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rantine(격리) - 2
아랫층 객석의 문-괴물이 들어온 곳-으로 너무나도 익숙한 존재가 뛰어들었다.
청중들 무리에 뛰어들어 한껏 만찬을 즐기는 놈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검은 깃털에 새파란 두 눈. 그는 어째서 이 지옥도에 있는가?
제발 이런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길 바랬는데.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정을 바꿨다.
"출력 강화랑 엄호사격 좀 부탁해."
그리고 팔뚝을 걷었다.
신호를 받은 그녀는 재빠르게 주사기와 붉은 바이알을 꺼냈다. 차가운 알콜솜이 팔뚝을 문질렀고, 일순간 따끔한 통증에 이어지는 만물을 향한 초월적인 집중력이 혈관을 달렸다.
끓어오르는 충동에 인두로 지진 듯 달아오르는 근육...아마 지난번에 넘겨준 도마뱀의 혈액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화염 계열 향상이라, 유기체 상대로는 탁월한 선택이다.
"Glacies in Murus!"
나는 주저하지 않고 냉기가 흐르는 손으로 난간을 붙들었다.
푸른 얼음의 벽이 난간을 휘감고 굳어지며 아랫층을 향해 묵직한 발을 뻗었다.
징그러운 인면수의 발톱이 소어에게 다다르기 직전, 둘의 사이를 단단히 가로막는 데 성공했다.
"Partum Ignis in Hastam..."
레플리카로 손을 뻗고 주문을 영창한다. 마침내 두 손을 가득 채우는 화염의 창을 뽑았다. 올려볼 수 없는 태양처럼 작열하는 창, 이 한 줄기의 희망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창끝으로 놈을 정확히 겨눈 뒤, 왼발의 의족을 빙벽 위에 대담하게 올렸다.
그리고, 꼬리와 멀쩡한 다리로 균형을 잡았다.
"씨부럴 늙탱이 같으니!"
내 몸의 앞쪽으로 무게가 실리며 빙벽 위를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놈이 풍기는 악취가 뺨을 스쳤다. 나는 그것을 무릅쓰고 점점 가속도를 붙이며 놈의 모가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붉게 짓무른 피부가 다가온다. 날카로운 갈비뼈와 펄펄 뛰는 혈관이 가까워진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처럼, 어깨를 고정하고 양 손을 질끈 움켜쥔다.
그리고 손과 창 중 어느 쪽이 먼저 으깨질 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마침내, 타오르는 창은 인간의 얼굴을 뒤집어 쓴 짐승의 목을 정확하게 뚫었다. 검붉게 구워진 핏덩이가 울컥거리며 입으로부터 방울져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Secare!"
절단.
박아넣은 창날은 두꺼운 화염의 칼날이 되어 살벌하게 솟구쳤다.
그렇게 솟아오른 칼날은 지글거리는 소리와 살 타는 냄새를 풍기며 인면수의 머리와 몸을 그대로 분리시켜 버렸다.
쿵, 묵직한 울림과 함께 고름을 두른 거대한 머리가 낙하하며 피 묻은 양탄자에 코를 박았다.
홍두석의 가죽이 붙은 대가리는 피바다가 된 바닥을 추하게 굴러다녔다.
그 기괴한 얼굴은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일그러진 이목구비를 펼 생각을 품지 않았다.
좋아, 일단 머리는 잘랐다. 어지간한 생물체라면 그 몸 또한 머지않아 힘을 잃고 숨을 다할 터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예전에 상대했던 나방과 같이 비장의 수를 갖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몸이 믿을 수 없는 각력으로 시체 더미 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놈이 시체 더미를 향해 촉수를 뻗는 순간, VIP 객석에서 빛나는 물체가 날아들어 목구멍에 적중했다.
아, 그녀의 지원사격이다.
"빨리! 다트를 쏴!"
"Glacies in Iaculum, Adepto divisa!"
육중한 얼음의 다트가 손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 섬뜩한 냉기를 흩날리며 여러 조각으로 갈렸다.
"Ventus in Nebula!"
두 손을 입 앞으로 모으고 얼음 파편을 향해 바람을 불어넣었다.
