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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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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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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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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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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터무니없는 목표!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새해가 밝고 나서 G.O.M Cinemas가 한국영화 부율을 할리우드 영화와 똑같아지도록 조정했다.

무비서비스 계열 프리씨네는 2006년 하반기부터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부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다른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는 동참하지 않았다.

영세한 극장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티켓값 인상에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만, 손해 볼 조치는 외면한다.

당연한 거다.


“설부터 팝콘을 3,000원에 파는 거야?”


정운규 사장의 물음에 비서가 냉큼 대답했다.


“BGV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브랜드들이 2,500원에서 3,000원으로 인상할 계획입니다. G.O.M은 당분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극장이란 데가 영화를 틀어주는 시설 같지만, 알고 보면 팝콘 가게와 다를 것이 없지.”


정운규 사장은 문화를 만드는 곳이라고 포장하는 멀티플렉스가 우스웠다.

실제로는 작품의 가치, 만드는 사람들, 관객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비즈니스가 멀티플렉스였으니까.

비록 G.O.M Cinemas가 가온그룹 계열로 식구라고 할 수 있지만, 독립된 회사로서 과거처럼 경영을 공유하고 밀접하게 움직일 수가 없게 됐다.

정운규 사장으로써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간섭할 수가 없는 것이 답답했다.


“투자·배급사라고 다를 것이 없지만.”


투자사는 투자할 영화를 결정할 때 작품의 창의성이나 개성보다는 보편성을 추구한다.

소수에게 매력적인 영화보다는 무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훨씬 선호한다.

조폭영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했던 것도 그렇고, 신파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스타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면 이도저도 아닌 무난한 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내가 빅보스처럼 할리우드는 잘 모르지만, 한국의 투자사들은 전형적인 영화를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할리우드처럼 관객의 트렌드 연구하고 고민하고 그런 거 없이.”

“관객 설문조사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픽.


정운규 사장이 웃었다.


“상관이 보기 좋으라고 정리해서 올리는 보고서에 머무는 경우가 태반이지.”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색다른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크게 없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돈이 별로 안 되니까.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왜 영화를 만드는 걸까?”

“......”

“실무자들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 영화제작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상영할 상품’을 만드는 것이지.”


대기업들은 영화에 투자하고 배급·상영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업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시장을 만들려고 한다.

시장을 독점하고, 담합을 통하여 위험부담을 줄이려고 애쓴다.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려면 영화에 직접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넓히는 게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

이전 삶과 달리 WaW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그런 흐름이 조절되고 있다.

극장들은 더 좋은 관람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보다 무료관람권을 뿌리는데 더 적극적이다.

영화상영 매출은 어차피 배급사 및 제작사와 나눠 가지는 부분이라서 그 돈을 안 벌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료관람객이 많아지면 관객수가 뻥튀기 되지. 흥행작이 돼. 흥행작이 나타나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아져. 왜 보스가 그런 비즈니스로 가지 못하도록 한다고 생각해?”

“영화감독이시기 때문 아닙니까? 한국영화를 사랑하시니까.”

“일본이나 홍콩처럼 될까봐 그러시는 거야. 90년대 내내 업계 스스로가 룰과 표준을 만들어 가길 바라셨지. 근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이들은 몰랐지만, 국내 스크린 수가 3,000개가 넘어가게 되면 오백만, 천만 관객동원이라는 숫자는 분위기만 타면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스크린 독과점이란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서.

무료티켓, 초대권, 단체관람 등도 전방위적으로 전개된다.

공정위에서 무료티켓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을 정한다.

실제 지키는 경우 거의 없다.

음반 업계에 앨범사재기가 있다면, 영화 업계에는 무료 티켓이 있다.

이전 삶에서 개봉과 동시에 무료관람권을 배포한 어떤 영화의 경우, 총 관객이 520만 정도라고 집계되었지만 유료 관람객은 350만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천만영화의 대략 15%가 무료 관객이야. 단체관람 무료티켓을 무차별적으로 뿌렸지.”


앞으로 더 많이 더 폭넓게 무료티켓이 마구 뿌려진다.

심지어 영화 타이틀도 표기되어 있지 않고, 극장 브랜드만 인쇄된 무료 티켓이 뿌려진다.

티켓이 영화 홍보보다 자사 극장체인 광고판인 셈이다.

극장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공짜로 영화를 보러 온 김에 팝콘까지 사먹으면 더 좋다.

그러라고 1+1행사를 만든 거다.

어디까지나 멀티플렉스 운영의 핵심은 팝콘과 광고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멀티플렉스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을 벌이면서, 팝콘의 시즈닝은 정말 다양하게 개발한다.

