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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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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399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6 09:00
조회
344
추천
38
글자
8쪽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2

DUMMY

"좀 일어나 봐..!"


그의 헬멧을 벗긴 뒤 뺨을 수 차례 때렸다.


"..으...으어어어악! 누..누구야!"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까, 좀 도와달라고!"


간단하게 작전을 이야기한 뒤, 처음 구해 낸 남자를 굴삭기에 앉혔다.


"어휴, 배고파...도대체 몇 일을 잔 거지?"


그가 굴삭기에 시동을 거는 사이, 인분 구름이 사라진 위치의 두 명을 향해 달렸다.


"일어나! 아침이다!"


장정 두 명을 양 어깨에 들쳐메고 안전지대로 피신한 뒤, 그들을 열심히 흔들어 깨웠다.


"으어으...수인? 당신 수인이네에.."


그들을 데려가는 무렵에도, 나방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마법을 마구잡이로 날리고 있었다.


연옥의 창 한 줄기가 서너 미터 떨어진 곳에 내리꽃혔다. 검게 타오른 타일 조각이 고속으로 날아와 우리의 관자놀이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갔다.


"으아악! 아아..아..!"


사각에서 날아 온 마법에 놀란 작업자가 비명을 질렀다.


비록 둘 다 조금은 비몽사몽한 상태였지만, 요청에 따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 기름 보이죠? 이거 삽 부분에 잔뜩 부어주세요!"


"오라이..."


곧 투명한 경유가 묵직한 삽 내부에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개의 지속 시간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방이 슬슬 정신을 차릴 시간이 오게 된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나방 쪽 엄폐물로 몸을 돌렸다.


"Partum Ignis In Arcus Et Sagitta!"


레플리카를 만지며 주문을 외우자 나의 마나는 타오르는 활과 화살의 형상을 취했다.


역시 벌레는 불로 지져야 제 맛인 법이다.


"네 상대는 나다!"


작열하는 화살을 시위에 걸고, 놈의 머리를 정조준하며 줄을 끝까지 당긴다.


활의 몸체가 극한까지 굽어지며 한계를 부르짖을 때, 손가락을 기교 있게 빼낸다.


태양을 머금은 화살은 절망의 자정을 가르고, 지평에는 희망의 여명이 강림하리라.


타오르는 안개가 걷어 낸 인분의 장막을 거쳐, 화살은 그 거대한 날개를 부수었다.


차디찬 겨울날이지만 방독면 속은 나의 체온으로 후끈거렸다.


눈을 수어 차례 감았다 뜨며 눈두덩이에 흐르는 땀을 목으로 흘려 보낼 무렵이었다.


순간, 영월나방은 태양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정신을 유린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질리도록 부르짖는 소음 속에서 언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 처절한 비명은 마치 사막의 광룡 사제들이 외치는 저주와 같았다.


그것은 아득한 시간의 흐름을 타고 현세를 뛰어넘어, 우주를 만들어 낸 태초의 폭발마저 저주하고 있었다.


비명은 차가운 아침 공기를 타더니 이윽고 폭류가 되어 옥상을 갈랐다.


나를 포함한 옥상의 모두는 귀 부분을 싸쥐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아악! 귀청 떨어지겠네!"


"용돈 벌려고 왔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안 되겠다. 빨리 끝내고 내려가자!"


덕분에 반쯤 졸고 있던 작업자들은 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끔찍한 비명 속에서 귀를 틀어막은 채로, 나는 계속해서 주문을 읊었다.


"Glacies In Murus!"


주문에 반응한 마나가 손으로 집중되며, 비늘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빙벽!"


냉기가 손에 달라붙어 동상을 일으키기 직전, 두 손으로 땅을 짚어 마나를 이동시켰다.


푸른 빙정이 바닥으로부터 솟아나기 시작했다.


심해보다도 푸른 빙정이 곧 얼음의 덩어리를 이루었고, 그것은 다시 쌓이고 뭉쳐지니 곧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얼음의 벽이 나방과 나의 사이를 가르자 소음도 견뎌낼 만한 수준으로 작아졌다.


