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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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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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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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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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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Christmas Cargo.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Christmas Cargo>가 미국방부로부터 정식으로 협조를 받게 된 후로 류지호와 앨런 포스터는 미국방부 산하 특별부대인 ‘엔터테인먼트 부대’를 방문했다.

담당자들과 스토리에 관해 토론했다.

본래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엔터테인먼트 부대‘의 담당자가 관여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Christmas Cargo>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심사를 받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나, 혹은 미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진 않았는지, 미국방부 입장에서는 검열 아닌 검열을 했다.

나중에 영화 크레디트에 미국방부와 해병대 지원 작품이란 문구가 달리기 때문에 해병대도 영화 내용을 두고 성가시게 굴기도 했다.


“맥아더 원수와 알몬드 소장이 전략적인 판단에서 실책을 저질렀다고 평가를 받는 면이 없진 않지만, 제발 멍청한 군인으로 묘사하진 말아주십시오.”

“그들이 저지른 실책은 후대에 최종 결과를 가지고 평가를 한 것일 뿐. 당시에 그들이 수립한 군사작전이 무조건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중립적인 견지로 영화를 제작해 준다면 저희로서는 이 영화에 대해 따로 권고할 사안이 없습니다.”


트집을 잡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본래 ‘엔터테인먼트 부대‘에 접수되는 수십 편의 할리우드 스크립트들에는 계급이 잘못 표현되어있거나 무기나 작전 내용이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소령급의 담당자가 수정을 요구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미국방부 엔터테인먼트 부대는 <Christmas Cargo>에 자문역으로 육군 중령을 파견했다.


“다만 우리 병사들의 진한 전우애랄까 소명의식, 용맹하게 적들과 맞서는 장면이 몇 장면 더 들어간다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미국방부와 해병대는 <Christmas Cargo> 스토리에 관여하고 싶어 했다.

당연한 거다.

육군에서는 군대를 지원해 주고, 해군은 함선을 지원해주고,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해주고, 군사자문단을 촬영장에 상주시켜주기로 국방부와 계약했기에.

그들은 스토리에 대해 관여할 권리가 있었다.

류지호는 열린 자세로 들어주는 척 했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대로 찍을 예정이지만.

영화 속에서 맥아더와 알몬드 등이 다소 오만하게 묘사 된다.

그렇다고 어리석거나 멍청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들은 한국 북부 지역을 몰랐고,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었다.

결국 많은 전사상자를 내고 후퇴했지만, 철수작전만큼은 성공했으니까.

스크립트만 놓고 보면 미군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초고를 쓰기 한참 전부터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었던 류지호는 생존 노병들로부터 많은 고증을 받았다.

당시 군대와 류지호가 경험했던 군대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두 번의 군경험이 밀리터리 영화 스크립트를 쓰는데 도움이 됐다.

감독이 한국인이다.

언어적인 왜곡이 있을 턱이 없다.

중국과 일본풍의 요상한 의상이 등장할 리가 없다.

동남아시아계 배우가 한국인으로 등장하지도 않을 것이고.

해병대 F중대와 함께 또 미육군 7사단 31특임전투단의 병사로 출연하는 배우 전부가 실제 해병대 교관들로부터 모처에서 훈련을 받았다.

비록 보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안 받은 것과 받은 것은 차이가 크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F중대장으로 출연하는 클리프 레저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이 정예 해병대가 된 듯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배우들이 유격병들의 불문율을 외쳐댔다.


[단 한명의 전우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능글맞게 구는 배런 랜프로조차 정색하고 그 같은 말을 할 정도였다.

보름 동안 함께 부대끼면서 전우애 이상의 교감을 느낀 듯 보였다.


“반항적인 십대처럼 굴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하네.”


이번 촬영은 장진호 전투 당시처럼 추위와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아이오와주의 겨울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고 추웠기 때문이다.

눈도 자주 내린다.

기온은 영하 20~30도를 거뜬히 넘는다.

한국은 이 정도까진 아니다.

