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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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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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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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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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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세기의 결혼식.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행사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된 나래안전 경호팀들이 쑥덕거렸다.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해야 정치한다잖아.”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개념이 없는 거 아닐까?”

“차기 대선 주자도 오지 말라고 하시는 분을 어따 대고 오라마라야. 감히....!”


나래안전 경호원들의 대화를 훔쳐들은 불청객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가 다 몰려왔다.

입구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찍히기라로 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다.


“바쁘신데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류 의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신부가 피로연장을 돌며 감사인사를 드렸다.


“한창 바쁘지 않아요?”


<라디오스타>에 출연 중인 안정기, 박중환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 찾아왔다.


“영월에서 촬영하잖아.”


류지호가 이준욱 감독에게 인사를 건넸다.


“감독님도 오셨네요?”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춰야지요. 그래야 스크린 수가 넉넉해지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바로 쫓아내진 말아요. 류 감독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촬영까지 연기했으니까.”

“토요일에도 촬영해요?”

“하하. 감독님 눈 밖에 날까봐. 잘 봐달라고 아부하는 거예요.”


WaW 엔터테인먼트가 실행하고 있는 주 5회 촬영은 이제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동참하고 있다.

이준욱 감독 영화는 무비서비스가 배급하지만.


“강 감독에게 푸시 팍팍 해달라고 하셔야죠.”


한 때 청첩장을 받은 충무로 영화인과 아닌 영화인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그렇다고 수천 명의 영화인 모두를 초청할 수도 없는 노릇.

의장비서실에서 어떤 기준으로 청첩장을 보냈는지 하객을 보면 알 수 있다.

몇몇 한류스타는 청첩장을 받고도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영화 최대 권력자에 도전(?)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매니지먼트 회사의 입김 때문이겠지만.


“삼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맹이들이 류지호에게 달려들었다.

가온그룹 스포츠단이 지원하는 피겨 꿈나무들이다.

올해 15살이 된 김예나도 꼬마들 사이에 섞여 있다.


“결혼 축하드려요. 의장님.”


제법 의젓한 김예나의 인사에 류지호가 미소로 화답했다.

올해 15살이 된 김예나다.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나이 제한에 걸려 아쉽게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다음 달에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24.19점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숙적 아사다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모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재밌게 놀다가.”

“네에!”

“근데, 회장니임~”

“회장님 아니구 감독님... 바부야.”

“의장님이거든.”

“얘들아 싸우지 말고. 왜?”

“사모님 엄청 예뻐요.”

“맞아요. 영화배우 같아요.”

“사모님하고 사진 찍어도 돼요?”


레오나 파커가 피겨 꿈나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어 가온그룹 산하 동계 스포츠팀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의장님!”


시커먼 사내들이 넙죽 인사하는 모습이 마치 조폭을 연상케 했다.

운동복 등판에 가온 스포츠단 로고만 없었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 했다.

류지호로 인해 <국가대표> 같은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사라졌다.

가온그룹의 풍족한 지원 덕분에 실업선수로서 훈련도 하고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으니까.

아이스하키팀 원더러스의 경우 아시아리그 초창기 꼴찌만 했다.

서서히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현재는 중위권으로 올라섰다.

인수할 당시만 해도 엔트리 22명(공격수+수비수=20명, 골키퍼 2명)을 모두 채우지도 못했다.

이제는 2군(12명)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풍족한 지원을 받고 있다.

참고로 아이스하키리그 출전팀 엔트리는 22명이고, 동시에 경기를 뛸 수 있는 인원은 골키퍼 포함 6명이다.

아이스하키는 보통 포워드(공격수) 3명, 디펜스(수비수) 2명, 골리(골키퍼) 1명으로 라인을 구성한다.


“시간 날 때마다 방송으로 챙겨보고 있어요.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포츠단이 썰물처럼 빠지고 잠시 류지호가 한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황재정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 다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은 거야?”


주요 활동지역인 미국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유럽과 중동 거물까지 찾아와 친근하게 구는 모습에 황재정은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아. 근데 저 사람들은 나를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네.”