기름을 붓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진 기쁨도 잠시, 나는 차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로부터 우두둑거리며 벌레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 사이, 놈의 날개가 다시 한 번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와는 다른 깊은 감청색과 티끌처럼 뿌려진 은빛의 인분으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안구 문양을 그렸다.


설마, 아니겠지.


내가 생각하는 그 마법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저런 위험수 따위가 '그것'을 시전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솔한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하고 말았다.


거대한 안구는 곧 푸른 바탕과 은빛 점들을 깜빡이며 우주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천체의 비술.


마나와 촉매를 비롯한 각종 매개체로 우주의 형상을 받들어, 그 힘을 빌리는 고위 영역의 마법이다.


망막 성운의 형상을 취한 것으로 보아하니, 놈은 「민타카의 금강저」라도 시전할 모양새였다.


숲 하나를 가볍게 삼키는 초고온의 거성. 흔한 위험수와의 전투에서는 차마 예상하지도 못할 물건이었다.


"다들 튀어! 빨리요!! 튀라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처절한 간청을 한껏 내질렀다.


그저 몸을 뒤쪽으로 돌리고, 파랗게 질린 폐와 심장을 미친 듯이 쥐어짜며 달음박질쳤다.


죽음이 다가온다. 필사적으로 달려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는 물론이고,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작업자들도 위험하리라.


푸른 거성의 금강저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며 공기를 뜨겁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그림자가 나방을 향해 쏠렸고, 곧 뜨거운 푸른 빛이 나의 지느러미와 꼬리를 감쌌다.


죽는다, 죽는다, 이대로는 죽는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나방은 일순간 거성의 궤도를 돌리고 범위를 작게 바꾸어, 이상한 소리가 들린 엘리베이터를 일격에 분쇄시켜 버렸다.


회색 물안개를 흩어 버리는 굉음과 함께, 무너진 엘리베이터의 잔해와 뿌연 먼지 구름이 옥상을 뒤덮었다.


회심의 일격을 발사한 나방은 기운을 잃은 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비상계단을 떠올렸다.


"아...안 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원초적 희열과 이성적 공포에 잠식되어 있던 나의 정신은 다시 한 번 소어를 향했다.


죽음의 속삭임에 떨던 두 다리는 어느새 부서진 비상계단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소어! 소어!"


방금 전까지 나방을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잔해를 들추며 소어를 찾기 시작했다.


제발, 그 검은 깃털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회색의 콘크리트를 맨손으로 파헤쳤다.


거친 콘크리트 덩어리를 계속 만지자 손끝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무모한 굴착을 멈추지 않았다.


아픔은 머지않아 긴박한 상황 속에 가려졌고, 마침내 나는 잔해에 묻힌 부드러운 물건을 주워들었다.


며칠 전 부업을 하면서 질리도록 만졌던, 익숙한 헝겊 조각.


에메랄드색 카벙클 인형의 꼬리였다.


인형을 받으며 그토록 기뻐하던 아이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제발!"


무릎을 바닥에 처박고 절규했다.


그토록 감싸고 돌던 소어를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은 녹슨 철조망이 되어 심장에 난잡하게 엉켰다.


회색 먼지가 묻은 에메랄드빛 꼬리에서 솜이 터져나오도록 그것을 움켜쥐며, 머리를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찧었다.


한동안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적은 없었는데, 이토록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마가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졌고, 비늘이 뒤틀리며 드러난 생살에서 피가 흘러 흰자위에 고였다.


그러나 격정의 슬픔 속에서도 눈물 한 방울만은 흘릴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눈 앞에 선 과거의 내 모습을 마주했다.


이마에서 발원한 선혈이 공허한 암록색 눈에 한가득 고여, 검은 그을음이 가득 묻은 하얀 후드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결국 미래의 나라는 건 쓸모 없는 생선 대가리잖아. 차라리 그 때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나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한심한 듯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제 글은 매일같이 300위 내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제 작품의 성장을 도와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이야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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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4 +25 20.06.17 279 22 10쪽
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7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7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8 25 7쪽
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3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9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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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4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4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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