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파트 1
양꼬치도 생선까스도 처음이라는 이진수.
그리고 그 이유가 젊은 시절 공사장에서 일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유민희는 명랑했다.
"와~ 진수 씨! 그래서 시골 사람 같았구나! 어쩐지 도시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저는 시골에 로망이 있거든요!"
명랑함은 최인호도 지지 않았다.
최인호는 다 익은 양꼬치 몇 개를 집어 이진수 앞으로 옮기며 말했다.
"자자~ 오늘 많이 먹으면 되죠. 이것저것 다 먹어 봐요. 여기 양갈비도 있어요."
이구성이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마지막에 철야 했을 때 말이에요. 결국 버그 원인은 거의 오타 수준의 문제였잖아요?."
김대주가 대답했다.
"그렇죠. 숫자 비교할 때, >= 대신 > 를 썼어야 했는데, =가 더 들어간 게 문제였죠. 아니면 저희가 수정한 대로 -1을 해주거나?"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실수는 계속 나올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방지책에 대해서요."
"유사한 문법이 올라오면, 노티를 주는 툴을 만들어야 할까?"
"아뇨. 제 생각에는 툴로 해결 못 해요. 저런 거 문제 발생할 때 마다 실수한 사람을 조져야죠. 하하하."
이들은 각자 오타 수준의 간단한 실수를 체크하는 방법에 대해서 토론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었다.
이구성이 이진수에게 물었다.
"진수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래서 코드 리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서로 작업한 걸 봐주는 거죠. 실제로 저는 프로젝트 커밋되는 로그를 최대한 많이 보려 하고 있어요."
코드 리뷰란, 내가 짠 코드를 다른 사람이 검증해 주는 것을 말한다. 내가 푼 문제를 다른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맞게 잘 풀었는지 확인 요청하는 것과 같다.
SVN 같은 소프트웨어 관리 시스템을 쓰면, 누구나 프로젝트 구성원 전체의 작업 내역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에게 리뷰를 요청할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남의 코드를 평할 수도 있다.
이진수의 말에 동기들은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유인국이 말했다.
"맞아요. 저도 코드 리뷰 문화만 잘 돼 있으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이들은 계속 자신들의 수습 동안 영웅담을 말하며, 양고기를 먹으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고주영은 서러움과 희망을 느꼈다.
고주영이 있는 1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 이들은 서로 웃고 떠들고, 격식 없이 서로를 놀리며 친근함을 보였다. 위아래라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의 의견이 취합되지 않으면 이진수를 찾았다. 그리고 이진수가 결정해 준 것에 대해 아무도 불쾌함을 갖지 않았다.
고주영이 물었다.
"모두 어디 파트로 가세요? 저는 1파트인데, 혹시 1파트로 오시는 분 계시는가요?"
최인호가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지원파트에요. 조직 개편 전에 임시로 생기는 파트인데, 아무튼 조직 개편 전까지 모두 지원파트로 가게 됐어요."
고주영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진수 님도 지원파트로 가시는 거 아니죠???"
"저도 지원파트로 가요."
"맙소사... 사수님 왜 저를 두고... 저도 지원파트로 갈래요..."
유민희가 고주영에게 물었다.
"주영 씨는 진수 씨가 왜 좋아요?"
"그냥 멋있잖아요. 프로그래머로서요."
유민희는 유인국을 보며 물었다.
"그럼 인국 님은요?"
"진수 님은 착해요. 처음에 제가 자신감이 없었는데 저를 계속 응원해 줬어요."
이번에는 최인호를 보고 물었다.
"그럼... 인호 님은요?"
최인호는 크흠 하면서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최인호는 이미 취기가 조금 오른 상태다.
"저는 사실, 부끄러워요. 진수 님이 베이스인 줄 알았거든요."
"베이스요?"
"네, 우리 밑에 깔려 있는 베이스. 근데 수습 과제로 몇 번 붙어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아~ 저 사람은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친구가 되기로 했죠. 센 놈은 적으로 만드는 것 보다 친구로 만드는 게 낫죠? 하하하."
최인호 말을 이재웅이 보탰다.
"저도 인호 님이랑 비슷하긴 한데, 저는 진수 님의 진심을 봤어요."
"어떤 진심이요?"
"나는 저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날 이렇게 진심으로 돕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 진수 님을 배척한 내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유민희의 파트장인 임아린은 사람 관계를 잘 만들고, 그 관계를 통해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임아린은 유민희와 관계도 좋게 만들었고, 유민희는 그런 임아린 파트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 유민희는 이진수에게 임아린을 대할 때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재웅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럼 민희 님은 진수 님을 왜 좋아하세요?"
"어...? 아앗 아니에요. 저 안 좋아해요!! 저는 잘 꾸미는 도시 사람 좋아해요!"
"하하하 아니요. 남자로서 말고 동료로써요."
유민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 그건... 진수 씨는 독특한 거 같아요. 뭐가 없어 보이는데, 막상 보면 무언가 있기도 하고... 아무튼 독특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옆에서 최인호가 이진수를 놀리며 웃었다.
"푸하하 맞아 맞아. 우리 진수 님이 좀 없어 보이긴 하지? 캬캬캬"
다음 주 월요일. 어느덧 6월이 됐다.
