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FrameWork 4
이진수를 놀려주러 간 박형돈 무리. 박형돈 질문에 대한 이진수의 대답은 그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이진수가 대답했다.
"네. 작업은 다 했습니다."
"뭐?"
"근데 이거 코드에 문제가 많네요."
"뭐???"
박형돈이 그의 무리에서 대장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몇 개 있었다. 우선 경력과 나이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유는 바로 UI 매니저 덕분이다.
박형돈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찍 매그넘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그가 가장 처음 맡았던 일이 UI 매니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박형돈이 계속 관리해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UI 매니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 덕에 UI 관련된 수정은 모두 박형돈에게 맡기거나, 그에게 수정 방법에 대한 가이드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UI 작업을 주로 하는 김준석과 이재석은 자연스럽게 박형돈을 대장 모시듯 하게 됐다.
즉, UI 매니저 코드는 박형돈의 자존심이자, 권력의 원천이었다.
박형돈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뭐?? 코... 코드에? 내 코드에 문제가 있다고?"
이진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아니, 그것보다 벌써 다 했다고?"
이진수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이진수는 자신의 모니터에 UI 매니저 코드를 띄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코드 중 함수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요. 이 함수가 문제가 있어요."
허윤 파트장은 말없이 모니터 속 코드를 봤고, 김준석은 역정을 내며 말했다.
"아니. 그 함수가 얼마나 잘 짜진 코드인데 그래요? 형돈 형님은 이전 회사에서부터 UI 전문가였어! 잘 봐봐 코드 하나하나 네이밍도 너무 잘 맞춰져 있고, 객체지향 구조도 잘 잡혀 있다고. 그리고 말이에요. 엉? 우리도 이해 못 하는 형님 코드를 고작 이틀 보고 다 이해했다는 겁니까?"
이재석도 거들었다.
"내 말이요~ 아니 거짓말을 하려면 좀 재미라도 있게 하시던가~"
이진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일단, 이틀은 아니고요. 이번 주 내내 봤던 코드예요."
박형돈보다 김준석이 더 화가 난 것 같다. 김준석은 박형돈의 코드가 자신의 신앙인 양 굴었다.
"뭐? 그걸 진수 씨가 왜 미리 보고 있어요? 우리가 일 준 건 어제였잖아."
"그냥 적응도 할 겸, 코드를 보다가 이해가 잘 안되는 코드가 있어서 좀 살펴봤습니다."
"거봐. 진수 씨도 이해 못 한 거네. 근데 뭐가 잘못됐다고 지적이에요?"
이진수는 다시 한번 모니터 속 코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코드요. 굉장히 잘 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 의미 없습니다."
"뭐? 어디 정말 그렇다면, 증명해 봐요."
"네. 그럼, 이 함수의 코드 550줄 모두 삭제하고, 이 2줄만 추가한 다음 보여드릴게요."
이진수는 박형돈 무리가 숭배하듯 모시는 함수의 코드를 모두 지우고, 간단한 코드 2줄을 넣었다. 그리고 게임을 실행시켰다.
이진수는 게임 속에서 이것저것 UI를 열면서 테스트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아무 이상 없죠?"
박형돈도 마치 자신이 믿던 신이 없어진 것처럼 아연실색했다.
"아... 아니 어떻게... 내가 버그가 생길 때마다 저 함수를 수정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데..."
"네.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형돈 님은 버그가 생길 때마다 계속 이 함수 안에서 수정하려고 집착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함수가 과도하게 비대해졌고, 버그를 수정하기 위한 코드가 또 버그를 만들고...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결국 이 함수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너무 커져 버린 함수 덕분에 함수를 이해하기 어려워졌고요."
이진수는 자신이 넣은 2줄의 코드를 확대해서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 함수는 원래 UI끼리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간단한 함수였어요. 그런데 버그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하다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어요. 그냥 애초 계획대로 UI에 설정된 값끼리 비교해서 누가 더 위에 있어야 하냐만 결정해서 주면 되는데 말이죠. 그러면 어제 저한테 수정하라고 했던 문제도 수정됩니다."
여태까지 자신들에게 권력을 만들어 주고, 자신들을 고급 개발자라고 느끼게 해준 UI 매니저의 핵심 코드. 그 코드가 한순간에 모두 부정당했다. 이진수의 설명을 듣고, 박형돈 무리와 허윤 파트장, 그리고 이진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공채 동기 유인국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들의 침묵을 깬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어머! 진수 님! 멋져요!"
