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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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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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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4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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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1,209

작성
20.06.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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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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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Quarantine(격리) - 3

DUMMY

///


용병은 떠났다.


피와 시체와 온갖 구정물로 뒤덮힌 강당은 이제 목 잘린 괴수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일시적인 정적을 만끽하고 있었다.


놈은 차가운 파편들로 징그러운 피부를 둘러싼 채 단단히 굳으며 흉물스러운 형상을 뽐냈다 - 경찰들이 차가운 전투화를 타박거리며 들이닥치기 직전까지도.


새하얀 정찰용 드론이 휑하니 뚫린 정문으로 날아들었다.


"여기는 정찰팀 18번, 18번 랜달. 대강당에서 미확인 괴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제압팀 전원 조준 모듈 가동."


상층의 VIP석과 하층 객석 곳곳에 자리잡은, 시커먼 자동소총의 상부를 차지하는 도트사이트가 얼어붙은 거체를 향해 푸른 광선을 겨누었다.


"전원 발포!" 지휘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까마득한 무저갱처럼 깊고 공허한 총구, 그 너머에서 은빛으로 소용돌이치는 강선들로부터 시뻘건 불꽃과 은빛 탄자들이 맹렬히 솟구쳤다.


넓디넓은 강당을 울리던 형편없는 강의, 이어진 괴상망측한 단말마, 그리고 혼돈 속에서 쫓겨 나가던 사람들이 내지른 비명들. 한때 의미를 가졌던 그 모든 것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수많은 총성 속에 짓밟히고 파묻히며 본질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저 한 발만 당기면 모든 것이 끝난다. 가끔 한 발로 끝나지 않을 때에는 여러 번 쏘면 비로소 끝난다.


사려 깊고 교양 있는 인류에게 이토록 어울리는 무기도 어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경찰들의 총구는 망설임 없이 불을 뿜었다.


시커먼 헬멧을 사이에 두고 벌집이 되어 가는 괴수를 바라보는 자들, 분명 그들 중 몇 명의 입꼬리는 황홀경에 젖은 광소를 그리고 있었다.


일제사격은 한참 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강당 바닥에는 숯덩이가 된 인면수가 늘어져 있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탄자가 잦아들자 카펫 위를 꿈틀거리는 붉은 살갗 파편들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경찰들의 총구가 입을 닫았다.


방독면을 착용한 방역팀 인원들이 노랗고 검은 폴리스 라인으로 입구를 봉쇄한 뒤, 주변에 늘어진 시체 조각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객석 사이사이를 오갔다.


그들이 등에 짊어진 살포기로부터 새하얀 소독제 입자가 분무되며 시체더미와 객석에 듬성듬성 내려앉았다.


"젠장. 난데없이 감염 사태 신고라니? 이런 괴물딱지가 갑자기 기념관에 나타났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


방역 인원들 사이로부터 갑작스러운 사태에 관한 불만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스스로를 여고생으로 밝힌 어느 여인의 신고로 알게 된 괴수 출몰 사태. 어째서였을까, 그녀는 이 난장판으로부터 감염이라는 키워드를 이상하리만치 쉽게 도출해 냈다.


고소득층 주거지에서 위험수가 출몰하는 사건은 결코 발생한 적 없었던 대재해로 기록될 것이다.


게다가 감염이라니, 관련된 소문이 퍼진다면 기념관의 이용객이 바닥을 칠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에게라도 책임을 명확히 묻지 않는 이상 경찰 또한 비난을 면치 못할 터였다.


"에휴...올해 들어서 하수도 방역 좀 미뤘던 게 이제야 올라오나? 그냥 불평은 그만두고, 소독이나 똑바로 하자고."


그러던 중,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얼음의 벽이 그들의 시야로 들어왔다.


"이건...조형 마법입니까?" 도트사이트를 정리한 제압팀 요원 중 한 명이 반응을 보였다.


"원소술을 응용한 건가. 참 실용적이기도 하지." 방독면 너머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지휘관이 그 벽을 노려보며 빈정거렸다.


그렇게 반투명한 벽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도중,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일그러진 머리 같은 것을 밀어 찼다.


"호오?"


단면은 불로 지진 양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고, 숙련된 도축업자의 손길을 거친 듯 매끄럽게 잘려져 있었다.


"과연...용병 따위가 숨어들었나. 어디 보자..."


지휘관의 입술이 언제나 그랬다는 듯 익숙하게 달싹이기 시작했다.


"밀렵." 그가 바닥에 놓인 사족보행의 괴수에게 눈을 흘겼다.


"미허가 마법 사용." 이번에는 크게 솟아오른 빙벽을 보았다.


"직무유기." 강당에 진입할 때, 아직 기력이 남은 채로 꿈틀거리던 놈을 떠올렸다.


그는 집어든 머리통을 제 얼굴 쪽으로 돌리며....


