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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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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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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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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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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포츠담 광장에서...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에서 설 명절을 쇤 류지호가 2월 중순에 전용기를 타고 출국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행선지는 독일이었다.

2월 9일 개막되는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복수의 꽃>을 가지고 왔을 때는 대규모 인원과 동행했다.

당시에는 911 테러 여파로 조용히 베를린으로 들어왔었다.

이번도 똑같았다.


“......”


베를린 국제공항에서 떠들썩한 환영은 없었다.

공식발표가 있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기에 약간의 변장까지 했다.

류지호의 베를린 영화제 방문사실에 연막을 쳤다.

영화제 조직위가 일종의 깜짝쇼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지난 베니스 영화제가 어지간히도 감명이 깊었던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레오나 파커와 공식일정을 함께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보스.”

“잘 지냈어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빨리 빠져 나갑시다.”


럭비선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격의 도미니크 그라프는 여전했다.

JHO Security Services 독일 지사장 겸 북유럽 지사를 전부 총괄하는 그는 영국의 대형 PMC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JHO에 남아 유럽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가 되고자 하는 야망 때문이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공항을 빠져나가는 류지호를 두고 공항 이용객들이 수군댔다.


“누구지?”

“소닉 회장이라도 왔나?”


딴에는 변장 아닌 변장을 했다.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서.

그것으로도 모자라 수행원들과 따로 움직였다.

류지호를 수행하는 이들은 모두 도미니크 그라프가 데리고 온 현지 경호팀들 뿐.


“......”


류지호는 베를린 시내의 JHO Company 거점 호텔 Pritzkers Hotel이 아닌 엉뚱한 곳에 여장을 풀었다,

혹시나 싶어 호텔 정문이 아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보스, 불편하시더라도 하루만 양해해주십시오.”


먼저 호텔에 도착해 있던 비서들이 죄 지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데이빗 브레이텐바크 수석참모의 표정이 불만으로 가득했다.


“표정 풀어요.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데이빗이 화가 나 있습니까?”

“차라리 베를린 외곽 호텔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조직위 처사가 너무 무성의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니퍼 허드슨까지 동조했다.


“맞아요. 이 호텔 스위트는 보스의 격에 어울리지 않아요.”


5성급 호텔이다.

Grand Pritzkers Hotel의 펜트하우스와 비교하기엔 민망한 객실이지만, 하루 지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영화제 기간 교통체증이 심할 수 있다잖아요. 하루 묵고 베이스캠프로 옮길 것인데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맙시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비서들이 왈가왈부 하는 것도 웃겼다.

다만 조직원 고위층을 만나 이번 일을 단단히 따지겠다고 제니퍼 허드슨이 남몰래 마음을 먹었다.

류지호는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제하진 않았다.

제니퍼 허드슨은 국제영화제에서도 유명인사다.

류지호와 관련된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도 깐깐하게 확인하고 수정을 요구하고 있어서 영화제 실무자들이 그녀를 ‘마녀’라고까지 부른다.


“베를린에서의 모든 일정은 제니퍼가 조율하도록 해요.”

“옛! 보스!”


한국과 미국에서 온 수행원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합류한 인원도 많았다.

그들을 지휘하는 관리자들이 제각각이라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이 영화제 기간 류지호와 관련된 모든 일정과 의전을 총괄하도록 정리해 주었다.


“오랜만에 독일에 왔는데, 맥주는 마셔봐야죠?”

“맥주하면 뮌헨인데 말입니다.”


뮌헨 출신의 도미니크 그라프가 맥주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천년 전통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인 바이엔슈테판을 비롯해 많은 유명 맥주들이 바이에른 지역이 본산이다.

맥주축제로 유명한 옥토버 페스트도 뮌헨에서 열린다.

베를린의 맥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비주류다.

암튼 독일 출신 수행원들이 시내를 종횡무진하며 류지호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았다.