그런데 겨울철의 황매산 꼭대기는 결코 만만하게 볼 추위가 아니다.

아무리 비싼 돈 받고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배우들이 추위 속에 오랜 시간 노출되다보면 짜증을 넘어서 파업을 할 수도 있다.

최대한 배우들의 컨디션을 세심하게 살펴가며 촬영을 하겠지만, 부디 배우들도 많이 받은 만큼 추위 속에서도 최선을 다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는 저기 제라드 깁슨인데....’


이전 삶에서 이 시기 즈음부터 잇따른 구설수로 커리어가 ‘훅‘ 하고 망가졌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술에 취하면 주사가 장난 아니었다.

그로 인해 조강지처와 관계가 상당히 좋지 못했다.

클리프 레저의 말에 의하면 영화 촬영이 끝날 때 즈음 제라드 깁슨의 아내가 법원에 이혼소장을 낼 지도 모른다고 한다.

제라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알 수 있듯 반유대주의 성향이다.

그와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단단히 찍혔다.

<아포칼립토> 이후 제라드 깁슨이 할리우드에서 더는 감독을 못할 정도로 왕따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 출연이 막힌 상태다.

언론플레이로 인해서 영화팬과 대중들에게도 이미지가 최악이다.

어떤 면에서 제라드 깁슨 보이콧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배우를 류지호가 과감하게 기용했다.


‘술만 안마시고, 멀쩡한 상태일 때는 신사가 따로 없는데....’


어떤 면에서 그의 행태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자신이 사비를 털어 제작·연출한 영화 한 편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불편한 영화를 연출·제작했다는 이유로 어제까지 친했던 이들이 등을 돌리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집으로 이상한 단체사람들(ADL)이 찾아와 욕설을 하고, 가족을 협박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몇 번을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클리프 레저는 매우 까다로운 성격이다.

그런 녀석이 유일하게 사부로 여기는 배우가 제라드 깁슨이다.

많은 할리우드 지인들이 등을 돌렸지만, 주디스 포스터 같은 명배우와 감독들은 여전히 제라드 깁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희대의 말썽꾸러기 밥 일라이스 주니어가 <아이언맨>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먼저 축하와 격려를 보낸 동료가 제라드 깁슨이었다.

그런 강철 멘탈과 성격으로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제라드 깁슨이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라는 사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쳤다면 무너지고도 남았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제라드 깁슨을 기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자칫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반유대주의 성향으로 싸잡아 매도될 수 있기에.

JHO Company 내부적으로도 제라드 깁슨 기용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밀어붙였다.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을 할 거야. 지금까지 나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한 적이 없어. 영원히 모든 것이 아무 문제없이 잘 풀릴 거란 환상에 빠져 있지도 않고. 그런 환상 속에서 산적도 없어. 내일 당장 모든 게 날아갈 수도 있는 거니까.”


제라드 깁슨이 류지호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할리우드 A-List 배우임에도 자신이 톱스타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고 고백했다.

그저 끊이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즐거울 뿐.

간혹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것으로 행복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배우보다 감독으로 일하는 것이 몇 배 힘들지만, 결과물을 내놓고 나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고도 말했다.


“한국의 여린 멘탈의 배우들이 제라드의 그 쿨한 성격을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난 그렇게 쿨하지 않아.”

“하하. 클맆 그 녀석도 잘 좀 돌봐주세요.”

“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어. 누굴 돌볼 처지가 아니야.”

“이 업계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은 시기심으로 만들어졌어요. 또 그것으로 지탱하고 있는 할리우드란 세계에서 살고 있고요.”

“각오한 바....였지.”

“제라드는 그들이 물어뜯고 망가트리고 추락시키기 손쉬운 먹잇감이 된 겁니다. 민감한 이야기를 건드린 순간부터.”

“난 후회하지 않아. 애초에 후회할 것도 없지만.”


할리우드 일각에서는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들이 제라드 깁슨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 한다.

그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 것이 맞다.