폭풍을 품은 갈맷빛의 안개가 예리한 빙정을 맹렬히 주름잡으며, 날카로운 우박을 품은 눈보라가 되었다.
객석은 온통 매섭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파묻히며 창백한 서리가 앉았다.
때가 왔다.
놈이 발을 딛고 선 시체더미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자, 차가운 파편의 폭풍이 인면수를 향해 잔뜩 쏟아졌다.
-뭐야..? 용병...용병이다! 어이! 그 쥐새끼 안 죽이면 고소 할 거야!
-아우, 다들 좀 비켜 봐요. 나 나갈 거야! 둘 다 너무 징그러워!
온풍기가 돌아가던 강당에 퍼지는 한파에 놀란 걸까? 아니면 내 흉물스런 얼굴에 놀란 걸까? 어찌되었든 놈들은 줄행랑을 치면서도 욕지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목숨이 벼랑 끝에 내걸린 상황에서도 지푸라기가 더럽다며 안 잡을 것 같은 작자들 같으니, 어차피 이제는 익숙하다.
저 괴물에게 먹혀서 하나가 되던가, 가만히 서 있다가 얼어붙어서 죽던가, 아니면 열심히 도망가서 목숨을 부지하던가, 나는 어차피 소어 하나만 보호하면 될 일이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촉수를 꺼내 시체 더미를 깊숙히 찔렀다.
"..뭐 하는 거지..?"
이번에는 허파 사이에서 촉수 한 다발이 새로 터져나와 꿈틀거리며 시체 더미를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다행스럽게도 때 맞추어 몰아친 한파 덕에 그 놈과 시체 더미는 하나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얼어붙었다.
빌어먹을, 요즘 괴물들은 왜 이렇게 끈질긴 건지 도통 모르겠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이 봉쇄된 지금이 기회다.
"자, 소어, 이리로 와. 빨리 도망가야 해. 어서!"
나는 소어를 재빠르게 안아들었다. 하지만 소어는 격하게 몸부림치며 내려가기 위해 애를 썼다.
급한 일이라도 있나? 나는 그를 도로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눈물이 한가득 고인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제가 온 길을 열심히 가리키고 있었다.
"왜 그래, 저 쪽에 무슨 일 생겼어?"
소어는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그렇다면...
"진!"
나는 유지니아를 불렀다.
머리 위에 서 있던 그녀가 빙벽에 발을 딛고 거침없이 미끄러지더니, 조용하고도 빠르게 우리의 옆자리에 안착했다.
"할 일이 생겼어. 소어 데리고 뒷문 쪽으로 빠져나가."
그녀에게 소어를 맡기고, 나 홀로 문제를 처리하러 갈 생각이었다.
"알았어. 꼭 돌아와야 해."
그리고 소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먼저 나가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곧 갈게."
나는 두 무릎을 꿇어서 눈높이를 맞춘 다음, 큰 손으로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달랬다.
등 뒤에 얼어붙어 있던 목 잘린 괴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시체 한 구를 감싸안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더 이상 볼일은 없었다.
내가 어째서 생면부지의 괴물 앞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는가? 나를 모욕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업자득으로 한 끼 식사가 된 잘난 홍두석의 원수라도 갚기 위해서?
아니, 그런 이상주의적인 생각 따위는 추호도 품지 않았다.
내가 비겁하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누군가에게 이런 나를 경멸할 명분 따위라도 있는가?
나는 오직 소어의 안위만을 위해 움직였고, 그것이 확보된 이상 더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경찰들이 들이닥치면 저 괴물의 처리보다도 나에게 밀렵죄를 비롯한 온갖 죄목을 뒤집어 씌우는 데 급급하여 열을 올릴 게 분명할 것이다.
"어서 가.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유지니아는 소어를 들쳐메고 후문 방향으로 뛰었다.
자, 나머지는 잘나신 전투경찰 나리들의 손에 맡길 것이다.
콧대 높은 인간들이 '게으른 심부름꾼'의 중요성을 깨닫는 훌륭한 계기라도 되려나?
그것을 깨닫지 못한 대가는 피로써 치를 것이 분명한 일이리라.
나는 느리게 몸을 떠는 괴수로부터 등을 돌리고, 소어가 가리킨 방향으로 소리 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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