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마록 님의 서재입니다.

텔룸(Telum)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아마록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1
최근연재일 :
2020.06.30 10:4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415
추천수 :
1,625
글자수 :
221,209

작성
20.05.28 09:29
조회
314
추천
39
글자
10쪽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DUMMY

"...휴."


한숨을 내쉬는 동안, 마르셀로가 소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고마워. 너 없었으면 우리 둘 다 죽을 뻔 했어."


그는 힘겹게 마스크를 벗었다.


"아까 병원에서 나갈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병원에 있었던 거야?"


"잠시 약 받으러 갔어. 근데 거기서 네가 나오는 거 보고 트렁크에 들어가서 따라온 거야."


정말 다행이었다.


나도, 소어도 그가 아니었다면 절망 속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고 말았으리라.


역시 이래서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소어 쪽을 돌아보았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는 약간 울적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카벙클 인형의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 꼬리가 떨어졌구나."


주머니에 넣어 둔 인형의 꼬리를 꺼내어 먼지를 털어 내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며 말했다.


"집에 가서 다시 붙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듣자, 소어는 조용히 내 다리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얼굴이 닿은 부분이 조금씩 젖는 것이 느껴졌다.


"많이 놀란 모양이네."


하기야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폭발하고, 거대한 나방이 정신 없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괜찮아. 오늘은 분명 즐거운 날이 될 테니까, 울지 않아도 돼."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올려 껴안고 다독였다.



두 명과 잠깐 동안 이야기하다가, 나는 작업자들과 함께 뒷정리를 끝냈다.


"고맙소. 형씨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을 겁니다."


반쯤 죽음을 경험한 그들의 눈동자에 편견 따위는 없었다.


나도 그 속에서 요동치는 진정한 고마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냥 특별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시죠."


수고비를 쥐어 주려는 것을 간신히 말리고, 그들이 다른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마르셀로 쪽으로 돌아왔다.


"일은 잘 끝난 모양이네."


"그렇지."


"그런데, 디스폴리더스에는 관광 때문에 온 거야?"


그는 강풍에 팔락이며 날리는 큰 귀를 접으며 버티고 있었다.


나는 눈 앞에 우뚝 선 검은 전망대를 올려다보았다.


"같이 올라갈래?"


내가 먼저 물었다.


"좋지!"


마르셀로는 내심 즐거워 보이는 눈치였다.


문을 열자, 소어는 호기심을 못 이기고 먼저 쪼르르 달려나갔다.


"천천히 좀 가라고."


나도 소어를 따라서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어느새 아침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희미하게 계단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우리는 넓은 실내 전망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수인이 여기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려나?"


마르셀로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예전이었다면 우리가 전망탑까지 올라오는 것을 경비원들이 기를 쓰고 막았을 것이었다.


"작은 일탈이라는 거지."


나는 가볍게 받아치며, 원형의 전망탑 내부를 돌아보았다.


바깥쪽을 향한 유리창으로 보이는 대단한 경치 말고도, 곳곳에 정리된 점포가 늘어서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소어가 재빨리 달려나가 깨끗한 테이블 앞에 앉았다.


"거기는...?"


다른 점포들보다도, 그 테이블은 유독 깔끔했다.


당연하다는 듯, 시야는 테이블이 위치한 점포로 향했다.


「몽마향로」라는 이름, 샤모 영역 중부 분위기로 장식된 세련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관심을 갖고 곳곳을 둘러보던 중, 카운터에 올려져 있는 글을 읽었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급하게 점포를 두고 떠납니다! 재료는 준비되어 있으니, 새로 온 손님들은 원하는 대로 조리해 드시기 바랍니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읽자마자 옆에 있던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몸을 크게 숙여 내용물을 확인하자, 꽤나 만족스러운 물건들이 보였다.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네."


주방으로 따라 들어온 마르셀로가 말했다.