다만 마이키 잭슨이 아동성애자라는 날조와 거짓 기사가 잊을 만하면 꾸준히 제기되는 것처럼.

류지호가 동성애자이며 레오나와의 결혼은 위장이란 뉴스가 버젓이 기정사실처럼 기사화되는 것처럼.

기득권과 결합한 언론의 농간은 일개인으로써는 도리가 없다.

일일이 따지고 들다간 속 터져 죽을 정도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앵글로색슨-유대인이 아니란 것 정도다.

그 외에는 없다.

미국의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는 극소수는 대체로 앵글로색슨-유대인이 구성원이다.

그들이 복합미디어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배출한 슈퍼스타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인 가정 출신이거나 유대인 자본의 도움으로 출세했다.

21세기는 유대인들이 암중에서 미국의 정치·사회·경제를 입맛대로 주무르던 시대가 아니다.

러시아, 일본, 영국 등 그들의 입김이 미국 정재계에 많이 들어가 있다.

유대인들이 할리우드에 압력을 가해 제라드 깁슨의 재기를 가로막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더 이상 유대인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일본 자본도 들어와 있고, 유럽의 자본도 들어와 있고, 심지어 중국 자본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동북아시아 듣도 보도 못한 나라 출신의 권력자(류지호)까지 등장했다.

할리우드는 더 이상 소수 유대자본으로 돌아가는 판이 아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LOG와 워너-타임 이사회 구성원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음모론처럼 모종의 유대계가 제라드 깁슨의 영화 출연이나 연출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 언론이 제라드 깁슨 기사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장사에 대중들이 휘둘리고 있는 것이고.

슈퍼스타라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대중들은 슈퍼스타가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몰락하고 난 후에는 냉정하게 관심을 끊어버린다.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배우를 캐스팅할 제작자는 없다.

그런데다 제라드 깁슨은 여러 사정들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급 늙어버렸다.

중요한 매력 포인트 하나를 잃었다.

그러나 연출이 제법이다.

문제는 그가 연출한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강렬하다는 점이다.

절제라는 게 없다.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감독을 맡기는 것에도 망설여진다.


“워너-타임과 기원전의 유대인 영웅을 다루는 영화를 눈의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엎어졌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제라드 깁슨을 매우 싫어하니까.

작가는 제라드 깁슨의 반유대주의 성향을 건드리며 언론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제라드 깁슨은 또 다시 반유대주의자에 천하의 인종차별주의자로 온갖 쌍욕을 먹게 된다.

결국 준비하던 영화에서 하차하고 만다.

월트 윌리스는 또 어떤가.

할리우드에서 떠도는 소문들, 영화잡지에 기사화된 증언들, 타블로이드 기사들.

그런 걸 믿는다면 결코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실제 만나보면 동네 참견쟁이 아저씨 같다.

과거 한창 잘 나갈 때는 그를 통제할 감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스타병이 지독해서 안하무인이었다.

나이를 먹고 한 물 간 걸 인정해서일까.

어깨의 힘을 많이 뺐다.

과묵하고 냉소적일 것 같은데, 은근히 수다스럽다.

가볍게 쫑알대는 타입은 아니다.

낮고 조용히 이야기 하는 스타일이다.


‘라떼를 좋아해서 탈이지....’


아직도 왕년에 잘나갔던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게다가 월트 윌리스는 이혼 이후 화려한 여성편력을 과시하고 있다.

심지어 유력자들에게 콜걸을 공급해 주는 슈퍼마담 미첼 브라운의 주고객 중 한 명이라는 소문까지 있다.

이 시기에는 2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모델과 연애중이고.


‘점차 두 배우가 왕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배우들이 되어가는 거지....’


<다이하드>와 <리셀 웨폰>은 같은 해에 개봉되었다.

한때 두 영화는 할리우드 아날로그 액션영화장르의 교본이 되었다.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 때문에 삶이 망가지기도 한다.

실수를 한 후의 행동에서 진짜 인간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제라드 깁슨의 실제 인간성.

