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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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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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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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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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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하고 싶은 영화 다 합시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스타 사진작가 가운데 김준우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매년 열고 있는 개인전이 꽤나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올해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김준우 개인 사진전이 열렸다.

국내 몇몇 유명 갤러리는 돈만 낸다고 아무나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게 아니다.

명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준우는 상업사진과 사진예술 분야 모두에서 인정을 받는 젊은 작가다.

인기 연예인들의 화려한 외양,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는 웨딩촬영을 하는 틈틈이 인간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카메라에 담는 것에 몰두하던 김준우다.

이번에는 시선을 달리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LANDSCAPE Views & Vision.


올해 김준우의 개인전 테마였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인 ‘풍경‘이 주제다.

1~2년 바짝 준비한 작품들이 아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 제주도 한라산과 항구들, 대관령, 섬진강, 덕유산, 비원 등 한반도 곳곳을 다니며 촬영한 풍경 사진들이다.

한국의 미가 담긴 풍경을 찍은 사진 30점이 전시되었다.

관람객 중에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김준우가 독일 유학시절 친분을 맺은 사람들이다.

대한상의 회장도 전시회를 찾아 작품 구입 예약을 걸어놓고 갔다.

류지호 남매도 전시회를 찾았다.

류아라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인근 카페로 옮겨 수다 삼매경에 빠졌고 류순호는 조용히 산책하듯 전시장을 배회했다.

레오나 파커는 류지호의 팔짱을 낀 채 김준우의 작품을 감상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풍경 사진이다.

하지만 찬찬히 감상하다보면 사진에서 어떤 울림을 받는다.

조금 잘난 척을 하자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마... 세계와 자연, 사물을 응시하는 준우의 태도 그리고 녀석이 사진에 담고 싶은 것들의 오묘한 질서와 조화를 미적으로 승화시킨 그런 시선 때문이겠지.”


류아라였다면 당장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며 한 소리 했을 테지만.

교양미까지 넘치는 레오나 파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의견까지 덧붙였다.

남들이 볼 때는 교양 있는 척 가식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뉴욕이나 뉴헤이븐의 유명 전시관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다.

회화, 조각, 사진, 설치미술 등을 감상하며 종종 토론도 했다.


“....음.”


종종 끌리는 사진이 있을 때는 오랜 시간 머물며 사진을 찬찬히 뜯어봤다.

사진이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사진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되는 빛과 그 빛 속을 순간적으로 훑고 가는 바람결 속에서 형식과 색을 놓칠 수도 있기에 다각도로 감상하는 것이 좋다.

팔짱을 푼 레오나 파커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사진을 감상하기도 하고, 사진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Jay. 이 사진의 주인공은 바람인가봐.”


전시된 흑백사진들 속에서 색이 선명한 컬러 사진이 한 점 눈에 띄었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대숲을 촬영한 작품이다.

대나무 숲 자체가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라 대숲을 뒤흔드는 바람결이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대도시 서울의 일상적인 것과는 대비되는 극적인 장면을 흑백으로 포착한 사진들도 있고.

황량해 보이는 풍경 속에 홀로 선 나무를 흑백으로 촬영한 뒤 이를 거꾸로 전시장에 걸어 흰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 땅과 하늘의 경계마저 흐릿해진 풍경을 통해 무한한 공간에 대한 명상을 담아내기도 했다.


예쁘다, 아름답다, 쓸쓸하다, 장엄하다 기타 등등.


그저 느끼면 족하다.

머리 아프게 그 안에 담긴 주제와 철학까지 끙끙 고민해봐야 뭐할까.

깊은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직접 작가에게 물어도 좋다.

해설사에게 질문해도 된다.

그러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런 후에 다시 작품을 감상하면서 재미를 느끼면 그만이다.

과거에는 예술이 어려웠다.

이젠 친절하고 쉽게 해설하고 풀어주는 사람과 매체가 주변에 많다.

