현실 게임이라니···.”


박정준 형사의 눈앞에 반투명의 홀로그램처럼 창 하나가 나타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 같이 좀 봐요.”


나는 ‘기억 관리 장치’에 앉아있는 박정준 형사의 옆에 바짝 다가붙어 그가 보고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함께 들여다봤다.


[기억 관리 헤드셋을 착용해 주세요.]


홀로그램 화면에 안내 문구 하나가 떠 있었다.


아마도 머리 받침대 위에 붙어있는 헬멧 모양의 장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박정준 형사는 머리 위쪽으로 손을 뻗어 기억 관리 헤드셋이라는 그 장치를 끌어당기며 머리에 썼다.


[이용자 확인 중···.]

[이용자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박정준 님, 기억 관리 시스템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뭐야, 내 이름이 뜨네?”


어떻게 된 일인지 홀로그램 화면에 박정준 형사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잠시 뒤, 홀로그램 화면에 버튼 몇 개가 나타났다.


[기억 저장] [기억 재생]

[기억 삭제] [기억 전송]

[기억 복원] [고급 기능]


기억을 관리한다더니, 버튼에 나타난 단어들로만 봐서는 기억을 저장, 재생, 삭제, 심지어는 어디론가 전송하는 기능도 있는 것처럼 되어있었다.


“이거 정말로 작동할까요?”


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만약 실제로 이 장치가 작동한다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마음속에서는 조금의 희망이 일기 시작했다.


“에이, 말도 안 되지. 이거 그냥 누가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박정준 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장치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는지 손을 뻗어 버튼 하나를 눌렀다. [기억 재생] 버튼이었다.


[재생할 기억을 선택해 주세요.]


재생할 기억을 선택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마치 동영상 클립의 섬네일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이 홀로그램 화면에 가로로 길게 펼쳐졌다.


“뭐야 이거. 진짜 내 기억들이잖아?”


박정준 형사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실제로 홀로그램 화면에는 박정준 형사의 시각에서 본, 우리가 갇힌 공간 내부의 장면들이 쭉 펼쳐져 있었다.


“잠깐, 그럼 예전 기억도 찾을 수 있는 건가?”


박정준 형사는 손을 뻗어 홀로그램 화면을 드래그하기 시작했다.


섬네일로 보이는 장면들은 박정준 형사의 손길을 따라 빠르게 스크롤 되며, 우리가 발견했던 이 장치의 모습에서부터 이 공간을 발견하기 전, 어둠 속의 소동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빠져나오기 전 컨테이너에서 그가 깨어난 장면에서부터는 기억의 장면이 끊겨 있었다.


“에이, 뭐야. 이게 다야?”


아무래도 이용자의 기억에서 사라진 장면들은 기억 재생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초기 메뉴에서 봤던 [기억 복원] 버튼이 생각이 났다.


“아저씨, 잠시만요. 아까 초기 화면으로 나가보시겠어요?”


박정준 형사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초기 메뉴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기억 복원]이라는 버튼이 있는데, 혹시 이 기능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말에 박정준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기억 복원] 버튼을 눌렀다.


[기억 복원 시스템 안내]

[1. 기억 복원은 사용자 뇌의 기억 흔적 스캔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기억의 복원율은 기억의 흔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 기억의 복원은 기억의 흔적이 뚜렷한 기억부터 차례대로 복원되며, 최근의 기억일수록, 인상 깊었던 경험일수록 복원율이 높습니다.]

[3. 기억 복원을 통해 복원된 기억은 이용자의 상태에 따라 다소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4. 무리한 기억 복원은 뇌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건강한 심신 상태일 경우에만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5. 이용자의 신체와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바이탈 체크가 진행되며, 바이탈 체크 부적합 시에는 기억 복원 기능이 중단됩니다.]


[기억 복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es] [No]


박정준 형사의 손이 [Yes] 버튼을 향했다.


[기억 복원 시스템 가동]

[바이탈 체크 OK]

[박정준 님의 기억 복원을 시작합니다.]


- 지잉 -


기억 복원 장치가 작동하는 듯 장치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박정준 형사가 쓰고 있는 헤드셋에서 녹색 불이 들어왔다.


[기억 복원 중]


홀로그램 화면에는 [기억 복원 중]이라는 문구만 남은 채,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뭐가 좀 보여요?”


