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다 끝난 거지?" 내가 물었다.
그녀는 한쪽 얼굴로 후련하게 미소지으면서도 반대쪽으로는 어딘가 불쾌한 듯 입꼬리를 내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비밀번호만 빼면 말이지... 도대체 누가 걸어 놓은 거야? 암튼 이따가 수리점 좀 가야겠고. 음, 일단 할 일은 끝났어. 가서 스피커랑 프로젝터만 챙기면 되겠다."
좋다. 이제 혼란을 틈타서 장비를 챙기고, 강당을 빠져나가면 된다.
나가서는 뭘 할까? 소어를 데리고 안톤 씨 가족을 만나 점심이라도 먹을까?
무엇을 생각하든, 우선 밖으로 나가고 볼 일이다.
나는 프로젝터가 있는 공간으로 조심스레 기어갔다. 검은 외투 덕분에 들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고, 내 예상은 맞았다.
"좋아, 프로젝터 먼저..."
선을 뽑고 그 무거운 것을 집어 든 순간, 1층에서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째서인지 비릿한 피 냄새가 지독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예사 인간은 맡지 못할...그런 기묘한 감각이다.
-어우, 뭐야 저거... 입가에 뭘 묻히고 다니는 거야?
-야, 말하지 마. 이 쪽 쳐다보잖아....
누구지?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들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사족보행의 짐승을 에워싸고 있었다.
크기는 엎드린 사람 만한 것이, 긴 주둥아리를 흔들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하수도에서 변종 쥐라도 올라온 건가? 그렇게 생각할 즈음이었다.
강당의 전등이 일제히 켜졌다.
무대에서 환호성을 받던 홍두석이고, 놈을 찬양하던 서포터즈고, 그 박수에 어울려 주던 많은 관중들의 시선이 그 생물을 향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상한 동물의 진위를 목도하고 말았다.
그 흉측한 생명의 말로를, 난잡한 결과를 암시하는 그 붉은 짐승을.
시뻘겋게 부풀어오른 살덩어리 같은 것이 털가죽을 대신하고 있었고, 눈이 있었을 부분에는 고름 찬 종기가 잔뜩 돋아나 누런 오물을 찌걱찌걱 흘리고 있었다. 얼굴의 한쪽 면은 얇고 흰 막대기 같은 것이 박혀 있어서 종기가 터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눈에서 흐르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입에서도 누렇고 끈적한 침이 사정 없이 흘러내리며 대리석 바닥과 고급 융단은 질펀하게 젖어들어갔다.
비대하게 변한, 게다가 네 겹으로 늘어난 갈비뼈는 살을 뚫고 나오며 가슴을 벌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누렇게 부어오른 폐와 심장이 불안정하게 헐떡거렸다.
가슴의 벌어진 부분은 턱까지 이어져, 마치 굶주린 짐승의 아가리를 연상시키듯 갈비뼈를 벌렁이고 있었다.
조용히 어금니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놈이다.
위험한 상황이다. '어쩌면' 싸워야 할 지도 모른다.
잊어버렸을 법한 사람이 있을까봐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만사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몇 번이고 편집증 환자들도 울고 갈 의심과 관찰을 반복하여 죽일 방법을 궁리하는 사냥꾼일 뿐이다.
선택하자. 집중하자. 가망이 없으면 퇴로를 뚫자.
언제나 그랬듯, 놈을 관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날카로운 갈비뼈, 기름 투성이 내장, 심장 박동에 맞춰 꿈틀거리는 혈관, 근육의 세밀한 떨림까지도.
놈은 가장 앞에 보이는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분명 컨퍼런스의 도입부에 '게으른 심부름꾼'을 운운했던 놈이었다.
-...뭐야. 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놈이 주둥이를 치켜들었고, 주변의 냄새를 느끼는 듯 코를 벌렁이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것은 다시 냄새 맡는 것에도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허...?"
진이 나를 찾아서 객석으로 따라들어왔다. 그녀에게도 의사 인생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까, 눈 앞의 기묘한 현장을 보며 숨소리를 죽였다.
그 때였다.
자줏빛 벨벳 융단 위에서 노닐던 그것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것은 눈 깜짝할 새 무대 위에 올라, 일생일대의 만찬을 눈앞에 둔 듯 날카로운 갈비뼈를 쩍쩍 들썩거리며 군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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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Bloody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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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사서들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 목에 걸린 긴 목걸이에는 '봉사활동'이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러더니 책 몇 권을 집어들고 서가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햇빛이 드는 에어컨 옆의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 어서 들어와."
자의든 타의든 도서관에 올 날이면 언제나 독차지할 수 있는 비밀의 공간. 하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손에서 팔뚝까지 이어지는 검고 말랑하고 인간과는 다른 피부,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덮은 부드러운 깃털...작은 소어가 짧은 보폭으로 따라들어왔다.
사라는 만족한 듯 어린 까마귀 수인을 들어올려 무릎에 앉혔다. 그의 체온은 어지간한 무릎담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스했다.
정말이지.
도서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녀의 심신은 온통 경직되어 있었다.
머리가 홀라당 벗겨진 이름 모를 중년 때문이었다.
"여기가 도서관이야. 좋아하는 책 있어?"
말은 할 수 없지만, 들을 수는 있다. 사라는 그것을 명심하며 소어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어린 까마귀는 손을 즐겁게 움직이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며 문 손잡이를 잡던 찰나, 멀리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유 모를 호기심에 휩쓸려, 둘은 소리가 난 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청소 차량이 옆으로 넘어가더니 쿵 소리를 내며 쓰러져 버렸다. 차량에 실려 있던 빗자루와 마포 걸레와 온갖 청소 도구들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뒹굴고 있었다.
락스와 유리 세정제는 뚜껑이 눌려 터지며 시퍼런 내용물을 차가운 돌바닥에 한가득 쏟았다.
그것의 주인으로 보이는 검은색 쥐 수인 역시 한참 묵은 먼지 덩어리처럼 바닥에 웅크려 떨었다.
"그러니까, 어디 좆만한 발상지 쥐새끼 주제에 카파에서 오신 귀한 분을 가로막냐고."
"야, 말도 걸지 마. 어차피 갈레노스 선서에 위반되지도 않는다니까 문제 없을 거야."
검게 빛나는 양복을 입은 젊은이 몇 명이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하나 그들의 흥미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머리가 벗겨진 중년은 거만한 자세로 젊은이들을 이끌며 그 안에 발을 들였다.
어떻게 해야만 할까? 돕는 게 좋을까? 사라의 발걸음에서 물큰물큰한 망설임이 흘렀지만, 이미 한 두 걸음 정도가 넘어진 청소 차량을 향하고 있었다.
순간 어린이용 도서관 카운터로부터 깐깐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합니까? 빨리 안 들어오면 봉사 시간은 없는 줄 알아요."
문 앞에 멈춘 그녀에게 사서의 신경질적인 핀잔이 날아왔다.
"예, 예. 갑니다 가요."
시덥잖은 협잡질에까지 말대꾸를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다는 판단이었을까, 그녀는 고분고분 따르며 이름표 목걸이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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