“ViVo와 베텔스만은?”

“영화제 다니면서... 밥 두어 번 먹고... 뭐 그랬지.”

“샤오브라더스의 런소우 회장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GH 초우 회장과 청쿵그룹 회장까지 직접 올 줄이야....”

“나는 러시아에서 사람이 온 게 더 신기해.”


한 눈에 봐도 러시아 조폭처럼 생긴 사내들과 도널드 제이콥, 고우찬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하고도 손을 잡았어?”

“러시아 마피아가 그저 그런 조폭인 줄 아냐? 나름 공무원 출신 엘리트들이야.”


세계 어디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조직폭력배가 한 다리 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예사업과 유흥산업이 연결되어 있기에.

참고로 이 시기 러시아 마피아 조직만 1만여 개, 소속 행동대원만 5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 중 거대 조직 몇 개가 1993년부터 러시아의 상당수 은행들을 소유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비즈니스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러시아 마피아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나 삼합회와는 달랐다.

러시아의 거대 조직들은 대체로 전직 공조직 종사자들이다.

인적 커넥션이 고위 정부관료 및 공산당관료 등이다.

때문에 이들 러시아 마피아가 개입하는 범죄사업의 레벨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한 이권사업의 하나로 알려진 무기 밀매는 물론이고, 세계 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각종 자원산업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인 석유, 가스, 석탄, 목재 및 펄프, 철강 구리, 니켈 등 천연자원 개발 및 판매사업,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군산복합체였던 소련의 제조업 등이 사유화 및 민영화 되는 과정에서 마피아들의 대활극이 벌어지는 이권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과정에서 신흥 러시아인, 즉 노브이 루스끼, 또는 과두재벌로서 올리가르히 등으로 불리거나 그 후견인이 되어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EPL구단 첼시 구단주처럼 합법적인 사업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지만, 소위 러시아 마피아가 개입하는 ‘빅 비즈니스’에는 청부살인이나 폭탄테러 같은 폭력으로 점철되기 십상이다.


“비크터르 푸친이 마피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저렇게 돌아다녀도 되나?”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쇼야. 말 잘 듣는 마피아 일부가 합법적인 사업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대.”


류지호는 당장 그런 판에 낄 생각이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러시아 점유율은 무려 70% 이상.

불법복제물이 범람하고 있기도 하고, 곧 금융위기가 오면 러시아 경제사정은 지난 90년대 후반 저리 가라할 정도로 힘겨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경각심 좀 가져. 그러다 큰일 나....”


황재정은 간혹 무모한 판단을 내리는 친구에게 간곡하게 충고했다.


“이번에 온 사람은 마피아는 아닌가봐.”

“러시아는 들어가 봐야 먹을 것도 없대.”


먹을 것 많다.

90년대 후반 아시아발 외환위기 여파가 여전하고, 권력쟁투 등으로 혼란한 상황이라 비즈니스를 풀기 곤란한 점이 많아서 그렇지.


“웬만하면 러시아는 출장도 가지 마라. 거긴 사람 죽이려고 폭탄까지 터트린다던데.”

“그렇게 따지면 집 안에만 있어야지.”

“암튼, 너도 내일모레 마흔이다. 이제 가정까지 꾸렸고.”


소유만 하고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온그룹의 구심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류지호다.

신상에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복잡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재벌 후계자들하고 대화 해볼래?”


류지호가 눈짓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황재정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성그룹과 경일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을 중심으로 주요 대기업의 후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가 낄 레벨이냐?”

“응.”


황재정이 고개를 돌려 류지호을 쳐다봤다.


“너도 후계자니까. 내가 키우고 있는 후계자.”

“그런 소리 하지 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시끄러. 잔 말 말고 따라와.


황재정은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주요 대기업 회장 후계자들은 광성그룹 차남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60년대 생이다.

가장 어린 축이 경일자동차그룹 부회장 정도.

절친 사이인 오성그룹 후계자와 효승그룹 후계자는 소문난 야구광이다.

경일자동차그룹 후계자와 선경그룹 대표이사는 테니스 마니아고.

