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rantine(격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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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Quara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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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하게 아장아장 달리는 연약한 발걸음이 놀라울 만큼 적막한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소어의 검은 깃털을 둘러 싼 새하얀 반팔 셔츠가 식은땀에 촉촉하게 젖어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보호자가 어디에 있는지 오리무중인 상태로 그저 하염없이 달릴 뿐이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공황과 혼돈 속에서도, 자신을 강인한 두 팔로 안아들어 넓은 어깨에 앉히던 서늘한 손길을 추호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나를 건져올린 새하얀 설산 속에? 따뜻한 수프가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부엌 속에? 함께 이름 모를 동질감을 공유하던 욕조 속에?
창백한 지옥으로 날아든 칠흑의 구원자,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속삭여 준 감정의 전도사는 어디에 있을까?
사이러스는 이미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로 자리잡고 말았다.
동화책에서 읽었던 부모님들, 아주 많고도 많은 부모님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두껍고 거친 상처 투성이의 손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언제나 울고 있는 오른쪽 얼굴을, 어색하게 미소하는 왼쪽 얼굴을 당장이라도 끌어안은 뒤 부리를 맞대고 싶었다.
굴곡진 전신을 뒤덮은 크고 작은 흉터들도 그저 말 없이,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의 얼굴과 가슴을 타고 끊임없이 흐르는 진홍색 눈물이 영영 멎을 때까지, 그 붉은 보석들을 얼마든지 대신 떠안고 보살필 수 있다.
단지 이름을, 그 소중한 한 마디를 마음껏 외칠 수만 있다면.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창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알로부터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거라. 모두를 사랑하기 위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단다.
오직 그 검은 생물에게만 들리던 소리, 아름답고도 고혹적인 음률이 소어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명심하렴. 너를 둘러 싼 고통이 너무나도 가혹해질 때, 망설임 없이 날개를 펼치도록 하여라.
-바다를 향해, 광활한 빛의 바다를 향해.
-...모두의 축복을 끌어안은 천사가 되어 날아오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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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떤 이야기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저것을 정녕 쥐라고 할 수 있는가? 저 거대한 괴수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1층의 사람들이 무대로부터 서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무대에는 두 마리의 괴수가 있었다.
하나는 날렵한 네 발로 딛고 일어선 흉측한 괴수, 다른 하나는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완전히 굳어 버린 홍두석이다.
상황은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홍두석이 어느 쪽 계단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하던, 그것은 인식 범위를 넘어선 속력으로 종횡무진 도약하며 퇴로를 막아섰다.
마침내 그 놈은 무대 한가운데에 발이 묶였고, 두 다리 사이에는 축축한 웅덩이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에...에이이이잇!"
문어대가리는 객석을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당황한 방청객들, 그가 데려온 서포터즈를 비롯한 이들 중 누구도 그를 받아내는 자는 없었다.
아니지,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땅바닥에 가까워질 일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를 주시하던 거대한 괴수가 고개를 잽싸게 돌려 혀뿌리를 날렸다.
순간, 나와 진을 포함하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원래대로였다면 어디에선가 터져 나왔을 비명 한 점 없이 강당 안은 정적으로 물들었다.
굵고도 억센 촉수를 닮은 혀가 허공에 뜬 홍두석의 두 다리 사이로 날아든 것이다.
놈이 준비한 특등품 마이크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갗이나 바지 따위가 경쾌하게 찢어지는 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으...으힉?"
생식기 쪽인가? 아니면 항문 쪽인가? 아니면 어느 쪽도 아닌 새로운 경로인가?
어찌되었든 그 혀는 홍두석에게 박혀서 괴상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액체가 꿀럭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강당 전역에 울려 퍼졌다.
문어대가리의 얼굴이 생소한 고통으로 새파랗게 죽어 가며 목구멍을 칵칵 비벼 대기 시작했다. 기름진 땀방울은 잔뜩 찌그러진 주름진 이마를 미끄럼틀처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괴수는 계획이 원하는 대로 돌아간다는 듯 구렁이 같은 혀를 난폭하게 휘두르며 놈의 적당한 무게를 즐겼다.
그는 굵직한 혀와 하나가 되어 무대와 객석을 마구 가로지르며 덩달아 몸부림쳤다. 그의 버둥거리는 사지가 객석의 허공에서 휘날릴 때마다 방금 전만 해도 얼간이처럼 박수를 치던 이들은 서로를 밀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하나 그럼에도 강당 밖으로 뛰쳐나가는 이는 없었다. 그저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며 눈 앞의 기묘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뿐, 그 누구도 나서서 행동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촉수 같은 혀는 점차 깊은 곳으로 마수를 뻗었고, 이제 문어대가리는 촉수에 맞추어 팔다리를 배배 꼬는 꼭두각시 같은 몰골로 전락했다.
괴수는 별안간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염증 따위로 부풀어오른 허파가 한창 팽창하던 찰나, 그것은 재빠르게 수축하며 혀 쪽에 거대한 혹 따위의 물건을 만들었다.
"저게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내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몰라. 나도 처음 보는 일이야." 유지니아마저도 그 광경에 질려 버린 듯, 공허한 단답이 돌아왔다.
혀에 생긴 혹이 문어대가리의 복부 쪽을 향해 꿈틀거리며 다가갔다.