투명한 유리로 된 밀폐 용기를 집어들고 뚜껑을 열자, 단단한 열매 여러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운 상아색을 띤 열매들은 둥근 꽃잎의 형태를 닮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살짝 향을 맡자 냉장고 냄새 사이로 고소한 식물성 지방의 냄새가 풍겼다.


하나 집어들어 맛을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아몬드였다.


"잠깐, 이거 아몬드잖아?"


"어라, 이건 내 고향에서 자라는 '제비꽃 아몬드'야."


그는 고향의 맛이 반갑다는 듯 서너 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게 정말로 아몬드란 말이지.."


내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아몬드는 작은 물방울 모양의 그것뿐이었다.


그것도 씹어야만 제대로 된 향을 맡을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눈 앞에 둔 것은 처음 보는 종류였던 것이다.


확실히, 이름을 듣고 보니 제비꽃과 비슷한 모양이기도 했다.


"여기서 견과류 요리라도 했나?"


"그런 것 같아. 위에 좀 봐! 두부 같은 게 있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니, 정말로 두부 같은 음식이 놓여진 유리 접시가 보였다.


새하얗고 탱탱한 표면을 자랑하는 그것은 말린 살구와 꿀에 버무린 자두로 먹음직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저거 진짜 비싸 보이는데."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 자태에 일순간 군침이 돌았다.


"어디 보자, 그건 '행인두부'라는 음식 같아."


그는 근처에 굴러다니던 메뉴가 적힌 종이를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작은 유리 접시를 들어올렸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연한 표면을 가진 요리가 조금씩 찰랑거렸다.


칼로 살짝 떠서 맛을 보니 독은 없는 것 같다.


"뭔지는 몰라도 정말 식욕을 당기게 만들고 있어."


"빨리 크게 한 입 먹어 봐!"


내가 수저통으로 손을 뻗어 숟가락을 찾으려는 중,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아.


"왜 그래?"


"소어 먼저 줘야지."


"정말로 육아에 재미 들렸나 보네, 응?"


아이를 진정으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아침마다 전신을 짓누르던 지독한 권태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무엇을 먹여야 할까, 무엇을 입히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접어둘 수 없었다.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런 존재를 위해, 무엇이든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록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아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돌보고 싶었다.


"자, 먼저 먹어 봐."


최대한 친절한 어투로 소어를 불렀다.


그에게 행인두부와 숟가락을 주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곧 한 입, 두 입을 반복하며 행인두부는 아이의 목구멍 뒷편으로 사라져 갔다.


머지않아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아하는 것 같아!"


마르셀로가 기뻐하며 말했다.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자,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유 모를 기쁨이 마음 속 한 구석을 채웠다.


"그런데, 양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으응."


우리 둘은 행인두부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었다.


애초에 시식용으로 만든 것과 같이 조그마한 크기에 약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래?"


그가 물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답변을 내놓았다.


"조금 더 만들어 볼까."


레시피만 알고 있다면 손쉽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카운터로 들어가 수납장을 열고 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버블 밀크티, 삼부점과 같은 중부식 디저트가 적힌 문서를 치우자, 행인두부의 레시피가 보였다.



「젤라틴, 코코넛 밀크, 아몬드 가루와 추출물, 우유...


ㄴ이름이 행인(살구씨)두부인데 살구씨는 한 알도 안 들어가네요?

ㄴ원재료 값 올랐다...그냥 아몬드로 때워.」



누군가가 낙서를 해 놓은 모양이지만 별 문제는 없으리라.


"좋아. 이거면 충분해."


"기대할게!"


이미 내 요리를 여러 번 맛본 그는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우유와 아몬드의 달콤한 향기가 어느 새 폐포에 젖어들었다.


원래대로 냉장고를 사용했더라면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온전한 형상을 갖추었겠지만, 마법을 사용하자 십 분 만에 완성되었다.


말린 살구와 설탕에 절인 자두를 얹은 뒤, 마지막으로 박하 잎을 얹어서 마무리했다.

