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388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6.16 09:47
조회
296
추천
21
글자
9쪽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DUMMY

청소 도구함에 있던 사람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쥐 수인이었다.


"저...여기서 뭐 하세.."


'그'는 숨을 격렬하게 들이키고 내쉬기를 멈추지 않았다. 걸치고 있던 바람막이는 땀인지 물인지 모를 습기로 축축하게 젖어서는 제 주인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검은 털은 시뻘겋게 짓물러 가는 살갗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누런 고름이 비적비적 흘렀다.


'그'는 무척이나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벽을 부여잡고 마지막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리기 직전이었다.


괴상하게 갈라져 가는 입술과 부어오르는 성대 사이로 거품 섞인 신음소리가 꺽꺽 새어 나왔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사라는 쥐 죽은 듯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은 떨리고, 심장은 터질 듯 내달리기 시작하고, 차가운 식은땀에 파랗게 질린 전신의 말초신경은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며 절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청소부의 부풀어 오른 살갗 곳곳에서 온갖 혈관들이 꿈틀거리며, 결국 '그'의 전두엽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인간성을 짓눌러 터뜨렸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그'는 스스로의 두 눈을 손톱으로 붙들었다.


망막 너머로부터 번져오는 샛노란 환상이 하얗고 검은 진실을 밀어내고, 빈 자리를 파고들어 만개했다.


그리고 피부 곳곳이 급격한 세포 분열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며 붉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터졌다.


그렇게 '그'였던 존재는 '그것'으로 변했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아..!"


사라의 새햐얀 얼굴과 깨끗한 후드 티, 그리고 얼마 전에 산 검은 청바지는 온통 핏방울로 더럽혀졌다.


수도꼭지를 틀어 세수를 하고 싶은 생각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 보던 그녀의 인내심도 '그'와 덩달아 삼켜지고 말았다.


거부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구를 향해 달렸다.


밀어젖혀진 화장실 문 너머로 새어 들어온 강한 빛이 바닥에 떨어진 라벨과 핏빛으로 빛나는 불길한 웅덩이를 비추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며 간신히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My Way: Bloody Mary」



조금 닳은 운동화의 밑창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연신 즈려밟았다.


사라는 절박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는 모른다. 그저 부탁받은 대로 소어를 데리러 갈 뿐이다.


도서관, 소어는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바로 보이는 카운터 앞에서, 사서는 그녀를 향해 피곤한 얼굴이 달린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 때까지 어디 있었던 거에...피...그 피는 무..뭐...!"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보자, 사서는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뒤로 넘어졌다.


"화..화장실..화장실에 이상한 괴물이...경찰..빨리 경찰이나 구급차 좀 불러요!"


그는 비틀거리며 전화기를 향해 달려갔다.


"여...여여여 여기...주..중학생이, 피투성이가..."


아직 번호도 누르지 않은 수화기를 집어들고, 그는 횡설수설하며 떨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번호도 안 누르고 뭐 하는 거에요! ..네, 경찰이죠? 여기 성 소피아 기념관 1층 도서관인데..."


공포를 분노로 승화시킨 사라는 그의 손에서 수화기를 빼앗아 번호를 누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수화기를 내놓은 사서는 곧바로 경고등을 울린 뒤 어린이용 도서관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경찰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무책임했다.


-다시 정리해 봅시다. 그러니까 수인이 이상한 괴물로 변했다는 거죠? 우선 주변에 있는 총기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을 습득한 다음에 그냥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쏘고 상황 정리되면 그 때 다시 연락하세요. 사후 처리는 경찰이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M.F.B의 영업 행위는 사전 합의 하에 이루어진 적법한 행위이니까, 당황할 필요 없고 그 자리에서 대기해도 문제 없습니다.


"잠깐...뭐라고요?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니! 사람이 죽었는데! 수인은 사람도 아니라는 거야?!"


뭔가 더 항변해 보려는 사라였으나, 경찰 측에서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타오르던 분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한 초조함에 짓눌렸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다.


경찰도 그녀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 총 같은 사치품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다. 짐승을 능숙하게 상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군인? 그들은 이런 '지극히 평화로운' 곳이 아닌 막사에 있을 것이다. 해결사? 뒷세계와는 인연이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용병이 남았다.


공교롭게도 그녀에게 낯익은 용병이 기념관에 있었다.


사라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 사람'을 불러야 한다. 텔룸을 불러야 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데리고 후문으로 빠져나가세요. 저희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작은 까마귀를 향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소어, 내가 연락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 사람... 그 사람이 올 거야. 그러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그 순간, 사라는 창가에 익숙한 페트병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게 해 달라고 그녀는 기도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서관 곳곳을 기묘한 토마토 냄새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라를 제외한 모두의 숨결에서 그 지독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불길한 기류가 되도 않는 교태를 부리듯 그녀의 척수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려하는 것도 잠시, 육중한 충격이 도서관의 유리문을 강타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셋을 세는 순간,


잔뜩 굶주려 있는 '그것'이 뛰어들어왔다.