범 오성가라고 할 수 있는 뉴월드그룹 부사장은 바이크와 그랜드 투어링에 흠뻑 빠져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GT 예찬론을 폈다.

이탈리아어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 혹은 그랜드 투어링(Grand Touring).

흔히 말하는 스포츠카를 즐기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 귀족 젊은이들은 안목을 넓힐 목적으로 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

여러 나라를 오랜 기간 여행하기에 초창기 자동차들은 너무 불편했다.

따라서 장거리를 고속으로 편하게 주행할 수 있는 자동차가 필요했다.

먼 거리를 편안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안락하고 넓은 실내와 짐을 실을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고, 장거리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오래 달릴 수 있는 성능과 멋진 디자인도 빠질 수 없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차가 바로 GT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최대한 폼 나고 고급스러우면서 편안한 차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가끔 오프로드 드라이빙을 즐긴다는 기사를 본 것 같습니다. 재밌지요?”

“매튜 회장이나 지인들과 낚시도 해요. 낚시꾼이 손맛을 못 잊어 낚시터를 찾듯 오프로드 드라이빙도 그런 것 같더군요. 운전대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감각이 좋아서 종종 즐기고 있습니다.”

“저도 그랜드 투어링 할 때 산야를 무대로 거침없이 달려보죠. 가끔 랭글러를 튜닝한 차를 타고 산속을 다니기도 해봤어요. 자동차 바퀴보다 큰 바위가 길을 막아선다. 넘어 갈 것인가, 피해 갈 것인가. 결정은 운전자의 몫이죠. 끝없는 한계에의 도전, 짜릿한 쾌감..... 오프로드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더군요.”


말은 참 청산유수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그가 손대는 것마다 다 말아먹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프로야구단은 괜찮았던가....?'


암튼 자신만만한 모습은 알아줘야 할 것 같았다.


“모험심 입니까?”

“돈도 많이 들어가는 레포츠죠.”


경일자동차그룹 후계자가 입을 열었다.


“주로 픽업트럭을 타는 걸로 들은 것 같은데.... 우리 차도 가끔 타주세요.”

“친구들이 그래요. 뭘 사서 고생하냐고. 골프나 열심히 쳐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내 대답은 간단해요. 남들 눈에는 장애물이겠지만 그냥 넘어야할 허들 정도. 그리고 거친 산야의 길이 아닌 길을 미리 달리는 연습을 해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운전을 잘하는 것보다 장애물을 마주하고 허둥대지 않는 마음가짐을 점검해 본다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지요.”

“튜닝도 직접 하십니까?”

“안 해요. 그것까지 손대면 정신 못 차릴 것 같아서.”

“차가 자주 망가질 텐데... 산타페 광고도 찍어주신 인연도 있고, 의장님이 우리 차 타신다면 미국 서비스센터에 중점적으로 편의를 봐드리라고 전달해 놓겠습니다.”


류지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드물게 사치를 부리는 것 중에 하나가 픽업트럭이다.

클래식 모델은 수집하고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있다.


“한국의 프로야구나 축구팀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맨유와 다저스만으로 골치가 아파요. 성적이 잘 나와도 돈 달라고 하고, 성적이 안 나와도 돈 달라고 하고.”


하하하.

모두가 한국에서 프로 스포츠팀 하나 이상을 가진 그룹의 자제들이다.

류지호의 앓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과 한국 내에서 도토리 키 재기 하는 팀 간의 격차가 매우 크지만.

재벌가 후계자라고 해서 사업이야기를 하고 뭔가 교양미 넘치는 대화만 나눌 거라고 생각하면 편견이다.

공통된 화제는 주로 스포츠였다.


“잠시 실례....”


황재정이 재벌가 후계자들과 그럭저럭 어울리는 것을 확인한 후 류지호가 무리에서 빠졌다.

류지호는 유머가 풍부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재미를 느낀다.

이전 삶부터 쌓아온 잡지식 덕분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잘 알고 있고, 최상류층의 삶도 안다.

부자 중에 부자라고 알려진 류지호가 국산 라면의 종류별 가격을 다 꿰고 있고,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왔다.

