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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아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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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아
작품등록일 :
2020.05.23 17:48
최근연재일 :
2020.06.03 18: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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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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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수 :
68,280

작성
20.05.2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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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상자 안의 두 사람 (2)

DUMMY

*** 상자 안의 두 사람 (2)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컨테이너의 흔들림이 조금씩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무언가를 잡지 않고서도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진동이 잦아들자, 박정준 형사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쇠창살이 쳐진 창문 쪽으로 이동했다.


“여기요! 밖에 누구 계십니까?”


박정준 형사가 큰소리로 외쳤지만, 밖에서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 위이잉 -


그때, 지금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수상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기계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고, 기계음이 커짐과 함께 컨테이너의 진동도 다시 강해지고 있었다.


- 쾅 -


큰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가 다시 크게 흔들렸다.


“윽, 뭐야?”


나는 바깥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 벽 쪽에 붙어 중심을 유지하면서, 박정준 형사가 있는 창문 근처로 다가가 쇠창살을 손으로 꼭 잡았다.


그 사이에도 기계음과 진동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있었다.


- 덜컹 -


“뭐, 뭐야 이거. 이상한데?”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박정준 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죠?”


나는 쇠창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컨테이너 외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저씨! 지금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거 맞죠?”


우리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창문 밖으로 살려달라고 외치거나, 쇠창살 사이의 작은 틈으로 손이라도 집어넣고 휘저었을 뿐, 지금 이 상황을 극적으로 막아낼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컨테이너의 3분의 2 정도가 바닥에 잠긴 것 같았다.


쇠창살 틈으로 뻗은 손으로 지면의 흙이 느껴졌다.


나와 박정준 형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온 힘을 다해 지면을 손으로 짚어 보았지만, 그것으로 컨테이너가 가라앉는 것을 막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창틀 윗부분까지 완전히 지면 아래로 잠기기 직전에야 우리는 급히 쇠창살 밖으로 뻗은 손을 빼냈다.


그때, 나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쇠창살에서 마지막으로 꺼내던 손에 닿았던 감촉. 그것은 흙이 아닌 무언가 차가운 금속의 감촉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였지?”


하지만 곧, 그 의문에 대해서 나는 잠시 생각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바닥으로 완전히 잠긴 컨테이너는 외부의 빛과 완전히 차단된 듯, 캄캄한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뿜던 백열등마저도 컨테이너가 가라앉으면서 받은 충격 탓인지 완전히 빛을 잃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박정준 형사의 외침이 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처럼 컨테이너 내부에 메아리치듯 울렸다.


생생하고 뚜렷한 그 울림에 나는 이제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공간,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라앉아버렸다는 것이 비로소 체감되기 시작했다.


- 지잉, 지잉, 지잉 -


어둠 속에 시각이 완전히 차단되었기 때문인지, 예민해진 청각을 통해 뚜렷한 기계음이 들렸다.


바깥에서 들리던 빗소리는 이제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진동과 기계음은 어느덧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컨테이너 안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틀렸어. 통째로 땅속에 묻혀버렸어.”


내 질문에 박정준 형사가 체념으로 답을 대신했다.


“형사님···.”

“잠깐, 조용히 해봐요.”


박정준 형사가 다급히 내 말을 막았다.


- 끼익, 키잉 -


그때, 희미하게 금속 파열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마치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그 소리는 한 번 들리고 난 뒤로는 더 선명하게 들렸다. 기계음과 진동과는 다르게 불규칙적으로 들리던 그 소리는 이따금 내 귀를 찔러대며 불쾌함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지하로 계속 내려가는 중인 것 같은데요? 그것도 빠른 속도로···.”

“빌어먹을···.”


기계음과 진동, 그리고 스치듯 들리는 마찰음. 분명 컨테이너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 깊숙한 지하로.


그때, 어디선가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어둠에 익숙해진 내 시야를 한순간에 마비시켰다.


“아, 이런 놀랐나? 미안해요.”


박정준 형사의 목소리가 들리고 난 뒤, 나에게 향했던 불빛이 거두어진 듯,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잠시 후, 내 반대편 벽 쪽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보였다.


“핸드폰 플래시입니다. 뭐라도 찾아보자고요.”

“하하.”


나는 예상치 못한 박정준 형사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서 잔뜩 긴장했던 몸이 조금은 풀어진 기분이었다.


“뭐 찾아낸 거라도 있나요?”

“아니요. 뭐, 지하로 내려왔어도 변한 건 없어 보이는데···.”


변화가 없다는 박정준 형사의 말에 나는 문득, 컨테이너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공사장처럼 보이던 곳의 컨테이너라면 건설 현장 사무소처럼 쓰였을 가능성이 큰데, 아무리 급하게 정리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 깨끗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조금 수상한데···.’


그때, 박정준 형사의 휴대전화 플래시가 백열등이 붙어있던 천장 쪽을 비추는 모습이 보였다.


“어? 형사님, 잠시만 그쪽 좀 계속 비춰주시겠어요?”


희미하게 보였지만, 분명 무슨 문양인지 글씨인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백열등 위쪽 천장에 새겨져 있었다.


“알파벳인지 무슨 문양인지 모르겠는데···.”

“맨 앞글자는 알파벳 P인가?”


