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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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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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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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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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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Christmas Cargo.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자강도 강계.

인천상륙작전 이후로 패퇴하던 북한이 평양을 잃고 임시수도로 정한 곳이다.

맥아더 사령관은 이곳을 공격하기 위해 장진호 방면으로 미해병대 1만 2천여 명을 전진시켜 주둔시켰고, 미육군이 그들을 지원하기로 계획했다.

중공은 계속해서 한국전쟁에 참여하겠다고 경고를 날리고 있었는데, 도쿄사령부는 그 경고를 무시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맥아더의 도쿄사령부는 중공군을 얕봤다.

오합지졸로 여겼다.

공중지원은커녕 포병과 기갑 전력 하나 없이 오로지 보병만으로 한반도로 진공했기 때문이다.

도쿄사령부가 예상한 중공군의 규모는 약 3만 5천 명 정도.

실제 들어와 있던 중공군의 수는 무려 30만 명이었다.

중공군은 꾀를 부렸다.

미국과의 공식적인 교전을 피하기 위해 중화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즉 본격적인 군대가 아니라 지원군이라 칭했다.

헌데 정예 중에 정예병이었다.

무장이나 훈련이 안된 비숙련병이 아니라 중국내전을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특히나 게릴라전에 특화된 군대였다.

중공군은 연합군 공군의 정찰을 피해 야간에만 이동하는 작전을 전개했다.

실제로 한국전쟁 후반기 내내 신출귀몰 행적을 보였다.

사실 정상적인 사령관이었다면 절대 취할 수 없는 전술이었다.

병사를 소모품 취급했으니까.

혹한의 겨울 그리고 산악지대를 통해 이동해야 했기에 병사들은 추위에 큰 고생을 해야만 했다.

병참선이 길게 늘어졌다.

그로인해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해 아사직전까지 몰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동사자들도 속출했다.

그럼에도 중공군 제9병 사령관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의 병력만으로 미해병 1사단을 섬멸하는 것이 불가능한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50년 11월 7일.


중공군 제9병단 14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이라는 생소한 전장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목표는 원산을 출발해 장진호로 북상하는 미제1해병사단 포위섬멸이었다.

그를 위해 중공군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걸어서 이동했다.

추위에 대비한 병사들의 솜옷과 솜모자가 모자랐고, 현대전에 필요한 비행기, 차량, 중포는 물론 보급체계를 갖추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에 충실했다.

전투 한 번 없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수많은 중공군들이 죽어나자빠졌다.

아랑곳 하지 않고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계속해 주전장을 이동시켰다.

미 공군과 정찰병을 피해 밤에만 이동했다.

감시가 어려운 험준한 계곡 같은 곳으로만 길을 잡았다.

국공내전 게릴라전에 특화된 정예병들답게 은밀하고 속도가 빨랐다.

중공군만이 할 만한 냉혹한 명령이며 비정한 작전이었다.

병사가 얼어 죽든 낙오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죽어도 열 사람이 죽어도 백 사람이 죽어도.

태가 나지 않았다.

그 만큼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전투 시작 전부터 무서웠다.

참고로 ‘인해전술’이라는 표현이 현재에 와서는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당시 미군 지휘부가 자신들의 판단실수와 패전을 변명하기 위해서 종공군의 숫자를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자백과 관련 자료들이 속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원산항에 상륙한 올리버 소장은 10군단장 알몬드 중장으로부터 흥남을 거쳐 산맥 깊숙이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최종 목표는 압록강 국경. 서두르게.]


올리버는 군단장의 명령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10월부터 소규모 중공군 지원병을 자주 만나는 불길한 징조가 있었습니다. 두 군대 사이에는 120km나 되는 간격이 있는데,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이 침투하기 충분한 공백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전투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1월 말이 되었다.

중공군의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는 것을 올리버 사단장은 확신했다.

반면에 알몬드 군단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진격하라는 명령만 반복했다.

올리버 사장단은 군단장의 명령에 반하는 지시를 내렸다.


[연대장은 압록강에 이를 때까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라.]


중공군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각 연대는 소규모 단위가 아닌 연대단위로 대응할 수 있었다.

올리버 사단장의 명령 덕분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그때까지였다.

결국 미해병1사단은 장진호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원산항과 이원항 등으로 상륙한 UN연합군은 유담리부터 하갈우리, 고토리 일대에서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중공군은 수 천 명의 동사자와 아사자를 뒤로 하고 UN군보다 먼저 장진호에 들어와 있었다.

이미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 있는 요충지를 중공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군이 함정으로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하하.]