특히 인터넷을 뒤져보면 작가 본인도 몰랐던 날카로운 분석을 해주는 이들까지 있다.

예술가가 대중으로부터 한 수 배울 수도 있다.

그런 게 소통이다.

예술을 몰라서 못 즐기는 시대가 아니다.

관심이 없거나 게을러서 못 즐기는 시대다.

화려한 꽃의 이미지에서 소멸하는 것들이 품고 있는 슬픔의 빛깔과 그 반대로 생명의 정점에서 사그라지며 발산하는 뜨거운 생명에 대한 열정이니, 꽃은 예쁘고 선한 모습 섹슈얼한 모습, 생명 혹은 열정을 담고 있다거나, 그것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신비롭고 즐겁다고 잘난척 해봐야 눈총만 받는다.

물론 사진예술가들은 풍경사진에서 눈에 비친 단순한 순간의 리얼리티를 잡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내적 감성과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시각을 표출해야 하겠지만.

그래야 어디 가서 사진 좀 찍는다고 떳떳한 것이고.

기록을 위한 사진과 예술을 위한 사진은 다른 법이니까.

김준우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사진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


끄덕.

류지호가 가볍게 동의를 표했다.


“풍경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사극 촬영하는 영화현장을 구경했어. 그때 사진작업이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쉽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예술보다 쉬우니까 많은 생산력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


디지털 카메라가 필수품이 되는 시대가 오면,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지게 된다.

후보정이라는 사기성 기술이 예술이냐 아니냐 논쟁까지 불러온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의 지위는 굳건하다.

세상에 온통 돈과 매표구에 아부하는 사진과 영화만 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풍자하는 것도, 아름다운 걸 더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도... 모두 필요하겠지.”


어딘지 김준우의 말에서 자조가 느껴졌다.

전통적인 예술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혼돈에 빠지면서 겪는 예술가의 고민 같은 거다.

류지호가 전시회장을 슥 한 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몇 년 전에는 기상천외한 사진도 간혹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그런 시도 없이 담백하다?”

“장르에 집중했어. 쉬운 사진으로.”

“많이 팔았냐?”

“사진 팔려고 전시회 하는 줄 아냐?”

“나도 하나 사가게 안 팔린 거 줘봐라.”

“시장에서 찬거리 흥정 하냐?”

“자식이... 엉아가 네 작품 몇 점 사서 집에 걸어놔 줄게. 영광으로 생각해.”

“안 팔아!”

“내가 아무 작품이나 집에 거는 줄 알아?”

“됐고. 레오나, 사진은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드는 거 말해. 선물로 줄게.”

“사진이 다 좋아서... 판매하고 남은 작품으로 하나 부탁해도 될까?”

“제수씨는 챙겨야지.”

“형수라고 불러.”

“흥...!”


대답하기 하찮다는 듯 김준우가 두 사람에서 멀어졌다.

가온웨딩 스튜디오 초창기 포토그래퍼들도 매년 사진집을 출간하고 있다.

수익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해 오고 있다.

김준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박상우를 비롯해 몇몇 포토그래퍼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사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의 세계에서 은퇴라는 것은 없기에.


❉ ❉ ❉


한국을 방문한 파커 부부는 류지호의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류지호와 레오나의 결혼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내년 5월 둘째 주에 뉴욕 맨해튼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혼례를 치르기로 했다.”


장모가 될 캐서린이 부모님과 의논해서 정한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틈틈이 준비를 해 와서 문제없어요.”

“한국에서도 해야겠지?”

“약혼 소식이 알려지고 언제 청첩장을 줄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 네 결혼식에 초대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야지. 미국으로 언제 돌아올 거니?”

“1월 말이나 되어야 뉴욕으로 갈 수 있을 같아요.”

“내년에도 영화를 찍는다고?”