혹시나 해서 박정준 형사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옆을 돌아보자 박정준 형사는 눈을 감은 채,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아저씨?”


그를 깨우려 손을 뻗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빛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기억 복원 장치 뒤의 스크린에서 복원 중이라던 박정준 형사의 기억이 영상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


“이 사람 알죠?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습니까?”


화면 속의 박정준 형사는 어디선가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습을 봐서는 백화점이거나 종합 쇼핑몰 같은 장소로 보였다.


“많이 못 보던 분이라 잘···.”


박정준 형사가 내민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본 매장 직원은 잘 모르겠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 아니 같은 곳에서 근무하시면서 누군지를 모른다고요?”

“매장이 크다 보니까···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때, 박정준 형사의 주위를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매장 영업에 방해가 됩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아마도 건물 경호팀인 모양이었다.


“아니, 이거 놔요! 사람 좀 찾겠다니까? 내 아들 내가 찾는다는데 왜들 그래요?”


그들이 박정준 형사를 붙잡으려 하자, 정준은 그들을 뿌리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 그래, 당신들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어. 이 사람 혹시 본 적 없어요?”

“어? 이 친구, 대표님 경호 담당 경무 씨 아닌가?”

“뭐? 누구요? 경무? 준호가 아니고?”


경호팀의 말에 반응하는 박정준 형사의 목소리가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이거 경무 씨 맞는 것 같은데? 여기서 이러시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시죠? 경무 씨 지금 어디 있지?”


경호팀이 무전을 몇 차례 주고받더니, 잠시 후 경무, 혹은 준호라는 이름의 남자가 박정준 형사의 앞에 나타났다.


“준호야!”


박정준 형사는 한달음에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가 그를 품에 안았다.


“준호···?”


그러나 왠지 모르게 준호라는 그 남자는 당황한 듯, 박정준 형사의 포옹을 뿌리친 뒤,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준호야, 아빠야. 왜 그래?”

“아빠? 제 아버지시라고요?”

“그래, 준호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죄송해요. 제가 기억을 잃어서요···.”


기억 상실증? 화면 속 준호 씨의 말을 들은 나는 그 역시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 무언가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무 씨!”


그때, 멀리서 낯이 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정준 형사가 뒤를 돌아보자, 멀리서 누군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얼굴은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무 씨, 이분은?”


어느새 박정준 형사 쪽으로 다가온 그 남자는 준호 씨, 또는 경무 씨의 옆에 서서 박정준 형사가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


“아, 당신···.”


박정준 형사가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가면서, 화면에 그 남자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누구지? 기억이 날 것 같은데···.’


그때,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간 박정준 형사의 입에서 놀라운 소리가 들려왔다.


“김수혁 대표, 맞지? 역시 당신이 우리 준호를 납치했어!”


김수혁이라고?


어딘가 낯이 익은 듯했던 그 남자를 향해, 박정준 형사가 부른 그 이름은 분명 내 이름이었다.


나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서 다시 꺼내본 학생증 사진은 화면 속의 모습보다는 확연히 앳된 모습이었지만, 분명 동일 인물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내 얼굴을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굴을 비추어볼 만한 곳이···. 아, 저기 있다!’


나는 기계장치로 덮인 벽면 틈에서 거울처럼 깨끗하게 닦인 철판 부분을 발견하고 내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분명, 내가 맞는 것 같은데···.’


또다시 수많은 의문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째, 학생인 줄 알았던 내가 박정준 형사의 기억 속에서는 어째서 어딘가의 대표라고 불리고 있는지.


둘째, 그리고 어째서 나는 다른 신분증도 아니고 학생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셋째, 박정준 형사의 말대로라면 내가 박정준 형사의 아들을 납치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지만, 우선은 크게 이 세 가지 의문점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준 형사의 기억을 계속 보다 보면 의문이 풀리겠지.’


나는 다시 박정준 형사의 기억이 재생되고 있는 스크린을 바라봤다.


- 삐, 삐, 삐 -


그때, 기억 관리 장치 쪽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이탈 체크 부적합]

[기억 복원을 중단합니다.]


스크린에는 박정준 형사가 기억해 내고 있던 장면이 꺼지고,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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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관리 장치 20.05.24 27 0 12쪽
3 상자 밖의 상자 20.05.24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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