중공군 제9병 사령관은 미해병과 혼성부대 약 1만여 명이 산악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것을 보며 승리를 확신했다.

최강이라 불리는 미해병1사단을 몰살시킬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는 무려 9개 사단에 적들과 6:1의 압도적인 병력차이가 난다. 게다가 우리는 기습을 펼칠 예정이지. 이번 임무는 문제없이 완수될 것이다.]


그는 몰랐다.

미해병1사단에는 올리버 스미스라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뛰어난 지휘관이 있다는 것을.

올리버는 낙오한 부하들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헬기를 타고 전장으로 날아가 직접 전투를 벌이고 지휘하는 군인이었다.

누구처럼 안전한 막사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참모들과 이러쿵저러쿵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겁먹지 마라! 우리에겐 저들이 없는 것이 있다!]


UN군에게는 중공군에게 없는 포병, 탱크, 항공지원이 있었다.

장진호 일대 요충지에 매복해 기습 시점을 재고 있는 10만여 명의 중공군.

적보다 우월한 화력과 보급으로 무장한 올리버 스미스의 병사들.

피 말리는 18일 간의 격전의 막이 마침내 열리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 암시하고 설명할 내용이다.

글처럼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는다.

당시 종군기자가 촬영한 거친 다큐멘터리필름처럼 보여줄 예정이다.

화질이 매우 좋지 못해서 관객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제공될 예정이다.

스타일리쉬한 타이포그래피와 감각적인 컷 편집으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인상을 받도록 연출할 계획이고.


❉ ❉ ❉


<Christmas Cargo> 촬영이 한창일 때 마침내 아이오와주 방위군이 합류했다.

영화팀이 주방위군을 위해서 따로 해줄 것은 없었다.

그들은 직업군인들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알아서 막사를 치고, 동계야전훈련 태세로 들어갔다.

즉 영화촬영 지원을 나왔지만, 훈련의 일환이기도 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류지호는 군생활 중에 혹한기 훈련을 해보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미군이라고 할지라도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작팀에서 잘 살펴주도록 해.”


그런 류지호의 마음과는 달리 <Christmas Cargo> 제작진은 당연시 하는 분위기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주는 것에 감사하고 존경을 표하는 것과 그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배런 랜프로가 몹시 기대가 된다는 투로 말했다.


“진짜 블록버스터처럼 하루하루 촬영을 하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은데, 다치면 안 된다. 알겠지?”

“만약 내가 촬영 중에 부상을 입는다면 영광의 상처야.”

“너 때문에 촬영 늘어지는데 무슨 영광이야!”

“다른 사람이 출연하는 씬을 찍으면 되잖아.”

“까분다. 다치면 형이 가만 안 둬.”

“어린애 아니야. 아직도 그 소리야? 까분다니!”


화를 내는 배런 랜프로의 머리에 손을 올린 류지호가 마구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뭐하나.

류지호에게 녀석은 철없던 시절의 동생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데.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았다.

암튼 아이오와 주방위군이 합류하면서 대규모 군중장면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초반 5분을 잡아라!!


상업영화판의 금언이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또한 영화과 강의실이든 일반 아카데미 강연이든.

작가나 감독의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금언이다.

영화 상영 시작해서 5분 안에 관객들을 영화로 몰입시켜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영화는 끝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도 보태진다.


“영화 제작비의 60%는 영화 시작점과 마지막 종결점에 투입시켜라!”


그 만큼 영화에서의 초반 5분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말이다.

그래서 전쟁영화는 일반적으로 오프닝에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투씬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영화의 교범일 수밖에 없다.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오프닝이란 수식어와 함께.

류지호는 <Christmas Cargo>에서 정 반대로 접근하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는 차분하지만 형식미가 뛰어난 다큐멘터리필름 스타일로 꾸몄고, 본 영화의 시작도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추수감사절 풍경으로 채울 생각이다.


1950년 11월 22일.


함경남도 장진군 하갈우리 미해병대 캠프.

중공군이 일대를 포위·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취사병들이 미 본토에서 공수된 칠면조를 요리하고, 호박 파이를 만든다.

하갈우리 캠프가 추수감사절로 들떠있거나 하진 않았다.

엄연히 전쟁터였으니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막사에서는 포로로 잡힌 16명의 중공군을 심문하는 모습도 묘사된다.

이때 영화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실존했던 중국계 미국인 장교(리 주엔)를 슬쩍 언급한다.

또한 영화 중반에 그의 영웅적인 면모도 살짝 묘사한다.