“주요 촬영지가 필라델피아와 뉴욕이라 레오나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에 제작될 영화 <The Punisher>는 뉴욕과 필라델피아가 주요 로케이션지다.

뉴욕에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레오나 파커 역시 뉴헤이븐을 오가는 것에 문제가 없고.


“롱아일랜드에서 지낼 생각이니?”

“맨해튼 트라이베카에 지낼 곳을 마련해 두었어요.”

“언제?”

“좀 됐어요.”


부유층이 사는 아파트 최상층 펜트하우스다.

테라스 정원도 있고, 실내 수영장도 포함된 120평 대 호화 아파트다.

류지호의 비서들이 여유자금으로 투자해 두었던 펜트하우스다.

9/11 테러 이후 맨해튼의 부동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락했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당시에 1,100만 달러(130억 원)에 구입했는데, 현재 1,600만 달러까지 껑충 뛰었다.


“얼마 전에 임차인이 떠나면서 레오나와 한동안 사용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랬구나.”

“주말마다 할아버지를 뵈러 갈 생각이에요. 두 분도 오셔서 함께 식사하면 좋겠네요.”

“그러자.”


파커 부부가 전용기편으로 한국을 떠났다.

사실 두 집안사람들이 결혼식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다.

유능한 집사도 있고, 비서도 있고, 심지어 류지호 소유의 토탈웨딩업체도 있다.

그들이 가져오는 카탈로그나 샘플을 보고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도 전 세계를 뒤져서 가져올 것이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서 서로 예복을 협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결혼식 비용도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명색이 슈퍼리치인데 몇 천만 달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울 리가 없다.

다만 초청객 리스트 작성이 골치다.

누군 부르고 누군 안 부르면,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 테니까.

파커가문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아이오와에서 가문의 방식으로 치르자고 제안했었다.

윌리엄 파커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파커 부부조차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윌리엄 파커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노했단다.

류지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뉴욕에 와보면 안다.”


제임스 파커는 그 말만 남길 뿐.

자세한 이야기는 삼갔다.

매튜 그레이엄은 후계자로 류지호를 지목하는 것 아니냐는 엉뚱한 추측을 내놓았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

가문의 원로들이 받아들일 리도 없고, 후대들도 인정할 리가 없을 테니까.

괜한 분란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때 미국 재계를 호령했던 거물의 살아생전 마지막 대형 이벤트.

손자손녀의 혼례가 거인의 마지막 외부행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세기의 결혼식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의 존재감을 미국 정재계에 남기는 동시에 두 사람의 뒤에 어떤 가문이 있는지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류지호가 파커의 후계자는 아닐지라도 윌리엄 파커라는 거인의 후계자라는 선언을 내포할 순 있다.

상류층은 상류층끼리, 서민은 서민끼리.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자기들끼리 맺어지는 경향이 심화하면서 교육과 결혼이 사회 계층간 단절 현상의 주요 고리가 되고 있다.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그랬다.

한국도 점차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財閥)‘이란 말과 함께 ’가벌(家閥)’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이른바 신귀족 혼맥이다.

미국의 유력 가문과 혼맥으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류지호에게 부족했던 하나의 퍼즐까지 채워지게 되었다.


❉ ❉ ❉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상암동 DMC 개발지구에 나타났다.

2001년부터 본격 시작된 디지털 미디어 시티 개발이 이제 막 공정률 50%를 넘어섰다.

곳곳에서 고층빌딩 공사가 한창이었고, 일부 오피스건물은 준공을 마쳤다.

이전 삶에서는 2007년부터 허허벌판인 상암 DMC가 신도시로서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류지호가 기억하는 누리꿈 스퀘어보다 좀 더 큰 규모의 빌딩 단지에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섰다.

WaW 엔터테인먼트 본사와 자회사들이 입주하게 될 오피스단지다.


“.....!”

류지호가 외부 마무리 공사 중인 빌딩을 올려다봤다.

웅장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었다.

