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면담 2
조진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진수의 답변으로 혼란에 빠졌다.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전에 옆집 아저씨랑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요."
"옆집 아저씨요?"
"네. 저희 고향 집 옆에 사시는... 아무튼 저도 아저씨한테 물어봤어요. 불가능한 개발 요청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진수는 옆집 아저씨를 성대모사 하듯 팔짱을 끼고 아저씨 말투로 말했다.
"허허허. 그런 기획자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구먼. 진수야. 우리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드는 게 아니야. 이미 있던 걸 조금씩 변형해서 다시 만들 뿐이지. 그런데 작업 효율을 배제하더라도 개발할 수 없을 정도의 이슈다? 그건 필시 그 기획자가 천재라는 거야. 세상에 없던 기획을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난 좋을 것 같은데?"
이진수는 다시 본인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옆집 아저씨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흠... 진수 님은 정말 엉뚱한 면이 있네요. 그 엉뚱함 마음에 듭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늘 공채 동기들이 입사한 지 딱 3개월 되는 날이다.
본인들이 바닥에 깔린 베이스라고 생각하는 최인호, 김대주, 이재웅이 모여있다.
김대주가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혹시 다른 회사 알아보고 계세요?"
최인호는 의외로 홀가분해 보였다.
"저는 다시 유튜브나 하려고요. 공채 기간 동안 느낀 게 많아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재웅 님은 좀 알아보고 있어요?"
"아니요~ 저도 딱히~ 한두 달 좀 쉬려고요. 우리 세 달 동안 빡셌잖아요."
의외로 덤덤하고 일상적인 그들의 대화를 깬 것은 이번에도 조진명 팀장이었다. 그가 동기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잠시, 공채 분들께 드릴 말이 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다 같이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진수 님도 포함해서요."
"넵!"
공채 동기 6인과 조진명 팀장은 작은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조진명 팀장이 말했다.
"흠... 장고 끝에, 이번 공채 수습 평가를 마무리했습니다."
평온하던 이들은, 공채 수습 평가라는 말에 갑자기 얼음이 됐다.
"이번 공채 결과에 대해서 파트장님 들과는 지난주 말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 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동기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그저 조진명 팀장이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전원 수습 합격입니다."
이재웅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이번 클라이언트 파트 공채 6분은 모두 수습 합격 됐다는 뜻입니다."
최인호와 김대주, 이재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정말이죠?"
"농담 아니죠? 저희 여섯 명 전부 합격이라는 거죠?"
조진명 팀장도 내심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보통 수습 평가에서 반 정도 불합격합니다. 불합격 당한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불합격시키는 저도 마음이 좋진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원 합격이라 저도 기분이 좋네요."
조진명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기 5명은 모두 이진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를 부둥켜안았다.
최인호가 말했다.
"진수씨... 나 정말 고마워... 처음에 못되게 군 거 용서해줘."
이재웅도 말했다.
"이제 이진수는 내 평생 친구다! 어려운 일 있으면 다 저한테 말하세요!!"
모두 각자 이진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모두의 인사를 받은 이진수가 말했다.
"부끄럽네요. 저는 그냥 응원했을 뿐이에요."
이진수 다음은 조진명 팀장이었다. 각자 조진명 팀장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진명 팀장이 말했다.
"조만간 저희 프로젝트에 대규모 조직 개편이 있을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른 파트에 소속되면, 조직개편 이후 다른 파트로 또 이동해야 해요. 그래서 수습, 아니... 이제 정직원이 된 여러분 6인이 있어야 할 임시 거처가 필요 합니다."
남자답고 무서운 이재웅이 말했다.
"수습 합격만으로도 감지덕지합니다. 소속이야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 같은 매그넘 프로젝트 아닙니까?"
"흠... 네 그럼 더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하필 조직 개편 타이밍이 이래서 좋진 않네요. 어쨌든 여러분을 버리는 것은 절대 아니고, 조직개편 될 때까지 잠시 대기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흠..."
조진명 팀장은 턱을 한번 쓰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냥 제가 개발지원파트를 만들겠습니다. 곧 진행될 조직 개편까지만 임시로 운영될 파트고, 파트장은 제가 겸임합니다. 여섯 분 모두 개발지원파트로 배치 해드릴테니, 저희 프로젝트 조직 개편 때까지만 다른 분들 서포트해 주고 계세요."
이진수가 물었다.
"조직 개편은 언제인가요?"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안에 할 예정입니다."
이구성이 말했다.
"그럼 저희는 개발지원파트에 가서 무얼 하면 되나요?"
"제가 업무를 정리해서 드릴 텐데, 그 전에 다른 분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스스로 진행해도 좋습니다."
"넵!"
회의가 끝난 뒤, 최인호가 이진수에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오늘 정직원 된 기념으로 소주 콜? 진수 님 술값은 내가 쏜다!"
최인호의 저녁 술자리 제안을 모두 흔쾌히 수락했다.
그날 오후 4시 40분 고주영에게 메시지가 왔다.
[고주영 : 사수님!!!]
[이진수 : 네.]
[고주영 : 사수님이 사수님 동기들까지 전부 수습 합격시켰다면서요?]
[이진수 : 제가 합격시킨 건 아니고, 각자 합격 한 거죠. 저는 그냥 생선까스 주먹밥 만들어 준 게 다예요.]