베를린 포츠담 광장은 영화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한복판의 소닉센터가 발하는 푸른빛과 멀티플렉스 씨네스타의 노란 불빛이 일찌감치 뿔 꺼진 도심을 밝혔다.

국제 영화제마다 특색이 있다.

베를린 영화제는 실험적이면서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영화가 주목받는 편이다.

이전 삶에서는 거의 매년 한국영화가 초청되었다.

아쉽게도 은곰상 수상은 있어도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 수상작은 없었다.

류지호가 도착하기 3일 전 2월 9일에 제 5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독일을 넘어 세계사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성을 가진 포츠담 광장.

그런 광장에 있는 복합 영화상영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독일 문화장관, 베를린 시장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올해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4편의 독일영화를 포함한 유럽영화 6편, 합작영화 7편, 아시아 영화 4편, 미국영화 2편, 호주 영화 1편 등이 출품됐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류지호의 <군계>는 합작영화 7편에 포함되어 있지만, 영화제 개막 전날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경쟁부문 초청작은 없었지만, 한국 영화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세 명이 들어갔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 전하영이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인터내셔널 포럼 오브 뉴시네마 부문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배우 최초로 이영희가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이 된 것도 특이사항이다.

박지욱 감독은 영화제 기간 동안 세계에서 모인 예비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단편영화제작 워크숍의 강사로 초청됐다.

한중 합작영화 <무극>에 출연한 양건호도 베를린 현지에서 공식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무극>은 비경쟁부문 초청이었다.


“좋은 결과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데이빗 브레이텐바크 수석참모가 거품이 풍부한 크롬바커가 담긴 잔을 들어올렸다.


챙.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켠 류지호가 제니퍼 허드슨에게 물었다.


“도쿄다카라와 배우들은 내일 들어온대요?”

“오전 입국해서 모처에서 휴식을 취한 후 레드카펫 행사에 합류하기로 했어요.”

“배우들은 어디에 묵기로 했죠?”

“저희 베이스캠프인 Pritzkers Hotel에 객실을 마련해 두었어요.”

“본부호텔이 아니고?”

“도쿄다카라 관계자들과 함께 묵는 것을 보니까 JHO와의 네트워크를 고려한 것 같아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류지호가 데이빗 브레이텐바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MSM 쪽에서 폐막작은 잘 전달했다고 하던가요?”

“영화제 시작 전에 무사히 극장으로 전송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폐막작은 사무엘 파킨파 감독의 서부영화 <관계의 종말>이다.

악명 높은 무법자 빌리 더 키드와 보안관 팻 가렛 사이의 결투를 다룬 영화다.

MSM Studios 작품이었는데, Hues & Rhythm Studios가 디지털 복원했다.

제니퍼 허드슨이 물었다.


“베를린 경쟁부문 초청작들은 보통 정치적인 영화들인데, 왜 하필 폐막작은 서부영화일까요?”

“영화제 조직위가 내세우고 싶은 정치적 함의가 들어가 있겠죠.”

“......?”

“텍사스 출신의 카우보이가 저기 중동 어딘가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잖아요.”


일행은 조디 워커 대통령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비유를 곧바로 알아들었다.


하하.

호호.


웃음이 터졌다.

어깨를 으쓱한 류지호가 남은 맥주를 목구멍 너머로 털어 넣었다.


“아마 수정주의 서부영화의 자기 반성적 태도를 통해 영화제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싶은가 보죠. 특히 앳된 밥의 모습과 그의 노래 ‘Knockin’ On Heaven’s Door‘가 제법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것 같네요.”


팝 가사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포크음악을 예술로 탈바꿈시킨 음유시인 밥 짐머맨이 <관계의 종말>에서 빌리 더 키드의 부하로 출연했다.


“솔직히 서부개척시대에 낭만적인 무법자가 있기나 했을까 의문이에요.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폭력적인 역사를 외면하는 것을 넘어 왜곡시키는데 거리낌이 없죠.”


