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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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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398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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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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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0쪽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DUMMY

"한 번만 더 우는 소리 내면 그 차에 불 질러 버린다!"


"야, 저 새끼 또 지랄한다. 가서 교육 좀 시켜라."


뒷골목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이후, 한 주 정도 지난 즈음이었을까.


나는 더 이상 슬픔의 비를 내릴 수 없었다.


아무리 빗줄기가 가늘더라도, 그것은 항상 적들을 불러모았다.


아군 한 명 없는 복마전과 같은 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울음을 멈추었다.


악마는 울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하지만 그 골목의 모두에게도, 나라는 존재는 울든 안 울든 악마보다도 못한 존재였음이 분명했다.


모두가 나를 악마라 칭하며 돌을 던지는 날마다, 나는 밤새도록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른 이라면 밤새 울면서 그 한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부터는 몸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흐르지 못하고 썩어갈 때마다, 무심코 송곳니로 팔의 비늘을 뜯은 것이 효시가 되었다.


방울져 흐르는 생명의 정수는 불타버린 눈물을 대신하여 메마른 슬픔의 대지를 적셨다.


그것이 정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 같은 생선 대가리의 정신과 상담을 해 줄 의사는 없었으니까.


그것이 어떤 병인지도 모른 채, 순간의 안정을 위해서 행하던 것은 결국 생명의 위협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함께 지내던 아기 고양이가 눈 앞에서 내장이 뽑혀 차량 앞유리에 걸린 날,


고아원장을 죽인 나를 어찌어찌 찾아낸 그녀의 딸, 그리고 그 여자가 데리고 다니는 어깨들에게 며칠에 걸쳐 감금당하며 유리조각에 무릎이 찢어진 날.


정신이 붉은 속내를 드러내며 쩍쩍 갈라질 때마다 어김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악마는 울 수 있는가? 심해에서 올라온 악마는 울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울고 싶었지만, 악마에게는 눈물 한 방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탈출구를 잃은 악마는 존재의 증명을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쳤다.


피부를 찢으며 생명을 취했다.

이마를 맞대며 지혜를 구했다.

숨통을 조이며 의지를 새겼다.


존재하지 않는 허상 속 구원을 위해, 악마는 생명을 좀먹었다.


나의 이런 습관은 용병 생활을 겪으며 그나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소문 없이 내려와 나를 괴롭혔다.


생명과 지혜, 의지가 무너질 때마다 악마의 살을 가르고 뼈를 빼앗아 갔다.


그 고통의 순간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바닥에 이마를 여러 차례 부딪히자 잿빛 하늘은 어느 새 시뻘겋게 물들었다.

어지러웠다.


더 이상 머리를 찧을 기운조차 없었다.


아무리 잔해를 들어내도 소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먼지 섞인 핏줄기만 방독면에 잔뜩 흘러들었다.


나는 전의를 상실한 채로 엎어져 한탄 섞인 숨을 내뱉었다.


"..미안해."


난잡하게 으깨진 상처 때문인가, 피는 도통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계속 눈 속으로 흘러 눈물 대신 흘러내렸다.


붉게 물든 시야 속에서, 부서진 엘리베이터가 이목을 끌었다.


나방이 파괴한 엘리베이터 통로로부터 아까 본 점액질이 올라와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천천히 일어서며 거대한 나방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제 전부 망했다는 직감이 뇌리를 헤집었다.


삽에 채워놓은 경유의 양만으로는 한 마리 정도를 간신히 태울 수 있었다.


두 마리가 협공을 시작하면, 나를 포함한 작업자들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내가 조금만 더 몸을 굴린다면 해결책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절망의 속삭임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나보다 훨씬 작은 검은 형체가, 주저앉아 있던 나를 세게 밀쳐 엄폐물 뒤로 숨겼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돌바닥에 내쳐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곧 귀를 찢는 폭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폭음이 대지를 뒤흔드는 순간 순간마다 나방의 모습으로 변한 점액질이 가래 끓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에메랄드색 인형을 껴안은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나의 숨은 멈추고, 동공은 조여졌다.


아아, 소어, 사랑스러운 소어.


심해로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자정의 천사가, 나를 위해 날아오고 있었다.


칠흑의 깃털이 점차 가까워져 왔다.


마침내, 그는 나의 얼굴을 덮은 방독면을 벗겨 냈다.


폐를 가득 채우는 신선한 공기가 바닥 없는 심연 속 무저갱으로부터 나를 끌어올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소어는 나에게 완전히 밀착해 있었다.


"...?"


나의 배 위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이마에 부리를 대고...


눈물을 흘렸다.


어느 빙하보다도 차갑지만, 어느 용광로보다도 뜨거운 빙하로부터 녹아 나온 생명수가 검은 부리를 타고 흐르며 나의 이마를 적셨다.


