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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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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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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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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휴가를 마친 <Christmas Cargo> 제작진이 다시 아이오와 촬영장에 모였다.

삼일 간 폭설이 내렸지만, 미술팀의 빠른 대처로 야외 세트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일부 훼손된 곳도 있는데, 전쟁터임을 감안하면 그것조차 자연스러워보였다.

혹시 몰라서 한동안 야외 세트를 점검하느라 수선을 피웠다.

그 동안 류지호는 놀고만 있을 수는 없어 인물 위주의 장면만 따로 모아서 촬영을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충무로 은어로 일명 ‘누끼’를 따는 방식의 촬영은 잘 안 한다.

대화하는 장면조차 멀티카메라로 찍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심하게 파손된 세트를 보수하고 나서 다시 대규모 전투장면 촬영이 시작됐다.


“저 아까운 돈이 그냥 덧없이 버려지는구나....!”


앨런 포스터는 수시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Eye-MAX 엔지니어들이 필름을 로딩할 때마다 필름 비용을 계산하며 삼키는 눈물이었다.

Eye-MAX MSM 9802 카메라 대여비용은 주당 약 1만 5천 달러.

렌즈 풀 세트는 따로 계산한다.

Eye-MAX 카메라 6대와 렌즈 풀 세트 렌트 비용만 주 당 대략 9만 달러를 지불했다.

카메라 렌탈 비용만 200만 달러에 달한다.

금융위기 원달러 환율로 계산하면 무려 26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게다가 Panavision 카메라 등 기타 촬영장비까지 포함하면, 렌탈 비용만 주당 10만 달러를 훌쩍 넘겼다.

65mm Kojak VisionⅢ 필름은 분당 350 달러 정도.

65mm 필름 1000피트 한 캔으로 Eye-MAX 포맷 대략 3분을 촬영할 수 있다.

24프레임으로 촬영했을 때 하루 소요되는 필름 예산만 3만 달러 이상이다.

하루 필름 비용이 어지간한 충무로 저예산 영화 한 편의 제작비다.

<Christmas Cargo>는 오리지널 Eye-MAX 포맷에 가까운 상업영화다.

전쟁영화임을 떠나서.

블록버스터 영화중에서도 고예산에 속하는 편이다.

할리우드라고 해서 필름 비용을 물 쓰듯이 마구 쓰진 않는다.

예상보다 필름 비용을 많이 쓰면 스튜디오 임원이 당장에 닦달을 한다.

필름 아껴 쓰라고.

류지호는 잔소리로부터 자유롭다.

누구도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다.

본인이 투자자이며,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제기랄....!”


데온 비베에게 고용된 포커스 풀러(Focus Puller) 팀 베번은 촬영장에 나올 때마다 욕설을 입에 달았다.

Eye-MAX 카메라 포커스는 좁은 피사계 심도와의 싸움이었다.

특히 카메라가 움직임이 많은 경우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자신이 왜 또 이 짓을 하고 앉아있는지 후회가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이에게 이 작업을 양보할 수가 없다.


“빌어먹을 Eye-MAX....!"


팀 베번의 욕설에 촬영팀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화를 낸다는 것은 곧 엄청나게 어려운 촬영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에.


“팀!”

“왜?”

“다시 Eye-MAX를 하자고 하면 또 할 거지?”

“....제기랄!”

하하하.

다시 한 번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Eye-MAX 촬영을 경험해 본 촬영감독들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들 인생에서 가장 멋진 경험 중 하나라고 말하곤 한다.

동료들에게 경험해 보길 적극 추천한다.

Eye-MAX 영화는 촬영현장에서 경험한 극한의 고생을 나중에 극장에서 몇 배로 보상받게 되니까.

뛰어난 화질, 아름다운 스킨 톤, 거대한 다이내믹 레인지 및 화려한 색상 표현.

인간의 시야를 꽉 채워 제공하는 화면 비율.

깊고 무거운 사운드 시스템까지.

내부 시사를 볼 때는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당시 고생이 생생하게 전해지지만, 영화가 완성되어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공개될 때는 성취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생을 많이 한 영화는 배우와 스태프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런 면에서 일반 영화보다 몇 배는 힘겨운 Eye-MAX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류지호가 메가폰에 대고 촬영개시를 외쳤다.


“액션!”


삘리리리!


소름끼치는 호루라기 소리.


