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도구 2
김 아주머니가 사용하는 미니 쟈키. 그것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크게 무겁지 않은 작은 물건을 계단 위로 올리기로 쉽게 해주는 도구로, 근육맨 실장이 김 아주머니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
"..."
근육맨 실장이 말했다.
"언젠가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며? 일을 대신 해줘서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편이 더 좋아. 그래야 그 사람도 아~ 내가 해냈구나 하고 느끼지.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소중한 사람이길 바라거든."
"아저씨가 김 아주머니한테 미니 쟈키를 만들어 준 것처럼요?"
"그렇지, 이놈아. 그러니까 도구를 소홀히 하지 마라."
이진수는 생각했다.
"그렇지!! 도구가 있다면 힘이 약한 김 아주머니도 무거운 벽돌을 들어 올릴 수 있다!"
근육맨 실장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진심이었다. 이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배운 덕에, 보통 프로그래머들은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툴(Tool, 도구) 만드는 일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진수가 유민희와 근육맨 실장을 생각하며, 허윤 파트장에게 말했다.
"아직 제 적응 기간이 조금 남아 있는데요.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될까요?"
허윤 파트장은 1차 과제와 스킬 개편 작업 이후로, 이진수에게 호감이 가득했다.
"오~ 그래요? 마침 잘됐네요. 안 그래도 저도 진수 님 한테,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볼 참이었어요."
"도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도구요? Tool이요?"
"네."
침묵을 지키던 박형돈이 반쯤은 혼잣말로 들릴 듯 말 듯 빈정댔다.
"툴은 무슨... 그딴 게 왜 필요하다고... 메인 작업 하기 겁나니까 툴로 빠진 거 아니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래머의 경우 신입이 들어오면, 프로젝트에 적응하기 전까지 툴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툴은 프로젝트의 부분적인 구조만 보고 작업 가능한 경우가 많고. 또, 잘 못 만들어도 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난이도 높은 툴도 아주 많다. 하지만, 간단한 툴 제작은 초반 프로젝트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진수는 박형돈을 쳐다봤다.
"우리 프로젝트에 딱 맞는 맞춤형 툴은 프로그래머밖에 못 만들잖아요. 저희가 타 직군 사람들에게 유용한 툴을 만들어 주면 분명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거예요. 서로 신뢰 관계도 쌓일 거고요."
박형돈은 이진수에게 2연속 패배했기 때문에, 이진수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허윤 파트장이 얕은 숨을 쉬며 말했다.
"흠... 진수 님은 이미 실력이 입증됐는데, 조금 더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게 어때요?"
"저는 툴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진수는 입사 두 달 만에, 허윤 파트장의 절대적 신뢰를 얻었다. 허윤 파트장은 이진수의 바람을 믿기로 했다.
"흠... 그럼 알겠습니다."
파트 회의가 끝난 뒤 이진수 자리.
이진수 자리로 고주영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사수님."
"네. 안녕하세요."
"아까 툴에 대한 가치관 잘 들었습니다! 물론 멋진 툴도 많지만... 짜치는 툴은 멋없어 보여서, 보통 플머들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역시 사수님은 보는 산이 높으신가 봐요!"
"네..."
"어떤 툴을 만들고 싶으신 건가요?"
"툴은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야죠."
고주영은 또다시 감동 받은 눈치로 말했다.
"오! 그럼, 누구의 툴을 처음으로 만드시나요?"
"유민희 님요."
"헐... 유민희 님... 사수님 실례가 안 된다면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니요?"
고주영은 마침 잘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 그럼 좋은 선택인 것 같네요! 그런데... 민희 씨한테 어떻게 자연스럽게 툴을 만들어 줄 수 있냐가 관건이겠네요... 민희 씨한테 말 걸려고 줄 서 있는 남자가 한 트럭이잖아요."
"그냥 물어보면 되죠. 자연스럽게."
이진수는 바로 사내 메신저에서 유민희라는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진수 : 안녕하세요. 저 클라 1 파트 이진수입니다.]
"아니. 그렇게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내면..."
"왜요?"
"아... 아닙니다."
고주영에게 유민희는 우리 회사 최고 인기녀. 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대뜸 메시지를 보내 버리는 이진수를 대담하다 생각했다. 반면, 이진수에게 유민희는 그저 힘이 없어서 괴롭힘 당하는 불쌍한 신입이었다.
유민희에게 바로 답이 왔다.