네이티브 아메리칸(인디언)을 얼마나 학살하고 탄압했는지 그를 숨기기 급급한 것이 백인 주류다.

할리우드는 그 같은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서 왔고.


“무법자들로부터 보안관이 지켜주는 그런 낭만적인 서부시대 자체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일대일 대결 같은 것도 과장되었을 겁니다. 숨어서 쏘고 뒤에서 쏘고. 그런 추악한 서부만 존재했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겠죠.”


19세기에 서부를 중심으로 수많은 루머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포장되고 과장되어 영화의 소재로 활용됐다.

빌리 더 키드, 닥 할러데이, 와이어트 어프 등.

그들이 많은 창작물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굉장한 솜씨를 지닌 총잡이었는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죽인 사람의 숫자도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신빙성을 얻고 있기도 하고.

암튼 사무엘 파킨파 감독은 '폭력의 미학'으로 유명하다.

굉장히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데, 아메리칸 뉴시네마 시대에 걸맞은 영화 <와일드 번치>를 통해서 추악하고 폭력적인 서부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류지호가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 들고 온 영화 <군계>는 매우 선정적이지만, 추악하고 폭력적인 일본의 속살을 파헤치는 영화다.

어딘지 사무엘 파킨파의 영화들돠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다.

​ 또한 이번 베를린 영화제의 정치적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거였네요.”


제니퍼 허드슨은 경쟁부문 초청작들을 일일이 떠올려보았다.

작가주의 혹은 영화미학에 집중하는 영화들로 수놓아지는 여타 국제영화제와 달리 베를린 영화제는 사회참여적이거나 논쟁적인 이슈와 함의가 있는 영화들을 주로 리스트에 올려놓는다.


“영화제 개막작과 폐막작은 영화제의 정치적 의사표현이자 성격을 규정하죠. Hues & Rhythm이 디지털로 복원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네요.”


복원이라는 단어는 좋았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폭력인데, 과거 어떤 때는 그것이 정의로 규정된 적도 있었죠.”

“그렇다면 혹시 최고상은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

“그럴지도 모르죠.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


사실 이번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을 류지호는 점칠 수가 없었다.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막상 수상자가 모두 가려지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관심이 크게 없었다.


“이번에도 은곰상 정도로 만족하라고 하면 참지 않을 거예요. 보스!”

“제니퍼가 왜요?”

“칸으로 갈 수도 있었던 걸, 베를린으로 온 거잖아요.”

“영화제는 인기투표가 아니랍니다.”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채긴 했다.

단순히 영화제 분위기를 달궈줄 할리우드 스타가 필요해 류지호를 초청했을 것 같진 않았다.

조직위원장이 직접 류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심지어 깜짝쇼까지 하고 아무 상도 주지 않으면, 류지호와 척을 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은곰상 정도 안겨준다면 나야 땡큐지.’


베를린 영화제는 8대 본상으로 불리는 최고 영예 황금곰상외 알프레드 바우어상과 6개 부문의 은곰상이 있다.

지난 52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류지호의 <복수의 꽃>이 본상에 해당하는 알프레드 바우어상과 송라원이 본상은 아니지만 신인들에게 주는 뉴 탤런트 여자배우상을 수상한 바가 있었다.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보스!”

“보스를 홀대 한다면 심사위원들이 문제가 있단 겁니다.”


피식.

입가에 미소를 문 류지호가 맥주컵을 들어올렸다.


“건배~”


늦은 시간까지 호텔 스위트에서 조촐한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수행원들이 반드시 수상에 성공해야 한다고 떠들어댔지만, 류지호는 주면 좋고 아니어도 크게 섭섭하지 않았다.

필모그래피에 수상이력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류지호의 영화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 ✻ ✻


개막식 이후로 세계 52개국에서 온 343편의 영화가 포츠담 광장 주변 극장에서 숨 가쁘게 상영되고 있다.

2,000명이 넘는 기자를 비롯해 영화팬들이 포츠담 광장을 하루 종일 누볐다.

