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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61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5.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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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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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데이트?(6)

DUMMY

계좌 잔고에 찍혀 있는 상상 범주를 넘어도 한참을 넘은 액수에 한동안 벙쪄있던 나는 일단 다시 박선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호음 세 번만에 전화를 받은 박선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그, 뭔가 좀 착오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착오요? 그게 무슨...

"입금이 좀 지나치게 많이 된 것 같아서."

-네? 지나치게 많이 됐다구요? 그럴 리가 없는데...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금 마침 문서 작업을 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인지 스마트폰 너머로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박선호가 말했다.


-착오 없는데요? 금일 십억원 정 확실히 입금된 게 맞습니다.


허. 저게 착오가 없는 거랜다. 진짜 환장하겠네.

나는 그래도 한때는 제법 잘나가던 헌터였고, 억대 단위의 페이도 받아보지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극도로 위험한 의뢰에 한한 것이지, 레벨 제한 10도 안 되는 던전 한번 다녀왔다고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대체 어쩌다가 의뢰 대금이 이렇게까지 뻥튀기가 된 거야? 난이도도 별 거 아닌 의뢰였으니 대강 백만원 정도면 잘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백만원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검...아니 류진 형님을 고용한 의뢰인데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경험상 이런 지나칠 정도로 많은 돈이 움직이는 일에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살길이다.

아무리 박선호가 중산기업의 기둥 소리를 들을 정도의 거물이라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도련님 수준. 십억원 정도 되는 자금을 함부로 운용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이거, 설마 중산기업 회장님과 관련된 일인가?"

-어. 그, 그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군. 가급적이면 내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었으면 하는데 곤란하게 됐어.


"이러면 곤란해. 내가 내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부탁했었잖아."

-아, 아닙니다 형님! 오햅니다 오해! 형님이 검성이라는 사실은 아버지한테조차 얘기하지 않았어요!


얘기를 안 했다? 그런데 어째서 중산기업 회장쯤 되는 사람이 나한테 이런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가지는 거지?


"흠. 아무튼 딱히 착오가 있는 건 아니라 이거지?"

-그, 그렇습니다 형님. 아! 그리고 아까 미처 말을 못 해드린 게 있는데 말입니다.

"뭐지?"

-아버지께서 한번 형님을 만나고 싶으시답니다. 사실 진작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 사실인데 조금 전에는 형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는 사실에 들떠서 그만.

"...회장님이 나를?"


내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챘으니 조만간에 접촉해올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꽉찬 돌직구가 날아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다. 내가 몸을 피해버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건가?


"..."


하지만 이제와서 중산기업과의 연을 끊어버리기에는 이미 박선호에게 신세진 일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지. 박 회장이라는 자는 이런 것까지 다 계산한건가?


-형님? 계십니까?

"아. 그래. 잠깐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박 회장님한테는 조만간에 이쪽에서 찾아간다고 전해 드리면 고맙겠어."


이쪽을 만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런 건방진 짓거리를 막 하는 것도 무리수다. 상대는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중산기업의 수장이고, 그에 반해 나는 아직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무명의 헌터니까 말이지.


-알겠습니다 형님! 아버지께는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끊는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다시 유미씨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돌아왔다.


-----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으, 응?"


박선호와의 통화를 끝낸 후, 나는 대충 메뉴판에서 제일 값싸 보이는 메뉴를 골라 아무거나 주문했고, 잠시 기다리자 음식이 나와 유미씨와 함께 먹기 시작했고, 한동안 말없이 식사를 하던 유미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요.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 건가요?"

"아, 아냐아냐. 맛있네 이거. 응."


사실 시중에서 파는 거랑 뭐가 그렇게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고, 또 지금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지라 이게 코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고민거리가 있으시다면 말해주세요. 류진씨의 고민을 제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힘든 일은 나눌 수록 가벼워지니까요."

"하하하. 그런 거 아니야."


애초에 유미씨에게 말을 한다고 한들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어라라? 잠깐만.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는 박 회장의 의중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옛날부터 그랬지만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가 힘들었기에 당면한 문제였다.