새로운 메뉴도 계속해서 매점에 추가된다.


“의장님의 객기 때문에 극장이 다 망할 판이라고 아우성입니다.”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지. 극장마다 똑같은 입장료를 받을 이유도 없고, 부율까지 동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극장 내부 사정과 시장에 따라 합리적으로 정책을 전개하면 된다고.”


대기업은 영화의 투자·배급과 극장을 하나의 회사가 관리하고, 어차피 같은 회사니까 어디서든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

영세한 극장은 가격경쟁력이라든가 상권을 분석해 그에 적합한 영화를 거는 노력을 하면 된다.


“의장님께서 한국영화계를 위해 좋은 마음을 가지신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퍼주시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비즈니스맨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자기 회사가 한국영화를 투자·제작·배급하면서 스스로 만든 영화를 차별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러다 수익성 떨어지면 나중에 큰 부담이 될 겁니다.”

“내가 웨딩사업에서 주로 일했지만, 가온그룹 초창기 멤버로써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극장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G.O.M처럼 전국 방방곡곡 주요 상권에 영업점을 뿌려두면 망하고 싶어도 못 망해.”

“미국에서 멀티플렉스가 과열경쟁을 벌이다가 거품이 꺼져 Lowes 같은 대형 브랜드도 파산했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계를 두고 있잖아.”


류지호는 한국에서 스크린 점유율 40~45% 사이를 유지하도록 지침을 내려두었다.

가온그룹은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시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다만 어느 일방만 잘 먹고 잘사는 풍토가 아닌, 상생하는 시장을 꿈꾸고 있다.

현재 G.O.M은 BGV와 광성시네마 스크린수를 합한 만큼의 우월적 입장이다.

전국 주요 도시 상권에는 다 들어가 있다.

대한민국 영화팬은 G.O.M을 ‘곰‘이라고 친근하게 부른다.

슈퍼리치이자 영화감독 류지호 소유라는 걸 모르는 국민도 없다.

따로 극장 체인 홍보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충분히 기본 토대를 전국적으로 깔아놓았기 때문에 다른 극장 브랜드처럼 무차별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티켓값을 무리하게 인상할 이유가 없다.

티켓 매출 2,100억.

매점 매출 338억.

광고 수익 206억.

임대 및 기타 매출 35억.

2005년 G.O.M Cinema KOR이 기록한 대략적인 매출이다.

2위 업체 BGV는 절반 수준이다.

다만 매점 매출은 근소한 차이를 보인다.

팝콘 가격을 3,000원으로 올렸으니, 올해 매점 매출은 꽤나 유의미하게 늘어날 터.

왜 극장을 팝콘가게라고 하는지 알려주는 행태다.


“아, 저기 의장님 오십니다!”


비서와 노닥거리던 정운규 사장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G.O.M 강남점 로비로 들어서는 류지호에게 뛸 듯이 달려갔다.

로비 곳곳에 <태풍> 극장비치용 등신대가 놓여 있다.

업계 최초로 도입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에서도 유독 <태풍>이 강조되는 느낌이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키오스크나 패널, 건물 외벽, 홀로그램 등 대중공간에서 광고를 포함하는 각종 정보를 보여주는 디지털 미디어를 뜻한다.

G.O.M Cinemas는 업계 최초로 티켓박스 전면부는 물론이고 극장 로비의 각종 광고 및 정보 패널을 디지털 사이니지로 교체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발 맞춰 이미지는 한층 역동적이면서도 심미적이며 메시지는 보다 명확하게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함이다.

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태풍>이 개봉되어야 했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관여하면서 설 연휴 개봉으로 바뀌었다.

11~12월 시즌에 <태풍>을 소화할 스크린이 부족했다.

상대적으로 설 연휴 개봉 라인업에 틈이 보이기도 했다.

무려 1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고예산 영화다.

광역개봉을 하려면 많은 스크린이 필요했는데, 간신히 550개 스크린을 확보했다.

분단을 주제로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흥행으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분단 동화 <웰컴 투 동막골>이 대중의 폭발적 지지를 등에 업고 <태풍>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그런데 류지호가 그런 기대감에 찬물을 부어버렸다.


“탈북자 메시지만 남겨두고, 스토리도 많이 손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해군 대위의 캐릭터도 현실에 맞출 필요가 있어요.”


오리지널 시나리오 속 강세종 캐릭터는 맹목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전형적인 반공영화 주인공이었다.

류지호가 관여하면서 그 같은 구시대적인 감성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지닌 직업군인 정도로 바꿨다.

삼척 대간첩 작전 중 조국을 위해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 따위 없애 버렸다.