[유민희 : 안녕하세용!]
[이진수 : 혹시 지금 자리 계시면 제가 잠깐 민희 님 자리로 가도 될까요?]
[유민희 : 앗 넵. 지금 자리에 있어용!]
고주영은 유민희의 메시지를 봤다.
"엇... 민희 님. 용용체라니... 나랑 채팅할 때는 안 그러던데...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이진수는 유민희 자리로 찾아갔고, 고주영도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이진수라고 합니다."
고주영은 이미 유민희와 친분이 있는지 서로 손을 흔들며 눈인사를 건넸다.
유민희는 앉아 있지 않은 이진수를 처음 봤다. 옷이 더럽거나 하진 않았지만, 딱히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무언가 구제 같으면서도 구제는 아닌 듯한.
"안녕하세요."
"네. 혹시 UI 작업하실 때, 클라이언트 쪽에서 수정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네? 갑자기요?"
"네. 제가 이번 주 손이 좀 비어서요. 전에 본 것도 있고... 혹시 UI 매니저 쪽에서 수정 필요한 거 있나 해서요. 아니면 필요한 도구가 있으시던가?"
사실 유민희가 속해 있는 아트 파트에는 UI 관련 수정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동안 박형돈이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아서 답답해 하던 차였다. 하지만 유민희는 상황 판단이 잘 안돼서, 쉽게 말하지 못했다.
고주영이 말했다.
"민희 씨. 걱정하지 말고 다 말씀하세요. 진수 님은 다 만들어 주실 거예요!"
"어머! 정말요? 그럼 UI 깊이 문제 좀 수정해 주실 수 있나요? 이 문제가 이주 넘게 수정되지 않아서요."
UI 깊이 문제라면, 지난주에 박형돈이 이진수를 골탕 먹이려고 이진수에게 시켰던 문제로, 이미 이진수가 수정한 문제다.
"그거라면 이미 수정돼 있어요."
"네? 그거 형돈 님이 수정 못 한다고..."
이진수와 옆집 아저씨가 함께 같이 게임을 만들던 시절. 이진수는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고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이건 안 돼요. 이걸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요?"
"우리가 왜?"
"건설업에서 근근이 취미로 코딩 공부하는 저랑, 그냥... 시골 아저씨? 아무튼 이런 건 전문가한테 맡겨야 해요."
"허허허. 진수야. 지금 우리는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게 아니야. 그런데 안 되는 게 어딨냐? 그저 내가 아직 모르는 일이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일 뿐이야."
"아 네."
이진수는 옆집 아저씨의 말을 인용했다.
"코딩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어요. 저희가 없던 걸 개발하는 건 아니니까요."
"와... 진수 님 멋쟁이! 그럼, 진수 님은 모르는 일이 없는 거예요?"
"아니요?"
"네? 아깐 다 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없죠."
"그럼...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요? 다 할 수 있다면서요?"
"모르면 배우면 되죠."
"아..."
심플한 이진수의 대답. 유민희는 그간 대화했던 프로그래머들과 이진수가 조금은 다르다고 느꼈다.
"보통 프로그래머분한테 이런저런 요청 하면, 다들 이런저런 얘기 하시면서 안 된다고만 하시는데, 진수 님은 좀 다르네요."
"저는 좀 다르긴 하죠. 정식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운 적이 없는, 근본 없는 프로그래머니까요. 아무튼, UI뎁스 문제는 제가 지난주 목요일에 수정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네."
유민희는 자기 컴퓨터로 게임을 실행시킨 뒤, UI 깊이 우선순위(Depth)를 테스트해 봤다.
"와! 정말이네요. 전에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클릭해서 아이템 정보 창을 열면, 아이템 정보 창이 인벤토리보다 아래서 열렸는데, 이젠 제대로 보여요!"
"그러면 더 수정할 거 없나요?"
"네. 일단 이거만 되면 다음 작업할 수 있어요!"
유민희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이었다. 그녀는 신나서 아이템 정보 창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아이템 정보창에 애니메이션을 넣기 위해 이미지를 한 땀 한 땀 넣고 있었다.
유민희가 작업하는 것을 빤히 쳐다보던 이진수가 물었다.
"이걸 왜 하나하나 다 넣고 있어요?"
이진수보다 나이는 3살 어리지만, 경력이 3년이나 많은 유민희가 말했다.
"아~ 진수 님 아직 신입이라고 했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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