동기 6명으로 구성된 지원파트는 클라이언트 전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회의실로 이동 중이다.
오타쿠 이구성이 말했다.
"아... 우리 정직원 되고 처음 회의네요. 저희가 잘할 수 있을까요?"
막내 김대주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오늘부터 막 진짜 일 주면 어쩌죠? 좀 쫄리는데..."
지원파트는 전반적으로 기대보다 불안이 조금 더 큰 상태였다. 이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역시 이진수였다.
"대주 님 몇 년 차예요?"
"아... 저 4년요."
"구성 님은요?"
"저는 6년 차요."
이진수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지원파트 경력은 다른 파트에 비해 딱히 작지 않아요. 어제까진 저희가 피시험자였기 때문에 항상 분리했죠. 자기들이 잘 아는 영역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문제를 냈으니까. 우린 그걸 풀어야했고... 하지만 이제 동등한 입장입니다.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분리하고 그런 싸움이 아니죠. 안 그래요? 이제 다 같은 경력직 정직원인데."
"그... 그렇네요! 저희가 쫄릴 일이 아니네! 우리도 다 경력자인데!"
이들은 회의실 문 앞에 다다랐다. 이진수가 앞장서서 문을 열며 말했다.
"아... 참고로 저는 신입입니다."
"윽..."
대회의실. 클라리언트 직군 전체 인원이 모였다. 얼추봐도 20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오늘은 클라이언트 회의에는 오랜만에 PD이자 팀장인 조진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는 지원파트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지원파트가 아니었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조직 개편이었다. 조직 개편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자기 업무가 바뀔 수 있고, 누군가는 직책이 해제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직책이 생길 수도 있다.
"흠... 아무튼 다들 조직 개편 때문에 일이 손에 잘 안 잡히시겠지만, 마음 잘 잡고 자기 업무는 잘 진행해 주세요."
팀장인 조진명의 말에 찬물을 뿌린 건 2파트 소속인 차중완이었다.
차중완은 2파트장인 황정호와 친구이면서, 3N게임즈 인사 실장의 친한 동생이었다. 그는 한 때 천재 소리를 들었을 만큼 코딩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근로 태도가 문제였다.
차중완은 타고난 자신의 재능과 잘 알려진 빽으로 회사 생활을 아주 편하게 했다. 업무도, 근로 시간도 모두 자기 멋대로였다.
하지만, 자기 직속상관인 황정호는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차중완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거기다 차중완은 공공연하게 3N게임즈 임원급인, 인사 실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가 매그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것도, 인사 실장이 다이렉트로 꽂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사람들은 차중완의 공격적인 말투와 불량한 근로 태도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진명 팀장은 이번 조직개편이 마무리되면, 차중완의 근로 태도에 대한 관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차중완이 특유의 공격적인 말투로 말했다.
"쯧... 팀장님. 조직 개편하는 거 이미 다 아는데, 일할 맛이 날까요?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인벤토리 작업도 당장 다음 달이 되면 이걸 내가 계속할지? 다른 업무 맡을지? 그것도 모르는데, 누가 지금 상황에서 진득하니 일할 수 있겠어요?"
조진명 팀장은 이번 조직 개편 때, 차중완의 업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인사실과 논의 중이었다. 다른 사람과 엮일 일이 적은, 그런 일로.
하지만 차중완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런 특유의 말투는 그가 인사 실장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용도다.
"아니 뭐~ 제가 어디로 간다는 건 아니고요. 뭐 여기저기 인사실 쪽에서 들리는 소문이 있고 하니까요~"
조직 개편은 조직 입장에서 매우 큰 변화고, 이 조직을 직접 맡고 있는 조진명 팀장은 조직개편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흠... 그럼, 인벤토리 작업을 못 하시겠다?"
"아뇨. 못 한다기보다는 개편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좀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뭐 이런 얘기죠."
하지만, 조진명 팀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빽을 믿고 겁주면 뒤로 물러설 만큼 물렁물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럼 이 테스트는 다른 파트에서 진행하죠. 인벤토리 작업 이어서 진행할 파트 있나요?"
조진명 팀장의 돌발 질문에 각 파트장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1 파트장 허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업무를 받아 오면, 안 그래도 불만 많은 박형돈이 우리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하냐고 불만을 내뱉을 게 뻔했다. 그 불만 가득한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2파트장인 황정호는 자기 파트원인 차중완이 조진명 팀장과 하는 기 싸움이라, 중간에 끼여서 아무 말 못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3 파트장인 서익준. 그는 자기 파트에서 인벤토리 테스크를 가져와 성과를 만들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효율이 좋지 못한 작업이었다.
3파트 인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벤토리 시스템인데다가, 인벤토리 시스템은 이미 반쯤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온전히 자기 파트 성과로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차중완은 신문법을 엄청 많이 사용하고, 코딩 스타일도 굉장히 도 특이하다고 소문 나 있다. 그래서 차중완이 작업하던 것을 이어서 작업하는 것은 꽤나 비효율 적인 일이다. 높은 확률로 차중완 작업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조진명 팀장은 어느 파트든 손들고, 인벤토리 테스크를 받아 가길 바랐다. 그래야 팀장인 자신의 체면이 산다.
그리고 약 5초 뒤, 이진수가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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