공산주의 중공군과 싸우는 민주주의 진영의 중국계 미국인 형제.

실존 인물인 리 주엔을 영웅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한국인 카투사, 소수의 흑인 보병, 유일한 중국계 미국인 장교.

그들을 통해 기존의 1·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과 구분 짓도록 만들 생각이다.

<Christmas Cargo>에는 어쩔 수 없이 미국 만세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곤 해도, 백인 만세까지 외치고 싶지 않은 것이 류지호의 솔직한 마음이다.


[일대가 매복 당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맞습니다. 도로는 너무 좁고, 일대에 깔린 철길은 아예 강삭철도입니다. 그 만큼 험준한 지형이라서 저라면 반드시 매복공격을 펼칠 겁니다.]


강삭철도(Cable Railway)는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밧줄을 통해 견인하여 운행하는 철도를 의미한다.


[패잔병 소탕일세. 소수의 패잔병들이 매복을 해봐야 얼마나 위협이 되겠나!]

[포로 심문 결과.... 적의 대군이 산 속에 숨어 있다가 일거에 포위섬멸한다는 작전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절 대공세 이후 주춤한 걸로 봐서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여. 10군단은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차질 없이 진격한다. 이상.]


알몬드 군단장에게 올리버와 야전 지휘관들이 포로 심문으로 알아낸 사실을 전했다.

포로 심문을 통해 중공군이 장진호 일대에 대규모로 전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몬드는 그 같은 야전 지휘관들의 의견을 무시한다.

서부전선에서도 간헐적으로 중공군 참전 사실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도쿄사령부와 알몬드 같은 책상물림 군인들은 그 보고를 무시한다.

알몬드는 한 술 더 떠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신의 참모들과 함께 본토에서 공수해 온 칠면조 요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게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도쿄사령부에서 지시한대로 빨리 압록강으로 돌진하라.]

[적들이 매복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알몬드 군단장과 올리버 해병1사단장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시작된다.

맥아더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맹신하는 알몬드 군단장.

한국전쟁 당시에 맥아더 사령관의 눈과 귀를 가린 ‘딸랑이’ 참모 중에 한 명이다.

역사의 만약은 없다지만.

맥아더 주위에 포진한 참모들이 좀 더 정보수집에 공을 들이고, 야전 지휘관들의 직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진군할 겁니다.]

[신속하게! 서둘러!]

[다만 장진호 지역의 산세도 험하기 그지없고, 엄청나게 추운만큼 천천히 진군하면서 보급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압록강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겨울철 병사들의 사기와 보급선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진격 방향, 부대 배치, 진군 속도, 보급 문제를 둘러싸고 계속 충돌한다.

장진호 전투가 끝날 때까지 사사건건 대립한다.

결국에는 올리버의 고집이 수많은 해병대를 살리게 된다.

10군단 병사들이 취사병이 요리한 특식 칠면조 요리 배식을 받는다.


[새치기 하지 마. 칠면조는 충분해!]


해병 1사단 7연대와 5연대는 보급이 지연됐다.

그들은 C-레이션 박스의 소고기와 콩으로 칠면조를 대신했다.

장진호 주변에 배치된 연합군으로는 미해병 1사단, 미육군 7사단 2개 대대, 그리고 영국해병 41 코만도가 있었다.

알몬드 장군과 참모들만 전세를 낙관하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도 다소 긴장감이 풀어졌다.

북한군 최고수뇌부가 모여 있는 강계를 점령하면 전쟁은 사실상 끝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추운 날씨 탓도 있었다.

설마 이런 추운 날씨에 적들이 험준한 산속에서 며칠을 매복을 할까 싶었다.

연합군 병사들의 상식으로 그랬다.

미군 전체에 퍼진 낙관론의 와중에도 다행히 소수의 비관론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해병 제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였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


올리버 사단장의 평소 신조였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또 대비하는 타입의 지휘관이었다.

부대를 장진호 축 선상에 집중 배치하도록 제10군단장 알몬드를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마침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충분한 탄약과 필수보급품을 하갈우리 캠프에 배치해놓고, 명령 불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굼벵이 진격을 하고, 최악을 대비해서 하갈리우에 야전활주로까지 건설했다.

국군과 UN군이 압록강까지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쾌속 진군하던 때였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한-중 국경선을 향하여 돌진하는 것만이 미덕인 상황이었다.

반면에 장진호 방면의 미해병대는 11월 10일부터 26일까지 하루 평균 1.5km로 최대한 느릿느릿 진군했다.

