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변경 1
최적화를 주제로 했던 수습 평가 2차 과제 이후.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이진수는 최인호보다 더 유명해졌다. 매그넘팀에 천재 프로그래머가 입사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문은 몇 번의 입을 거치자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진수는 원래 외국에서 유명한 프로그래머인데, 암행어사처럼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신입으로 취업했다거나. 사실은 강신구 팀장 빽으로 입사한 실력이 형편없는 낙하산이라던가. 이진수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런 이진수의 특이점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갈 때, 이진수를 대하는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첫 번째, 이진수를 우상화하여 친해지려는 부류. 태세전환이 빠른 최인호가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 최인호는 2차 과제 이후 이진수에게 호감을 보이며 갑자기 친절해졌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진수에게 다가왔다.
“진수 님. 이거 한잔하면서 일하세요. 꽃피는 4월이라 아이스로 준비했어요~”
그는 이진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진수 님. 공채 동기는 소중하니까. 우리 공채 동기끼리 언제 한잔해요.“
최인호는 이진수에게 윙크를 한번 날리고 자기 자리로 갔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유인국이 말했다.
“우웩... 인호 님 갑자기 왜 저런대요? 너무 티 나게 바뀐 거 아니에요? 고졸이라고 무시 할 때는 언제고...”
이진수는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래서 최인호 같은 사람에게도 익숙했다.
“패배감에 쌓여 뒤에서 욕만 하는 사람들보다, 인호 님처럼 유연한 태세가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런가요...? 뭐... 그럴 수 있겠네요."
이진수 소문에 대처하는 두 번째 부류는 최인호와 반대다. 그들은 소문의 주인공인 이진수에 대한 반감 혹은 적대감을 느낀다. 그 반감은 부러움에서 시작해 질투로 끝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자기가 엘리트라고 믿고 있는 3N게임즈 사람들은 이진수에게 호감보다 적대감을 느끼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스펙이 형편없는 신입 따위가 자기보다 더 특별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진수는 2차 과제 이후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곧바로 허윤 파트장이 이끄는 클라이언트 1파트로 배치됐다.
허윤 파트장은 파트 원들에게 이진수를 소개해줬다.
허윤 파트장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분이 수습을 한 달 만에 합격하신 이진수 님입니다.”
1파트 소속 파트원 네 명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이진수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허윤 파트장이 말했다. 남몰래 하던 드립은 온데간데없고, 감정이 결여된 듯한 기계적인 말투였다.
“이진수 님은 오늘부터 1 파트 업무를 하게 되실 겁니다. 어떤 업무를 하게 되실지는...“
1파트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박형돈이 허윤 파트장의 말을 끊었다. 박형돈은 80년생인 허윤 보다 1살 더 위였고, 31살인 이진수보다 5살이 더 많았다.
“예? 파트장님. 이진수 님 신입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신입 맞습니다.”
“그럼, 우선 적응부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진수 님은 저와 황정호 파트장님 그리고, 강신구 팀장님이 실무에 투입할 실력이 있다고 판단하셔서, 조기에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박형돈은 공손한 듯 하지만, 사실은 비아냥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참... 아니... 아무리 그래도 뭐 될 걸 시켜야죠. 신입에 수습까지 한 달 만에 끝났으면, 이제 겨우 경력 2개월 차잖아요?”
매그넘 프로젝트는 주니어, 시니어 불문하고 사람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중이라, 아직 직책자들의 카리스마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진수는 오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경력과 나이가 많은 박형돈과 직책이 높은 허윤 파트장의 기 싸움. 건설업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건설업 경력 많은 아저씨와, 석사나 박사 과정으로 건축을 전공하고 온 신규 입사자. 그 신규 입사자는 경력 많은 아저씨들에게 작업 지시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 싸움은 크든 작든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그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이진수는 괜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허윤 파트장님. 제 생각에도 제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허윤 파트장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말했다.