그런데 유미씨는 이래봬도 한성기업 회장님의 딸이잖아. 즉, 높으신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럼 중산기업 회장의 의중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거 의외로 상담하기 아주 적절한 사람이 바로 근처에 있었던 걸지도.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지만요."

"흠...그게 말이야. 사실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차피 내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실을 알고 있는 유미씨기에 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말해줘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조금 전에 박선호와 통화한 내용을 유미씨에게 말해줬고, 얘기를 끝까지 들은 유미씨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중산기업의 박 회장이 류진씨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니...이건 놀랍네요."

"아직 내 정체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닌 듯 하지만, 평범한 저레벨의 헌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거야."

"그건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10억이나 되는 돈을 선뜻 입금할 줄이야...그정도면 저희 한성기업에서도 쉽게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아니에요."


내가 몰랐을 뿐이지 대기업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 그런 거였나. 이거 상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박 회장의 지시라면 얼추 말은 되는 것 같아요."

"응? 어째서? 유미씨 뭔가 아는 게 있어?"


아무래도 유미씨는 박 회장의 행보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있는 듯 했다.


"저희도 인재의 채용에 적극적인 편이지만, 박 회장의 인재를 향한 욕심은 엄청나거든요.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이 있으면 정말 가릴 것 없이 물적 심적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어가며 채용에 열정적인 걸로 나름 유명해요. 박 회장님은."

"허어. 그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미 한성기업 쪽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10억이나 되는 거금을 부어가며 구애할 정도인가?


"이 정보를 미리 알게 된 건 크네요. 이건 아버지께 알릴 필요가 있겠어요. 상담해줘서 고마워요 류진씨."

"으, 응. 그래서 박 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어떻게 하면 될까?"

"박 회장이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류진씨께 접근하는 건지는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아마도 류진씨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커요. 요즘 박 회장은 랭크가 높은 헌터들을 영입하는데 혈안이거든요."

"흠."

"최근에 한국 헌터 랭킹 5위인 이승철이 중산기업에 스카웃된건 저희 업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얘기에요. 아직 매스컴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요."

"랭킹 5위...엄청난 거물이구만. 나같은 걸 고용하려고 선뜻 10억을 박았는데 그쪽을 고용하는데는 대체 돈이 얼마나 들었을지 궁금하구만."

"정말 그렇죠. 아무튼 류진씨는...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시면 될 것 같아요."

"스스로의 판단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슬쩍 유미씨의 표정을 살폈고, 유미씨는 왠지 모르게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씨익 웃으며 유미씨에게 말했다.


"걱정 마 유미씨. 돈 떼먹고 다른 곳으로 날라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말이야. 이 회장님과의 계약 조건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다른 회사로 이적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거야."

"그, 그런가요? 다, 다행이에요..."


헛다리 짚은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맞았군.


"뭐, 그래도 돈은 이미 받아버렸으니 완전히 그쪽을 못 본 척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야. 일단은 한성기업 전속의 헌터라는 입장이기는 하지만...가끔씩 그쪽 일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단 말이지."

"아. 그 정도는 아마 괜찮...다고 생각해요. 전속 헌터 분들 중에서도 타 회사의 의뢰에 용병처럼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이거 큰 근심을 덜었어."


내 나름대로 한성기업과의 의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많다면 제법 안심이 된다. 그 정도면 박선호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말이지.


"후우. 털어넣고 나니까 좀 시원하네. 이제야 입맛이 좀 도는군."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밥상머리 앞에서 입맛이 없어지게 만들다니 박 회장님도 제법이야?


"모처럼 비싼 밥은 시켜놨는데 이럼 안되지. 여기요! 이거 한 그릇 더 주세요!"


그리고 나란 거지는 이 와중에도 그릇은 싹싹 비워버린지 오래였고, 가슴 한복판에 박힌 가시가 빠진 것 같은 후련함에 정말로 간만에 한그릇 더를 외치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미 식사를 마친 유미씨는 그저 싱긋 웃으며 그런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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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답사 준비(4) 21.05.17 175 7 11쪽
61 답사 준비(3) +1 21.05.14 173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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