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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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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01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6.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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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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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DUMMY

놈은 시신을 덮은 모포 몇 장을 들척거렸다.


잔뜩 부르튼 발이 삐져나온 침대는 지나치고, 되도록 새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것들을 고르는 것 같았다.


..놈이라면 분명 그런 쪽을 고르리라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몇 번을 더 뒤적거린 뒤, 마침내 문어대가리의 취향을 만족시킨 것은 하얀 털이 돋은 누군가의 발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나는 중얼거렸다.


그렇다. 인간이 수인에게 갖는 온갖 지독한 성적 판타지 말이다.


수인들은 성욕이 너무 강해 죽은 시체에 전기 충격을 가하면 일어나 성관계를 할 수 있다던가, 근육이 더 많아 경이로운 조임과 자극을 느낄 수 있다거나, 하여간 섹스에 관한 추잡스러운 이야기들은 질리도록 많다.


어쩌면 화면 속 중년은 그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두 눈을 걸고 말하건대, 그 장면만큼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 일이 원하는 대로 굴러 갈 리 있겠나,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주름진 눈을 카메라를 향해 몇 번 부라린 뒤, 그 놈은 혹시나 누가 볼 세라 빠르게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장갑 낀 두 손으로 차갑게 식은 허벅지를 격렬히 붙드는 것이었다.


-뭐야 저거, 더러워!


VIP석에 앉은 여고생 중 두 명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 와중에도 사창가의 대부와 퀴즈왕을 포함한 어른들은 무덤덤하게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난 뒤 손으로 두 눈을 덮었지만, 이번에는 쓰잘데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애석하게도 그 호기심은 눈 앞의 영상으로부터 느끼는 혐오감을 찍어누르고 말았다.


결국 두 눈을 덮은 손가락을 슬쩍 벌려 영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빌어먹을, 나는 결국 눈을 더럽히고 말았다.


그 놈은 계곡에서 물을 찾고 싶어 발정이라도 난 모양새로 사타구니를 핥기 시작했다.


입으로 썩은 계곡물을 들이키며 음욕의 거품을 부걱거리고, 가랑이를 질척하게 적시며 눈을 뒤집는 대머리의 중년이 스크린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도 그 소리, 핏기 없는 털가죽과 개기름 범벅이 된 살갖이 맞닿으며 치덕치덕 울리는 소리를 인내할 방도가 없었다!


영상 속 홍두석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죽은 수인과의 거사를 만끽했다. 소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진정 천만다행이었다.


"무...뭐 하고 있어! 이거 당장 꺼! 당장 끄라고! 이 멍청해 빠진 발상지 촌버러지 새끼들 같으니!"


영상 속 추잡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재의 당당하게 차려 입은 홍두석은 대머리가 불긋불긋하게 달아올라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강당을 사로잡은 암흑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놈도 마찬가지였다.


-꺄아악!


프로젝터의 빛이 기묘한 분홍색으로 변하자 비위가 약한 사람들 사이에서 욕설과 비명이 터졌다.


이번에는 혀와 입술이다. 저 거대한 분홍색 입술이 카메라 렌즈를 요염하게 비비고 침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계곡물 마시기, 그 다음은 다시...아, 더 생각하기도 싫다.


...영상은 기진맥진한 홍두석이 캠코더를 집어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났고, 강당 전체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대략 십 분 전까지만 해도 크게 웃던 청중들의 인파는 쥐 죽은 듯 잠잠해졌다.


"끝났나..?" 나는 중얼거렸다.


"...끝난 모양이야." 커튼 뒤에 숨은 진이 받아쳤다.


의도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성공했다. 놈의 이상한 스탠드업 코미디는 확실하게 망가진 건가? 아니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의 눈 앞에 선 무대 위에 존재하는 생물은 더 이상 실력 좋고 덕망 높은 명문 의대 교수가 아니었다.


그저 벌겋게 달아올라 쿰척거리는 발정기의 수퇘지 한 마리가 제 치부를 핥고 있을 뿐이었다.


홍두석은 쇼를 시작할 무렵과는 전혀 다른 비굴한 모습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안경이 다시 비뚤어지고, 얼굴빛은 온통 누런 똥빛으로 썩더니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땀방울이 고여 떨어졌다.


"음..?"


유지니아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수행원들이..."


어딘가로 숨어들었던 수행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관객석 곳곳으로 숨어든 그들이 일어서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웃음과 희망의 인문학! 홍쌤 만세!" 누군가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힘껏 외쳤다.


곳곳에서 홍두석을 응원하는 외침이 한가득 터져 나왔다.