빠라라라라밤!


날카로운 나팔 소리.

하갈우리 일대에 대한 중공군의 총공격이 시작됐다.

종공군은 그야말로 밀물처럼 밀려왔다.

미해병대는 가진 화력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한국전쟁 전투장면은 너무 친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다.

종공군의 인해전술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에게는 어떨까.

만화 같다고 하지 않을지.

너무 영화적이라고 할 것도 같았다.

<Christmas Cargo>가 선보이는 영상의 90% 이상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류지호는 장진호 전투씬 연출에서 아주 약간만 양념을 쳤다.


“Jay, 좀 싱겁지 않나?”

“저 모습은 해병의 모습이 아니라네.”


추위에도 불구하고 촬영현장에 방문한 노병들이 전투 상황을 왜곡하지 말라며 류지호를 혼내기도 했다.


“아! 정말 저 때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 죽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어.”


류지호가 너무 심한 과장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노병들에게는 전부 진실이었던 것.

특히 수류탄과 관련한 일화에서 그런 부분이 두드러졌다.

적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을 날려 대신 폭발을 뒤집어쓴다든가.

적이 날린 수류탄을 주워 재빨리 적을 향해 다시 던진다든가.

땅에 떨어져 있는 수류탄을 군화발로 걷어차서 적들에게 날린다든가.

M1소총의 개머리판을 야구배트처럼 휘둘러 날아오는 수류탄을 쳐냈다든가.

중기관총을 람보처럼 양팔로 들고 사격했다든가.


- 에이! 거짓말!

- 아무리 영화라지만 과장이 심한데?


<못 말리는 람보> 시리즈의 콘셉트 영화가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류지호는 과장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찍을 때마다 고민했다.

나중에 편집 단계에서 결정하기 위해 일단 찍기는 했는데.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너무나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들 법한 해병대원의 활약은 독립적으로 촬영하지 않았다.

풀쇼트(F.S)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참호 안으로 떨어진 수류탄을 집어서 적에게 돌려주려다가 도리어 자신의 손이 날아간다든가, 중기관총을 양팔로 들어 올리고 난사를 하지만 결국 반동 때문에 하공에 총질하고 뒤로 자빠진다든가 하는 식의 상황으로 처리했다.


1월 한 달.


아이오와주 촬영지에서 장진호 전투의 주요 전투씬을 촬영했다.

류지호는 특히나 덕동고개 전투 재현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F중대가 사수한 덕동고개 근처의 민둥산은 이름이 없었다.

그런 이름 없는 민둥산 산줄기가 후일 장진호 전투가 조명되면서 장진호 최대의 공훈을 세운 F-중대의 이름을 따서 ‘F0X HILL‘이라는 별칭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류지호는 중공군을 멍청한 군대로 묘사하지 않았다.

미해병 1사단의 무용을 강조하기 위해라도 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최고 장기는 야간 이동술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야간에는 싸우지 않는 것을 정상으로 여겼다.

반면 중공군은 국공내전에서 별의 별 전투를 다 경험했다.

특히 게릴라전에 특화된 부대가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

소리 없이 야간에 이동하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눈으로 덮인 민둥산에서 매복할 때.

유엔군 비행기가 정찰비행을 할 때.

중공군은 하얀 이불을 뒤집어써서 위장할 정도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위장했다가 영원히 이불을 들추지 못한 중공군도 많았다.

그런 장면도 충분히 찍어두었다.

미군에게 중공군 못지않은 무서운 적이 추위였다.

밤에는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가는 지독한 추위가 기본이었다.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밤기온이 중공군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적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무서운 혹한에 많은 병사들이 하염없이 쓰려져 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병사들도 동상으로 손발을 잃게 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이 전투 경험을 토대로 미군의 동계전투 전술이 새롭게 연구되었을까.

미군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동계전투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당연히 교범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도 전쟁이 혹독한 겨울 추위와 만나면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겪어본 일이 없어서 문제였다.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꿔놓은 모스크바 공방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겨울 전투다.

소련이 나치 독일에 대한 승리를 부각하기 위해 이후 정확한 사실을 밝히진 않았지만,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두 전투로 양측에서 4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41년 10월 아돌프 히틀러는 모스크바 진격을 명한다.

키예프 공방전에서 승리해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는 소련 침공계획인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히틀러의 이 작전을 좌절시킨 것은 스탈린도 볼셰비키 공산당도 아니었다.