다만 대(代)를 이어 해군에 복무 중이란 설정을 놔두었다.

전역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신세대 청년 장교이지만, 군생활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강한 정신의 청년 정도로 만들었다.

그런데 전역 후 대기업 입사가 목표다.

이 시대 한국의 청년들의 목표와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했다.

그런 캐릭터가 탈북자 출신의 동남아 해적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암시장에서 매춘부로 살아가고 있던 대적자의 누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기구한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연민이 싹트게 된다.

강세종은 탈북자 해적두목의 맹목적인 복수에 대한 반감과 연민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되고, 비슷한 또래로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에 지독한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주제의식은 내려놨으면 좋겠어요. <더 록>의 한국판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박진택 감독을 설득하기 위해 류지호가 한 말이었다.

설득력 있는 악당 캐릭터, 진지함과 유머를 넘나드는 연출, 화끈하고 밀도 높은 볼거리, 적당한 서스펜스까지.


“분단 문제, 탈북자, 한반도 비핵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주인공의 대비만으로 모든 걸 말해줄 겁니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의 반대편에서 서서 대치하고 충돌하고 대결하는 것 그대로가 현재의 남북관계잖아요.”


<쉬리>부터 가장 최근 <웰컴 투 동막골>까지 분단문제를 다룬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으로 인해 남북이 처한 현실을 다룬 영화에 대한 관객피로도가 슬슬 감지되고 있다.

메시지를 강조하다가는 관객들의 피로감을 강화시킬 위험이 있었다.

오락액션 블록버스터면 충분했다.

스토리와 등장인물 자체에 분단문제가 담겨 있으니까.

류지호는 WaW, 진인사, <태풍> 제작진들과 최종 시사를 함께 봤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동남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볼거리가 풍부한 전형적인 오락액션영화였다.

제작비를 쏟아 부은 만큼 액션 시퀀스가 제법 볼만했다.

분단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에게 선입관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


“내가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관객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관객은 재밌는 액션블록버스터를 보려 왔는데 예비군 훈련장 반공교육 같은 영화처럼 강연을 하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어요?”


분단문제니 탈북자 문제니.

한국영화가 주목해야 하는 테마는 맞다.

한편으로 접근방식을 다양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류지호는 역설했다.

메시지 때문에 플롯이 엉성해진다거나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액션 시퀀스까지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쉬리>나 <JSA>를 두고 누구도 메시지가 묵직한 진지한 영화라고 하지 않아요. 재밌는 상업영화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라고 하지.”


그래서 레퍼런스로 <더 록>을 제시한 것이다.

영화 속 험멜 장군은 비록 악당이지만 나름의 명분과 논리가 있다.

베트남 전쟁과 같은 불합리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고통과 분노를 험멜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영화가 설득력을 얻었다.

류지호는 <REMO> 시리즈에서 악당의 논리를 만드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영화 <히트>의 도둑과 형사의 대결 구도는 진부하다.

하지만 고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인간적 고뇌와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형사와 강도라는 단순한 구조 위에 둘 사이에 흐르는 원초적인 불행과 번민을 교차시켜 캐릭터의 서사를 멋지게 구축했고, 그걸 명배우들이 완벽하게 소화했다.


“러닝타임에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일단 찍고 편집실에서 고민합시다.”


이전 삶에서 <태풍>은 무려 30분이 최종 편집에서 잘려나갔다.

박진택 감독과 친분이 있었던 류지호는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 버전을 편집실에서 모니터한 적이 있었다.

그 버전에서는 씬의 복수심과 강세종이 그것을 이해해보려는 과정이 비교적 꼼꼼하게 담겨 있었다.

투자배급사에서 길고 지루하다며 자르자고 했다.

극장판에서는 그 같은 서사와 디테일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둘 중 하나다.

캐릭터와 드라마의 설득력을 담보할 만큼의 러닝타임을 가져가든가.

깔끔하고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로 갈 것인가.


“그래, 오락영화에 자꾸 뭔가 있는 척 그러지 말자고!”


결국 박진택 감독이 류지호에게 설득 당했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해양액션.

감독이 특히나 자신 있어 하는 마초 향기 가득한 스토리텔링.

돈을 들인 태가 물씬 풍기는 눈요기들.

박진택 감독에게 ParaMax가 투자·배급한 <마스터 앤드 커맨드> 대규모 해양 세트장을 견학시켜주었다.

자랑하는 것도 기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었다.

류지호는 그저 현실을 다시 일깨워주고 싶었다.

당장은 <마스터 앤 드 커맨드> 발끝도 흉내 못 낸다고.