[고주영 : 에이~ 사수님 겸손하시긴. 어쨌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공채 동기분들한테 신경 많이 쓰신 거 알고 있어요.]
[이진수 : ㅎㅎㅎ]
[고주영 : 사수님 마음 알아봐 주는 건 부사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진수 : 네. 고마워요.]
고주영은 이번 공채 수습이 모두 합격 된 것을 보고, 그리고 이진수가 자기 동기들을 끝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고, 이진수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고주영은 이진수와 친근감을 더 쌓기 위해 사소한 무리수를 뒀다.
[고주영 : 그... 사수님]
[이진수 : 네?]
[고주영 : 제가 부사수가 된 지도 이미 한 달인대, 이제 말 편하게 하세요.]
고주영은 이진수가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이진수 : ㅇㅇ]
[고주영 : 헛!!!]
[이진수 : 왜? 말 놓으라며?]
[고주영 :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이진수 : ㅇㅇ]
[고주영 : 진수 님. 회식 안 하십니까? 말 놓은 기념으로요!]
[이진수 : 오늘 공채 동기들 모임하기로 했는데, 너도 올래?]
[고주영 :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요?]
[이진수 : 내가 말해볼게.]
[고주영 : 넵! 그럼 전 좋습니다. 진수 님 외에 공채분들 따로 얘기해 본 적이 없는데, 잘됐네요.]
[이진수 : ㅇㅇ]
같은 날 오후 5시 유민희가 이진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민희 : 안녕하세요?]
[이진수 : 네. 안녕하세요.]
[유민희 : 오늘 금요일이에요!]
[이진수 : 그렇네요. 시간 빠르네요.]
[유민희 : 소식 들었어요! 진수 님 수습 합격하셨다면서요?]
[유민희 : 완전 추카추카! 치킨 쏘세요!!]
[이진수 : 저는 두 달 전에 이미 정규직 됐어요...]
[유민희 : 엥?? 어떻게??]
[이진수 : 수습 조기 합격했거든요...]
[유민희 : 힁... 그럼, 합격 축하 턱은 다음에... ㅠㅠ]
이진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이진수 : 오늘 제 동기들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저 말고 5명은 모두 오늘 합격이라 축하 턱 쏠 거예요.]
유민희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됐지만, 이진수가 같이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유민희 : 제가 그 자리에 껴도 돼요??]
[이진수 : 그럼요. 제가 동기들한테 말해둘게요]이진수가 동기 단체 방에서 말했다.
[이진수 : 오늘 고주영 님 같이 가도 되나요?]
[이재웅 : 고주영이면... 1파트 그 친구 말인가요?]
[이진수 : 네.]
[최인호 : 어랏? 그 친구는 자기네 파트 회식도 안 간다고 하던데? 어쩐 일이래]
그리고 몇 분간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아무 말 없던 몇 분이 지나고, 이진수가 메시지를 보냈다.
[이진수 : 민희 님도 오고 싶데요.]
[이재웅 : 민희 님이 누구에요?]
[이구성 : UI 팀 유민희 님???]
[이진수 : 네. 오라고 할까요? 아니면 저희끼리?]
[최인호 : 어라? 유민희 님이 왜 여길??]
[이재웅 : 이유는 모르겠고, 내가 아는 그 UI 팀 민희 님이라면 무조건 오라고 해야죠. 장난합니까?]
[김대주 : 민희 님이라면 저도 콜입니다.]
[이진수 : 그럼 두 분 다 오라고 할게요]
그날 저녁, 동기 6명과 유민희, 그리고 고주영까지, 8명이 양꼬치 집으로 갔다.
인싸 스타일 최인호가 말했다.
“자자, 우리 모두와 공채 전체 합격이라는 이변을 만든 이진수를 위하여!”
“위하여!”
무섭게 생긴 이재웅이 말했다.
“이건 수습 합격의 문제가 아니야! 수습 합격보다 자존심의 문제였다고!!”
오타쿠 이구성도 한마디 했다.
“흐흐흐... 그래도 3N게임즈 수습까지 왔는데 탈락하면, 좀 아쉽긴 했을 거예요. 흐흐흐. 뭐가 됐든 진수 님 덕이에요.”
잘생기고 세련된 막내 김대주도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 동기만큼 끈끈하게 뭉친 기수는 없을 거예요!“
”자자~ 술잔 들고 있지만 말고, 거국적으로다가 한잔하시죠!“
각자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진수는 양꼬치가 숯불 위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며 구워지는 게 신기한 듯했다.
“와... 이거 최첨단이네요···.”
2015년인 지금, 양꼬치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지 이미 몇 년 지난 상태였다.
유인국이 이진수에게 물었다.
“양꼬치 처음 먹어봐요?“
”네. 보는 것도 처음이에요.“
”엥? 생선까스도 처음이라고 하고, 양꼬치도 처음이라고 하고... 진짜에요?”
“네. 제가 살던 곳은 워낙 시골이라 이런 게 없었어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읍내도 나가고, 도시도 나가고 하지 않아요?”
“저는 20대 때 대부분 장공건설에서 일했는데, 그때는 대부분 사오십 대 아저씨들이랑 일했으니까. 이런 거 먹을 기회가 없었어요. 거기다 제가 다니는 공사장은 대부분 촌이기도 했고요.”
"아... 그러시구나... 그렇죠... 건설업에서 꽤 오래 일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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