"이거면 되겠지."


완성된 행인두부 세 컵을 가지고 두 명이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오오! 이거 진짜 맛있어 보여!"


마르셀로가 크게 감탄했다.


옆에 앉은 소어 역시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 숟가락 받고, 이제 먹어봐야겠다."


친구에게 숟가락을 건넨 다음 부드러운 행인두부를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설탕의 달콤함과 우유의 고소함의 향연 사이로, 잊을 수 없는 아몬드의 풍미가 혀를 감쌌다.


차가운 냉기 속에서도 그 맛을 당당하게 뽐내는 재료들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아, 이것이 행인두부인가.


곧이어 상부를 장식하는 살구와 자두 한 조각씩을 두부와 섞어 맛보았다.


처음으로 느낀 감촉은 과일의 산뜻한 향과 탄력 있는 섬유질이었다.


요즘에 이토록 멀쩡한 생김새와 식감을 가진 과일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침의 햇살을 한껏 머금은 자연의 은혜가 혀에 녹아드는 감촉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찾아온 자두의 새콤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박하의 시원한 향미 또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투로 쌓인 장독을 푸는 것에는 이만한 물건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 효능에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미뢰를 통해 음식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 무한한 가치를 누리고 있던 중, 나의 시선은 친구에게 향했다.


그는 컵에 주둥이를 박고 바닥까지 핥을 기세로 정신없이 그것을 음미하고 있었다.


저렇게 본능에 따르며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식욕의 본질이리라.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다른 두 명과 함께 처음 맛보는 디저트의 환상 속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요정이 쓸 것만 같은 작고 하얀 침대 속에서 달콤한 꿈을 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텔룸(Telum)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 월~금요일마다 오전 9시-10시 경에 연재됩니다! 20.05.17 170 0 -
48 정적 - 에필로그 +18 20.06.30 311 14 15쪽
47 Finale. Downburst(하향격풍) - 2 +16 20.06.29 263 17 19쪽
46 Finale. Downburst(하향격풍) - 1 +18 20.06.26 288 17 21쪽
45 Quarantine(격리) - 4 +16 20.06.25 271 17 15쪽
44 Quarantine(격리) - 3 +22 20.06.24 258 19 11쪽
43 Quarantine(격리) - 2 +22 20.06.22 265 18 8쪽
42 Quarantine(격리) - 1 +24 20.06.19 289 22 10쪽
41 Side Chapter - Cripple Them(놈들을 불구로 만들라) +18 20.06.18 328 18 14쪽
40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4 +25 20.06.17 279 22 10쪽
39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3 +18 20.06.16 297 21 9쪽
38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2 +26 20.06.15 277 27 8쪽
37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4, Bloody Mary(블러디 메리) - 1 +25 20.06.14 289 25 7쪽
36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3 +26 20.06.13 304 27 9쪽
35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2 +34 20.06.12 300 29 8쪽
34 Preacher of fools(우민들의 연설가) - 1 +28 20.06.11 289 28 11쪽
33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3 +38 20.06.10 304 31 12쪽
32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2 +28 20.06.09 313 27 7쪽
31 Guide in Madness(광기에 빠진 길잡이) - 1 +34 20.06.08 316 31 10쪽
30 Side Chapter - Golden Rule(황금률) +31 20.06.06 360 33 9쪽
29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5 +29 20.06.05 279 34 9쪽
28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4 +41 20.06.04 280 35 8쪽
27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3 +34 20.06.03 292 34 11쪽
26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2 +32 20.06.02 267 34 8쪽
25 Lost in White(백색의 방황) - 1 +30 20.06.01 310 36 9쪽
24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6 + Malice(악의) +35 20.05.30 302 37 14쪽
23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5 +44 20.05.29 318 42 8쪽
»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4 +44 20.05.28 315 39 10쪽
21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3 +36 20.05.27 314 38 10쪽
20 Under the Violet sky(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 2 +37 20.05.26 346 38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