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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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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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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Cargo.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그동안 워킹타이틀 <Sailing for Life(생명의 항해)>로 불리던 류지호의 11번째 장편영화의 정식 타이틀이 확정 되었다.


<Christmas Cargo>!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암호명이었다.


- Hungnam(흥남).

- 17days of Winter(혹한의 17일).

- Miracle of Christmas(크리스마스의 기적).

- America's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


후보에 올랐던 제목들이었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열린 배급 회의에서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Christmas Cargo>로 확정되었다.


“UN군 작전 암호명을 가리키지만, 흥남철수 작전이 큰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크리스마스의 기적(Miracle of Christmas)을 이루어냈다는 의미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보·마케팅을 책임지는 니콜 라슨(Nicole Larson)의 말이었다.


[Merry Christmas... Baby.....]


크리스마스란 단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페이소스를 전하는 대사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흥남철수 작전 성공 보고를 받고 실제로 한 말이었다.

영화가 완전히 끝나고 에필로그 부분에서 언급된다.

류지호는 한국전쟁이 왜 미국에서 잊힌 전쟁이 되었는지를 고민해보았다.

그것을 알아야 기획의 이유가 설명되고, 제작방향이 결정되며, 홍보마케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도 지금 이 시대에 한국전쟁을 다루는 것이 미국사회와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미국인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부속 전쟁처럼 여겨진다는 점.

한반도가 종전되지 않고 휴전 상태인 것도 미국인 입장에서 어정쩡하게 느껴진다는 점.

승패가 명백한 다른 전쟁과 달리 미국이 명확하게 승리했다거나 패배했다거나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애매하다는 점.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제작자들 사이에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영웅을 부각하고, 베트남전은 미국의 자성과 성찰을 다루기 적합한 소재로 인식된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영웅담으로도 감동으로도 성찰용으로도 다루기 애매했다.

명백하게 승리한 것도 아닌데, 영웅을 등장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베트남전쟁처럼 미군과 미국 정치권을 비판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노근리 학살 사건’ 같은 당시 미군의 만행을 고발한다고 해도,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미군의 전쟁범죄만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할 공산이 컸다.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시기 미국은 풍요한 사회, 중산층의 황금기, 소비의 시대였다.

고소득자들은 대형 고급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가정 내에서 진공청소기, 세탁기, 토스터, 믹서, 다리미 등 가사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가전제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자택 소유자는 온수를 이용한 중앙난방을 설치했다.

중산층은 수영장은 물론이고 밝고 화사하며 싸며 가볍고 이동이 쉬운 새로운 스타일의 가구들로 집을 꾸몄다.

할리우드 영화는 다채로웠고, 컬러 TV에서는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런 시대 상황을 거치며 미국 시민들 입장에서 한국전쟁이 드라마틱하지도 그렇다고 미국과 정치권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애매한 전쟁이 되어버렸다.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영웅은 주로 스파이영화에서 다루어졌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일본군처럼 미국 영토를 직접 공격한 적도 없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전쟁 에피소드도 거의 없다.

심지어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는 맥아더조차 미국 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맥아더조차도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대규모 공방전의 성공은 인천상륙작전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 대체로 일방적인 전투나 전략적인 판단 실수에 따른 후퇴 같은 것들이 더 부각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미국대중에게 한국전쟁에 관심을 가질만한 매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할리우드가 한국전쟁에서 다룬 주요 소재는 언제나 ‘장진호 전투’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


그 같은 말로 정리되었다.

한국인에게 흥남철수는 한국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만.

미국인에게는 다소 치욕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맥아더 사령부의 오만과 판단미스로 인해 중공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한 면이 컸고, 중공군에 비해 월등한 화력을 가지고도 일정 기간 고전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자문을 구할 겸 올해 <The Tree of Life>를 연출한 테리 멜릭 감독을 류지호가 만났다.

테리 멜릭 감독은 사생활을 철저하게 숨기며 은둔적인 삶을 사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ParaMax가 배급하기로 한 <The Tree of Life>에 류지호의 영화펀드가 투자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잠수(?)를 깰 수밖에 없게 됐다.


“영화는 언제 볼 수 있어요?”

“글쎄....”


편집을 수시로 바꾸는 것으로 유명해서 언제 영화가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뉴 월드>에서 70mm는 어땠어요?”