머지않아 우리는 그 행동의 목적을 알게 되었다.
혹덩어리가 눈 깜짝할 새 배 속으로 옮겨 가 버리자, 홍두석의 복부와 흉부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놈은 어째서인지 상체를 앞뒤로 크게 흔들며 헛구역질을 했다. 두 눈은 이미 실핏줄이 잔뜩 터져 붉게 짓무른 흰자위를 까 보이고 있었다.
자랑스럽게 걸려 있던 안경은 움직임을 못 이기고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 광경이 퍽이나 신기하기라도 한 것인 양,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액정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순간, 그렇게 한눈 팔고 있는 관객들의 머리 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홍두석의 입에서 거품 따위가 부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갈색, 노란색, 그리고 붉은색의 온갖 것들이 섞인 더러운 것이 뿜어져 나왔다.
깨끗하게 닦인 무대, 그리고 가까이 있던 객석은 온통 황갈색 오물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것이 풍기는 악취가 희미한 제라늄 냄새를 단숨에 걷어내더니 후각을 유린했다.
-꺄악! 뭐야 이거!
-으...냄새 나잖아!
사람들은 더러운 구정물을 뒤집어 쓴 운 나쁜 무리로부터 슬금슬금 물러났다.
-아 짜증나! 내일 학교 가야 한다고!
-어떡해 어떡해...폰 어제 산 건데!
잔뜩 화가 나 발을 구르는 고등학생, 깨끗한 양복이 더럽혀진 남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갖가지 불평을 쏟아 냈다.
그렇게 도망치지도 않고 볼멘소리나 할 때였을까,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잊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그 뒤에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무대 상공에서 흩날리고 있던 더러운 인간...이었던 것이 괴수를 향해 끌려들어갔다.
뱃가죽 속의 내용물을 모조리 쏟아 낸 홍두석은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렇게 축 늘어진 유해를 괴물의 갈빗대가 받아들였다.
땀과 오물에 흠뻑 젖어 속옷이 번들번들하게 비치는 셔츠, 열심히 다린 것 같은 검은 바지가 갈빗대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가리처럼 크게 벌려진 갈비뼈가 느리게 다물어졌다.
어째서였을까? 그렇게 먹혀들어가는 문어대가리의 눈이 마지막으로 움찔거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홍두석의 모습은 없었다. 그 놈의 존재는 그렇게 끝났다.
좌우로 벌어진 갈비뼈가 이빨처럼 그것을 우물거리며 피와 기름을 짰다. 촉수 같은 혀는 그 틈을 섬뜩하게 핥으며 피 한 방울 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선보였다.
...
마침내, 그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공포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괴수의 얼굴이 뼈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고치를 찢기 전 급격하게 우화하는 번데기를 그대로 촬영한 것 같은 느낌으로, 그것의 미간이 갈라지고 턱이 목 쪽으로 말려들어갔다.
놈이 점차 변화하는 과정은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던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그 괴수에게서 더 이상 쥐 따위의 짐승 같은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잔뜩 짓무른 홍두석의 얼굴을 가진 또다른 흉물로 변하고 말았다.
괴수? 아니다. 어쩌면 인면수라는 호칭이 훨씬 더 어울릴 것 같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슬슬 공황과 혼돈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쇼가 아니었다. 오로지 잔인한 현실만이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도와줘요! 사람이 죽었어! 문 열어요 문!
아래층에 있는 관객들은 괴수가 들어온 문과 정문을 향해 앞다투어 달려나갔다.
-우리 학점이랑 커뮤니티 어떡해! 교수님 죽으면 우리 다 끝나는 거잖아!
-지금 학점 소리가 나와? 씨발 당장 헬기! 헬기! 띄우라고!
자기들의 충실한 후견인인 교수를 잃어버린 서포터즈들 또한 일사불란하게 와해되고 말았다.
VIP석에 앉아 있던 이들도 나와 유지니아를 남겨 두고는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었다.
무대 위의 괴수...중년의 거죽을 뒤집어 쓴 괴수는 방금 맛 본 남자의 살점으로부터 어떤 희열이라도 느끼는 듯 다시금 갈비뼈를 펼쳤다.
그것은 새로운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듯, 다시 한 번 객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도대체 왜..?"
놈은 분명 강당으로 들어올 때 만난 남자를 지나쳤다.
마치 주둥이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느끼는...
잠깐... 냄새?
나는 괴수가 짓뭉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예상대로였다. 찢고, 가르고, 뜯고, 삼키고. 이런 지옥도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비명이 강의 대신 메아리쳤다.
대체로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괴수는 오직 구정물을 뒤집어 쓴 이들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저 놈이 우리의 '냄새'를 맡기 전에....
"진?"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후퇴하자.'
내가 재빠르게 결정한 한 마디를 꺼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 작가의말
어느덧 공모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지는 기간이었지만,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새내기 생활은 어느덧 1학기가 끝나고, 제 고양이는 하늘로 올라가 저를 지켜 주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제가 지금껏 이렇게 나아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꾸준히 도와 주신 독자 분들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저를 위로해 주시고, 꾸준히 찾아와 작품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
이토록 헌신적으로 도와 주신 여러분들께, 저는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중간 중간 조금 긴 기간의 휴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는 언제나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다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와 주신 모든 분들과, 앞으로 찾아 주실 새로운 독자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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