그래서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고 캐릭터가 납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 것도 넣고 싶고.

대중 영합적인 철저한 오락액션영화로 갈 것인지

아니면 묵직한 메시지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는 진지한 영화가 될 것인지.

항상 딜레마다.


- 제발 우리 군인은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해군 협조를 바랐던 제작진에게 국방부가 전한 내용의 핵심이었다.

<태풍>에는 한국 해군의 구축함, 헬기 등 군사 장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한국 해군의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대전 국립현충원 묘역에서의 촬영도 허락받지 못했다.

결국 태국 해군의 도움을 간신히 받아서 촬영했다.

미국에서 퇴역한 해군함정을 빌려 촬영하기도 했다.

이전 삶에서 <태풍>은 망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더더욱 아니다.

이미 해외 필름마켓에서 선판매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일본을 포함 해외에서 대략 34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해외배급은 ParaMax Entertainment가 맡았다.


“되겠지?”


박진택 감독 스스로 확신이 없는 모양이다.

한국만 놓고 보면 손익분기점이 대략 490만 명이다.

결코 쉽지 않다.


“광역개봉, 스타마케팅으로 초반에 분위기를 확 잡으면 간신히 맞출 수 있을지도.....”


이전 삶의 더 형편없는 영화로도 400만 명을 넘겼다.

류지호과 참견하면서 부족했던 것이 채워졌다.

그 정도는 너끈히 가능할 듯 싶었다.

<태풍>은 사실 메시지 측면에서 심오한 영화가 아니다.


[다음번에 또 작전 중 사관학교 출신을 차출하실 일이 있으시면 돈이나 사회적 지위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그 일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하시면 될 겁니다.]


오글거리는 강세종의 대사에서.

또....


[동무! 정말 X같은 현실이 뭔지 알지비? 동무하고 내가 말이 통한다는 사실임메!]


이 정도 대사면 뭘 이야기하는지 충분히 전달된다.

씬이 누이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수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더 이상의 구구절절 신파를 넣을 필요가 없다.

영화는 감독이 찍는 것이다.

프로듀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제작비 구해오고, 스타를 꼬셔오고,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완성된 영화를 놓고 기획 의도에 부합한지 판단하고, 극장을 잡아오고, 흥행 시키고, 마지막으로 수익을 나눠주는 것이다.

충무로에서 그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프로듀서는 손에 꼽힌다.

유능한 프로듀서라고 해도 뭐라도 하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멀티플렉스 체인을 거느린 거대 배급사가 막무가내 밀어주기를 하거나, 극장주들이 안심하고 스크린을 내줄 만한 스타가 출연한 흥행 기본문법에 충실한 영화이거나.

즉 기획형 블록버스터로 인해 프로듀서가 할 일이 없어지고 있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에 스크린부터 잔뜩 잡아놓고 관객에게 영화 보기를 강요하게 되니까.


“제작비 부족하다고, 스타가 없다고, 거대 배급사의 후광을 못 입어서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이야.”


이전 삶부터 이번까지 한 번도 충무로가 호시절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류지호다.

항상 어렵단다.

왜 그럴까.

영화산업은 부익부빈익빈 구조로 돌아간다.

버는 사람은 계속 벌고, 안 되는 사람은 죽어라 해도 안 된다.


“기본에 충실한 영화를 가져오면 어떤 배급사나 극장이 외면하겠어요.”


시나리오, 연기, 연출 등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암튼 <태풍>도 바뀐 부율이 적용된다는 거지?”

“그럴걸요?”

“류 감독은 영화에 불만 없는 거다?”

“왜 없어요? 무르지 못하니까, 말을 안 하는 거지.”


이번에도 뒤풀이에 가자는 제안을 뒤로 류지호가 가장 먼저 극장을 나섰다.

프로듀서의 목표는 흥행에 있다.

대부분 국제영화제 수상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진 않는다.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오스카에 목을 매는 것은 그 타이틀이 글로벌 흥행의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분석한 한국영화 시장은 단골로 운영되는 맛집과 비슷하다.

1인당 평균관람 횟수 통계를 보면 곧바로 왜 단골로 운영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영화가 최고 호황기를 누릴 때 평균관람 횟수가 세계 1위를 찍기도 했다.

5,000만 명 내수시장에서 연간 2억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힘은 모두 단골고객 때문이다.

20~30대가 꾸준히 극장을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간혹 등장하는 천만영화에 소문 듣고 손님들이 한꺼번에 유행처럼 몰리기도 하고.

단골들이 많이 찾는 식당에 어느 날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면 이유는 단 둘이다.

음식 맛이 변했거나, 혹은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렸거나.