알몬드 군단장이 속도를 올리라며 닦달해도 올리버 사단장은 귓등으로 들었다.

올리버 사단장은 연대장들에게 가능한 천천히 북상하라고 명령했다.

설상가상으로 한파까지 몰려왔다.

게다가 설사병 환자가 속출했다.


[제기랄! 또!]


단역 배우가 배를 움켜쥐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로 달려간다.

병사들은 열심히 삽질을 하며 참호를 팔 뿐.

설사병에 고생하는 전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잠시 후...


[FxCK!]


화장실 방향에서 요란한 비명이 터진다.

병사들이 삽을 내팽개치고 얼른 소총을 챙겨 달려간다.

화장실을 포위한 채로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간이화장실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드러나는 광경에 할 말을 잃는다.


[쉣.....!]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대변을 보던 병사의 변이 변기통에 얼어 있던 변과 언 채로 연결되었다.

얼마나 추운 날씨인지 얼어붙은 변이 엉덩이 사이에 붙어 있었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실로 악몽 같은 날씨다.

군의관을 불러와 톱으로 겨우 얼어붙은 변을 떼어 낸다.

웃기려고 넣은 장면이 아니다.

UN군과 중공군이 싸우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짚어주는 장면이다.

연합군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장진호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중공군은 너무 참혹해서 SF영화 같았다.

중공군의 군복은 매우 변변치 않았다.

손과 발이 꽁꽁 얼기 일쑤였다.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데 얼어붙은 발목 아래가 땅에 붙어 있는 채로 뜯겨진다던가.

동상이 걸려 퉁퉁 부은 손이며 발을 상급자가 아예 정글도로 잘라버려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손이 잘려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중공군은 소총 대신에 피리나 북채, 꽹과리가 쥐어졌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면 다른 식으로 보탬이 되어야 했다.


“중국인들은 과연 저 같은 모습을 보며 투지가 높다고 박수를 쳐줄까?”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에 대해서 중국 내부 정치적인 면에서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

그것을 차지하고라도 전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들이다.

게릴라전에 능숙한 모습도 묘사했다.

미공군의 정찰기가 장진호 상공을 비행할 때면 재빨리 이불을 덮고 숨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얀 이불을 덮어쓰기 때문에 공중정찰로 중공군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마자 중공군들은 밤사이에 동사한 전우를 짐짝처럼 들어다가 한쪽에 파놓은 웅덩이에 버리듯이 던져놓는다.

그 웅덩이에는 이미 수십 구의 동사한 시체가 마치 동태처럼 널브러져 있다.

류지호는 주인공 부대가 함정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잡스러운 연출과 음악 같은 것으로 강조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병력 숫자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지시킨다.

미군은 함정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고, 추위는 양 군대를 힘들게 만들고.

류지호는 <Christmas Cargo>를 준비하며 레퍼런스 영화로 전쟁영화가 아닌 엉뚱한 영화들을 주로 봤다.

그 중에 하나가 <닥터 지바고>였다.

시베리아 평원과 북한의 산악지역은 완전히 정 반대이지만.

류지호는 당시 데이비드 린 감독이 겨울을 묘사한 70mm 화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암튼 영화가 시작한 후 전투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사상자가 속출하는 이상한 전쟁영화다.

미군은 동상 때문에 병사가 전력에서 이탈하면 곧바로 하갈우리 캠프로 이송하지만.

중공군은 그런 거 없다.

때문에 미해병 정찰대가 매복 예상지를 기습해보면 동사한 중공군 시체만 즐비하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윌리엄 바버(클리프 레저)가 지휘하는 F중대가 좁은 산길을 걷고 있다.


[....!]


선두에서 길을 열던 중대원이 주먹을 쥐어 보인다.


후다닥!


중대원들이 재빨리 산개하며 사방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바버 중대장이 조심스럽게 전방으로 다가온다.

좁은 산 길 저 만치.... 작은 체격의 누더기 솜옷을 입은 남자가 다른 남자를 업은 채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적이야?]

[킴을 부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바버 중대장이 뒤쪽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자, 킴(조현석)이 달려온다.

킴과 바버가 총을 겨누며 남자들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목격한 광경.


[오 마이....고쉬!]

[마더....퍽....]


욕설이 절로 나온다.

얼굴부터 온 몸에 때가 꼬질꼬질한 남자가 솜옷을 입은 남자에게 업혀 있는데, 남자의 두 손을 퉁퉁 불어 있다.

그를 업은 남자 역시 한쪽 발이 축구공처럼 부풀어 올라있다.