반유대주의 성향.

류지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그는 배우로써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Christmas Cargo>에서 필요한 배우다.

그는 곧 자신이 한 행동들을 후회하고 반성하게 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제라드 깁슨은 당장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전과 달라진다.


‘부디 <Christmas Cargo>를 촬영하며 제라드 깁슨에게도 Miracle of Christmas가 이루어지길.’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더 늦기 전에.

선행도 베풀고.

논란이 된 부분도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돌파하는.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감독이자 배우로 재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 ❉


크랭크 인을 이틀 앞 둔 날이다.

파커 가문 사유지에 재현해 놓은 하갈우리 미해병대 캠프 야전막사 중에서 가장 큰 막사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다.

막사 중앙에 충무로 영화판에서나 볼 법한 고사상이 차려져 있다.

웃는 돼지머리까지 떡하니 가져다 놓았다.

류지호를 비롯해서 앨런 포스터, 한국출신 배우 두 명, Vic&Jay 한국인 스턴트맨, 한국계 제작부원들이 모여서 <Christmas Cargo> 무사기원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미국 스태프 중에서 터커 레이튼 같은 오래 함께 한 이들도 참석했다.

<REMO> 때부터였다.

미국 스태프들이 고사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것을 우려해서 따로 조용히 고사를 지냈다.

고사 때문은 아니겠지만, 영화를 하면서 큰 사고는 없었다.

액션장르를 많이 했는데도 대형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인지 류지호의 할리우드 사단 중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도 고사에 참석하고 있다.

떠들썩하게 고사를 지내자니 구설수에 오를 것이고.

안 하자니 찝찝하고.

따라서 지금까지는 LA의 류지호 전용 세트장에서 몇몇 사람들과 간소하게 고사를 지냈다.

이번에는 크랭크 인을 아이오와주에서 하게 되어서 하는 수 없이 야외 세트에서 조용히 지내고 후딱 치우려고 했다.

참고로 앨런 포스터는 처음부터 한국식 고사문화에 거부감이 없었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별의 별 루틴이 다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냥 하자.”


그는 불교신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교사상에 심취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앨런 포스터가 류지호처럼 절을 하는 것은 아니다.

향 정도는 피웠다.

이전 삶에서, 공진형 감독이 <설국열차>를 촬영하기 전에 아이패드에 돼지머리 사진을 띠우고 고사를 지냈다는 에피소드가 제법 유명했다.

빈센트 허트경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고도 하고, 불교신자인 크리스토퍼 에반은 절까지 했었다.


“디렉터가 촬영장에서 고대의 의식을 치른다고?”


<Christmas Cargo> 제작진이 지내고 있는 와콘의 호텔에서 소문이 돌았다.

류지호가 종교적 행사를 거행한다는 소문이었다.

호기심을 느낀 배우들이 하갈우리 세트장으로 몰려왔다.


“.....!”


할리우드 배우들이 처음으로 고사란 것을 구경했다.

고사 경험이 많은 류지호가 고사 집례를 도맡아서 했다.

뭔지 모르지만, 배우들이 보기에 어떤 경건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모두가 참견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류지호가 고사 지내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빈센트 허트경이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한 채 고사상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각 나라들의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접 구경하거나 관련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이기도 하고.


“천지신명이시어. 새롭게 촬영에 들어가는 <Christmas Cargo>를 굽어보시어. JHO 픽처스에 좋은 기운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저희가 촬영하는 영화가 세계 도처에서 환영받도록 해주시고 그 이름 드높이 휘날리게 하시어.....”


류지호는 배우들을 의식해서 축문을 영어로 바꿔서 읽었다.

즉석에서 바꾼 것이라 어딘지 어설펐다.

그럼에도 특유의 낮고 묵직한 음성으로 인해 목사 설교 못지않게 들렸다.


“아울러 <Christmas Cargo>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그 가족에게도 건강과 행운을 내려 주시옵소서. 상향(尙饗).”