사실 한국의 극장 사업은 몇몇 장벽이 존재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청춘과 여가가 없는 십대는 극장을 찾을 시간이 없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결혼, 육아, 자녀교육, 직장 내 위치의 변화 등으로 사회적 요구가 늘어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든다.

소재편중과 스타마케팅 위주 기획으로 인해 중장년층을 영화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90년대에는 십대부터 장년층까지 폭넓은 관객층을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 시기까지도 그런 기조는 여전했다.

그런데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완전히 개편되게 되면 단골(20~30대) 위주의 안정적인 시장으로 판을 유도하게 된다.

영화투자 자본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되는 영화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최고의 다양성을 보여준 2003년 이후로 한국영화 기획 기류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 류지호다.

벌써부터 고예산과 저예산으로 영화가 극단적으로 갈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를 업계와 관객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사실 류지호도 제작자 마인드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보고 분석하는 관점이다.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된다.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 생태계가 자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물을 주고.

소재 확장과 스타일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평균제작비 규모의 영화를 일정 편수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라인업을 구성하고.

시즌을 받쳐 줄 텐트폴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면 된다.

그 중에서 류지호가 한국영화에서 감독으로 해야 할 것은 텐트폴 영화의 수준을 상향평준화 시킬 수 있도록 충무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국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 인구는 대략 6,500만 명이다.

지금까지 딱 한 번 2,000만 명을 동원한 영화가 탄생했다.

1997년 개봉한 <타이타닉>이 2,117만 명을 기록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1966년 개봉한 <파리대탈출>로 1,726만 명이었다.

이제 곧 한국영화에 단골고객들 수요가 폭발한다.

한해 평균 3.4편의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평균관람횟수, 재관람율, 3,000개가 넘는 스크린 수, 단체관람 초대권, 제작비 대비 60%에 달하는 홍보마케팅 비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한국에서도 2,000만 관객 동원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영화의 수준이다.

‘국뽕’ 마케팅이 아니라, 영화가 가진 힘으로 달성한 관객동원 숫자 2,000만.


‘왠지 꼭 해내야만 하는 미션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네.....’


아무도 그런 미션을 준적도 기대한 적도 없다.

스스로 터무니없는 목표를 설정하는 류지호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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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89 일본 침공. (3) +3 23.12.04 1,793 91 24쪽
688 일본 침공. (2) +15 23.12.02 1,914 107 22쪽
687 일본 침공. (1) +9 23.12.01 1,933 107 23쪽
686 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 +6 23.11.30 1,979 94 23쪽
685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3) +8 23.11.29 1,959 103 22쪽
684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2) +4 23.11.28 1,942 106 24쪽
683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1) +5 23.11.27 1,985 101 24쪽
682 자격이 있으면 갖는 거다! (2) +5 23.11.25 1,983 105 21쪽
681 자격이 있으면 갖는 거다! (1) +3 23.11.24 1,999 108 24쪽
680 감독님은 판타지 스타입니다. +2 23.11.23 2,012 96 25쪽
679 세기의 결혼식. (4) +3 23.11.22 2,047 106 27쪽
678 세기의 결혼식. (3) +6 23.11.21 2,036 106 24쪽
677 세기의 결혼식. (2) +6 23.11.20 2,065 111 25쪽
676 세기의 결혼식. (1) +6 23.11.18 2,105 106 28쪽
675 TCU의 닻을 올리다! (2) +5 23.11.17 1,918 101 23쪽
674 TCU의 닻을 올리다! (1) +4 23.11.16 1,963 106 24쪽
673 뉴욕살이. +9 23.11.15 1,951 103 23쪽
672 포츠담 광장에서... (5) +6 23.11.14 1,915 101 26쪽
671 포츠담 광장에서... (4) +11 23.11.13 1,911 107 31쪽
670 포츠담 광장에서... (3) +4 23.11.11 1,897 108 28쪽
669 포츠담 광장에서... (2) +3 23.11.10 1,876 99 24쪽
668 포츠담 광장에서... (1) +3 23.11.10 1,873 83 23쪽
667 외도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4 23.11.09 2,031 101 26쪽
666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2) +6 23.11.08 1,970 101 24쪽
665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1) +2 23.11.07 2,003 92 24쪽
664 나중에 며늘아기한테 좋은 소리 못 들어. +4 23.11.06 2,060 91 24쪽
» 터무니없는 목표! (2) +5 23.11.04 2,051 102 23쪽
662 터무니없는 목표! (1) +4 23.11.03 2,084 97 24쪽
661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3 23.11.02 2,066 95 26쪽
660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2) +7 23.11.01 2,014 10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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