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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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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366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6.15 09:43
조회
275
추천
27
글자
8쪽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DUMMY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도중, 신문 읽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서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적당히 큰 키에 마른 체형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주름 없이 창백한 얼굴과 손에 들고 있는 대학교 텀블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테 안경 너머로 비치는 우거지상의 눈꺼풀에는 고된 피로가 어두침침하게 눌러앉아 있었고, 나름 차려입은 것 같은 와이셔츠는 단추 두어 개가 잘못 끼워져 있었다.


자신의 양친이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을 데리고 머리를 싸매는 것을 본 경험으로, 그가 어딘가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정도 되는 사람-그 중에서도 진짜 학업에 열중하는 타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무렵의 사람들은 대개 성격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괜히 시비를 걸어서 좋을 것 없다...그렇게 생각하며 사라는 제 성질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문을 열기 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바닥에 쓰러진 청소부를 일으키는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자 그녀의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수인을 일부러 도우려는 인간은 많지 않으니까, 별 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종알거리던 사서도 지친 듯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사라는 소어와 함께 비밀스러운 휴식 시간을 갖고 있다.


그녀는 소어의 메모장에 적힌 책 두 권을 서가에서 뽑아 건넸다.


"자, 여기. '싱클레어'와 '천사의 여명' 맞지?"


소어는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쥐어 준 책이 마음에 드는지 앞뒤의 표지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이거...정말 괜찮겠어? 이 동화책, 엄청 무서운데 말이야."


사라는 약간 걱정된다는 투로 속삭였다.


그렇다. '싱클레어' 는 내용은 어려울지라도 충분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천사의 여명'은 대체로 어린아이에게 추천할 만한 내용이 결코 아니다.


아름답고 고결했던 천사가 두 날개를 잃고, 낙원 위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으며 피투성이로 변한다.


종국에는 갈색으로 굳은 날개를 얻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낙원의 끝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이다.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이 모든 장면들이 쓸데없이 섬세하고 현실적인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심심하면 세상의 종말을 들먹거리는 미치광이들의 선전물처럼, 낙원에 찾아오게 될 여덟 가지의 재앙을 부르짖는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라는 이 동화를 즐겁게 읽은 탓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뽑아 건네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그녀도 자신이 읽을 책을 꺼냈고, 그렇게 조용한 독서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라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책에 집중하면서도, 무릎 위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소어를 종종 쓰다듬었다.


소어는 그의 따뜻한 체온을 아무 말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사라에게 나누어 주었다.


둘은 서로를 조용히 배려하며, 새하얀 바탕을 채운 잉크의 궤적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러 온 다른 아이들 또한 놀랄 만큼 조용했다. 그 곳의 모두는 조용한 독서 시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앗!"


순간, 사라는 제 검지손가락의 끄트머리를 깊숙히 파고드는 섬뜩한 통증을 느꼈다.


흠칫하는 사이 무릎에 앉아 있던 소어도 함께 놀라며 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손가락을 그어 놓은 종이 모서리에 불그스름한 실선이 자리잡았다.


화장실에라도 가야 하나, 사서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까...


사서가 앉는 카운터를 힐끗 엿보니, 그는 읽던 신문을 제 얼굴에 덮어둔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빨리 돌아오기만 한다면 실랑이를 벌일 일은 없으리라.


그녀는 핏방울이 맺히는 손가락을 붙잡고, 소어를 제 자리에 앉힌 뒤 화장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좋아. 여긴 나 말고 아무도 모르니까, 이대로라면 잠시 혼자 두어도 괜찮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세상 모르고 꿈나라를 헤매는 사서를 지나쳐 도서관 밖으로 나오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수족관이 쉬는 날인가?'


2층에 위치한 수족관 입구에는 벨벳 천으로 감싸진 쇠사슬과 함께 통행 금지 푯말이 걸려 있었다.


청소부를 돕던 여자는 로고가 그려진 하얀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붉은 음료가 든 차량을 몰고 있었다.


