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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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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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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수석참모에게 대강 보고 받긴 했는데... Rehman Bros로부터 인수하게 되는 자산이 정확하게 뭐에요?”

“최초 협상에서는 Rehman Bros의 북미지역 브로커-딜러 사업부문을 2억 5천만 달러에,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본사 빌딩, 뉴저지의 2개 데이터센터, 캐나다 지점과 아르헨티나 지점 등 모두 17억 달러에 인수할 계획이었어.”


17억 달러.

Rehman Bros 북미 사업에서 부실이 없는 것만 골라낸 것으로 산출한 금액이었다.

비밀이 꽤 많은 금액 산정이었다.

찾아보면 좀 더 있을 수 있다.

다만 북미 사업 규모만큼의 자산을 차지하는 해외 사업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금액이 비교적 적었다.

적다는 것은 류지호의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파산법원에서 승인이 떨어지면 좀 더 인수가격을 낮출 수도 있어.”


류지호가 UCLA 메디컬센터에서 아내의 출산을 함께 하는 사이 미국의 금융시장이 엄청나게 출렁였다.

그 여파로 Rehman Bros의 시가총액이 더 하락했다.


“양측 변호인단의 조정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20억 달러 선까지 인수금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Neuberger Berman의 실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단할 순 없지만.”


장부상으로는 헐값에 가져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의 38층 본사 빌딩의 시세는 대략 9억6,000만 달러.

북미 브로커-딜러 사업권과 두 곳의 데이터센터, Rehman Bros의 우수한 인력까지 고려하면 알짜 중에 알짜 자산을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챙기는 셈이다.

덤으로 158년 역사와 세계적인 명성까지.


“아참, 맷이 Neuberger Berman도 인수해야 한다고 해서 좀 더 돈을 써야할 거야.”

“사모펀드에요?”

“Rehman Bros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마자, 임직원들이 주식을 사들여 간신히 살려놓은 자회사라고 하더군. 실사결과 Rehman Bros 자산 중에서 제법 깨끗해. 그래서 인수금액이 조금 더 비싸지거나 파산 경매에 붙여질 가능성도 있어.”


류지호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전 삶에서 Rehman Bros의 계열사였던 Neuberger Berman은 금융위기를 극복한 후 전 세계에서 2,700억 달러를 굴리는 투자회사로 성장했었다.

2010년대 중반 월가의 유능한 펀드매니저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상당한 실적을 쌓았었다.

영화 <빅 쇼트>의 실재 인물 중 한 명인 아이스먼이라는 스탠리모웬 산하 헤지펀드의 펀드 매니저도 Neuberger Berman에 합류할 정도였다.


“Jay. 나 좀 도와줘.”

“제가 할 일은 없지 않나요?”


류지호는 금융 부문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리틀 버펫이라고 불리곤 있지만, 미국 금융계의 거물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이번에 G&P와 GARAM을 합병시키고 Rehman Bros의 북미 사업까지 인수해서 4위 투자은행을 만들 생각이다.”

“언제는 G&P에서 손을 떼고 싶다고 하시고선....”


왜 일을 더욱 크게 벌이냐는 투덜거림이었다.

제임스 파커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이 방법이 내가 G&P 업무에서 멀어지는 유일한 길이니까.”

“미국 4위 투자은행은 세계 4위 투자은행이란 의미도 됩니다만. 더 업무에 치일 것 같은데요?”

“아니야.”


매스컴을 통해 보이는 글로벌 투자은행 CEO들이 여유롭고 차분해 보이지만, 실제 업무량이 엄청나다.

하루에도 수 십 조가 오가는 곳이 미국 월가다.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허투루 쓸 수도 없다.

실적 압박으로 언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를 정도로 피를 말릴 수밖에 없다.


“너와 내겐 아주 유능한 녀석을 친구와 형제로 곁에 두고 있잖아.”

“....?”

“우리는 양 사의 합병으로 탄생할 투자은행 이사회에 들어갈 거야. 최고경영자 일순위가 누구겠어?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매튜 그레이엄을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임명하게 되겠지. 녀석은 아내도 딸도 심지어 손녀도 없어. 일에 파묻혀 지내도 미움 받을 일이 전혀 없지. 어때? 내 말이 맞지?”

“....!”

“이사회의장은 네게 양보 못할 것 같다.”


류지호로서는 전혀 탐이 나지 않는 자리다.


“그 정도 직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문에서 가만 안 둘 테니까. 앞으로 시아의 할아버지 노릇만 열심히 하면서 살 거다. 사위인 너도 내 계획에 무조건 함께 해야 돼.”