2005년 개봉한 테리 멜릭의 <뉴 월드>는 폰카혼타스를 다룬 영화로 모든 장면을 70mm(실제 65mm) 포맷으로 촬영하려고 했다.

안타깝지만 일부 장면에서만 사용됐다.

70mm 포맷을 사용한 영화는 1996년 영화 <햄릿> 이후로 처음이었다.

Eye-MAX 필름 포맷은 따로 분류하기에 이런 기록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테리 멜릭 감독은 70mm 필름 포맷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현시점에서 류지호는 Eye-MAX 마스터라고 불리는 상업영화감독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테리 멜릭은 나이가 그의 절반밖에 되지 않은 류지호에게 대형 포맷 영화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반대로 류지호는 영상시인이라고 불리는 테리 멜릭으로부터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의 제작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왜 하필 전쟁영화를 하려고 해?”


기어코 할리우드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듣고 있는 질문을 받았다.

류지호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아들러씨의 전쟁영화 흥행기록을 깨 보려고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할리우드 전쟁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4억 달러 박스오피스를 거두었다.

그 영화 전까지 전쟁영화는 대박을 거두기 힘들다는 속설이 지배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주요 전쟁의 에피소드를 질릴 정도로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 라인> 이후로 더 이상 전쟁영화로 보여줄 것이 없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 소재 역시도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란 이미지와 히피, 반전운동 등으로 진부해지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과 참전군인의 PTSD를 주로 내세워서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 선입견이 관객들에게 깔려있다 보니 전쟁 영화에서 흥행대작이 나오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어니스트 코우마의 낙동강 탱크 전투를 다루는 것이 어때?”


이전 삶에서 <퓨리>라는 영화가 2014년에 개봉했었다.

한국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전투가 모티브가 되었던 영화였다.


“그 소재도 언젠가는 하게 되겠죠..”


1950년 8월 31일, 낙동강 전선에서 어니스트 코우마 상사가 지휘하는 단 한 대의 퍼싱 전차가 미보병이 퇴각한 전선을 무려 9시간의 사투 끝에 지켜낸 전설적인 전투가 있다.

한국전쟁사에서 손꼽히는 전투 가운데 하나다.

소닉-콜롬비아스 픽처스에서 제작·배급했는데, 이번에는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영화를 기획·제작했던 감독이 류지호와 친구이기에.

<트레이닝 데이>, <분노의 질주> 시나리오를 쓰고 최근에 개봉한 케이아누 립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을 감독한 데이브 에이어는 류지호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류지호에게 가장 먼저 <퓨리> 스트립트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았다.

암튼 전쟁영화에 대한 기획은 별 것 없다.

전우애와 명예, 전쟁 영웅을 비중 있게 다룰 것인가.

혹은 전쟁의 참혹함, 장병들의 정신적 고통을 주로 다룰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휘관이나 부대원을 사지로 몰아넣는(fragging) 등의 광기를 부각시킬 것인가.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유럽영화에는 <지중해>,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전쟁 없는 전쟁영화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출신이니까 한국전쟁을 소재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즘 관객들은 한국전쟁을 전혀 몰라. 심지어 미국인 중 상당수가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를 걸.”

“그나마 Eye-MAX로 찍는다니까. 멋진 영상미를 기대하더라고요.”

“북미와 유럽의 관객들은 더는 독일군이나 일본군 그도 아니면 베트콩을 적군으로 보는 것에 싫증이 나있을지도 모르겠어.”

“중공군이 적군으로 등장한다고 하면 미국내 중국 견제 정서하고도 맞물려 있어서 조금은 관심을 보일지도 모르고요.”

“노스 코리아 군대는 다르게 생겼나?”

“저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아닐세. 오해하지 말게.”

“아직도 내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묻는 미국인들이 있어요.”

“그래서 꽤나 골치를 썩을 것 같은데? 전쟁의 배경과 인과를 설명해야 하니까.”

“설명 안 할 겁니다.”

“......?”

“전쟁은 전쟁이잖아요.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이나 심지어 베트남 전쟁까지.... 정치 빼고 또 서로 죽고 죽이는 것 빼고, 뭐가 남겠어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요하지. 모든 이야기가 그런 걸세.”

“만약 이번 영화가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다면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겁니다. 관객들의 이목을 끌어 수익을 올려야 하는 업계 사람들로서는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이미 나올 만큼 나온 콘텐츠에 슬슬 지겨워할 관객들에게 미군이 참전하고 적당한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전쟁의 신선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는 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몇 년 간 한국전쟁 관련 영상미디어물들이 쏟아질 수도 있겠군.”