세계적인 건축디자이너에게 의뢰했으니 멋질 수밖에.

외관도 외관이지만, 누리꿈 스퀘어, MBS 상암 사옥이 완공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꿀리지 않는 규모다.


“2007년에는 강남에 이어 두 번째 E-스포츠 센터까지 완공됩니다. 세 동의 빌딩 중앙에는 광장이 조성될 예정이지만, 일반인 출입금지입니다.”


사각형 형태의 단지는 누리꿈 스퀘어와 달리 행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게 건설되었다.

오로지 가온 직원과 정식 방문객만 광장을 이용할 수 있다.


“WaW 본사와 CA미디어가 입주한 빌딩이 가동 중입니다. 그 외 자회사들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입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WaW 엔터테인먼트 본사 건물은 가로 100m, 세로 75m로 지하 5층 지상 24층의 높이다.

CA미디어와 자회사들이 입주할 빌딩도 비슷한 규모다.

더 높이 올릴 수 없었던 것은 사업 초기 정해졌던 고도제한 때문이다.

130층 초고층 빌딩 사업에 따른 고도제한이 해제 되었지만, 설계를 변경하진 않았다.

어차피 가온그룹 헤드쿼터는 2010년대 아리울로 이전하기 때문에 초고층 빌딩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WaW 빌딩은 지하 5층을 포함해 연면적이 22만 5천 평방미터다.

남대문로에 위치한 옛 대유센터빌딩이 13만 평방미터에 약간 못 미친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빌딩인지 알 수 있다.

고도제한 때문에 초고층으로 건물을 올릴 순 없었지만, 네 개의 건물을 서로 연결한 단지를 구성해서 높이보다 면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했다.


“아직 이 동네 교통 인프라가 형편없지요?”


류지호의 물음에 비서실장 김우영이 얼른 대답했다.


“예!”

“입주해 있는 회사 직원들 출퇴근은 어떻게 하고 있대요?”

“카풀을 하는 직원도 있고, 회사 차원에서 서울역과 홍대 본사를 잇는 출퇴근 버스를 운행 중입니다.”

“마을버스는 자주 다녀요?”

“월드컵 파크 단지 쪽으로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공항철도가 개통되지 전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텐데.....”


류지호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건물로 들어갔다.

비서실장이 류지호의 곁에 찰싹 붙어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공사현장을 빠져나와 입주가 완료된 WaW 엔터테인먼트 빌딩으로 향했다.

로비로 들어서자.


“어서 오십시오. 감독님!”


인포메이션 부스 직원들과 보안요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왔다.

류지호는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로비는 널찍하고 층고도 높았다.

보안 출입구 안쪽과 바깥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로비에는 카페, 편의점, 그룹 주거래은행 지점이 입점해 운영 중이다.

넓은 로비와 세련된 인포메이션 부스.

로비 두 면 전부에 통유리에서 빛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쳐 반짝거렸다.

방문객이 빌딩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게 멋지게 꾸며져 있다.

출입증을 발부 받지 못한 외부인이 출입 가능한 곳은 3층 높이의 로비 중간에 위치한 카페테리아까지다.


“난 출입증 없어요?”


비서실장 김우영이 얼른 사원증 겸용 출입증을 내밀었다.

가온그룹은 사원증 목줄 색으로 정규·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휴영화사 직원들 목줄 색도 똑 같다.

오로지 외부 방문객에 한해 출입증 목줄 색을 구별한다.

오너라고 해서 출입증에 금띠를 두르지 않는다.

단 하나 차별적인 대우가 있다.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오너 전용'으로 편성한 것.


“회장 전용 이런 거 없애요.”

“예, 예?”

“내가 일 년에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얼마나 탄다고 나만을 위해 사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빼앗는단 말입니까?”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사실 VVIP 전용 엘리베이터가 과한 의전은 아니다.

