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과제 5
동기들의 대장이었던 유튜버 6년 경력 최인국, 남자답고 무섭게 생긴 5년 경력 이재웅, 그리고 4년 경력을 가진 도시남 스타일의 막내 김대주.
이들은 모두 수습 불합격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아니, 이들은 천재지변급의 이변이 있지 않은 이상 탈락이 확실시됐다.
이재웅이 말했다.
"이런 걸 사실상 탈락이라고 하는 건가? 선거 때마다 사실상 탈락이란 말을 들었는데...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거든요. 사실상 탈락? 당선? 저 정도면 사실상이란 말도 빼도 되지 않나? 그런데 저희가 사실상 탈락이라니..."
김대주가 이재웅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게요... 사실상이 아니라 그냥 탈락인 거죠."
낙천적인 성격으로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던 최인호도 시무룩해 있었다.
사실상 탈락 후보자 셋이 시무룩해하고 있을 때, 이진수가 다가왔다. 그리고 위생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주먹밥을 꺼냈다.
"이거 하나씩 드세요."
이재웅이 비닐 속 음식에 관심을보이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생선까스 주먹밥이에요. 아까 밥 남기신 거로 만들었어요."
기 죽은 최인호가 말했다.
"진수 님. 죄송한데 저희는 지금 입 맛이 없어요."
그러나 이진수는 최인호의 짜증스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거 드세요. 벌써 밤 10시가 다 돼가는데, 점심도 못 먹었잖아요."
그리고 최인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11차 이슈는 안 끝났어요. 마저 추적하려면 밥 먹고 힘내야죠."
"뭐라고요? 서익준 파트장도 조금 전에 퇴근했는데, 무슨 말이예요?"
"서익준 파트장님이 잘 못 알고 있는 겁니다. 이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인호는 이진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인국 님이 찾고, 구성 님이 해결한 이슈는 하나에요. 하지만 이번 이슈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입니다."
"뭐...?"
"아마 서익준 파트장님도, 이슈를 단순 하나의 버그로 착각하고 10% 확률로 데미지가 틀어 지는 문제만 수정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서익준 파트장님이 섣부르게 판단했어요."
이진수는 주먹밥을 반강제로 최인호에게 쥐여주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기획파트에서 추적하고 있는 이슈는 정확히 2가지입니다. 첫째는 방금 수정된 10% 확률로 데미지에 오차가 발생하는 이슈고, 두 번째는 1% 미만의 아주 낮은 확률로 재현되는 데미지 오차에요."
"헐! 아직 이슈가 끝나지 않았다고요?"
"네. 그리고 1% 미만 확률로 재현되는 이슈가 더 크리티컬 합니다."
"왜요??"
"방금 수정된 10% 미만 확률로 재현되는 버그는 데미지 계산이 틀어져도 10% 내외의 오차가 발생하지만, 아직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1% 미만 확률로 재현되는 이슈는 데미지 오차가 발생하면 데미지가 200% 차이 납니다."
"기획 2 파트도 이슈가 두 개라는 걸 알고 있어요?"
"당연하죠."
"서익준 파트장님은 모르고?"
"네. 그럴 거예요."
수습 탈락이라고 좌절하고 있던 최인호, 김대주, 이재웅은 이진수의 말에 귀가 쫑긋했지만,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판단 하기에는 의지가 꺾여 있었다.. 말에 필터가 적은 이재웅이 말했다.
"진수 님이 말한 게 사실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우리가 그 1% 미만의 크리티컬한 이슈를 수정한다고 해서, 3차 과제 결과가 바뀐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이진수는 생선까스 주먹밥을 이재웅과 김대주에게도 쥐여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포기하실 건가요? 아직 3차 과제 결과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최인호, 이재웅, 김대주는 뇌 정지가 온 듯 아무런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어떤 이유로든 이대로 포기하기 싫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 마음을 알고 있는 이진수는 소신껏 말했다.
"저는 실패를 좋아해요. 실패는 나쁘지 않거든요. 진짜 나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이재웅이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지금 우리가 이대로 포기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이진수가 준 주먹밥을 와그작 씹어 먹었다.
"그래. 질 때 지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아아!!!"
최인호와 김대주에게도 이재웅의 불꽃이 튀었다.
"야 그래. 나 최인호야! 내 팔로워가 몇 명인데, 내가 이대로 포기할 것 같아? 쪽팔려서 안 되지!"
동기 중 막내인 4년 차 김대주. 그는 세련된 외모처럼 입에 밥풀 하나 묻히지 않고 생선까스 주먹밥을 먹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시죠."
그는 이진수를 보고 물었다.
"뭐부터 하면 됩니까?"
공채 동기 중 리더 역할은 자연스럽게 이진수로 정해진 듯했다.
"저는 아무도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이번 이슈에서 성과를 낸 유인국과 이구성에게 물었다.
"두 분도 도와 주실 거죠?"
유인국과 이구성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우리도 도움 받았는데! 우리도 도울 게요!"