정리하자면, 제임스 파커는 G&P의 CEO겸 회장에서 자의로 물러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Rehman Bros 인수를 빌미로 파커가문에서도 금융 비즈니스 부문에서 신망을 얻게 된 매튜 그레이엄을 최고경영자에 앉히고, 본인은 이사회의장만 맡는다는 계획이다.

매튜 그레이엄이라면 양쪽 가문은 물론이고 월가에서도 별다른 말이 나올 일이 없긴 했다.

여전히 ‘망나니‘ 꼬리표가 붙어있긴 하지만, GARAM은 세계적인 금융사로 키워낸 성과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류지호로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G&P와 GARAM의 합병이 가능하냐는 문제다.


“가능해."


최대 주주인 류지호가 찬성한다고 해도 G&P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제임스 파커의 장담처럼 이사회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지난 번 가문회의에 너도 참석했잖아.”


끄덕.


당시에 롱아일랜드 대저택을 상속받게 되어서 류지호와 레오나가 얼마나 놀랐던가.


“그 날을 기점으로 사실상 G&P가 내 몫으로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야. 이사회도 내 사람들로 전원 교체되었단다.”

“제 의견은요?”

“이번 기회에 G&P와 GARAM에 너저분하게 분산되어 있는 네 자산들 정리 좀 해보자.”


두 곳에는 류지호 명의뿐만 아니라, 차명으로 되어 있는 온갖 펀드가 수십 개가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위해 개설한 계좌도 있고, 세금문제 때문에 만들어놓은 펀드도 있고, 할리우드 영화에 투자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도 여러 개가 있다.

얼마나 어떤 형태로 펀드들이 조성되어 있는지 류지호도 모두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챕터 11로 상장폐지 되면... 재상장 할 거죠?”

“5년 안에 다시 공시할 계획이야.”

“...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JHO Company는 몰라도 금융사업 쪽은 뉴욕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할 생각이었고, 그와 관련해 매튜 그레이엄도 암암리에 준비를 하고 있던 차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춰 그 문제가 크게 대두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Rehman Bros 알짜 자산 인수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더 큰 이슈는 G&P와 GARAM의 합병이다.

두 금융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무려 1조 7천 억 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대형 글로벌 투자회사가 탄생하게 되니까.

Rehman Bros 북미사업 인수와 상관없이 단숨에 글로벌 탑5에 진입하게 된다.

제임스 파커가 장담한 것처럼 Rehman Bros의 북미 사업권과 캐나다 지점을 흡수하고, 남미 일부까지 얻게 되면 해외영업력을 잃게 됨으로써 글로벌 4위 투자은행의 지위를 잃게 될 수도 있는 Rehman Bros가 기존의 순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세 개의 금융회사의 합병비율이 어떻게 산정될지 당장 알 수 없다.

거칠게 계산한 류지호의 지분가치가 최소한 100억 달러다.

참고로 2008년 1월 기준 Rehman Bros의 시가총액이 300억 달러가 넘었다.

운영자산은 겨우(?) 7,000억 달러였다.

반면에 합병 후 탄생하게 되는 투자은행의 운영자산은 2조 달러를 넘어간다.


“컨소시엄에 승산은 있구요?”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 영국의 Barcleez는 Rehman Bros 북미 사업을 운용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갖고 있지 않아.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하단 얘기지.”


Barcleez Group은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은행이다.

설마하니 Rehman Bros의 부실 자산을 떠안을 수 없을까.


“명성과 달리 영국에서도 비교적 자본 상태가 취약한 은행에 속한단다. 우리가 아니라 Barcleez가 Rehman Bros의 북미 사업을 인수한다면 상당한 자금을 조달해야 할 거야. 당연히 연준에서는 도와주지 않을 테고.”


30억 달러 수준이라면, 류지호가 보기에도 글로벌 4위 투자은행의 알짜 사업을 인수하는 인수금액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로인해 떠안게 될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신 아르헨티나 사업권은 포기하는 걸로 해요. 캐나다 지점 정도는 괜찮지만.”

“뭐 그러던지....”


류지호보다 훨씬 노련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한국의 산업은행처럼 무모하고 허술하게 Rehman Bros 인수에 나섰을 리가 없다.

매튜 그레이엄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데, 장인까지 개입된 M&A다.

류지호가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상황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을 터.


“저는 비서들더러 두 회사에 난잡하게 만들어 놓은 계좌와 펀드들 정리하라고 시키면 되는 거죠?”

“조세회피처로 옮기던가, 청산하던가.”

“알겠어요.”