배운 사람들과 대화도 막힘이 없다.

역사면 역사, 철학이면 철학, 예술이면 예술.

특정 분야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가 설명하고 싶어 하거나 지식을 뽐낼 수 있게 질문을 귀신 같이 한다.

질문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는 법.

그래야 상대가 멍청한 질문이라 생각하고 깔보는 것 없이 마음껏 지식을 현학적으로 풀 수가 있다.

사이사이 적당한 리액션을 쳐주는 센스도 발휘하면서.


“다리 안 아파?”


피로연장은 야외와 식당, 카페테리어 등 종합촬영소 곳곳에 만들어졌다.

류지호는 함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아내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짠~”


레오나가 치맛단을 살짝 들어보여 주었다.

하이힐이나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신고 있다.


“잘 했어.”


레오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도 살아야지.”


한국 전통혼례와 잔치도 3일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당일 날은 종합촬영소에서 하객들과 함께하는 피로연.

둘째 날은 여주타운의 부모님 전원주택에서 주민들을 초대해 벌이는 잔치.

셋째 날은 강화도 외가 동네 주민들을 위해 벌이는 잔치.


“이게 다 몇 포대야?”

“포대가 아니라 톤으로 계산해야겠지.”


종합촬영소 한편에 5Kg, 10Kg, 20Kg 쌀포대가 쌓여있다.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다.

뉴욕 결혼식처럼 한국에서도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대신 쌀을 받았다.

최대 20kg 한 포대까지 축의금 대신 기부할 수 있게 했다.

이천, 여주는 쌀로 유명한 지역.

산지 쌀의 도매가격은 20kg당 35,200원, 소비자가격은 4만 원 선이다.

10Kg은 당연히 2만 원도 안 된다.

재벌이나 시골 촌부나 공평하게 20kg 미만의 쌀 한 포대를 축의금으로 받았다.

그렇게 모은 쌀의 절반은 국내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에게, 나머지는 동남아시아 빈곤층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뉴욕 결혼식 후원계좌에도 820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류지호의 결혼식은 여러 모로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기자들은 누구도 초청받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회사 기자들은 출입시켜줬어야지.”


송일성 YNTV 사장이 투덜거렸다.


“그런 걸 경언유착이라고 하는 겁니다. 선배.”

“미담 내보내 준다고 해도 싫대....!”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YNTV가 가온그룹에 휘둘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거리를 두고 있는 척 할 뿐.

사석에서는 여전히 친한 선후배 사이다.

갑은 당연히 류지호지만.

어쨌든 가온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YNTV 기자조차 결혼식에 들이지 않았다.

가온그룹 홍보실과 긴밀한 관계의 기자조차도 피로연 이후에나 기사 송고가 허락되었다.

당연히 대중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결혼식 이후, 무려 쌀 77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발표가 나가자 또 한 번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부자의 허영이니 사치의 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많았다.

축의금으로 행한 선행이 알려질수록 비난은 힘을 잃었다.

한편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이 어떤 기준을 만든 것처럼 여겨졌다.

류지호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주요 왕가와 최고 부자들의 결혼식 경쟁에 불씨를 당겼다.


❉ ❉ ❉


러시아 극장가는 할리우드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말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시기였다.

트라이-스텔라가 적극적으로 러시아 진출을 도모했다.

당시에 러시아 3대 극장 체인 카로(KARO)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다.

참고로 러시아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은 시네마 파크와 포뮬라 키노다.

이전 삶에서 두 체인이 합병함으로써 7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러시아 최대 극장체인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테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멀티플렉스 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라쉬 시네마라는 회사가 있다.

그들은 결혼식 초청대상이 아니었다.

류지호와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

그럼에도 결혼 축하를 핑계로 류지호와의 면담을 간곡히 요청해 왔다.

멀리서 왔는데, 돌려보낼 수도 없고.


“합작을 제의하러 왔습니다.”


미라쉬 시네마 회장이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단도직입으로 나왔다.


“상테페테르부르크에도 JHO 지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다.

