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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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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382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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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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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8쪽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DUMMY

행인두부를 전부 즐긴 뒤에야 우리는 넓은 경관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는 전부 진실이었다.


내가 결코 들어가지 못할 부촌을 시작으로, 나의 집이 위치한 외곽 지역, 그리고 슬럼가가 전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서릿발 분지에 포함된 거대한 산맥의 날카로운 호른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노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안개의 수해, 변이된 쥐와 벌레들이 들끓기로 유명한 하수도의 입구와 같은 구조물들도 새로운 각도에서 보니 그 감상이 색달랐다.


"사이러스, 소어와 함께 사진 안 찍을래? 한 장 찍어 줄게!"


간만에 마르셀로가 특별한 제안을 꺼냈다.


이런 경관을 마다할 수는 없었고, 소어와 더 많은 추억을 쌓아두고 싶었다.


"물론이지."


"좋아!"


그는 근처의 테이블을 끌어다 놓고, 그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나는 품에 소어를 안은 채로, 푸른 서릿발 분지를 배경 삼아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자, 준비하고...아, 얼굴 쪼끔만 왼쪽으로! 그리고 턱도 조금만 들어 줘!"


고맙게도, 그는 마치 전문 사진사인 양 여기저기에 많은 신경을 썼다.


대충 찍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물건이 나올 것을 기대해도 좋은 상황이었다.


"이제 됐어?"


내가 물었다.


"완벽해!"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그의 휴대전화가 섬광을 찰칵 소리와 함께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은 어색한 각도였지만, 배경 덕분에 제법 운치 있는 사진이 찍혔다.


"요즘 사진도 연습하고 있다더니, 제법 마음에 들잖아."


옆에서 함께 보고 있던 소어도 기분이 좋은지 폴짝거렸다.


"그렇지? 내가 봐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니까!"


여러 방면으로 관심이 많은 탓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바느질, 모피 손질, 낚시 등 손놀림을 요하는 작업을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취미에서 그쳐, 결코 직업이 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인간이 수인 용병을 공방에 고용하고, 미용사로 채용하고, 그와 함께 어선에 타려고 하겠는가?


수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를 수 없는 직업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용병 딱지까지 달고 있으니 그 끝은 뻔했다.


용병이라는 것도 만약 인간이었다면 어디서 거품 낀 무용담을 한껏 날리는 영웅이라도 될 수 있었건만, 수인이기 때문에 그저 포악한 사냥개 취급 이상으로 나아질 일은 없었다.



'짐승의 머리를 가진 자는 곧 종언의 짐승일지니, 이들을 부리는 것은 짐승으로 짐승을 사냥하는 것이니라.'



주류 종교의 서적들 대부분에서도 수인은 짐승, 즉 위험수와 동일시되는 존재이다.


수인으로 위험수를 잡는다, 짐승으로 짐승을 잡는다.


수인 용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애써 웃음짓는 그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의문은 며칠 전 일어난 일을 계기로 확신이 되었다.


그는 무리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있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정상적인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을 누구보다 즐기는 것은 여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사회에 온전히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기에 더욱 노력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품고 하는 행동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고 장막에 숨어든 나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로써, 몇 안되는 친구를 돕고 싶었다.


그렇게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와 나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조금 전에도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벼랑 끝자락에 몰린 나를 도왔다.


이제는 내가 그를 도와 줄 차례이다.


"정말 괜찮은데, 영원히 간직해야겠어."


그에게 진심이 담긴 감사의 한마디를 전한다.


마르셀로는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내 반응에서 재미를 느끼는 듯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다음에도 언제든지 부탁하라고!"


우리는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경치를 감상하며 우수에 잠겼다.


전망대를 둘러서 걷고 있던 우리들의 시야에 거대한 인공물이 잡혔다.


회색으로 얼룩진 여신상의 이마에서 연녹색의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


친구가 중얼거렸다.


북쪽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해풍에 하늘하늘 날릴 듯한 순백의 비단 드레스를 걸친 풀빛 안광의 여신.


여신의 두 눈은 수건으로 가려져 이마의 보석이 그 역할을 대신해 빛을 뿜고 있었다. 만물 탄생의 순간, 인간에게 지혜를 주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소피아(Sophia)"였다.


북방 지역에서 나름대로 인기 있는 종교 집단, '창공요새 교회(Ecclesia Aeries)'에서 과거 숭상하였던 신들 중 하나로, 지금은 어떤 교단이 그녀를 숭배하는지 알 수 없다.


지혜라니, 지금의 인간들을 바라보면 그저 허울뿐인 개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현세로부터 눈을 닫은 채 하염없이 북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괜시리 눈에 밟혔다.


여신의 무신경함을 원망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작은 기도를 속삭였다.


당신에게 진정 지혜가 있다면, 부디 우리의 존재를 단 한 번이라도 불쌍히 여겨 보호해 주소서.


지혜를 버린 인간에게 다시 한 번 지혜를 주소서.


마지막으로,


제발 소어가 건강하게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 주소서.


그렇게 신 앞에 고뇌를 한가득 토해내고 나니,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옆에 서서 여신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에게 시선이 향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냥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심이라고는 한 줌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 그 광명을 바라보니 새로운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안아들어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지막하게 그것을 속삭였다.


언젠가 그가 미소하는 얼굴로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그를 위한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겠다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나의 전부를 바쳐 봉사하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중얼거리며 전망대를 걷고 있던 와중이었다.


창 밖의 빛을 선명하게 반사하는 벽면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녹색 체액을 한가득 뒤집어 써 더욱 공포스러운 괴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덩달아 놀라는 모습...그것은 사냥을 마친 나의 몰골이었다.


정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런 꼴로 요리를 했다는 사실이 참 우스웠다. 당장이라도 씻고 싶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화장실을 찾았다.


"왜 그래? 전망대 화장실은 전기 나가서 못 쓸걸."


그의 말마따나, 주변에 있는 샤워실이나 화장실은 완전히 먹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아래에 내려가 찾아 보기로 했다.


"마르셀로하고 조금만 기다려."


소어와 마르셀로를 전망대에서 기다리게 한 뒤, 나는 화장실을 찾아 여러 층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사실은, 그렇게 오래 된 건물인데도 마치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듯 깨끗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상과 가장 가까운 부분에서 그나마 괜찮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올 일도 없겠다, 겉옷에 묻은 체액을 개수대에서 빤 다음 세수를 하다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


치익거리는 듯 고장난 스피커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 왔다.


물로 씻은 겉옷을 다시 걸치고, 나는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내가 그것을 발견한 곳은 굳게 닫힌 철문의 바로 옆 부분, 본래 소화기 같은 것이 꽂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사람의 손바닥 만한 캠코더...아니, 바닥에 떨어진 CCTV라 칭하는 편이 더욱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한데 아무리 보아도 그런 모델은 시중에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버튼도 없고, 오로지 원통형의 검은 색 몸체와 렌즈로 이루어져 있는 형상이 참으로 기묘했다.


육각형의 보호 장치 너머로, 렌즈의 덮개 부분이 마치 경련하듯 몇 번 파르르 떨렸다.


머지않아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을 때, 우선 그것을 가방에 넣어 두었다.


집으로 돌아가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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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6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6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7 25 7쪽
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3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8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30 Side Chapter - Golden Rule(황금률) +31 20.06.06 360 33 9쪽
29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5 +29 20.06.05 277 34 9쪽
28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4 +41 20.06.04 277 35 8쪽
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1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5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1 37 14쪽
»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44 20.05.29 316 42 8쪽
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4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3 38 10쪽
20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2 +37 20.05.26 344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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