Rehman Bros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동시에 미국 국채시장의 주 딜러다.

글로벌 본사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고, 런던과 도쿄에는 지역 본사가 있다.

한국에도 1990년 서울연락사무소를 열었는데, 2002년부터 증권 지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Rehman Bros의 해외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0% 이상이었다.

외견상으로는 해외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 ❉


9월 20일.

뉴욕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Rehman Bros 인수 사안을 승인했다.

Rehman Bros Inc, Neuberger Berman Inc. Rehman Bros Canada Inc, Rehman Bros Sudamerica 등 Rehman Bros의 북미 핵심 사업권과 자산, 맨해튼 38층 본사 건물, 뉴저지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두 곳을 29억 달러에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파산만 아니었다면 110억 달러 규모였을 미국 내 주요 사업부문을 헐값에 인수하게 된 것이다.

대신 Rehman Bros의 9천여 명의 직원 고용을 승계하고, 컨소시엄에서 희망퇴직자에게 퇴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 680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떠안지는 않았다.

Rehman Bros 파산 법원 청문회에 참했던 매튜 그레이엄은 기존 Rehman Bros의 핵심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기존 영업활동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긴급 유동자금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인수는 우리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기회이며, 이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최고의 팀을 갖추게 됐습니다.”


매튜 그레이엄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루아침에 JPM Chase Bank, NYC은행, 스탠리모웬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월가의 투자은행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이번 M&A를 바라보는 월가에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미스터 할리우드가 알짜배기 부문만 헐값에 매입해서 도약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인지.

무모한 도박이었는지.

전 세계 주요 경제신문과 경영전문지에서도 이번 인수를 놓고 저마다 분석과 비평을 내놓았다.


[천재적인 거래다. 미스터 할리우드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일 것이다.]

[명백히 미친 짓! 수백 억 달러의 부실을 떠안으면서까지 Rehman Bros를 품에 안은 것은 제 정신 가지고는 할 수 없는 무모한 도박이다.]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호평과 비판이 엇갈렸다.

이번 인수는 류지호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

모든 것을 장인과 의형이 다 했다.

그럼에도 스포트라이트는 류지호가 받았다.

그 부분에서 장인과 의형 모두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한 가족인 것을.

누구의 공인지 따져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여담으로 2년 후에 Rehman Bros 주주들이 이번 거래에 대해 절차가 불완전했다는 점을 이유로 컨소시엄과 Rehman Bros의 주요 주주 및 채권자 등을 상대로 계약 취소 소송을 걸게 된다.

미국 연방법원 뉴욕남부 지방법원에서 열린 소송에 류지호가 직접 참석하게 된다.


[본 법정은 Rehman Bros 자산 매각의 결과를 뒤집을 만한 요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록 매각 절차가 불완전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Rehman Bros의 몰락이라는 비상 상황 하에서는 적절한 조치였다.]


판결문의 일부다.

판사는 Rehman Bros와 컨소시엄의 거래로 인해 금융시스템 상의 위험이 완화된 측면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해당 거래 당사자들에게 유익했다고 지적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 금융업계 내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를 유지했던 것을 거론한다.

류지호는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도 않은 M&A 건으로 두 차례나 법원에 출석해 관련 진술을 하는 등 귀찮은 일을 감수한다.

당연히 감수할 만한 귀찮음이다.

Rehman Bros 북미 사업은 1년 만에 정상화 된다.

2년차부터 흑자를 기록하게 되고....

암튼 G&P와 GARAM 컨소시엄에 Rehman Bros 북미 사업을 빼앗긴 Barcleez Group은 유럽과 아시아 법인으로 관심을 옮겼다.

Rehman Bros의 유럽법인 인수에는 이미 오사카노무라증원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Rehman Bros 아시아 법인 인수전은 점입가경이다.

Stand Chartered, 중신증권, 오성증권까지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뜨거웠다.

오성증권이 공식 부인하면서 가장 먼저 인수전에서 떨어져나갔다.

오사카노무라증권은 그동안 일본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시아 시장 IB부문에서는 강자였지만, 글로벌 IB들과 경쟁에서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노무라의 Rehman Bros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법인 인수는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만한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를 통해 노무라 홀딩스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영업 범위를 크게 확장시킬 것이며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는 꿈을 실현시킬 만한 규모와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결국 Rehman Bros의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법인의 최종 인수자는 오사카노무라증권이 차지했다.

Rehman Bros 유럽 법인 인수 금액은 단 돈 2달러.

GARAM Invest의 경우처럼 전직원 고용 승계 조건이 달렸다.