비록 아카데미 시상식 탓에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베를린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1월이나 3월로 일정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이 또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어쨌든 베를린 영화제는 활기차게 흘러갔다.

2000년대 이전에는 팔라스트 극장을 본부극장으로 이용하다가 소닉센터에 씨네스타 멀티플렉스가 입점하면서 베를린 영화제 상영관이 분산되었다.

다만 개막식과 경쟁부문 영화들의 시사회와 스타들의 레드카펫 행사는 베를리날레 플라스트(Berlinale Palast)에서 열린다.

모두 열흘 간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가 순식간에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영화제 데일리 매거진 Variety가 단언했다.


- 베스트 필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연히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가 테러리스트로 오해받고 끌려온 파키스탄계 영국인 청년들이 관타나모에서 수감생활을 한 실화가 내용인 영화 <콴타나모로 가는 길>을 제외하고, 영화제 초반에는 화끈하게 영화제를 달아오르게 만든 영화가 드물었다.

베를린 영화제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모두가 실망스러운 경쟁부문이라고 불평이 난무했다가 막판에 수작들이 나오면서 막판 뒤집기 전술이 펼치는 것이 베를린 영화제의 특색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예상한 기자들이 많았다.


-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제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경쟁부문에 속속 흥미로운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정치적으로 치열하고 영화적으로는 다소 서툰 영화들로 채워진 영화제 전반부 경쟁부문 영화들에 비해 속속 공개되는 영화들은 미학적이고 본격 정치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에 봉착한 현실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매우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 조직위원장의 말처럼 확실히 정치색 짙은 영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베를린 영화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거물이 귀환했다.

바로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류지호다.

베를린 영화제가 발굴하고 키웠다고 선전하는 젊은 거장이다.

토론토 영화제측은 다르게 생각했지만.

토론토 영화제 측에서는 감독 류지호를 세계에 알린 영화 <The Killing Road>가 자신들에 의해 발굴되었다며 베를린 영화제의 주장을 일축했다.

게다가 류지호 영화 월드프리미어가 토론토 영화제에서 많았다는 점을 들면서 베를린 영화제와 신경전을 벌여왔다.

영화제 데일리 매거진 Variety에서 처음 류지호의 입국 사실을 알렸다.

이어 집행위원장이 미디어 센터를 찾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류지호가 공식일정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영화제 소식지는 물론이고 독일 현지 매체 헤드라인이 온통 류지호 이름으로 뒤덮였다.

덩달아 <군계>도 화제성이 폭발했다.


- 류지호의 베를린 귀환은 성공적이다!

- 다소 조용했던 영화제 분위기가 미스터 할리우드의 등장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외도(?)를 했던 류지호가 오랜만에 느와르풍의 영화를 찍었다.

단번에 유럽의 영화팬들의 주목을 끌었다.

베를린 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거진 Variety는 이례적으로 한 면을 통째로 <군계> 소개에 할애했다.

영화팬들 사이에서 일본 원작만화를 구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할리우드와 아시아를 넘나들며 자기 세계를 확립한 젊은 영화 거장.

<The Killing Road>의 인상이 워낙에 강했던 터라 많은 유럽의 마니아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악”


베를리날레 플라스트 레드카펫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밀지 마!”

“위험해!”


1시간 전부터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좁은 입구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거기에 <군계>를 보기 위해 몰려든 영화팬들까지.

어떤 영화 레드카펫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유럽의 온 매스컴이 다 몰려온 것 같았다.

아시아계로 보이는 취재진도 상당수 보였다.

매년 40만 명 정도가 꾸준히 베를린 영화제를 찾는다.

영화제 기간 상주하는 기자만 2,000여 명.

그 외에도 초특급 스타가 방문하거나 문제작이 상영되면 온 유럽에서 기자들이 몰려든다.

국가수반의 순방행사도 아닌데 현지 교민들까지 보였다.