디자인 파트 UI 디자이너 유민희였다. 유민희는 고주영과 함께 이진수 자리 옆을 지나가다 박형돈의 큰 목소리 덕에 본의 아니게 이 대화를 엿듣게 됐다.
유민희는 UI 디자인 담당으로, 프로그래머들에게 UI 관련 수정을 요청할 때 마다 거절당하기 십상이었다.
그 거절이 이유가 바로 UI 매니저였다. 프로그래머들은 디자인이나 기획파트에게 UI 매니저 코드는 어려워서 쉽게 작업하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UI 매니저 코드를 저렇게 쉽게 말하는 이진수가 대단해 보였다.
유민희의 감탄 덕에 침묵은 더 길어졌다. 그 누구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번 침묵을 깬 것도 의외의 인물이었다. 평소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는 고주영이었다.
"저기 파트장님."
허윤 파트장이 고주영에게 말했다.
"아~ 주영 님. 민희 님.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UI관련 이슈 때문에, 민희 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지나가다... 소리가 나길래 왔다가 들었어요."
"아.. 네."
대답을 마친 고주영은, 몇 달 만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파트장님. 저 오늘 회식 따라 가도 되나요? "
"그럼요. 오시면 좋죠. 예약 인원 변경해 둘게요. 그런데 오늘 선약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근데 마침 선약이 취소됐네요. 하하하. 그리고... 진수 님이랑 대화해 보고 싶어졌어요."
그날 저녁 7시.
클라이언트 1 파트 6명은 박형돈이 좋아하는 "어수선 횟집"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지난주 클라이언트 1 파트와 함께 주말 출근을 했던, 기획 2 파트가 이미 와 있었다. 기획 2 파트 파트장 오준성이 말했다.
"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진수 님은 이쪽으로 오시고요~"
이진수가 기획파트와 가까운 자리로 가자, 고주영도 이진수를 바짝 따라가 그의 옆에 앉았다.
기획 2 파트와 클라 1파 트는 각자 인사를 했다.
허윤 파트장은 이진수가 박형돈 무리에게 먹인 한 방 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기획 2 파트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하하하 여기 어수선 횟집인데, 그렇게 어수선하진 않네요?"
기획 2 파트 사람들은 허윤 파트장의 드립을 어떻게 받아쳐야 할까 아주 짧은 시간 고민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이진수가 치고 들어 왔다.
"그래도 어수선한 것보다 조용한 게 낫지 않나요?"
"음.. 뭐 그렇게 그렇지. 어수선한 것보다야 조용한 게 낫죠. 대화도 잘 되고 말이에요."
기획 2 파트 사람들은 이진수와 허윤 파트장. 두 프로그래머의 대화가 정말 그냥 대화인지, 서로 드립을 주고받는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잠시 뒤 주문한 모듬 회가 나왔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주변에 앉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기획 파트 김대우가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이윤아에게 작게 말했다.
"아니. 저기 박형돈 과장님네 왜 이렇게 조용해?"
"어머 과장이라니요? 우리 회사 님 문화 된 지가 언젠데."
"아아 그렇지."
이윤아는 호칭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이 났는지, 난데없이 혼자 소주를 원샷했다. 그 모습을 본 김대우가 뒤늦게 소주잔을 들며 말했다.
"에이 왜 그래. 같이 마셔."
"아니 과장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빡쳐서요."
"왜? 무슨 일 있었어?"
"지난번 프로젝트 전체 회식 때, 저 박형돈이랑 근처에 앉았는데. 취해서 갑자기 자기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막 그러는 거예요! 재수 없어 정말."
"하... 저 양반은 진짜 언젠가 벌 받을 거야."
이윤아와 김대우는 둘 다 박형돈에게 안 좋은 추억을 말하며 소주잔을 짠 하고 부딪혔다.
"윤아 씨. 아니 윤아 님. 왜 술을 마시면 우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
"왜요?"
"짠 하거든. 하하하하."
"어머~ 대우 님. 요즘 사람들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호호호."
그래도 기획파트 사람들은 뭐가 농담이고 뭐가 일반적인 대화인지 서로 구분을 잘했다.
이 둘은 기분 좋게 웃다 갑자기 클라이언트 1파트 쪽을 바라봤다. 화기애애한 기획파트 테이블과 다르게 클라파트 쪽은 초상집 같았다.
심지어 아직 1시간도 안 됐는데, 박형돈 무리는 벌써 자리를 일어나고 있었다.
자리를 일어나며 박형돈이 허윤 파트장에게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파트장님 저희 먼저 들어 가보겠습니다."
"아 넵."
박형돈, 김준석, 이재석은 조용히 회식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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