당연히 JHO Company Group의 지사가 소재하고 있다.


“한국의 WaW와 합작을 원합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그룹은 러시아 최대 배급사이자 제작사이며 극장업자 카로그룹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반면에 WaW 엔터테인먼트는 아직까지 러시아에 진출하지 않은 상황이다.


‘WaW가 상대적으로 만만해서 그런가....?’


WaW 엔터테인먼트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스튜디오로 부상했다.

러시아에서 후발주자인 미라쉬 입장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WaW를 선택할 법도 했다.

소유주가 미스터 할리우드니 말할 것도 없고.


“WaW의 CEO는 만났습니까?”

“아직.....”

“미스터 정과 만나서 상의해 보세요. 적극 검토하라고 말은 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할리우드!”

“돌아가는 길에 부산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부산 센텀시티 가온복합타운에는 Eye-MAX와 DALLSA D-Cinema 아시아 총판이 있다.

이후로 중국의 거물급 인사들과도 미팅자리를 가졌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총국장과 비공식회동을 가지기도 했다.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중국의 TV방송·영화·광고 등 영상과 미디어를 총괄하는 곳이다.

총국장은 중국 내 문화 산업과 정책을 이끄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인사다.

서구 문화 침투를 우려하는 중국 정부의 검열로 상징되는 문화적 장벽, 외화 수입 제한 제도(스크린쿼터), 까다로운 투자·합작 규정 등은 외국기업의 중국 진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90년대부터 꾸준히 중국시장 안착을 위해 애쓰고 있다.

쉽지 않다.

한국 영화계 역시 지리적 이점과 문화적 친근성을 내세워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영화는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중국에 수출·개봉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류 조성 및 한국 영화의 성장과 더불어 중국과의 교류 및 합작이 다양한 방식을 실험되고 있다.

초보적인 형태는 <풍운아>, <무사> <비천무> 같이 한국 영화가 중국에서 촬영하거나 양국의 배우들을 함께 기용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류 스타의 중국 영화 출연이 시도되고 있다.


“장르와 소재가 다양한 한국 영화계의 기획 개발 능력과 중국의 자본 및 프로덕션을 결합하는 방식이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길 기대합니다.”

“최근 WaW가 양국 자본·배우·제작진·기술이 전면적으로 만나는 공동 투자와 제작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양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심을 살리면서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자국의 문화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양국 공통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윈윈게임이 되길 바랍니다.”


이전 삶에서는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중국 현지 업체와의 공동 제작과 방송·가요·공연의 현지화 전략은 중국 진출의 가장 큰 난제인 문화·제도·경제적 장벽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조만간 중국에서 재회하길 기대하겠습니다.”

“중국은 언제나 미스터 류를 환영합니다.”


류지호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장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한류의 동력을 발판 삼아 중국 진출 및 교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영화시장은 거대한 인구를 내세워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고.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중국영화시장이 한국 영화산업에 큰 기회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류지호는 그 같은 흐름을 알고 있다.

중국정부는 절대 외국영화수입에 대한 제한정책을 풀어주지 않는다.

한류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한령이라는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악명 높은 콘텐츠 불법유통이 만연해 있는 국가다.

따라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 극장이나 OTT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류지호는 그를 타계하는 대안으로 중국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로 진출할 궁리를 하고 있다.

당장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다.

또한 WaW가 정립하고 있는 프로덕션 시스템의 수출이다.

WaW종합촬영소와 연계해서 포스트 프로덕션과 로케이션 서비스, 한중 공동제작으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 리메이크 권리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

그 외에 직접적인 영화 수출이나 OTT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든 한한령은 정해진 수순이야.’


‘한류’는 중국 지배층의 최대 고민거리로 부상하게 된다.

중국의 젊은 세대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테니까.

이전 삶에서는 사드(THAAD) 배치가 빌미였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한국대중문화 수입을 제한하게 되어 있다.

한국이 결국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한 것처럼 언젠가는 다시 열리긴 할테지만.