야속하게도 그 눈물은 그 어떤 진미보다도 달았다.


"하악....하..."


방독면에 막혀 미처 쉬지 못한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 눈물이 고여 가자, 축 늘어져 있던 몸에도 힘이 돌기 시작했다.


거대한 육체에 힘을 불어넣는 이 기묘한 생명수는 다시 일어나 싸울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나의 원초가 아드레날린을 다시 한 번 내뿜었다.


우선 인간의 이성으로 그것을 억눌러야만 했다.


두꺼운 양 팔에 힘을 실어, 한 팔로는 몸을 일으키며 다른 하나로는 소어를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당장이라도 전투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육의 떨림을 제어하며, 생기가 돌아온 혀로 속삭였다.


고맙다고,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속삭였다.


아이를 품에 꼭 껴안고, 방탄복 사이로 젖어드는 온기를 느꼈다.


그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나를 엄폐물 뒤로 숨긴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옆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검은 마스크와 고글로 꽁꽁 싸맨 얼굴에서 튀어나와 있는 흰색 귀 두 개, 그리고 맑은 석류색 눈동자.


마르셀로였다.


그의 손으로부터 뇌관이 타들어가는 다이너마이트가 빠르게 날아갔다.


모양을 보니, 얼마 전 사용한 것의 여분을 조금 챙겨 둔 모양이었다.


"역시나.."


병원에서 나올 때 트렁크에 들어갔다던가, 며칠 전처럼 차 윗부분에 올라가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상상하기도 어려운 방법으로 우리를 따라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웠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소어도 진짜로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 마음이 놓였다.


"좀 도와 줘! 다이너마이트가 잘 안 먹혀!"


그의 말대로, 다이너마이트는 나방의 방벽을 강제로 흩어 내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


육중한 땅울림과 함께,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 다시 한 번 대지를 울렸다.


나방의 형상을 취하는 점액이 폭음에 맞추어 경련하며 괴이한 비명을 질렀다.


방벽이 사라진 틈을 타 빨리 끝장을 봐야 했다.


침착하게 마법을 영창하고, 나는 엘리베이터 자리에 누운 나방을 향해 달려나가며 화염의 창을 구현했다.


"Partum Ignis In Hastam!"


발, 의족, 꼬리에 힘을 주며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의족이 평소보다 큰 힘을 발하며 무거운 몸을 하늘 높이 밀어올렸다.


침착하게, 다리 사이의 나방을 향해 타오르는 창을 내질렀다.


"죽어라-!"


벌레가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발악이 잦아들었다.


나의 거구가 나방의 물컹거리는 복부를 밟아 터뜨렸다.


동시에, 화염의 창이 복슬복슬한 두 개의 더듬이 사이에 정확하게 박혔다.


놈의 머리 속에서 뇌와 장기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창을 다시 뽑았다.


공중에 창을 휘둘러 피와 지방을 털어내기도 전에, 그것들이 고열에 불타 사라져 가는 것을 보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창을 뽑으며 이유 모를 희열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준비를 마친 작업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형씨들, 지금이에요!"


조종석에 앉은 작업자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출발을 알렸다.


나방은 힘없이 울대를 비비며 낭떠러지 쪽으로 기어 가기 시작했다.


날지도 못하는 불구가 되어서는 남아 있는 날개 한 쪽을 낙하산 삼아 떨어질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탈출하도록 둘 생각이 없었고, 그것은 작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격렬한 엔진음과 함께 굴삭기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초도 안 되어 걸레가 된 나방에게 도달하자, 삽이 움직이며 안에 가득 들어찬 경유를 무자비하게 쏟아부었다.


나방이 다시금 지르기 시작한 비명은 잔인한 기름의 폭포에 깨끗하게 묵살당했다.


인분이 저장된 작은 날개에도 경유가 젖어들며 그것이 무용지물이 될 무렵이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침착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왼쪽 다리는 앞으로, 오른쪽 다리는 뒤로 빼고, 두꺼운 꼬리를 지면에 단단히 붙여 몸을 지탱한다.


마침내 경유 범벅이 된 나방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화염의 창은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석양 아래 타오르는 제비가 되어, 공기의 흐름을 억누르며 날아가 나방의 살결을 일격에 꿰뚫었다.


"Discutio!"


마지막으로, 분쇄.


그 추악한 말로에게는 다시 비명을 지를 기회가 없었다.


옥상에는 재가 되어 가는 벌레의 체액과 살점이 난잡하게 굴렀다.


굴삭기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어디서 달팽이 같은 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후경직으로 꿈틀대는 덩어리 몇 개가 무한궤도에 눌려 터지는 소리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표합니다.

덕분에 어제 올렸던 분량도 공모전 참여작 중 265위를 달성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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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9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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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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