아시아 부문은 2억 2,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인수금액에는 Rehman Bros의 거래 자산과 부채는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아시아 11개 지부와 그곳에 근무하는 3,000명의 Rehman Bros 직원들에 대한 승계만 이루어졌다.

Rehman Bros의 파산 경매가 진행되며 청산이 이루어지는 동안 한국의 여론이 꽤나 술렁거렸다.

산업은행이 Rehman Bros의 어마어마한 부실까지도 몽땅 떠안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던 그 무모함과 황당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GARAM Invest가 한국의 투자은행이 아니라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최후의 웃는 자가 승자다.

지금 당장은 오사카노무라증권이 G&P와 GARAM 컨소시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Rehman Bros의 아시아와 유럽 법인을 인수해 승자처럼 보이지만.


‘유럽에는 그리스라는 시한폭탄이 도사리고 있지....!‘


당초 기대와 예상과 달리 오스카노무라증권은 Rehman Bros 인수 이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겠지만, 산업은행이 Rehman Bros를 인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것도 최초 협상안으로 인수했다면.

그로인해 수 천 억 달러의 부실을 모두 떠안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류지호는 이번에도 기분이 몹시 씁쓸했다.

자신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조국의 취약성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Rehman Bros를 인수하기 전에 국내 자본시장법이나 개정하지....’


재벌과 금융 카르텔의 편의만 봐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한국의 자본시장법을 획기적으로 개정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는 절대 국제적인 투자은행이 탄생할 수가 없다고 류지호는 단언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류지호가 주주인 컨소시엄에서 Rehman Bros의 알짜 자산을 헐값에 인수했다.

사실 말이 되지 않는 거래다.

류지호는 복잡한 금융 분야 수법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금융 바보는 아니다.

인수자가 필요한 자산만 쏙 빼서 매입하고 남은 것은 파산 절차를 감독하는 기관에 떠넘기는 인수 방식.

인수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인수는 흔치 않다.

Rehman Bros에서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자산의 규모는 700억 달러.

갚아야 할 채무의 가치 역시 700억 달러.

이는 Rehman Bros의 파산보호신청 이틀 전 수백 명의 금융전문가들이 동원되어 마련한 딱 맞아떨어지는 자산과 부채의 조합이었다.

즉 파산 이후로 회사를 처분하기 좋게 회계를 맞춘 것이다.

장인과 의형이 류지호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Rehman Bros 인수를 추진한 내막이다.

내부자 회유 및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 간 비밀 거래.

암암리에 그런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쟁자인 Barcleez Group도 똑같이 했다.

다만 매튜 그레이엄의 제안이 더 노련하고 더 달콤했고 더 독사 같았을 뿐이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담합들.

월스트리트에서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서의 주식 매매 방식만 알고 있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다.

주요 기관들과 대형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은밀한 거래들이다.


‘과연 한국의 산업은행도 그 같은 방식의 거래를 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금융맨들을 무시하는 질문 같지만.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어쨌든 Rehman Bros의 북미 사업권과 아시아·유럽 법인 매각이 결정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Rehman Bros 붕괴 전후 일주일은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C도 파산 초읽기에 들어간 시기였다.

만약 AIC마저 파산한다면.

두 번째 세계 대공황의 문을 연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결국, Rehman Bros 파산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던 셈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에 투매가 나왔고, 이로 인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금융기관들의 장부가치도 급락했다.

단기금리가 급등했다.

그로인해 자금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거대한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멀쩡한 대기업마저 돈을 구할 수 없었다.

당장 CDS(신용부도스왑)에 대거 투자했던 AIC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AIC에 850억 달러의 긴급 수혈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은행예금 인출 움직임마저 보였다.

예금인출 러시가 일어나게 된다면 금융시스템은 끝장나는 것이다.

금융권을 안정시킬 긴급 대책이 필요했다.

미국 금융당국은 부실자산매입프로그램(TARP)을 통한 구제금융 계획을 발표했다.

Rehman Bros를 살리는데, 당장 300억 달러면 충분했다.

하지만 정부와 의회는 그 같은 방안을 외면했다.

그런데 구제금융으로 무려 7,000억 달러 규모를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 연준 모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셈이다. 한국정부도 나름 발 빠르게 움직였다.

Rehman Bros의 파산 당일.


“국내 금융회사들이 Rehman Bros 관련 자산에 투자하거나 대출한 규모가 6월 말 기준 7억2,000만 달러(약 7,900억 원) 수준입니다. 이 금액은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의 3% 수준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금융당국자들이 시장을 안심시키는 발표를 연이어 내놓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국내 증권시장도 초토화되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던 Rehman Bros의 6,130억 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부채 지뢰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하로 이어지는 10월의 자산가격 대폭락.