암튼 중국정부의 입장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지만,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장을 통해 중국 정부가 류지호가 소유한 기업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안달이 나있다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수석참모 데이빗 브레이텐바크와 비서실장 김우영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모두가 중국시장을 새로운 엘도라도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투자 큰 손 중에 한 명인 류지호만은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정부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보스께서 중국투자에 대해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신중한 거라고 표현해 줘요.”


웃자고 한 말을 가지고 김우영이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현재의 공산당 3대 파벌의 균형은 20년을 못 갈 겁니다.”


중국의 권력구도는 3대 유력 파벌이 상호 견제하고 집권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3대 파벌은 태자당(혁명원로 자제 그룹),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인데, 이전 삶에서는 결국 시자쥔(시밍핑의 옛 부하)으로 통일되었다.


“중국의 권력구도는 상하이방과 공청단의 정치적 타협으로 파벌이 딱히 없는 무명을 황태자로 등극시키게 될 겁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담보하기 위해 일종의 종이호랑이를 앉히겠다는 것인데, 등소평 이후 공산당 역사상 가장 권위 지향적인 인물에 의해 세력이 무너지게 될 겁니다.”


두 명의 참모들이 류지호의 말을 머리에 각인시켰다.

지금까지 미래를 추론하고 예측해서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지금 상하이 당서기가 누굽니까?”


데이빗 브레이텐바크가 수첩을 뒤적거렸다.


“첸리앙위라는 사람입니다.”


아직 시밍핑이 당서기가 되진 못한 모양이다.


“곧 상하이에서 부패 스캔들이 터질 겁니다. 차기 당서기가 누가 되는지 잘 지켜보라고 하세요.”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시밍핑은 상하이시 당서기를 지내며 태자당과 상하이방 양쪽의 후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중국 문제는 나중에 방문할 계획이 잡히면 면밀히 살피는 것으로 합시다.”

“예.”


뉴욕과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단 이틀이었다.

전야 파티와 피로연이 각각 이틀씩 열렸고 이동 시간과 시차 적응 등 모든 일정에 열흘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피로연 사이사이 비즈니스 미팅도 소화했다.


‘후우. 내가 비토 콜레오네도 아니고...’


영화 <대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가 어떤 위상과 영향력,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대략 5분간의 대화를 통해 설명한 매우 뛰어난 오프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 삶을 살아가면서 권력이란 걸 가지게 됐다.

바로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수 있는 혹은 그 반대의 힘을 갖게 됐다.

영화 <대부>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비토 콜레오네는 친구의 청탁을 거절한다.


[자네가 만약 우정으로 날 찾아왔다면 그놈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친구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누구도 자넬 건드리지 못해.]


비토 콜레오네가 원하는 것은 돈이나 대가를 받는 대등한 계약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지배를 원했다.

청탁을 하는 이가 우정과 존경을 맹세하자 비로소 비토 콜레오네는 살인 청탁을 받아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탁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영구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마피아는 상대의 생명과 안전을 대가로 거래를 하거나 지배를 한다면 류지호는 돈과 명성으로 상대에게서 우정과 존경을 받아내는 것이 다르다.

‘세기의 결혼식‘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우정들이 확인됐다.

바로 ‘기득권 연합‘이라는 이름의 우정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류지호는 이미 범지구적인' 기득권 연합'의 일원이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이 세상에 못 죽일 놈 없다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총(富)으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 무섭게 다가왔다.

그것으로 인해 다른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게 될까봐서.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11.22 10:49
    No. 1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4 검대검
    작성일
    23.11.22 14:40
    No. 2

    중국이 한국 아이돌 경계하죠.
    특히 투표를 통해 아이돌 선정하는 것하고 팬덤을 통해 무리짓는 것에 그렇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1.22 22:07
    No. 3

    90년대 중국 시장에 팔수 있다는것에
    현옥되어 문화 기술 콘텐즈 노하우 에
    각종 첨단 기술 까지 다 네주고 뒤통수
    시원하게 맏습니다.

    대만 일본도 한국과 세트로
    밑천 다 중국에 털립니다.
    지금의 중국 한.일..대만이
    막 다 퍼준 결과 입니다.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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