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독아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독아
작품등록일 :
2020.05.23 17:48
최근연재일 :
2020.06.03 18:3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343
추천수 :
7
글자수 :
68,280

작성
20.05.23 19:00
조회
61
추천
3
글자
12쪽

상자 안의 두 사람 (1)

DUMMY

*** 상자 안의 두 사람 (1) ***



“이봐요, 일어나보세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내 몸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 느껴졌다.


꿈을 꾸고 있던 것일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는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던 희미한 장면이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뭐야, 젠장···.”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뜨는 순간, 극심한 두통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새어 나왔다.


“정신이 듭니까?”


나는 깊은 잠에 빠졌던 것이었는지 아직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눈을 비비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운동을 좀 한 듯 다부진 체격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내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십니까?”


내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답하는 남자.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철판처럼 보이는 회색의 벽, 천장에 달려 희미한 빛을 내뿜는 백열등 하나. 쇠창살이 쳐있는 작은 창으로 불그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외에는···.


한쪽 벽면에 출입구처럼 생긴 문 하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문 앞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잡이가 돌아갔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힘껏 문을 바깥쪽으로 밀었다.


- 덜컹 -


손끝에서부터 찌릿한 충격이 내 팔로 전해졌다.


문은 바깥쪽에서 무언가에 걸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덜컹, 덜컹, 쾅, 쾅 -


나는 몇 차례 더 문을 열어보려고 힘껏 밀어보고, 발로 차기도 해보았지만, 문은 바깥쪽에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는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이미 그쪽은 확인해봤습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중년의 남자가 자리에 앉은 채, 체념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 통, 통 -


그때, 방 안에 통통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비 오는 날, 버스 안에 타 있는 것처럼 무수한 빗방울들이 통통거리며 쇠를 두드리는 소리는 금세 그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컨테이너인가?”


나는 문이 붙어있던 쪽 벽을 따라 1~2m 정도 떨어져 있던 쇠창살이 쳐진 창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


- 삐걱, 삐걱 -


쇠창살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도저히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어디 봅시다.”


중년의 남자는 언제 일어났는지, 내 뒤에서 그렇게 말하고는 쇠창살을 잡았다.


힘깨나 쓸 것으로 보이던 그도, 단단한 쇠창살을 어쩌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통통거리는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며, 이제 조금이나마 삐걱거리던 쇠창살 소리마저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공사장인가···?”


한동안 쇠창살과 씨름하느라 지쳤는지, 힘을 빼고 쇠창살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그가 중얼거렸다.


“공사장이요?”


나는 남자의 옆에 가까이 붙어 우리가 갇힌 이 방의 바깥쪽의 모습을 바라봤다.


노을빛은 먹구름에 가려 저물고 회색빛이 되어버린 하늘, 어둡게 드리워진 회색빛의 땅, 그리고 거센 빗줄기 속에서 다 무너져가는 회색 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빗물이 시야를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건물 주변에는 나무 자재들과 삐죽삐죽한 철근들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


“거, 아무도 없습니까?”


귀청이 떨어질 듯, 큰 목소리로 남자가 바깥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저씨, 어떻게 하죠? 정말 여기가 어딘지 모르세요?”

“젠장, 그걸 알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 그럴 시간에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을 좀 찾아보라고!”


내 질문에 대한 남자의 반응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요···. 저 문과 이 창문 외에는 딱히 나갈 곳은 없어 보이는데요. 문을 부술 도구라도 있다면 뭐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때, 내가 조금 전 말한 ‘도구’라는 단어가 내 뇌리를 스쳤다.


‘도구? 그래 이곳에서 빠져나갈 가장 유용한 도구. 휴대전화.’


나는 황급히 입고 있던 옷 주머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바지 옆 주머니에 넣은 손에 휴대전화가 잡혔다.


“아,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던 거지? 이렇게 쉬운 것을···.”


나는 이제 막 내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어? 전원이 꺼져 있네. 배터리가 없는 건 아니겠지···.”


전원 버튼을 길게 꾸욱 누르자 다행히도 휴대전화의 액정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년의 남자도 내 모습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꺼내고 있었다.


남자도 왜 휴대전화를 생각 못 했던 것인지 어이가 없다는 듯, 당황스러움과 기대감이 섞인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비스 지역 이탈>


전원이 켜진 휴대전화에 나타난 메시지가 잠시나마 가졌던 나의 기대감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혹시나 몰라 긴급 전화를 시도해보았지만, 그 역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되는 게 없네···.”


남자가 중얼거리며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잠시 후, 주머니에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 펼쳐보던 남자가 몹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아니, 아,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이 없어.”


기억이 없다는 남자의 말.


‘기억상실증?’


남자의 말을 들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기억이···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것.


‘나는 누구지?’


나는 큰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지갑 속에서 찾은 무언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신분증.’