특별한 구조 때문인지 운행 소음은 일절 발생하지 않았다.


'분명 아까 교복 입은 거 봤는데...저것도 아르바이트 같은 건가?'


게다가 그 차량은 어째서인지 낯익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음료 차량이 사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사라는 그 외모에 놀라 일순간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을 느꼈다.


모자의 길다란 챙 때문에 눈 부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판매원이 석고처럼 창백한 피부와 설익은 체리 같은 입술을 가진 기계적인 미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아이스박스에서 음료 한 병을 꺼내 사라에게 건내며 당당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제품을 소개했다.


"M.F.B.의 신제품 시음 행사 중입니다! 유명 스트리머 Amy의 숨겨 왔던 외모 관리 테크닉! 공업지구 수경농업 섹터의 특별한 토마토로 만든 마이웨이 블러디 메리를 드셔 보세요!"


페트병 내부에는 작은 물거품들이 투명감 있는 붉은 음료수 사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 예...감사합니다."


판매원은 다시 차량을 돌려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사라는 페트병의 뚜껑에 힘을 주어 비틀었다.


병 주둥이를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자, 화학적인 토마토 냄새와 톡톡 튀기는 차가운 탄산 방울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윽, 토마토에 탄산이라니...이런 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으라는 거야?'


그리고 뚜껑을 도로 닫은 뒤, 판매원이 어디로 사라졌나 유심히 살폈다. 여자는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사라는 다시 화장실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화장실은 전등 몇 개가 고장나 대낮부터 어스름이 깔렸다.


'여긴 왜 남녀 공용 화장실밖에 없는 거지?' 사라는 속으로 불평했다.


녹슨 수도꼭지를 틀자 거품 섞인 물줄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세면대를 때렸다.


수압을 줄이고, 그녀는 피 묻은 손가락을 물줄기 속으로 밀어넣었다. 조심스럽게 비누를 칠하고 씻어낸 뒤, 도로 그것을 잠갔다.


건설된 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던 터라, 화장실은 영 멋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벽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진녹색 타일로 도배되어 있었고, 그것들의 틈새를 메우는 모르타르는 칙칙한 물때와 곰팡이들의 터전이 되었다.


그토록 우중충한 분위기는 들어온 사람을 종종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에 빠트리곤 한다.


사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지라, 손을 씻는 대로 나가고 싶은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순간, 화장실 깊은 구석에서 울리는 이상한 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질퍽한 오물 따위가 끓는 소리, 버러지가 기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화장실의 축축한 공기를 떨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에 구석진 곳을 향해 다가갔다.


바닥에서 웬 액체를 담는 용기가 빛나고 있었다.


'좀 익숙한데..'


용기를 집어들자, 반쯤 남은 내용물이 바닥으로 흘러 떨어졌다.


어두운 조명 때문에 그것에 붙은 라벨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기에 사라는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할 호기심을 발휘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녀의 경솔한 발걸음은 가장 구석에 위치한 청소 도구함을 향하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가래 끓는 듯한 괴성은 그녀의 위험한 호기심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마주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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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Quarantine(격리) - 3 +22 20.06.24 258 19 11쪽
43 Quarantine(격리) - 2 +22 20.06.22 262 18 8쪽
42 Quarantine(격리) - 1 +24 20.06.19 288 22 10쪽
41 Side Chapter - Cripple Them(놈들을 불구로 만들라) +18 20.06.18 326 18 14쪽
40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4 +25 20.06.17 279 22 10쪽
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6 21 9쪽
»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6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7 25 7쪽
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3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8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3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1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30 Side Chapter - Golden Rule(황금률) +31 20.06.06 360 33 9쪽
29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5 +29 20.06.05 277 34 9쪽
28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4 +41 20.06.04 277 35 8쪽
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0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5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1 37 14쪽
23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44 20.05.29 315 42 8쪽
22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4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2 38 10쪽
20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2 +37 20.05.26 344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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