그 거친 파동을 예고하는 사이드카(주가 급등락 경고).

지구촌 모든 주식, 채권, 외환시장에서 요란한 사이드카가 울려 퍼졌다.


‘으이구! 이 답답한 사람들아~’


류지호는 TV를 보며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갑자기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 법안 처리를 위해 선거 일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을 정치쟁점화 하고 싶은 모양이다.

마침 TV뉴스프로그램에서 류지호의 <REMO : ....or Maybe Dead!>(2004년)의 월가 시위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했다.


‘별 걸 다 자료화면으로 쓰네.’


이때부터 미국 TV뉴스 프로그램들에서 <REMO : ....or Maybe Dead!>의 월가 시위 장면을 주구장창 내보냈다.

맥케인 대선 후보는 월가의 대형 금융사를 살리기 위해 세금을 쓰는 걸 좋아할 리 없는 국민 여론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의 의도대로 법안이 정치쟁점화 됐다.

따라서 법안 처리가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그 시간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더 큰 수렁에 빠지고 있었고.


9월 말.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이 공화당의 반대로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그 날 미국 증시는 9/11사태 이후 684 포인트보다 더 많이 하락한 777.68포인트가 빠지면서 미증시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결국 미국 시민들이 폭발했다.

미국 양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2,000억 달러를 투입해 국영화 한 것도 싫고, AIC에 피 같은 세금 850억 달러가 투입된 것도 싫었다.

마침내 상원에서 1조 달러에 육박하는 구제금융 수정안이 통과됐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시민 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탐욕스러운 월가에 세금을 선물로 안길 수 없다!”


시민들이 월가로 모여들었다.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민 저항운동이었다.


[Too Big To Fail!(대마불사)]

[월스트리트엔 황소(사는 사람)와 곰(파는 사람)은 없고, 오직 돼지(욕심꾸러기)들뿐이다!]


시민들의 불만이 불길처럼 터져 나왔다.

월가로 시위대가 모여들자, 미국 내 거의 모든 TV에서 류지호의 <REMO : ....or Maybe Dead!>의 스테픈 도프가 연기한 장면과 현실의 시위 모습을 교차로 편집해서 보여주었다.


[탐욕의 소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계급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라.]

[민중에게 권력을.]

[은행들이 지불하게 하라.]

[월가 모든 곳을 점거하라.]


2004년에 개봉한 영화 <REMO : ....or Maybe Dead!>에서 엑스트라들이 외쳤던 구호가 실제 현실에서 똑같이 터져 나왔다.

영상 사용에 대한 저작권료가 JHO Pictures로 꼬박꼬박 들어왔다.

사실 저작권료는 코 묻은 돈에 불과했다.

Rehman Bros 인수는 아무 것도 아닌, 대형 인수합병이 연이어 경제면을 장식했다.

세계가 금융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그 동안 노리고 있었던 기업들을 JHO와 가온그룹에서 무섭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시작하십시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설매님, 매번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성실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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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만수무강(萬壽無疆). (3) +3 24.03.29 1,782 88 21쪽
814 만수무강(萬壽無疆). (2) +3 24.03.28 1,760 84 24쪽
813 만수무강(萬壽無疆). (1) +8 24.03.27 1,816 80 25쪽
812 둘째 생기는 거 아냐? +9 24.03.26 1,826 92 30쪽
811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끝났을 때.... +5 24.03.25 1,762 92 24쪽
810 기를 쓰고 흥행시킬 생각이다! +8 24.03.23 1,737 94 26쪽
809 Christmas Cargo. (12) +9 24.03.22 1,637 89 27쪽
808 Christmas Cargo. (11) +4 24.03.22 1,469 69 26쪽
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8 24.03.21 1,656 85 23쪽
806 Christmas Cargo. (10) +3 24.03.21 1,492 78 24쪽
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597 85 26쪽
804 Christmas Cargo. (8) +6 24.03.20 1,513 73 23쪽
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667 88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728 95 31쪽
801 Christmas Cargo. (7) +9 24.03.16 1,689 101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618 91 23쪽
799 Christmas Cargo. (5) +4 24.03.15 1,485 71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638 86 25쪽
797 Christmas Cargo. (3) +4 24.03.14 1,544 81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11 87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697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34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13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82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57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36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894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51 91 27쪽
» 빅딜 해볼 생각 없어? (4) +5 24.03.04 1,892 94 24쪽
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903 8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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