그 정도까지는 힘들 것 같다.

기본적으로 전쟁영화는 흥행대박을 노리기 힘들다.

게다가 서구권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한국전쟁이라면 더더욱 어렵다.


“제 아무리 존경받을 만한 전쟁영웅이라도 입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관객이 진부하다고 극장을 뛰쳐나가는 시대라네.”


Chauvinism(쇼비니즘) 즉 광신적인 애국주의는 이제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적어도 서구권에서는 그렇다.


“한국전쟁에 전투부대로 참전한 국가만 16개 국가에요.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모두 자국 영화를 잘 만들죠. 특히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영국군 이야기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 하다고 봐요.”


더해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의 활약상을 할리우드 영화로 기획해 봐도 좋다.

강뉴부대 활약상을 그린 영화의 주 관객층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전쟁의 고지전 중에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 맞먹는 지독한 전투가 상당히 많다.

영화로 보여줄 것이 없어서 안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말할 것인가.

바로 그 질문이 빈약하기 때문에 못하고 있다.


“자네가 <진주만> 같은 방식의 영화를 만든다면 몹시 실망할 것 같아.”

“로맨스는 없어요. 죽거나 혹은 살거나.”

“자네는 카메라를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영화처럼 보일지 매우 잘 아는 영민한 친구야. 흥행에만 신경 써서 전투 묘사에만 집착하진 말게. 전쟁 시퀀스를 찍을 때... 그냥 내버려둬도 그 자체로 참혹하거든.”

“흥행 부문은 걱정하지 않아요.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하겠네요.”


장진호 전투가, 흥남철수 작전이, 부산입항 후 거제도 하선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묘사한 역사적 사실들이, 류지호의 연출로 가공된 것들로 기억될까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영화로 역사를 배우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아니다.

여전히 영화를 통해 역사인식을 하는 대중들이 많다.

영화를 접한 후에 몰랐던 역사에 관심이 생기는 사람도 매우 많고.

영화는 어떤 의도로 인해 선전과 선동 도구가 될 수 있다.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역사적 선입관을 심어줄 수도 있고.

얼마든지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다시 한 번 Eye-MAX를 꺼내들었다.

화려한 테크닉 대신 묵직함과 사실성이 필수적인 포맷이다.

모두가 1:43:1 화면비의 압도적인 영상미를 기대하고 있다.

그 안에 류지호 특유의 변태적인 디테일이 꽉 채워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류지호는 인위적인 미장센을 자제할 계획이다.

화면이 비어보인다면 비는 대로, 꽉 차면 차는 대로...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에 담담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놓아 둘 생각이다.


“<Christmas Cargo>.....!”


그래서 영화 제목으로 감성적이거나 메시지가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한국전쟁을 특별히 내세우지도 않고(Hungnam), 처절한 사투가 연상되지도 않으며(17days of Winter), 뻔한 휴머니즘(Miracle of Christmas)도 지양하고, 미국 관객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America's Forgotten War) 그런 타이틀이기에 선택했다.

이번 영화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참전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2차 세계대전 참전이 더욱 부각되는 편이다.

오로지 한국전쟁에만 참전했던 용사들은 미국 내 관심도가 덜했다.

한국정부는 한국전쟁 참전 미군(및 유엔 다른 참전국가 군인들)을 초청해서 한국 관광을 시켜주는 등의 보훈정책을 펴고 있다.

그 같은 사업에 류지호와 연관된 자선재단들이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그깟 관광 따위가 대수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다수 참전용사들은 한국 방문을 통해 발전된 한국을 확인하고 감격해 한다.


“정말 목숨 바쳐 지켜낸 보람을 느낀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수십 년 동안 한국전쟁 때문에 겪고 있는 PTSD가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잘 사는 나라가 된 한국을 직접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것을.

한국전쟁 참전 용사 가운데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전쟁후유증을 겪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부상당한 육체로도 고통스러운데, 정신적 상처 또한 깊은 용사들이 많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는 참전용사가 의사의 권유로 한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을 방문했다가 귀국한 후 병세가 놀랄 만큼 호전된 사례도 많다.

자신의 전우가 바로 옆에서 죽어나갔고, 누군가를 죽인 바로 그 전쟁터.