"서포터즈를 동원했어." 진이 아니꼽다는 듯 미간을 찌그러뜨렸다.


"서포터즈?" 나는 처음 듣는 용어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녀는 짧은 설명을 시작했다.


"카파에서 뽑아 온 문어대가리의 충견들이야. 자기가 꽉 붙들고 있는 애들 중 외모나 태도를 가려서 뽑은 다음에 연구비 지원부터 학점 조작까지 온갖 혜택을 퍼먹이고 있어. 가끔은 바쁜 인력까지 데려오기도 하는데, 아마도 압력 때문일 거야."


한창 배워야 할 사람들에게 이런 헛짓거리를 시킨다니, 웃음이 절로 터질 지경이었다. 저 놈에게 돈을 받고 교수 자리에 앉혀 놓은 놈이 있다면, 그 새끼는 의사가 아닌 테러리스트라고 불려도 싼 놈이리라.


하지만 이어진 상황 속에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곧 찾아온 현상이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포터즈는 계속 박수를 쳤다.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하나 그 박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들불처럼 옮겨붙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관중들은 분명 홍두석의 추악한 모습을 목격했다. 영상이 끝난 뒤에 찾아온 적막함은 분명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충격 받은 사람들이 도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리 또한 점차 커져 강당을 울렸다.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세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은 점차 군중을 선동하며 구성원을 늘린다.


집단. 그만큼 똑똑하면서도 지독하게 우매한 개념도 또 없을 것이다.


하여튼, 그들 중 한 명은 VIP석의 모두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시체애는 인류애가 넘치는 숭고한 노드 카파의 새로운 교양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새로운 예술을 몸소 보여주신 홍 교수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학술도시의 예절이란 말인가? 웃기고들 앉았네.


그럼에도, 발상지의 잘난 사람들은 온갖 겉치레를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저게 교양이란 말이지...오호, 오호호.. 달링, 우리도 홍 선생님게 수인 박제에 대해 질문해야겠어.


머리를 포마드로 정리한 중년의 남자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네크로필리아..?


뒤에 앉아서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던 퀴즈왕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야? 저..저게 요즘 대학에서 초 트렌디한 아이템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진짜야 연기야?


-진짜든 가짜든, 저건 카파에서 유행하는 레알 핫 토픽이야! 저거 잘만 배우면 카파에 쉽게 들어갈 거야! 자, 셀카 셀카! 비북(비세이지북, VisageBook)이랑 아웃스타에 올리자!


고등학생들은 언제쯤 충격을 벗어던졌는지 유행이라고 잔뜩 신이 나서는 자기들끼리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카파는 무슨 얼어 죽을, 유지니아는 경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끅끅, 교양은 무슨. 그냥 성병 걸리고 싶어 환장한 변태새끼지. 그래도 돈을 트럭으로 주면...어...물론. 우리 예쁜이들은 저런 꽈리고추 노친네도 얼마든지 먹어줄 수 있다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던 포주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와 함께 홍두석을 비웃으며 이죽거렸다.


그러던 중, 영상이 시작되기 전에 나간 아줌마가 돌아와 아이를 찾았다.


얼마 안 되어서, 그 모자의 실랑이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왜 이렇게 소란 피우는 거야? 나중에 스테이크 사 줄 테니까 조용히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아이 혼자 퇴폐적인 포르노를 보도록 남겨 둔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닐 텐데 말이다.


불쌍한 꼬마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부여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았다.


"저게 뭐야! 커다란 아저씨들 꼬리랑 팔다리 막 자르고...죽은 사람 엉덩이에 얼굴 막 문대고...더럽고 무섭단 말이야! 그냥 스테이크 안 먹고 갈래! 여기 있기 싫어! 싫다고!"


그래도 그 눈물을 본 여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무엇인가 깨달은 듯 아이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니, 얘가 도대체 뭘 본 거야? ....나가자. 빨리 나가자. 어서!"


...마침내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 나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들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 사람들이 이 아수라장에서 탈출했다는 게 부러웠다.


음...우리의 할 일은 끝났다. 일단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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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Quarantine(격리) - 2 +22 20.06.22 264 18 8쪽
42 Quarantine(격리) - 1 +24 20.06.19 289 22 10쪽
41 Side Chapter - Cripple Them(놈들을 불구로 만들라) +18 20.06.18 327 18 14쪽
40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4 +25 20.06.17 279 22 10쪽
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7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7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8 25 7쪽
»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4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9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30 Side Chapter - Golden Rule(황금률) +31 20.06.06 360 3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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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4 +41 20.06.04 278 35 8쪽
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1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6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2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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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4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4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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