"...잘만 하면 살인도 되겠군." 비정하게 미소했다.


지휘관은 수습 작업을 진행하는 모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군, 모두들 축하한다."


누군가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기울였고, 몇몇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한 마디를 꺼냈다.


"반찬이 늘었다. 가서 출입문들 잠가라."


///


나는 소어가 가리킨 복도를 따라 달렸고, 마침내 암청색 조명으로 가득 찬 공간에 도달했다.


난방기에 후덥지근하게 달아오른 공기는 온갖 것들이 섞여 을씨년스러운 냄새를 품고 있었다.


"...흐으음.."


입구 옆 기둥에 몸을 기댄 뒤, 조용히 눈을 감고 혼합된 향취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약간 찌든 물비린내였다. 그것도 어류의 아가미를 수 차례 통과하며 체액이 섞인 냄새였다.


물은? 해수인가 담수인가?


동시에 짜릿한 소금기와 마소 응집제 냄새가 비강을 찌르며, 그것이 정제된 바닷물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진입하려는 찰나, 화끈거리는 초연 냄새가 후각을 파고들었다.


"컥!"


나는 기침이 터져나오기 직전 코와 입을 막았고, 자극받은 비강은 얼마 안 가 진정되었다.


'이 냄새는...'


고도로 정제된 화약 냄새, 슬럼에서 만든 싸구려 탄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촉...MFB의 것이 분명하다.


...빌어먹을! 이 지긋지긋한 회사랑 또 엮이게 되다니! 이제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념관 따위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볼멘소리는 얼마 안 가 이어진 불길한 냄새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아, 나는 언젠가 이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 신선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오묘한 향기...


...사라...?


...사라의 짙은 피냄새였다.


'....!'


어느새 내 손에는 푸른 얼음의 방패가 들려져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달렸다.


그리고 또 달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불길한 쇳내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기필코 그녀를 구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구했듯이, 나도 그녀를 구할 것이다.


장화와 의족이 번갈아가며 젖은 카펫을 수 차례 짓눌렀다.


제발, 나는 오로지 그녀가 죽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나는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뻗고 움츠렸다.


죽은 해파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수조들 여럿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냄새가 지독할 정도로 심해질 무렵, 나는 결국 난장판이 된 수족관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


바닥에 정신 사납게 널브러진 플레셰트의 날카로운 탄자들이 의족과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울렸다.


저 멀리 보이는 소파에, 피투성이가 된 연미복 차림의 로이드가 뒤집어 깐 눈과 삐져나온 혀를 내보이며 누워 있었다.


한 발짝, 두 발짝, 나는 그 징그러운 것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놈의 얼굴 곳곳이 보랏빛으로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목 쪽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맥박이 잦아든 창백한 모가지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약간은 난잡하지만, 그래도 꽤나 손재주 있는 사람이 남긴 듯한 액흔이 보였다.


"하아..."


나는 무심결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아, 이 어찌나 만족스러운 일인가. 로이드가 죽었다!


드디어 내 모가지를 노리던 이 싸가지 없는 도련님이 죽었다는 것이다.


나를 옥죄던 스트레스가 불꽃처럼 떠올라 터지는 안도감...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희열의 격류가 동맥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당장이라도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 사라. 무엇보다도 사라를 찾아야 했다.


숨을 다한 악마의 유해를 뒤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중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사라."


그녀는 내가 소어를 위해 사 준 후드티를 뒤집어 쓴 채로, 어두운 구석에 숨어들어 떨고 있었다.


젠장, 로이드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된 것인가?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녀는 분명 살아 숨쉬고 있었다!


"자, 안심해도 돼.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나는 최대한 작고 부드러운 톤으로 이야기하며,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라가 푸른 후드티를 슬쩍 들추더니,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텔룸...? 진짜로...진짜로...?!"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러난 손등에는 나일론 끈을 따라서 새겨진 멍 자국이 있었다.


"...사라."


대답은 없었고, 그 대신 숨을 가쁘게 들이쉬며 몸을 떨기 시작할 뿐이었다.


마침내, 사라의 눈이 떨리며 뜨겁게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주저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으...내...내가 얼마나...얼마나 기다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사라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그녀를 큰 손으로 받아들어서 품에 안아든 뒤, 소어의 옷으로 덮은 다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자...집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호흡이 안정을 되찾은 다음에야, 나는 밖으로 나갈 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진을 따라서 후문으로 뛰어나가야 하나? 설마 경비원들이 3층을 활보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1층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는 듯 욕설과 야유가 가득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유지니아였다.


"진, 수족관에서 사라를 찾았어. 지금 어디야?"


"...사이러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이야기 잘 들어 줘."


진 또한 평소답지 않게 크게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망설임 없이 귀를 기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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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7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7 2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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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4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9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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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2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7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3 37 14쪽
23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44 20.05.29 318 42 8쪽
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5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6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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