폐허였던 그 전쟁터가 수십 층 높이의 마천루가 즐비한 대도시로 변모했다.

헐벗고 굶주렸던 피란민들은 뉴욕의 젊은이들 못지않은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며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수십 년간 악몽을 꾸던 참전용사가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는 한국전 참전용사들 사이에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화다.

류지호는 윌리엄 파커를 비롯해 수많은 한국전 참전용사 노인들로부터 응원과 격려 전화를 받았다.


“네 영화로 더 이상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 아니라 기억되는 전쟁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참전용사 노인들이 한결같이 류지호에게 당부한 말이었다.

<Christmas Cargo>는 한국인 보라고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미국 사람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국가 사람들 보라고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반전 메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서구권에서 외면 받고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시시한 영화가 나와서는 안 된다.

류지호도 전쟁 시퀀스를 제법 찍어본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윌리엄 스톤, 프랭크 포드 코폴라, 스티븐 아들러 감독 등 거장들을 만나서 전쟁영화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들로부터 전쟁영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매번 영화를 앞두고 겪는 루틴.

그 지긋지긋하지만 결코 떨쳐 낼 수 없는 잡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함이 컸다.


❉ ❉ ❉


<Christmas Cargo>의 주요 출연진들이 센추리 시티 JHO Pictures로 속속 모여들었다.

류지호는 대본리딩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워낙에 특급스타들과 거물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다보니, 그들 하나하나 언론 노출을 통제하는데 애를 먹었다.

영화를 배급하는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배급팀에서도 촬영기간 내내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해 줄 것을 류지호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따라서 영화진행과 관련한 정보도 최소한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what'up?”

“Ye~ wha rup?"


클리프 레저와 배런 렌프로 등 젊은 출연진들이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처에서 진행된 해병대 훈련캠프에서 무려 보름에 걸쳐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함께 굴러서 그럴까. 젊은 배우들끼리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내가 좀 늦었습니다.”


배우들이 몰려와 인사를 건넸다.


“오셨슴까!”

“어서 오세요.”


할리우드가 아무리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대선배에 대한 존중과 예의까지 말아먹을 정도로 위계질서가 실종된 것은 아니다.

<해리포터>의 지팡이 아저씨 올리밴더, 그 배우 빈센트 허트 경(sir)이 배우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아이오와 촬영지로 곧장 가실 걸 그랬습니다. 허트 경.”

“난 괜찮습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류지호는 예의를 한껏 갖춰 빈센트 허트 배우를 대했다.

그 역시 류지호처럼 아들뻘임에도 예의를 갖췄다.


왁자지껄.


류지호의 대본리딩 장에는 한국식 ‘ㄷ‘ 테이블은 없다.

마치 파티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자유로웠다.

서로 안면이 있는 배우도 있고, 오늘 처음 만나는 배우도 있다.

초면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이었으니까.

무명의 배우들 역시 스스럼없이 할리우드 스타들과 어울렸다.

류지호는 한국에서 온 조현석과 유진우가 어색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통역을 옆에 두고 나름 활발하게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들 딴에는 할리우드 스타일, 정확히는 류지호 스타일의 리딩장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중공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특별(우정)출연하는 아시아계 배우들은 이번 리딩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과 리딩으로 맞춰볼 것이 없기도 했고, 분량도 많지 않아서 일부러 부를 필요까지는 없었다.

사실 <Christmas Cargo> 스크립트는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다이얼로그조차 100% 후시녹음을 할 예정이고.

Eye-MAX 카메라의 엄청난 소음 때문에 동시녹음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장에서의 녹음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에 쓸 순 없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동시에 녹음한 다이얼로그 사운드는 포스트프로덕션에서 다이얼로그 사운드 편집과 배우들의 립씽크 가이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암튼 다이얼로그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리딩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남은 시간은 감독인 류지호가 영화의 톤 앤 매너를 설명하고 시퀀스 별로 배우들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채웠다.

많은 배우들이 펜을 꺼내 자신의 대본에 메모를 해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류지호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할리우드 A-List 감독이다.

해외영화제 수상경력은 물론이고 이미 흥행능력까지 인정을 받았다.

명실상부 할리우드 대표감독 중에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만큼 류지호의 권위에 도전하는 간 큰 배우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월트 윌리스조차도 한껏 거드름을 피우다가도 류지호에게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할리우드에서 흑인과 아시아계만 차별 받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여성도 차별받는다.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평등한 백인이 아니다.