고사를 모두 마치고 류지호가 축문을 태웠다.

빈센트 허트경은 고사 내내 감격했다.


“아... 아름다운 광경이다....”


눈물까지 글썽였다.

누구도 빈센트 허트경을 놀리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배우들의 기행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한국인들은 늘 관행적으로 하던 일이라 크게 감동할 이유가 없다.

하자니 번거롭고 안 하자니 신경 쓰이는.

딱 그 정도랄까.


“Jay가 이런 걸 하는 걸 본 적 있어?”


클리프 레저의 물음에 배런 랜프로가 대답했다.


“아니, 나도 처음 봐.”


일부 젊은 배우들도 호기심이 일긴 한 모양이다.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장엄한 광경은 아니었는데.

류지호조차 조금 당황했다.

고사가 마무리 되고, 앨런 포스터가 제법 능숙하게 막걸리를 휘휘 흔들어댔다.

이번 고사를 위해 특별히 한국서 공수해 온 귀하신 본토 막걸리다.

빈세트 허트경이 류지호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고사의 유래부터 역사적·신화적 설명을 부탁했다.

류지호가 알 리가 없다.

대신 고사상에 올리는 돼지머리에 대해서는 아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돼지는 동양에서 지신(地神)을 상징하는 동물이에요. 또 다산을 상징하기도 하죠. 동북아시아에서 저금통을 돼지모양으로 만드는데, 돼지의 한자 돈(豚)자가 한국어의 ‘머니‘에 해당되는 돈과 소리가 똑같아요. 또 돼지 코가 크고 개방되어 있잖아요. 돈 냄새를 잘 맡아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네요. 돼지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간 모습이 마치 웃는 것 같다고 해서 제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린다고도 하고.”

“한국인들은 큰일을 벌이기 전에 매번 이런 의식을 치루나?”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하곤 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이사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또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에서 주로 하는 편이에요.”

“그럴 때마다 저 돼지머리를 가져다 놓고....?”

“정화수라고 해서 맑고 깨끗한 물을 떠놓기도 하고, 북어를 놓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 고사를 지내냐 뭐 그런 것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두런두런 빈센트 허트경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배런 랜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Jay! Korean Rice Wine 더 없어?”


어릴 때부터 류지호와 어울리며 막걸리나 동동주를 제법 마셔본 경험이 있는 배런 랜프로다.

막걸리(Makgeolli)라는 발음이 어려워 일본식 표현인 Makkoli라고 발음하곤 했는데, 한인 중에 누군가가 Korean Rice Wine이라고 알려준 모양이다. 교포들 사이에서 막걸리를 Pure Unfiltered Sake나 Makori로 소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 다 일본식 표현이다.

이 시기까지 막걸리의 영문표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Korean Rice Wine을 사용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국 술이라는 걸 명확히 하는 표현이니까.

암튼 이번 고사를 위해서 한국에서 넉넉하게 한 짝(20병)을 보내왔다.

십여 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봤는데, 예상치 못한 구경꾼들로 인해서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막걸리를 나눠 마신 배우들이 숙소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핵심 헤드스태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촬영지를 둘러봤다.

조감독 터커 레이튼은 <The Killing Road>부터 십년을 훌쩍 넘게 류지호의 영화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사실 터커 레이튼 정도 주급을 받는 조감독은 굳이 감독 데뷔를 할 필요가 없다.

어지간한 감독보다 수입이 많으니까.


“점심까지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며 눈발이 날리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스키라도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클 리바가 며칠 전을 회상하며 한시름 놨다는 듯 말했다.


“크랭크 인이 다가오면서 눈이 오지 않아 걱정을 했어. 촬영을 앞두고 절묘하게 눈이 내려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조감독 터커 레이튼이 말을 받았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눈이 녹고 다시 내리고를 반복해서 강설기를 대규모 동원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원래 눈이 많은 지역이란 걸 알고 있었잖아. 일주일 촬영이 연기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고.”


일행이 막사 지역을 빠져나왔다.