바쁜 일정으로 이동이 많은 CEO들이 일반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됐을 때 소요되는 대기 시간 등을 줄이기도 하고, 직원들이 CEO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CEO에 대한 예우 차원도 크고.

방문객 가운데 의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2~3세 경영권 승계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기에 국내 대기업 일부에서도 창업자들이 행했던 특권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다.

목줄 색으로 차별하는 것 같은 사라지지 않는 못된 관행도 여전하지만, 전시행정 같은 의전관행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들을 타파하려는 시도 자체는 옳은 방향이다.


띵.


류지호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강남 곰사거리에서 상암으로 이사회의장실이 통째로 옮겨왔다.

앞으로 그룹 업무와 영화를 찍을 때 사용할 예정이다.

비서들이 인사하고 각자 업무를 보기 위해 흩어졌다.

코트와 재킷을 벗어 옷장에 넣어둔 류지호가 널찍한 책상으로 걸어갔다.

비서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잠시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통유리 너머 DMC 개발지 허허벌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전 삶에서 뻔질 나게 드나들 던 동네다.

한국 영상자료원도 있고, 국내 최대 영화투자배급사도 있었다.

DMC 끝에는 서울영상위원회와 지원센터도 있었고.


‘희망도 없이 그저 관성적으로 왔다 갔다 하던 동네였지...’


이제는 자신과 같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위치가 되어 상암동을 오가게 됐다.

과거로 돌아온 후로 숨 가쁘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고.

30대에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일구었다.

기부도 많이 하고 있어서 미국에서는 존경 받는 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존경을 받는지 자신할 순 없다.

한국인들에게 부자로서 존경받기가 워낙에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부자란, 돈을 번 목적이 공익과 사익의 조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돈 버는 과정과 부의 재생산이 정의로워야 한다.

기부도 많이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개인 비리 같은 것들로부터 떳떳해야 한다.

심지어 인성까지 갖춰서 모두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도 다 갖출 수 없는 도덕적 기준들이 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부를 하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데... 왜 미국보다 금액을 적게 기부를 하실까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한국에서 기부가 하기 싫어진다.

좋은 부자와 부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헌법에 부자의 의무가 따로 명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영화사업을 보좌하는 전략1팀장 한종혁이 들어왔다.


“의자 가지고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손님응대용 소파나 회의 테이블 대신 책상으로 한 팀장을 불러왔다.

오전 내내 주요 보고를 받았다.

얼마를 썼고 얼마를 벌었다는 내용은 더 이상 류지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떤 영화를 투자·제작·배급했는지도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흥행영화 리스트는 류지호의 기억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될 만한 영화는 되고, 아쉬운 영화는 실패했다.

잘 됐어야 할 영화중에 안타까운 것도 많았다.


“WaW가 다 해먹는다는 소리 나올 만 하네....”


12월 개봉 예정작인 <킹콩>, <해리포터>, <태풍>이 빠져 있음에도 한 해 동안 100만 명을 동원한 50여 편의 개봉 영화중에서 무려 25편을 WaW가 투자·제작·배급했다.

그 가운데 절반이 JHO Company 계열 영화사로부터 수입한 영화였다.


“올해 단 하루라도 극장에 걸린 국내외 영화는 모두 476편입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43편을 배급했습니다. 배급한 영화의 절반 이상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2005년 개봉작 중에서 300만이 넘는 흥행을 기록한 한국 영화가 무려 14편이 나왔다.


“흥행작이 쏟아져서 <우주전쟁>. <너는 내 운명>, <마파도> 같은 영화는 300만이 넘는 흥행을 하고도 흥행순위 10위 안에 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200만이 넘는 영화도 21편이나 나왔고 저희 영화가 3/1을 차지했습니다.”


이전 삶에는 없던 영화가 두 편이 있다.

바로 <우주로 별을 쏘다>와 <국제변호사>다.

각각 65억, 45억을 투입한 류지호가 기획한 영화들이다.


