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변경 3
오준성 파트장의 말을 복기하던 이진수는, 오준성 파트장의 기획서처럼 코드를 재해석하면, 어쩌면 남은 이슈가 한 방에 처리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오준성 파트장님의 기획서처럼 어쩌면 코드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겠는데?“
이진수는 8번 9번 이슈와 남은 10~12번, 3개 스킬에 대한 공통점을 찾았다. 이번에 매그넘 프로젝트로 전환배치해 왔다는 오준성 파트장은 캐릭터의 통일성을 위해 워리어 스킬을 전부 비슷한 컨셉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
근접 공격 캐릭터답게, 사정거리를 줄이고, 조금 더 직접 타격 느낌을 줄 수 있게 변경하는 것. 오준성 파트장에게 들었던 설명이 이진수의 머릿속에서 코드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진수는 생각했다. 데미지 연산 코드를 근접과 원거리용으로 분리한 뒤, 워리어 스킬이 사용하는 데미지 관련 함수를 모두 근접용으로 변경하면 된다고... 이렇게 되면 8번부터 12번 이슈까지 모두 한 방에 해결된다.
이진수는 도전하기로 했다. 모든 공통점을 한 번에 수정한다! 그리고 그는 대략 코딩해야 할 양을 가늠해봤다. 단순 반복 작업이었지만, 작업량 자체는 여전히 상당했다. 그래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진수는 이런 의미로든 저런 의미로든 반복 작업을 싫어하지 않는다.
"음... 500 줄 정도만 수정하면 되겠네. 내일 아침 10시면 끝낼 수 있겠어."
계획 세우기가 끝나고, 이진수는 곧장 수정에 돌입했다.
그리고 쉴 틈 없이 반복 된 코딩.
정확히 다음 날 아침 10시.
이진수는 500 여 줄의 코드를 수정했고, 간단한 테스트까지 마쳤다.
"음... 이제 다 된 건가?"
이진수는 커밋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 화면에 수정된 파일의 목록이 주르륵 보였다. 수정한 파일은 총 84개. 수정한 라인 수는 531줄.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획 문서에 만들어 둔 표를 수정했다. 1번부터 12번까지 모두 완료 칸에 O 체크를 했고, 수정한 사람 칸에는 모두 자기 아이디인 Binary를 적었다.
그리고 이진수에게 진짜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은 허기였다.
"꼬르륵..."
저녁도 먹지 않고, 밤을 새운 이진수의 내장은 밥을 달라고 시위 중이었다.
"밤새워 일했더니 배가 고프네... 뜨끈한 국물이 땡기네... 나는 밥을 찾아 나서네...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먹는 밥이 최고라네..."
이진수는 취객처럼 이상한 라임을 흥얼거리며, 낯선 도시인 판교를 방황하며, 국밥집을 찾아 떠났다.
이진수가 어딘가 숨어 있는 순댓국 맛집에서 혼자만의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을 때, 클라이언트 1 파트와 캐릭터 담당인 기획 2파트 사람들이 삼삼오오 출근했다. 그리고 그들은 트러블메이커인 박형돈 자리로 모여들었다
클라 1 파트의 최 고참 박형돈이 무언가 빌미를 잡은 듯 버팅기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수정할 게 없다니까요?"
이번 워리어 캐릭터 스킬 개편을 주도한 기획 2 파트장 오준성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박형돈의 말투. 허윤 파트장의 말꼬투리를 잡을 때와 비슷한 말투다.
"아니. 파트장님. 우리 프로젝트 오신 지 아직 한 달도 안 되셨죠? 개발하다 보면 원래 버그도 막 제멋대로 생겼다가 기능도 생겼다가 그래요. 참나..."
허윤 파트장은 박형돈이 비아냥거리면 난감해했다. 하지만, 오준성 파트장은 조금 달랐다.
"아니요. 저도 분명 확인했습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거죠...? 그럼, 이리 와서 보세요."
박형돈은 자신의 pc에서 메그넘 프로젝트를 띄웠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고 말했다.
"자 여기 수정 사항 보이시죠? 대쉬 스킬의 사거리를 1m로 줄인다. 맞죠?"
"네. 맞습니다."
이건 이진수가 만들었던 표의 난이도 최하 1번 이슈였다.
"자 그럼 이제 스킬 써봅니다?"
박형돈은 워리어의 대쉬 스킬을 사용했다. 에디터 디버깅 툴에서 대쉬 스킬의 사거리는 정확히 1m로 찍혔다.
"보세요. 1m 맞죠? 아니 지금도 1m인데, 1m로 또 바꿔 달라는 건가요? 쯧쯧···"
박형돈의 말에 오준성 파트장이 다시 대답했다.