박정준 형사의 말대로 가장 앞쪽에는 알파벳 P 모양이 거의 확실한 것 같았다. 다만 뒤쪽의 글자들은 마치 일부러 긁어 지워낸 것처럼 군데군데 지워져 있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수혁 학생, 이거 보고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네, 글자 하나 가지고는 뭐···.”

“이거 정말 뭐 하나 되는 게 없군.”

“그러게요. 그냥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제까지 내려갈 줄 알고?”

“어쩔 수 없잖아요. 설마 지구 중심까지 내려가진 않겠죠.”


그때, 천장을 비추고 있던 박정준 형사의 휴대전화 플래시 불빛이 꺼졌다.


“어? 뭐야. 배터리가 다 됐나 봐.”

“괜찮아요. 제 휴대전화로···.”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배터리의 잔량을 확인하던 내 눈에 ‘배터리 부족’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보였다.


“이런.”


나의 그 한마디와 동시에 내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져버렸고, 우리는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어둠으로 제한된 시야 대신 다시 청각이 예민해졌다. 단서를 찾아보느라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기계음과 진동이 다시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수혁 학생.”

“네?”

“지금, 나만 조금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는 건가?”


그러고 보니 컨테이너 안의 공기는 처음과는 다르게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형사님,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요.”

“너무 답답한데···. 지하로 계속 내려가면 우리 숨 막혀 죽는 거 아니야?”


죽는다는 박정준 형사의 말 때문이었을까? 그때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이거 더 내려가지 못하도록 멈춰야 해요.”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벽을 더듬어 쇠창살이 있던 방향을 찾아 이동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쥐고 쇠창살 틈으로 밀어 넣었다. 어떻게든 내려가는 힘을 줄이거나, 휴대전화가 중간에 걸려 컨테이너가 더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 팅 -


내 예상과는 달리 금속 재질의 무언가에 닿는 소리만 들리고, 휴대전화는 내 손 안에 그대로 잡혀있었다.


“뭐지?”


내 예상대로라면, 휴대전화는 바깥쪽의 통로 벽을 긁으며 마찰을 일으키거나, 적어도 위쪽으로 긁히며 튕겨 나와야 했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 어쩌면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내 말을 들은 박정준 형사가 부스럭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사이 조심스레 쇠창살 틈으로 손을 밀어 넣어보았다.


쇠창살 틈으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수혁 학생도 지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듯한 기분 들지 않나?”

“네, 분명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맞는데···. 어쩌면 기계 소리 탓에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도대체 이렇게 숨 막히고, 더운 기분은 뭐지?”

“그러게요. 정황상으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것처럼 점점 온도도 높아지고, 호흡도 곤란해지는 느낌도 드는데···. 혹시 무슨 난방 장치 같은 게 가동되고 있나?”

“난방 장치?”

“네, 난방 장치로 온도를 높이고, 진동을 일으키면서 기계음으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만든다면···.”


나는 어쩌면 정말 내 생각대로 컨테이너는 그저 착각을 일으키는 장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깐, 어쩌면 이거 혹시 누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아니면 뭐 어떻게 기억을 잠깐 지우고 과학 체험이나, 그 뭐야 생동성 시험이라고 하나? 그런 임상 시험 같은 거에 우리가 참여 중인 걸지도 모르지. 혹시 뭐 기억나는 거 없어?”


박정준 형사는 이미 내 생각보다도 더 나아간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이런 실험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 테니까.


“잠깐, 수혁 학생, 아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라고 했지?”

“네, 뭐 아마도 그런 것 같았는데, 왜 그러세요?”

“나 참, 이거 그럼 그만 순순히 털어놔요. 이거 심리 실험 같은 거 아니야?”

“하하, 그 무슨···. 저야말로 묻고 싶네요. 이거 경찰에서 꾸민 테스트 같은 건가요?”

“이봐,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진짜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박정준 형사는 조금 전보다 진지한 말투로 나를 향해 묻고 있었다.


박정준 형사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여기서 화를 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형사님, 농담이 아니라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저도 차라리 이게 임상 시험 같은 거였으면 좋겠네요.”

“하,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뭐야? 제기랄!”


조금 뒤, 뚜벅거리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났는지, 박정준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컨테이너 안을 서성이며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조심하세요. 어두운데 괜히 그렇게 걸어 다니시다가···.”


- 쿵 -


그렇게 걸어 다니시다가 다칠 것 같다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정준 형사는 어딘가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아, 이거 뭐야!”


박정준 형사의 외침과 함께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매달려있던 백열등이 다시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 백열등을 박정준 형사가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냥, 여기에 머리를 박았을 뿐인데···.”


박정준 형사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 쨍그랑, 덜컹, 쿵 -


그때, 박정준 형사가 잡고 있던 백열등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듯,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잠시 우리를 비춰주던 희미한 불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뜨겁고 답답했던 방 안 공기의 흐름이 조금 변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컨테이너 안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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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6 이키마쇼
    작성일
    20.05.23 19:18
    No. 1

    뭐랄까 이거 주인공 너무 편안한게 마치 형사가 행동하는것만 지켜보고 주인공은 아무 상관없는 듯 쳐다보는 기분 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이키마쇼
    작성일
    20.05.23 19:18
    No. 2

    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듯 한 그런 말투 생각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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