아니, 뛰어들어왔나? 괴수의 속도와 움직임은 그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날카롭게 부서진 유리조각들이 단도가 되어 날아들며 그녀의 흠집 없는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명한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뜨뜻한 느낌과 함께 붉은 선이 그려졌다.


'죽는 건가, 정말로 죽는 건가?'


그녀의 삶 속에서 즐거웠던 순간, 그리고 슬픈 순간들이 뇌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준비하지 못한 유서의 내용을 상상하며 눈을 감으려던 찰나, '그것'의 후끈하고 불쾌한 숨결이 등 뒤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


찐득하고 굵은 혀가 왼쪽 얼굴을 스쳤고, 묵직한 체구가 그녀의 가벼운 몸을 밀치며 넘어뜨렸다. 그러나 괴수는 그녀를 노리지 않았다.


다행이었을까? 정말 다행이었을까? 어쩌면 사라에게 있어서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의 행복은 곧 다른 이의 불행. 그녀의 목숨 값은 도서관에 있던 어린이 두 명이 대신 지불하게 되었다.


괴수의 고상한 아침식사는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놈은 위와 아래의 턱을 분리시키며, 사냥감의 머리를 순식간에 휘어잡아 어금니 사이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크게 벌린 아가리를 주저 없이 다물어 버렸다.


연약한 두개골은 선홍색 뇌수를 누출하며 맥 없이 목구멍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를 잃어버린 몸들이 바닥에 늘어져서도 도망치기라도 하는 듯 다리를 슬쩍 움직이다가, 결국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그것은 다시 한 번 혀를 날름거린 뒤 발톱을 놀리며 부드러운 복부를 찢었다. 아직 생기가 흐르는 허파며 간이며 심장 따위의 내장들이 피와 기름을 흘리며 그 단면을 드러냈다.


"안 돼..!"


사라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완벽하게 으스러지기 전, 세상을 향한 원망과 의문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가벼운 마음으로 기념관에 도착하던 순간들, 마음은 조금 무거웠어도 대수롭게 넘겼던 청소부의 모습, 그 모든 업이 인과관계를 이루며 그녀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무력했다. 이런 끔찍한 상황들은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 속이나 장벽 외부의 위험지대에서나 벌어질 것이라며 안일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본래 바깥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수많은 재앙들이, 그녀가 누리던 일상을 침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마주해야 하는가?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뻘건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시야가 까마득한 수평선처럼 흐려지는 것 같았다.


괴수는 그것을 시작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는 토마토 냄새가 났다. 괴수는 그 냄새에 분노의 감정이라도 느끼는 듯 격하게 흥분하며 혀를 징그럽게 휘둘렀다.


남자의 무거워 보이는 입술에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고음의 비명이 터졌고, 어떤 여자는 날카로운 이빨에 얼굴이 뜯겨 나가면서도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정신..."


사라는 무의식 중에 고개를 들었다.


"..차려요..!"


누군가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작가의말

기르던 고양이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바람에 동물병원에 급하게 다녀왔습니다. 부디 저희 냥이의 쾌유를 빌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텔룸(Telum)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 월~금요일마다 오전 9시-10시 경에 연재됩니다! 20.05.17 169 0 -
48 정적 - 에필로그 +18 20.06.30 310 14 15쪽
47 Finale. Downburst(하향격풍) - 2 +16 20.06.29 262 17 19쪽
46 Finale. Downburst(하향격풍) - 1 +18 20.06.26 288 17 21쪽
45 Quarantine(격리) - 4 +16 20.06.25 269 17 15쪽
44 Quarantine(격리) - 3 +22 20.06.24 258 19 11쪽
43 Quarantine(격리) - 2 +22 20.06.22 264 18 8쪽
42 Quarantine(격리) - 1 +24 20.06.19 288 22 10쪽
41 Side Chapter - Cripple Them(놈들을 불구로 만들라) +18 20.06.18 326 18 14쪽
40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4 +25 20.06.17 279 22 10쪽
»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7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7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8 25 7쪽
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3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8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30 Side Chapter - Golden Rule(황금률) +31 20.06.06 360 33 9쪽
29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5 +29 20.06.05 277 34 9쪽
28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4 +41 20.06.04 277 35 8쪽
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1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5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1 37 14쪽
23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44 20.05.29 317 42 8쪽
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4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3 38 10쪽
20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2 +37 20.05.26 344 38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