언덕 하나를 넘어갔다.


“.....!”


그리고 마주한 풍경은 마치 캠핑장을 방불케 했다.

수십 대의 캠핑카와 트럭들이 언덕 너머에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스태프 실, 소품창고, 화장실, 식당 등 각각의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주연 배우들에게는 각기 하나의 캠핑카가 따로 주어진다.

다만 촬영장비차, 발전차 같은 촬영지원차량은 이곳에 없다.

카메라를 비롯한 고가의 장비와 소품은 와콘시에서 JHO Security Service 보호 아래 보관중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간 류지호 일행은 광활한 야외세트 현장을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미술팀원들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Christmas Cargo>에 참여하는 미술팀 인원만 100여 명에 이른다

이곳 세트 작업에만 건설책임자(Construction Coordinator)를 중심으로 Carpenter(목수), Key Scenic artist(세트 표면처리 담당), Painter, Plasterer(미장), Sculptor(조각), Greensman(조경담당) 등으로 세분화 되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세트 건설부는 도면에 따라 오로지 세트 제작만 한다.

세트 제작이 끝나면 Set Decorator가 세트장을 꾸민다.

실제 촬영이 개시되면 세트 내의 소품을 움직이는 파트가 또 따로 있다.

부서별로 업무와 책임이 명확하기에 철저하게 자기가 맡은 임무만 수행한다.

다른 파트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세트장 바닥에 다른 부서가 흘린 드라이버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식물 담당이 아닌 미술부원이 화분을 움직이는 일은 없다.

모두가 자기가 할 일만 하는 곳이 할리우드 촬영현장이다.

다만 독립영화 현장에서는 안 그런다.

내 일 네 일이 없다.

서로 도와가면 작업한다.

암튼, <Christmas Cargo>는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미술 부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평원 곳곳에 세워놓은 가로세로 수십 미터짜리 대형 광고판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호수 너머 눈 덮인 한반도의 민둥산 풍경이다.

어떤 광고판에는 산 정상이 폭격에 뭉그러져 있는 것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모두 영화 미술 전문가들이 몇날 며칠에 걸쳐 그린 대형 풍경화다.

컴퓨터 그래픽이 보편화된 시대.

이번 영화 촬영장은 시대를 역행하는 듯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류지호는 스스로 Eye-MAX 영화라고 자신 있게 포스터에 마크를 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1.43:1 포맷으로 최소한 90%를 찍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제작비로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액수를 쓰고 있다.


‘돈도 있고 체면도 있고 다 있으니까.... 못 할 게 뭐 있어?’


최대 1,200만 달러 예산초과를 각오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올라서 현재 약 160억 원이다.

한국영화 3편을 제작할 수 있는 예산을 예비비로 책정해 놓았다.

게다가 류지호는 자신의 연출료의 절반을 제작비로 내놓았다.

그로 인해서 흥행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지분이 조금 늘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2,000만 달러 개런티를 포기하고 수익분배 계약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류지호에게 다 상관없는 이야기다.


‘내게도 저작권이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수익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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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만수무강(萬壽無疆). (2) +3 24.03.28 1,760 84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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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끝났을 때.... +5 24.03.25 1,762 92 24쪽
810 기를 쓰고 흥행시킬 생각이다! +8 24.03.23 1,737 94 26쪽
809 Christmas Cargo. (12) +9 24.03.22 1,637 89 27쪽
808 Christmas Cargo. (11) +4 24.03.22 1,469 69 26쪽
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8 24.03.21 1,656 85 23쪽
806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492 78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597 85 26쪽
804 Christmas Cargo. (8) +6 24.03.20 1,513 73 23쪽
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667 88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728 95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689 101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618 91 23쪽
799 Christmas Cargo. (5) +4 24.03.15 1,485 71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638 86 25쪽
» Christmas Cargo. (3) +4 24.03.14 1,545 81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11 87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698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34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14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82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58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37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894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52 91 27쪽
787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892 94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903 8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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