바로 소련의 추운 겨울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실패의 교훈을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잊었다.

100년 이상 시간이 흘렀고,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기체계, 수송·보급 수단도 획기적으로 개선됐기에.

그런 안일한 생각이 나치 독일을 수렁에 빠트렸다.

독일이 자랑하던 기갑부대는 모스크바로 가기 전에 소련의 유명한 ‘진흙의 바다’에 갇혔다.

혹독한 추위로 동사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대포는 발사하기 위해 1시간 이상의 예열시간이 필요했다.

소총도 연속 발사가 불가능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로 인해서 모스크바 공방전으로 전선이 교착화 했다.

히틀러가 다음 해 여름 시작한 남부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역시 결국에는 독일 6군이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혹독했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1943년 2월 소련에 항복하면서 끝났다.

이 전투는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그 두 개의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겨울 전투로 꼽히는 전투가 1950년 겨울, 미해병 1사단이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에게 포위됐다가 이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장진호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는 세계 3대 동계전투이자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참혹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그 같은 문구가 영화 엔드 크레디트가 스크롤되기 전 전 자막으로 뜰 예정이다.

역사성을 강조하는 자막이다.

그 뒤로 누구누구가 무슨 훈장을 받았다는 자막이 뜨게 된다.

이긴 듯 아닌 듯.

아군의 희생자도 어마어마했지만, 적군의 사상자는 비교불가의 전투.

‘졌지만 잘 싸운 전투’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

미군 입장에서는 대놓고 선전할 수도 그렇다고 쉬쉬할 수도 없는.

장진호 전투는 미국 입장에서 여러모로 애매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겸사겸사 카투사도 알리고.....”


❉ ❉ ❉


1월 26일.


한국의 설 명절을 앞두고 류지호 부부가 딸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사전 통보 없이 조용히 입국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곧장 부모님이 계시는 여주로 향했다.

언제나 장남이 일 순위였던 어머니였다.

손녀가 태어나자 관심과 애정이 온통 그쪽으로 향했다.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류지호는 딱히 섭섭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응애응애.


집안에 아기나 어린이가 있고 없고 차이가 정말 컸다.


호호호.

하하하.


평소 절간처럼 조용했던 여주 부모님 집이었다.

하루 종일 시아의 울음과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류지호가 부모님의 집에서 설을 쇠고 있을 때.

<Christmas Cargo> 촬영팀이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촬영팀은 경남영상위원회 직원과 WaW 픽처스 제작부장의 안내를 받아 센텀시티 가온복합타운 내 가온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들과 함께 들어온 각종 촬영장비 및 소품, 의상 등의 통관절차 일체는 영상위원회 직원과 WaW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해결했다.

부산 센텀시티 가온복합타운 안에는 Eye-MAX와 DALLSA D-Cinema 아시아 총판이 입주해 있다.

Eye-MAX 카메라가 모델 별로 두 대씩 최상의 상태로 준비되어 있다.

아시아의 어떤 영화사도 감히 Eye-MAX 영화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든 임대할 수 있도록 준비는 되어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제작된 영화의 Eye-MAX DMR은 여주 WaW종합촬영소 내 Eye-MAX Studios에서 작업하고 있다.

센텀시티 가온복합타운 내 호텔은 5성급을 자랑했다.

<Christmas Cargo> 촬영팀이 두 개 층을 통째로 임대하고, 모든 스위트룸도 독차지 했다.

보안을 위해 외부에 그 같은 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여주에서 설 명절을 쇤 류지호가 부산으로 내려왔다.

<Christmas Cargo> 촬영팀에 합류한 류지호는 배우들 컨디션부터 챙겼다.

몇몇 배우가 알코올 의존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류지호로서는 그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저쪽에 짓고 있는 것이 영화의 전당이야.”


한국 프로덕션을 지원하기 위해 합류한 김재욱이 말했다.

두 달 전 즈음이었다.

센텀시티 가온복합타운 근처의 공터에서 영화의 전당 건설이 시작됐다.

이 지역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가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1,680억 원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저런 전시행정을 막아보겠다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만든 것이구만. 쯧.”

“말도 마라. 부산 정치인들하고 고위 공무원들이 기를 쓰고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1년에 단 열흘만 사용하는 무려 1,700억짜리 값 비싼 극장.