“두 영화가가 각각300만과 280만을 넘겼네요?”

“그간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재로 성공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남들 안 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걸 주로 합시다.”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SF와 전쟁영화 그리고 판타지 장르도 활발하게 기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 충무로 작가들이 그 분야에서 취약해요. 좋은 원작을 발굴하거나 이미 검증 된 유럽이나 미국 B무비 수작들의 영화권리를 사와서 각색해서 찍던가. 프로듀서들에게 충무로의 어설픈 오리지널 가지고 쉽게 장르에 접근하지 말라고 하세요.”

“예.”


이전 삶에서 성공한 영화를 선점하기 위해 더는 애쓰지 않았다.

WaW는 한국에서 넘버원 영화사다.

가장 돈이 많고, 제작편수도 많고, 극장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 남들 다 망하는 DVD 수익도 챙기기까지 하고, 케이블 영화 채널도 가지고 있으며, 해외 유통망까지 잘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 기획되는 거의 모든 영화가 WaW를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이전 삶의 BS E&M처럼.

이젠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잘 찍는 감독이 잘 찍는다.

연기는 잘하는 배우가 잘한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감독이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기본은 나온다.

좋은 시나리오, 검증된 감독, 스타 배우를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고 망하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류지호는 더 이상 WaW 라인업에 관여 하지 않는다.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영화, 만들어졌으면 좋을 영화.

작가영화든, 아동영화든, 여성영화든, B급영화든, 독립영화든, 무모한 시도든.

남들이 못하는 것만 골라서 관여하고 있다.

망해봐야 10~20억 안팎의 손해다.

그 정도 손해를 봤다고 해서 WaW가 흔들릴 리가 없다.

실패를 거울삼아 차기작에서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내면 된다.


“복제인간과 인공지능 관련 아이디어가 대부분이죠?”

“대체로 그렇습니다.”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의 주인공은 대개 둘 중 하나다.

자기가 진짜 인간인 줄 아는 복제인간, 아니면 복제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사는 그냥 인간.

이들은 존재론적 질문에 허둥대거나 번뇌 앞에서 좌절한다.

SF영화 공식 중에 하나다.

공상과학 세계에 대해 지식과 관심이 없으면 아예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마니아도 아니고 취재에 열심이지도 않은 감독들이 SF장르를 건드렸다가 수십 년 간 충무로를 SF영화 장르 불모지로 만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설픈 시도를 아예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과 유럽에는 저예산 SF영화 수작들도 꽤 많아요. SF영화를 꼭 돈으로 찍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로봇이 나오지 않지만 인간의 존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도 있고, 우주가 배경이 아님에도 우주와 관련한 과학적 이론을 풀어낸 영화도 있어요. 무엇을 다룰 것인가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걸 통해 무엇을 질문하는지가 빠진 SF영화는 과학을 뽐내는 그림의 나열일 뿐입니다.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직원들이 장르의 선입관에 매몰되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이르세요.”

“예.”

“50편까지 늘리는데... 아직은 무리겠죠?”

“스크린 수, 총 관객수, 티켓 가격, 1인 당 관람횟수 등. 시장이 좀 더 커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스크린을 못 잡는 영화도 상당히 많았다.

다이렉트 비디오나 케이블TV 시장이 커야 500편 가까운 영화를 소화할 수가 있을 텐데.

한국영화는 90년대 너무 급작스럽게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됐다.

비디오와 CD, 케이블TV 시장이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면서 영화 부가시장이 질서 있고 체계적으로 정립이 되질 못했다.

천하의 WaW 엔터테인먼트도 그 부분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법복제만이라도 더 독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뿌리를 뽑진 못하겠지만 누구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입법을 통해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하는데.


펄럭.


류지호가 미국에서 넘어 온 보고서를 펼쳤다.

옅은 불만이 새어나왔다.


“....음.”


JHO Company Group의 영화사업의 실적이 전년도 보다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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