국제영화제는 예술영화가 유일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힘도 스타가 출연하는 할리우드영화를 누를 수는 없다.

물론 류지호는 배우가 아닌 감독이었지만.

어땠든 영화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쉽지 않다.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작품들이 선을 보이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잡아끌기 힘들다.

그래서 할리우드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복수의 꽃>으로 베를린을 방문한지 4년 남짓.

그 사이 류지호의 명성과 위상은 비교가 미안할 정도가 됐다.

영화감독 겸 프로듀서라는 타이틀 외에 세계적인 투자자로 유명하다.

누굴 만나는지도 큰 뉴스가 된다.

어쨌든 지난 베니스 영화제 같은 깜짝쇼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싱거울 수밖에 없는 레드카펫이었다.

그렇다고 열기까지 가라앉지는 않았다.

유럽에서 인지도 없는 일본배우들이었지만, 류지호의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 꽤나 많은 주목을 받았다.

1,600석 규모의 극장은 스무 살 먹은 대학 신문기자부터 백발이 성성한 베테랑 기자까지 다양한 이들로 가득 찼다.

당초 3회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티켓을 구하지 못한 영화팬들의 성화 때문에 한 회를 급하게 늘렸다.

사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미 영화제 조직위는 그 같은 상황을 대비해 플랜B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4년 만에 베를린을 찾은 미스터 할리우드의 신작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

그리고.


‘어디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가지고 왔는지 내가 한 번 봐 주마.’


매의 눈으로 작은 흠결이라도 잡아내려는 기자와 비평가들이 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따로 소개 없이 곧바로 영화가 시작됐다.


WaW Entertaiment.


해외판에는 도쿄다카라가 아닌 WaW 로고가 먼저 뜬다.

관련해서 매우 자세하게 계약이 되어 있다.


<しゃも>.

SHAMO.


인구 300만이 살고 있는(오사카 or 나고야) 평화로운 일본의 중산층 동네.

영화의 시작은 소음 같은 매미의 울음으로 시작한다.

매미는 몸집이 클수록 울음도 크다.

크게 울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계>의 오프닝 크레디트는 온통 매미와 울음을 콘셉트로 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오프닝 크레디트가 암묵적인 프롤로그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 전편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고, 현실의 세계에서 영화의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인도자이자 출입문 같은 기능을 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일종의 ‘이미지즘적인 비주얼의 시(詩)’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군계>의 오프닝 크레디트는 오로지 매미의 일생을 담고 있다.

알고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는 일생이다.

매미는 보통 5~6년, 길게는 17년가량을 산다.

하지만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는 2~3주, 길게는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

매미는 나무껍질이나 틈에 알을 낳는데, 알 상태로 겨울을 난다.

보통 10~40일 만에 애벌레가 된다.

그 뒤 땅속으로 들어가 2~10년 정도를 지낸다.

그렇게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으며 4~5번 허물을 벗은 뒤에야 하얀색의 아기 매미가 된다.

성충이 된 다음에는 1개월가량을 사는데, 이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뒤 생을 마감한다.


맴~맴~매애엠....


오프닝 크레디트가 끝이 나고 매미를 빅클로즈업으로 잡고 있는 카메라가 천천히 빠지면 나무 아래도 고등학생 나루시마 료가 하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충격적인 가족 살해 원 씬 원 쇼트 시퀀스가 펼쳐진다.


“......!”


꽤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다소 집중을 하지 못했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원작만화를 읽어본 관객조차 영상으로 펼쳐진 피가 난무하는 가족살해 현장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웩’


비위가 약한 여성 기자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아니다.

다만 영화사상 가장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으로 꼽힐 만 했다.

칼에 난도질당해 죽어 있는 나루시마 료의 부모와 거실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피웅덩이는 <The Killing Road>의 캠핑카 욕실 고문장면에 버금가는 충격을 선사했다.

첫 장면부터 과하다.