이전 삶에서 영화의 전당이 그랬다.

연중무휴로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연극도 공연하고, 코미디 페스티벌 같은 이벤트도 벌이긴 했다.

여름에는 물놀이장, 겨울에 썰매장도 운영하기도 했고.

그러면 뭐할까.

매년 적자만 쌓였는 걸.

그 적자는 부산시민의 세금으로 메웠고.


“애초에 450억 원짜리 사업 아니었어?”

“다 탁상행정 아니겠냐?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또 호화로워야 하고, 디자인과 설계도 몇 번이나 바뀌었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류지호가 김재욱을 따라서 가온호텔의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결국 영화의 전당은 부산시가 주인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입맛이 무척 썼다.

2011년에 센텀시티에 거대한 규모의 극장이 탄생할 예정이다.

대외적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상영관으로 건설되고 있다.

그런데 영화의 전당 주인과 운영 주체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가 아니다.

재단법인 영화의 전당이다.

그 재단법인의 이사장은 부산시장이 맡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전당 상영관 운영이나 공간 사용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없는 세입자에 불과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열흘 남짓 기간 상영관 4개와 야외극장을 빌려서 사용하고, 영화의 전당 건물 한쪽에서 사무국이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나중에 부산시에서 영화제에 간섭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검열을 우려하십니까?”

“이미 몇 차례 사례가 있었잖아요.”

“영화제 초창기에나 부끄러운 일을 벌였지 이젠 정부당국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특수성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나중에 부산시와 영화제와 관련해 갈등이 발생하면 영화의 전당이든 부산시 지원이든 받지 마시고 WaW나 G.O.M과 의논하세요.”

“....”

“부산은 베를린도, 칸도, 베니스도 아닙니다. 영화 상영을 전적으로 영화의 전당에 의존하게 되고, 부산시로부터 매년 막대한 돈을 받으면 받을수록 영화제의 독립성은 멀어질 겁니다.”

“대기업에 지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WCG가 지금 해외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 줄 아세요?”

“....?”

“가온과 오성그룹 임원 출신들이 WCG를 주도하지만, 그들은 모기업으로부터 어떤 통제도 받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하고 있죠. 심지어 한국의 문체부도 못 낍니다. 불가리아 대통령이 내게 사적으로 전화를 걸어와 대회유치를 청탁합니다. 안타깝지만 나는 불가리아 대통령의 청을 들어줄 수가 없어요. WCG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한 후에 입찰에 나서라고 조언할 뿐입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유럽의 몇 개국이 WCG를 자국에 유치하고 싶어 하고 있다.

국제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기 쉽지 않는 국가들이 주로 WCG를 노리고 있다.

그들은 외교채널을 활용해 JHO Company Group과 접촉하고 있다.

하계, 동계,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게임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WCG는 그 몇 십 분의 일만 투자해도 전 세계 70개 국 이상에 홍보가 된다.

개도국에게는 가성비가 아주 훌륭한 글로벌 스포츠(?) 행사다.


“지난 96년 1회 때 영화제 예산이 22억 원인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세 배까지 늘었다고 알고 있고. 영화인들이 가끔 내게 그럽니다. 류 감독이 영화제에 돈을 다 대주면 안 되겠냐고. 그러면 영화제가 순수성이나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가온그룹은 한국 대중문화예술계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와 관련해 어떤 지분도 권리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매번 현물후원이나 협찬을 해주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1회부터 박건호 대표와 전하영 피디 등은 WaW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류지호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원으로만 머무는 것이 좋다.

또한 한국영화계와 독립적으로 영화제가 운영되어야 하고.

충무로의 입김이 닿지 않는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각종 후원으로 영화제가 운영되고, 정부와 지자체는 행정적 지원, 교통편의 등 간접지원을 해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부산과 전주제영화제를 제외하고 기업과 개인 후원금이 매우 빈약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된다.

부산과 전주 역시 매년 영화제 사이즈가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서 예산도 많이 필요해졌다.

열흘 간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은 10여년 만에 세 배가 훌쩍 넘었다.

곧 100억 원을 돌파하게 된다.

같은 기간 부산시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1회 당시 3억 원에서 2002년 7회 때 10억 원을 돌파했고, 2006년 11회 때 28억 원으로 20억 원을 넘어섰다.