남자가 들고 있던 카드 모양의 무언가는 아마도 신분증인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나는 주머니 안에서 내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현금 한 장 없이 얇은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 몇 장과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신분증 한 장이 들어있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김수혁>


학생증 카드에 적혀있는 대로면 나는 아마도 대학생이었던 것 같다.


‘국내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그리고 지갑 속 현금이 없던 것으로 볼 때···.’


내 정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대라는 학교 이름, 그리고 지갑 속 현금이 없던 것은 요즘 시대에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은 모두 이해가 되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내 개인적인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곳에 감금되었다는 불안감은 기억을 잃었다는 불안감에 덮인 듯, 나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감금된 것인지에 알 수 없는 현재 상황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저씨, 기억이 없다고 하셨죠?”


그때까지도 남자는 기억을 쥐어짜 내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아, 그래. 기억이 없어요.”


괴로운 표정의 남자가 여전히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기억이 없어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싸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 혹시라도 뭔가 기억이 날까 싶어서 그런데, 당신 그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


내 손에 쥐어진 학생증을 바라보며 남자가 말했다.


“아, 여기요.”


방금 건넨 내 신분증을 보고 여전히 답답한듯한 남자의 표정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그는 내 정체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시, 저도 기억에 도움이 될지 몰라서 그러는데, 아저씨 신분증을 볼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남자는 조금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더니, 신분증을 자신의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들어 보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 형사과 강력계 박정준>


“형사?”


형사 신분증에 나도 모르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박정준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를 눈이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았다.


“아, 죄송해요. 형사라고 하시니까 뭔가 놀라워서···.”

“아,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학생이신 것 같은데, 어쩌면 무슨 사건에 휘말리셔서 같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박정준 형사는 형사라는 신분을 인지한 탓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랬던 것인지 왠지 모르게 나를 취조하는 느낌이 드는 말투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도무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요. 수혁 학생.”


박정준 형사가 조금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정준 형사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흠, 내가 형사라서 하는 말인데, 지금 상황을 뭔가 사건에 관련지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쫓기다가 이곳에 감금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수혁 학생을 쫓다가 뭔가 사고를 당했거나···.”

“형사님, 제가 범죄자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나는 딱 봐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듯한 박정준 형사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 내 말투가 조금 공격적이었나? 미안해요. 그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혁 학생이 피해자일 수도 있고, 수배자일 수도 있고 모든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박정준 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그의 표정에서 나를 향한 의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님, 그런데 중요한 건 제가 범죄자인지 아닌지보다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요? 금방 기억이 돌아올 것 같지도 않고,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그렇긴 하지···.”


박정준 형사는 내 말에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문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문고리만 삐걱거리며 돌아갈 뿐, 문은 아무리 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문고리는 돌아가는 걸 보면 밖에서 무언가로 막아놨거나 용접을 해서 아예 붙여놓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만약에 막혀 있는 거라면 컨테이너 자체를 흔들어서 치워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무거운 컨테이너를 안에서 흔들겠다고?”


내 말을 비웃듯 박정준 형사가 피식하며 말했다.


“아, 불가능하려나···.”


나는 몸을 날려 벽을 발로 차보고, 힘을 주어 벽을 밀어보기도 했지만, 박정준 형사의 말대로 컨테이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형사님 말대로네요. 하하.”


- 덜컹 -


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큰 소음과 함께 우리가 갇혀 있던 컨테이너가 크게 흔들렸다.


“뭐, 뭐지?”


큰 진동에 비틀거리던 나는 급히 벽 쪽에 붙어 문고리를 잡으며 겨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박정준 형사는 흔들리지 않도록 몸에 무게 중심을 잡으려는 듯,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젠장, 이봐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했냐는 박정준 형사의 물음에 나는 그저 컨테이너를 움직여보려고 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마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내 행동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외력이 작용한 것이었는지, 컨테이너는 여전히 큰 진동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과 영혼의 상관관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또, 그 남자 20.06.03 17 0 12쪽
12 잠입 20.06.02 25 0 11쪽
11 흑막 20.05.31 19 0 12쪽
10 복원 기록 20.05.30 15 2 12쪽
9 할아버지 20.05.29 18 0 11쪽
8 지진 20.05.28 23 0 11쪽
7 아저씨와 괴한들 20.05.27 35 2 12쪽
6 우리, 영화배우였던 것은 아닐까? 20.05.26 25 0 12쪽
5 아저씨 형사 맞아요? 20.05.25 27 0 12쪽
4 기억 관리 장치 20.05.24 26 0 12쪽
3 상자 밖의 상자 20.05.24 24 0 12쪽
2 상자 안의 두 사람 (2) +2 20.05.23 28 0 12쪽
» 상자 안의 두 사람 (1) +1 20.05.23 62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