‘도대체 어떻게 영화를 끌고 가려고.....?‘


왜 주인공이 부모를 죽였는지 어떤 설명도 없다.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쉬운 방법인 내레이션도 없다.

무척 불친절하고 불쾌한 출발이다.

수많은 장르영화는 대체로 권선징악을 다룬다.

착하고 밝은 모습을 바탕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정의는 이긴다는 논리가 주제의식이다.

그와는 반대로 악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없진 않다.

극소수다.

그조차도 개과천선하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류지호의 <군계>는 오프닝 시퀀스만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몰입도까지 바짝 끌어올렸다.

양날의 검이다.

10분, 20분까지 별 것이 없으면 오프닝의 충격요법은 무소용이 되어버린다.

원작은 소년원 분량이 2권에 걸쳐 전개된다.

류지호는 나루시마 료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에피소드 위주로 빠르게 넘겼다.

영화 <군계>는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중심인물들은 온통 범법자들이다.

범죄자로 낙인찍힌 사람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새로운 삶의 기회는커녕 증오로 가득한 차가운 시선으로 둘러싸여 사회적 존재가 말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고 싶었던 걸까.

10분이 흘러도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가늠이 안 된다.

감독은 그저 범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루시마 료의 운명을 냉혹하게 그려나간다.

그런데 지루하지가 않다.

상황전개가 빠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사건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제법 몰입감이 있다.

그런 면이 평론가와 영화식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미장센도 좋고, 매 장면 밀도도 높은데... 이 정도라면 별 거 없겠는데?’


작가의말

연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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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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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 일본 침공. (3) +3 23.12.04 1,793 91 24쪽
688 일본 침공. (2) +15 23.12.02 1,914 107 22쪽
687 일본 침공. (1) +9 23.12.01 1,933 107 23쪽
686 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 +6 23.11.30 1,979 94 23쪽
685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3) +8 23.11.29 1,959 103 22쪽
684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2) +4 23.11.28 1,942 106 24쪽
683 가진 돈을 셀 수 있으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1) +5 23.11.27 1,985 101 24쪽
682 자격이 있으면 갖는 거다! (2) +5 23.11.25 1,983 105 21쪽
681 자격이 있으면 갖는 거다! (1) +3 23.11.24 1,999 108 24쪽
680 감독님은 판타지 스타입니다. +2 23.11.23 2,012 96 25쪽
679 세기의 결혼식. (4) +3 23.11.22 2,047 106 27쪽
678 세기의 결혼식. (3) +6 23.11.21 2,036 106 24쪽
677 세기의 결혼식. (2) +6 23.11.20 2,065 111 25쪽
676 세기의 결혼식. (1) +6 23.11.18 2,105 106 28쪽
675 TCU의 닻을 올리다! (2) +5 23.11.17 1,918 101 23쪽
674 TCU의 닻을 올리다! (1) +4 23.11.16 1,963 106 24쪽
673 뉴욕살이. +9 23.11.15 1,951 103 23쪽
672 포츠담 광장에서... (5) +6 23.11.14 1,915 101 26쪽
671 포츠담 광장에서... (4) +11 23.11.13 1,911 107 31쪽
670 포츠담 광장에서... (3) +4 23.11.11 1,897 108 28쪽
669 포츠담 광장에서... (2) +3 23.11.10 1,876 99 24쪽
» 포츠담 광장에서... (1) +3 23.11.10 1,874 83 23쪽
667 외도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4 23.11.09 2,031 101 26쪽
666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2) +6 23.11.08 1,970 101 24쪽
665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1) +2 23.11.07 2,003 92 24쪽
664 나중에 며늘아기한테 좋은 소리 못 들어. +4 23.11.06 2,060 91 24쪽
663 터무니없는 목표! (2) +5 23.11.04 2,051 102 23쪽
662 터무니없는 목표! (1) +4 23.11.03 2,084 97 24쪽
661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3 23.11.02 2,066 95 26쪽
660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2) +7 23.11.01 2,015 10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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