동상 때문이다.

이들은 중공군 낙오병들이다.

바버 중대장은 낙오병들을 버리지 않는다.

포로로 대우해서 데리고 간다.

별 것 아닌 장면이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꽤나 맛깔스럽게 연출했다.

총 한 방 안 쏘고도 3분여를 쫄깃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물론 연출만 가지고는 안 된다.

배우들이 류지호가 원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주었고, 나중에 편집에서도 류지호의 연출을 잘 받쳐주어야 한다.

<Christmas Cargo>는 전편에 걸쳐 이런 식이다.

얼핏 보면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주인공들과 함께 전쟁터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만 명이 어울려 총격전과 포격전 등 화끈하게 때려 부수는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전투장면이 많은 영화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Christmas Cargo>다.

방금 중공군 낙오병 발견 씬에서도 마찬가지다.

총 한 방 안 쏜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간다.

미공군 정찰기다.

아군임에도 F중대는 허겁지겁 다시 몸을 피한다.

중공군만 죽었구나 눈을 꽉 감고, 산길에 우두커니 서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허무해질 때.

방금 머리위로 지나갔던 아군 전투기들이 장진호를 가운데 두고 저 멀리 눈앞에 있는 산을 향해 폭탄을 투여하거나 네이팜탄을 퍼붓는다.

카메라는 클리프 레저와 조현석 옆에서 동료 시점이 되어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

관객을 현장에 동참시키는 연출이다.

중대가 중공군 낙오병을 데리고 서둘러 지역을 이탈한다.

그들의 등 뒤로 중공군이 사격을 퍼붓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만 들리고 실제 피탄 장면은 안 보여준다.

그럼에도 마치 한바탕 전투를 치룬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적어도 영화 러닝타임 20분까지는 이렇다 할 전투장면이 없다.

대신 항공지원을 암시하는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상공을 지나쳐 간다든가.

하갈우리 캠프 전방의 포대에서 포병들이 주기적으로 포탄을 발사한다든가.

그런 식으로 실제 전쟁터 한 가운데 있음을 꾸준히 암시할 뿐.

영화가 비장하지는 않다.

생사에 갈림길에 놓인 처절한 투쟁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전쟁이 일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침에 일어나 점호하고, 식사하고, 포병은 포대로 출근해 포를 발사하고.

사단장 올리버가 지시한 속도대로 절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작전지역을 행군하고, 그러다 뜻하지 않은 중공군을 만나고, 나무하러 나온 주민을 만나고, 때가 되면 C-레이션으로 식사를 하고.

전투기도 날아다니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포격이 벌어지긴 한다.

감독은 차라리 추위를 강조하는데 더욱 공을 들이는 것 같다.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주인공이 혹한과 야생에서 처절한 고생을 하는 것을 감독이 변태처럼 담담하게 담아낸 것처럼.

<Christmas Cargo> 역시 그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독한 추위, 험준한 개마고원 지대를 Eye-MAX에 담고 있다.

겨울에는 사람이 도저히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것 같이.

그걸 지겹게 강조한다.

물론 편집에서 대부분의 촬영 부분이 잘려나갈 테지만.

적의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 동상과 굶주림과 피로로 죽어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실감나고 괴로운 법이다.

<닥터 지바고>를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리지널 70mm 상영관에서 관람하게 되면 장대한 서사와 함께 압도적인 영상미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Christmas Cargo> 역시 작은 화면과 사운드로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리니절 Eye-MAX로 관람하게 되면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로 인해서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가 있다.


[도쿄에 있는 사령관은 전장 상황을 알고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일부 미군 병사가 맥아더를 원망하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미해병 1사단의 일부가 장진호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북한군 잔당이나 중공군의 저항이나 기습은 없었다.

무난하게 진군했다.

그렇게 예정된 재앙이 서서히 10군단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1950년 11월 24일.

연합군은 거대한 인공호수 장진호를 중심으로 서쪽에 유담리, 장진호 북쪽, 동쪽의 진흥리에 나누어 배치되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이 범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는 줄도 모르고.

도쿄사령부에서 맥아던 사령관이 속편한 소리를 했다.

이 말이 미국의 주요 신문에 실렸다.

그리고 전선의 병사들에게까지 전해졌다.

하갈우리에서 10군단을 지휘하는 알몬드 장군은 맥아더의 충신답게 각 부대 지휘관을 닦달했다.

반면에 올리버 사단장은 불길함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마침내 11월 25일.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서 한국전쟁에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진호 전투의 막이 올랐다.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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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14 9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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