”씁... 네. 그럼, 이진수 님도 다른 공채 동기들 수습이 끝날 때까지 적응 기간으로 하겠습니다. 다들 이진수 님이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진수는 환영받지 못한 첫 파트 회의가 끝나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사람들이 모였을 거로 생각한 IT업계도, 사람이 모여 부딪히는 일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누군가가 가진 작고 보잘것없는 권력에 누군가는 질투하며, 그 힘을 깎아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자신이 가진 진짜 가치는 제대로 알지도 못 한 체로 말이다.
그래도 이진수는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준 허윤 파트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을 믿어 준 허윤 파트장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옆집 아저씨는 이진수에게 당부했었다. 수습이 끝날 때까지는 되도록 질문하지 말라고.
이진수는 그 당부를 잘 지키고 있지만, 지금은 애매한 상태가 됐다.
”수습을 통과하긴 했는데... 아직 적응 기간이네... 아직 질문을 자제해야겠지?“
이진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자리는 수습 때와 동일했다. 다른 동기들의 수습 결과가 나오면, 그때 배정된 파트로 동기들과 함께 자리 이동할 예정이다. 물론 정규직 합격자에 한해서다. 불합격되면 자리는 그냥 사라진다.
파트 회의 후 이진수는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이진수에게 수습 2개월 차인 유인국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정규직 이진수 님. 파트 회의는 어땠어요?”
“음...? 아? 아!! 네... 뭐... 똑같았어요.”
“뭐랑요?”
“뭐든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진수 님. 그거 알아요?”
“모르죠?”
“진수 님은 천년 묵은 여우 같아요.”
“엥? 구미호 같은 거요?”
“네. 나이는 어리고 신입인데, 한 천년쯤 살아서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느낌이랄까···?”
“제가요?”
“네. 어떤 상황이든 전혀 긴장도 안 하시는 것 같고..?”
사실 이진수는 수습 기간 동안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저요? 저 긴장 하는데요?"
"에이~ 긴장하는 사람이 그래요? 제가 최근 소문을 들었는데, 진수 님은 강신구 팀장님처럼 최적화 전문가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예?"
"이거 엄청 대단한 거예요! 프로그래머의 끝은 TD(테크니컬 디렉터) 아니겠습니까? 신입이 벌써 기술로 인정받고, 강신구 팀장님처 테크 전문가가 되는 거죠!! 테크니컬 디렉터!! 멋있지 않습니까???"
"저요? 제가 왜요? 저는 그냥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아.. 네..."
그날 저녁. 1 파트 사람들이 퇴근하지 않고 모여 있었다.
이진수는 그런 그들 사이에 끼어 기웃거렸다.
허윤 파트장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른 파트 원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해 보였다.
허윤 파트장이 말했다.
“개발 계획이 급하게 수정이 돼서, 급하게 스킬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1파트에서 경력이 가장 많은 박형돈이 말했다. 오전 파트 회의 시간에 허윤 파트장에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스킬 개발 스케줄을 바꾸시면 어떡합니까...”
매그넘 프로젝트는 다음 주에 마일스톤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일스톤을 일주일 남기고, 워리어 캐릭터 스킬이 전면 리뉴얼 되었다.
허윤 파트장이 말했다.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새로 오신 기획 파트 리더분이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다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 개발을 하다 보면, 기획이 변동되거나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흔한 일이라도 계획된 일정이 변경되면 누구나 짜증 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금요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변경된 기획을 모두 개발하라는 것은 이번 주말에 모두 출근하라는 뜻이었다.
박형돈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사이즈가 안 나와요. 우리 5명 모두 주말에 출근한다고 해도, 열 개가 넘는 스킬을 전체 수정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라고요.”
허윤 파트장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 12개 스킬입니다. 무리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획 2파트도 이번 주말에 모두 출근해서 대응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일정이 이렇게 된 것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주말에 별 일정 없으신 분들은 모두 대응 부탁드려요.”
평소 자기가 허윤 파트장보다 나이와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파트장을 무시하는 언행을 자주 했던 박형돈. 그리고 그를 홀로 상대해야 하는 허윤.
하필이면 이럴 때, 허윤 파트장은 박형돈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어가며, 부탁해야 할 일이 생겼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