"그럼, 인국 님이랑 구성 님은 저랑 같이 재현 시도해 봐요. 재현 확률이 1% 미만이라 재현이 쉽진 않겠지만, 우리가 정확한 재현 방법을 찾으면, 나머지 세 분이 이슈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최인호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코드 분석하고 있으면 될까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진수의 계획은 이랬다. 이미 정직원인 본인과, 11차 이슈에 점수를 얻은 유인국과 이구성은 아직 점수를 따지 못한 나머지 셋을 서포트한다. 여기서 서포트는,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무섭게 생긴 이재웅이 평소보다 더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 재현되는 버그는 어떻게든 고칠 수 있죠. 세분이 정확한 재현 루트를 찾아 주실 거라 믿고, 저희는 데미지 코드 모조리 다 분석하고 있겠습니다."
"모두 화이팅!"
"화이팅!!"
"고고고!"
이 6명의 동기는 두 달 전, 처음 만났다. 그들이 첫날은, 수컷 짐승 6마리가 모였을 때처럼. 서로의 힘을 가늠해 보고, 약자와 강자를 솎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강자가 되거나, 강자 편에 설 수 있도록 서로를 견제했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 수습 평가라는 경쟁 시스템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진수의 말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수습 평가 결과와 상관 없이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포기하려 한 자신에게 창피함을 느꼈다.
최인호, 이재웅, 김대주가 코드를 분석한 지 2시간째. 벌써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동안 이진수, 유인국, 이구성은 1% 미만의 확률로 재현되는 데미지 버그의 정확한 재현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12시가 되기 직전. 6년 차 오타쿠 이구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만... 만세!!!"
유인국은 그를 황급히 막았다.
"아! 조용... 조용히 하세요. 사무실에서 소리 지르면 안 돼요."
최인호는 특유의 넉살스러운 말투를 유지했다. 그리고 사무실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퍼질 만큼 크게 말했다.
"으아아앗! 인국 님. 놔둬요~ 지금 밤 12시잖아요. 여기 우리 밖에 없어요."
최인호는 사극 톤으로 연기하듯 크게 말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지?? 우리 공채 여섯 명. 서로 경쟁자인데 이렇게 서로서로 도우며 버그를 잡고 있다네~~ 오호호호~~"
최인호의 농담 섞인 연극 흉내에 동기들이 다들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진수가 이구성에게 물었다.
"구성 님. 무언가 찾았나요?"
"네. 아직 재현 100% 상황까진 아니지만, 서너 번 하면 한 번 정도는 재현되는 상황까지 찾았어요."
유인국도 관심을 가졌다.
"이야! 1% 미만에서 30% 확률로 높였으면 대단하네요! 일단, 지금까지 찾은 재현 방법을 공유해 주세요!"
이구성은 재현 방법을 공유해 줬다.
"스킬을 이것저것 쓰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워리어 스킬 대신 공격 이라고 치면, 그 대시 공격만 최소 30번 이상 사용해야 돼요. 중간에 다른 스킬 쓰면 절대 안 됩니다."
"30번 정도 하면 30% 정도 확률로 재현되나요?"
"저도 정확히 세면서 하진 않아서 감이 잘 없긴 한데, 대략 100번 넘게 하면 꼭 한 번은 재현되더라고요."
이진수가 기뻐하며 말했다.
"역시 구성 님은 오타쿠라서 그런지 재현 시도 방법이 남다른 거 같아요. 같은 스킬을 연속으로 100번까지 써볼 생각을 하신다니..."
"제가 원래 한 우물을 잘 팝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취향도 변하지 않죠! 제가 어떤 애니메이션 본다고 말했던 가요? 저는..."
이진수가 이구성의 말을 끊었다.
"잠깐만요. 우선 재현부터 해보고 들을 게요."
이들은 이구성이 전수해 준 버그 재현 방법으로 각자 재현을 시도했다. 이구성의 방법은 확실히 재현시킬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스킬을 100번 가까이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재현을 시도하던, 버그 재현팀 유인국이 허리를 펴며 시계를 봤다. 벌써 3시가 넘었다.
"하아... 이거 이제 재현이 가능하긴 한데, 한 번 재현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네요. 이러다 오늘 밤새는 거로 안 끝날 것 같은데요..."
버그 수정팀 이재웅이 말했다.
"그래도 몇 번 재현된 덕에, 이슈 추적 진도가 좀 나갔어요. 힘드시겠지만 계속 재현 부탁드려요. 이건 수습 결과와 상관 없이 제 자존심 문제입니드아!!"
이들은 텅 빈 사무실에서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는 것을 즐겼다. 평소 조용한 유인국마저 크게 소리 질렀다.
"맞다!!"
다들 유인국을 바라봤다.
"우리 주특기가 뭐죠?"
"음... 야근? 철야? 아니면, 상사한테 혼나기?"
"아니요! 우리 직업이 뭐냐고요!"
"우린... 프로그래머죠?"
"그렇죠? 우리가 어쨌든 재현 방법은 찾았으니까. 남은 건 노가다잖아요. 거기다 컴퓨터 속 노가다!"
이구성도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맞장구 쳤다.
"하하하. 맞네요! 우리가 왜 이러고 있었죠? 스킬 100번 쓰게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는데!"
이진수는 동기들이 각자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길 바랐다. 그래서 이들이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이슈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뿌듯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우리 노가다를 대신해 줄 코드를 짜볼까요?"
"넵 좋습니다!"
이구성이 슬쩍 발음을 흘리며 말했다.
"넵! 저는 죠스입니다!"
"에? 방금 죠스? 상어? 라고 하셨나요?"
"아... 아니요 좋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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