"아니요. 금요일... 그러니까 어제 오후까지 분명 1m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참. 직접 보시고도 못 믿으시겠다?"
박형돈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 오준성 파트장은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정면 승부를 걸었다.
"그럼 로그 한번 보시죠."
"무슨 로그요?"
"SVN 커밋 로그요. 금요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누가 수정했을 수 있잖아요?"
"하하하. 아닌데요? 금요일 저녁에 저희 파트원은 모두 저랑 같이 퇴근했고, 조금 전에 다시 출근했는데요?"
"그래도, 팩트 체크는 해야 하니 로그 한번 보시죠. 만약 아니라면 제가 정식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뭐 그러시죠. 정 사과가 하고 싶으시다면 말이죠. 크크크"
박형돈은 워리어 대쉬 스킬의 클래스 파일을 우클릭했다. 그리고 show log를 클릭했다.
"자 보세요... 어...?"
오준성 파트장도 박형돈의 모니터를 봤다.
수정 날짜 : 금요일 오후 9시 12분.
수정자 : Binary
수정 내용 : 대시 스킬 범위 1m로 변경
그 뒤로도 Binary 아이디의 커밋이 쭉 보였다. 밤 10시. 새벽 2시... 그리고 마지막 커밋은 오늘 아침 10시였다.
당황한 박형돈에게 오준성 파트장이 말했다.
"저기 마지막 커밋 내용 좀 봅시다. 조금 전 아침 10시에 커밋된 거요."
박형돈은 오준성의 말을 듣고 마지막 커밋 내용을 확인했다.
수정 날짜 : 토요일 오전 10시 00분
수정자 : Binary
수정 내용 : 8~12번 이슈 전체 수정. 8번 윈드 스킬 타격 범위 모양 변경. 9번 스킬.... 생략...
주변에 모여 있던 클라 1 파트와 기획 2파트는 모두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준성 파트장이 물었다.
"Binary 가 누군가요?"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클라 1파트 파트장인 허윤도 마찬가지였다.
허윤 파트장이 대답했다.
"Binary 아이디라면, 아마 우리 파트 신규 입사 한 이진수 님 아이디 일거 에요."
그때 마침, 순댓국을 배부르게 먹은 이진수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철야를 한 덕에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이진수는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저기 있네요. 이진수."
오준성이 이진수를 불렀다.
"진수 님?"
"네?"
"저는 기획 2파트 파트장으로 온 오준성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제 저희 파트로 오셔서 기획 수정사항 설명해주시는 거. 저도 봤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진수 님 아이디가 Binary인가요?"
"네. 맞습니다."
"혹시... 어젯밤... 아니 오늘 아침까지 워리어 스킬 12개 개편 작업하셨나요?"
"네."
"12개 다 작업하신 거예요?"
이진수는 오준성의 의도를 오해했다.
"아... 일단 저도 수습은 통과했기 때문에, 허윤 파트장님이 기획서 보고 수정해도 된다고 하셔서요."
"아니요. 그걸 물은 게 아니라 12개 스킬 다 작업하셨냐고요."
"잠시만요."
이진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기획서 한구석에 자신이 정리해둔 수정 목록을 봤다.
"여기 보시면 수정 요청하신 게 총 12개로 보이는데요."
"네. 12개 맞아요."
"네, 여기에 수정된 것들은 체크해 놨어요. 오늘 아침 10시에 8~12번 스킬은 한 번에 수정했고요. 아... 그러고보니 12개 다 수정됐네요."
이진수가 만들어 둔, 스킬 수정 체크리스트를 보는 오준성의 눈빛은 깊었다.
"진수 님. 이름이 뭐라고 했죠?"
"이진수입니다...?"
"이진수 님.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는 오준성입니다."
오준성은 손을 뻗어 이진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허윤 파트장을 보고 말했다.
"리더 회의에서 허윤 파트장님이 주말까지 다 수정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군요. 하하하."
그리고 자신이 파트장으로 있는 기획 2파트를 향해 말했다.
"자! 클라이언트 1파트 분이 밤새 전부 수정해줬으니. 우리도 테스트 시작하시죠!"
기획 2파트원들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예~ 꼼짝 없이 이번 주는 토일 모두 철야 각인 줄 알았더니, 오늘 다 끝나겠는데요?"
"앗싸~"
박형돈은 이진수의 커밋 로그를 봤을 때, 벌어졌던 입을 아직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했지..?"
그의 벌어진 입에서 소량의 침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허윤 파트장이 말했다.
"형돈 님. 이제 그만 입 다물고, 일하세요. 프로그래머는 입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코딩으로 싸우는 겁니다. 진수 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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