외국에서 온 백인들도 알게 모르게 텃세에 시달린다.

클리프 레저를 배려해서 미해병대 전우로 출연하는 배우들에 호주 출신들을 대거 캐스팅했다.

다이얼로그가 단 한마디도 없는 호주 출신 배우조차 기본기가 상당했다.

대사 한 마디 없는 배우조차 호주에서 영화와 드라마, 무대 등에서 활약하고 미국으로 넘어온 준비된 이들이었다.

기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국에서 온 젊은 배우 둘이었다.

그렇다고 한국 배우들이 기죽을 필요는 없다.


“난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치지 않아. 모두 알아서 해야 돼. 베테랑 배우들을 보고 배울 필요도 없어. 그들은 그들이고 너희들은 너희들이니까.”


두 배우 모두 어디 가서 기죽고 그런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게랄트 올드먼이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서 대사를 치고, 월트 윌리스가 리딩장 한편에 마련한 미니바에서 언더락스 위스키를 가져다 홀짝거리고, 제라드 깁슨이 호주 출신 후배들의 대사와 연기톤을 짚어주는 풍경에 바짝 쫄 수밖에 없다.

게랄트 올드먼과 제라드 깁슨은 힘 빼고 대사를 툭툭 던졌다.

마치 졸린 듯한 인상마저 들 정도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당장 한 판이라도 붙을 것 같은 묘한 긴강감을 불러일으켰다.

허트 경께서는 맥아더에 빙의라도 된 것처럼 파이프담배를 입에 물고는 버릇처럼 ‘...음’ 하는 소리를 다양한 버전으로 감독에게 들려주었다.

리딩이 지루할 만하면 배런 렌프로가 익살을 떨었다.

여지없이 폭소가 터지곤 했다.

어떤 때는 무척 산만했다.

다른 배우가 대사를 하고 있는데 감독에게 말을 시키지를 않나, 자기들끼리 언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얼핏 보면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도 없지만.

류지호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의 목소리와 작은 동작들을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조현석과 유진우가 영어로 대사를 칠 때면 통역이 이를 바로 잡아주려고 했다.

류지호가 나서서 제지했다.


“지금의 엉터리 영어가 좋아요.”


한국전쟁 당시 카투사들의 영어가 유창해봐야 얼마나 유창했겠나.

어차피 영화 속에서 두 한국 배우가 구사하는 영어는 주로 군사용어들이다.

그 외에 일상 및 감정이 담기는 다이얼로그는 모두 한국어다.

대사는 그렇게 많진 않지만.


“엎드려! 11시 방향! 속보 전진! 정지!”


리딩장이 갑자기 왁자지껄할 때는 전투장면이 펼쳐질 때다.

여기저기서 애드리브가 난무했다.

클리프 레저와 배런 렌프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연기인지 몸개그인지를 펼쳤다.


와하하.


베테랑 배우들이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류지호는 그 무질서한 분위기 속에서 조현석과 유진우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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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만수무강(萬壽無疆). (3) +3 24.03.29 1,782 88 21쪽
814 만수무강(萬壽無疆). (2) +3 24.03.28 1,760 84 24쪽
813 만수무강(萬壽無疆). (1) +8 24.03.27 1,816 80 25쪽
812 둘째 생기는 거 아냐? +9 24.03.26 1,826 92 30쪽
811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끝났을 때.... +5 24.03.25 1,762 92 24쪽
810 기를 쓰고 흥행시킬 생각이다! +8 24.03.23 1,737 94 26쪽
809 Christmas Cargo. (12) +9 24.03.22 1,637 89 27쪽
808 Christmas Cargo. (11) +4 24.03.22 1,469 69 26쪽
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8 24.03.21 1,656 85 23쪽
806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492 78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597 85 26쪽
804 Christmas Cargo. (8) +6 24.03.20 1,513 73 23쪽
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667 88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728 95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689 101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618 91 23쪽
799 Christmas Cargo. (5) +4 24.03.15 1,485 71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638 86 25쪽
797 Christmas Cargo. (3) +4 24.03.14 1,544 81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11 87 25쪽
» Christmas Cargo. (1) +8 24.03.13 1,698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34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14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82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57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37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894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51 91 27쪽
787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892 94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903 8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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