2009년에는 30억을 돌파하게 된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몸집은 커졌는데, 영화제를 찾는 관객은 크게 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의 고민이다.


“그 동안 기구와 조직이 이것저것 신설되었다구요? 마치 기업이 계열사를 늘리는 것 같은 모습이네요. 영진위 한 해 예산이 대략 400억 원 수준인데, BIFF는 열흘 행사에 60억 원 정도 쓴다면서요?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이 더 빵빵해지고 권력도 세니까 영화인들이 좋다고 박수 쳐야 하는 걸까요?”

“....음.”

“견제와 외부 감시 없이 성장만 하다보면 내부 비리가 쌓이게 됩니다. 그걸 관행이라고 내버려 두면 적폐가 되는 거지요.”


집행위원장이 펄쩍 뛰며 항변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저희 조직위는 비리가 없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하는 것들 대부분이 다 위법이고 불법이라는 거 혹시 아십니까? 친한 후배 영화인이니까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직원 채용하고, 품위유지비랍시고 유흥비를 몇 백 만 원씩 쓰고, 무슨 자문을 어떻게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자문료랍시고 몇 백 꼬박꼬박 지출하고.”


한국 사회에 어디에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시로부터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압니다. 나도. 그런데... 부산시 담당공무원들과 오래 지내다보면 다 형·동생 됩니다. 사소한 것들 서로 눈감아 줍니다. 그런 것들이 정기 감사에서 별로 티가 안 납니다. 그렇게 10년 20년 쌓이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문화권력의 부패, 또 다른 표현으로 문화적폐라고 합니다.”


영화계 적폐라는 것이 과거 꼰대 영화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영화계 어디에선가 적폐가 횡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의 시나리오를 훔치는 행위다.

힘없는 시나리오 작가나 예비 감독들의 시나리오를 고의로 엎어버리고, 시간이 흐르는 후 은근슬쩍 윤색해서 영화로 만드는 일이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이름 있는 감독들은 조감독에게 시나리오 대필을 시키기도 한다.

감독은 트리트먼트까지만 작업하고, 초고를 조감독이 작업하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 크레디트에는 원안이 아닌 각본으로 이름을 올린다.

조감독은 각색에 이름을 올린다.

당연히 감독은 시나리오 고료를 받고, 조감독은 각색료를 받는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당한 놈만 바보!

90년까지 있던 일?

아니다.

현재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관행 같은 일이다.

관객들은 알 수 없지만.

콘티를 짤 줄 모르는 감독도 많다.

조감독이 콘티를 짜고 촬영감독이 이를 연출하는 황당한 영화현장까지 있을 정도다.

감독은 멋진 목소리로 ‘레디 고’를 외칠 뿐.

관행이란 형태로 자행되는 갑질이며 사기행위다.


“......”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쯤 되는 인사가 젊은 사람에게 혼나는 모습은 가히 아름답지 않다.

그런데 혼내는 젊은 사람이 류지호라면 다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영화업계의 파워맨이기에.

게다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최대 후원자이기도 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가 쓴소리 좀 하겠다는데, 자존심 상한다고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제 조직위가 초심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한번쯤 점검해 보는 게 좋습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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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만수무강(萬壽無疆). (3) +3 24.03.29 1,794 88 21쪽
814 만수무강(萬壽無疆). (2) +3 24.03.28 1,772 85 24쪽
813 만수무강(萬壽無疆). (1) +8 24.03.27 1,828 81 25쪽
812 둘째 생기는 거 아냐? +9 24.03.26 1,840 92 30쪽
811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끝났을 때.... +5 24.03.25 1,775 92 24쪽
810 기를 쓰고 흥행시킬 생각이다! +8 24.03.23 1,750 94 26쪽
809 Christmas Cargo. (12) +9 24.03.22 1,653 89 27쪽
808 Christmas Cargo. (11) +4 24.03.22 1,483 69 26쪽
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8 24.03.21 1,670 85 23쪽
806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504 78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609 85 26쪽
804 Christmas Cargo. (8) +6 24.03.20 1,528 73 23쪽
»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678 88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739 95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700 101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629 91 23쪽
799 Christmas Cargo. (5) +4 24.03.15 1,497 71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648 86 25쪽
797 Christmas Cargo. (3) +4 24.03.14 1,556 81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22 87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713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47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26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95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68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49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907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64 91 27쪽
787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903 94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913 8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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