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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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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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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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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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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Christmas Cargo.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대본리딩일 뿐이다.

그런 곳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먹히면 안 된다.

주춤해서도 안 된다.

당당하게 이들의 기세를 잡아먹고 포효해야 한다.

기싸움 따위가 아니다.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배우로서 존재감을 동료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중요치 않다.

배우의 언어는 연기이니까.

본 촬영에 가서 에너지를 폭발시키겠다고?

촬영현장에서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기싸움이 장난 아니다.

앙상블?

상대 배우와의 호흡.

그 딴 거 없다.

조현석과 유진우는 국가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대본리딩에 임했다.


“......”


베테랑 배우들은 상대 배우와 상관없이 자기 할 것 만 한다.

자기가 준비한대로 혹은 현장에서 받은 영감 그대로 연기하고 감독의 ‘OK' 콜과 함께 빠진다.

서로 상의하고 그런 것도 없다.

베테랑 배우들은 오직 감독과만 소통한다.

할리우드 촬영현장은 모든 포커스가 주인공 혹은 스타배우에 맞춰서 돌아간다.

<Christmas Cargo>에는 제라드 깁슨, 월트 윌리스라는 할리우드 최상급 스타가 출연한다.

비록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한 물 갔다거나 배역에 한계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 캐스팅 리스트에서 상단에 올라있는 배우다.

한때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배우들이 그 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클리프 레저와 배런 렌프로에게 그 같은 위상을 양보할 입장이지만.

할리우드는 철저하게 계약금에 따른 계급사회다.

많이 받는 사람이 선배고 윗사람이다.

한때 제라드 깁슨의 성질머리는 알아줬다.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며 뜨거운 남자였다.

정직하게 말하면 개 같은 성격이었다.

그랬던 배우가 신사가 된 이유는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되면서부터다.

본능대로 연기하고 좌충우돌하던 짐승에서 어느 순간부터 지적이고 철학적이 되어버렸다.

사실과 다르게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제라드 깁슨은 짐승이었던 적도 본능대로 연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할리우드 호사가들과 매체들이 만든 프레임이다.

호주 출신이 할리우드 슈퍼스타가 되니 배알이 꼴렸던 것이다.

제라드 깁슨과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안다.

그가 얼마나 지적인 배우인지를.


[지옥에서 탈출해 살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희망 때문에...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월트 윌리스의 입에서 염세적이고 나태하고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에서 막 깬 듯 약간 갈라진 맛도 있다.

매사 관심 없고 귀찮은 투에, 심지어 염세적인 듯한 월트 윌리스는 영화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다.

피란민들이 빅토리아호에 승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딘지 쌀쌀맞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친절하고 따뜻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저랬던 양반이 말년에.... 쯧.’


미국 음악계가 마이키 잭슨에게 한 것 이상으로 더 고약한 짓을 영화계가 월트 윌리스에게 한다.

치매 증상을 앓고 있어 사리분별이 쉽지 않은 왕년의 스타를 온갖 방식으로 꼬드겨서 아무 영화에나 마구 출연시키고, 그의 이름값으로 영화를 팔아먹었다.

월트 윌리스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했다.

그 무언가는 그가 평생을 해 왔던 연기가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연기를 흉내 낸 꼭두각시였다.

오죽하면 그의 영화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동료들이 안도를 했을까.

비로소 쉴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

할리우드는 얼마를 받는가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아직까지 월트 윌리스는 할리우드 최상위계급이다.

초원의 맹수다.

그런데 하이에나들에게는 늙은 맹수도 사냥을 당한다.

미국 연예계도 똑같다.

얼마든지 하이에나에게 사냥당할 수 있다.

이전 삶에서 'Me Too'의 중심에 있었던 희대의 악당 하비 와인스타인은 할리우드 최고정점의 인물이 아니다.

그 못지않게 온갖 망종을 부린 유대계 권력자들은 'Me Too'에도 끄떡없었다.

그렇듯 허트경도, 게랄트 올드먼도, 월트 윌리스와 제라드 깁슨도 자기들끼리 투덜거릴 순 있어도 할리우드 최상위 포식자가 된 류지호의 정면에서 권위에 도전하진 못한다.

일례로 류지호는 메소드 연기법을 선호하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메소드 연기를 강요할 때가 있다.

극도로 영화의 사실성에 집착할 경우다.

<Christmas Cargo>의 젊은 배우들은 단역급도 예외 없이 5Kg을 감량해야 했다.

의상팀에도 군복핏이 딱 떨어지지 않고 다소 헐렁한 듯 보이도록 연출하자고 했다.

유사 해병대 캠프에 참가해서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무기 그대로를 다룰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다.

클리프 레저는 ‘조커’ 캐릭터 쪼를 뺄 필요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조차 해병처럼 행동하라고 주문했다.

허트경께는 평소에도 파이프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도록 요구했다.

따라서 허트경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윌트 윌리스와 선원으로 출연하는 단역배우들은 샌피드로항에 전시된 당시 작전에 실제 사용됐던 선박을 몇 번이나 견학했다.

심지어 대형 화물선에 승선해서 배가 운행되는 전 과정을 실제로 체험해 봤다.

월트 윌리스의 성격상 안 할 것 같았다.

아니었다.

순순히는 아니지만, 류지호의 요구를 따라주었다.

미국 연예업계에서는 ‘Money talks‘란 말이 시도 없이 쓰인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옛말에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던가.

할리우드도 돈으로 보상해 주면 다 하게 되어 있다.

대본리딩을 무사히 마친 후 류지호가 조현석과 유진우에게 물었다.


“어땠어? 별 거 없지?”

“재밌더라고요.”

“마치 노는 것 같기도 하고. 연극이나 뮤지컬 연습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두 사람은 정말 재미있었다.

한국에서처럼 선생님과 선배님들 앞에서 예의 차린다고 겸손 떨 필요가 없었다.

할리우드 스크립트는 한국의 대본들과 작법이 많이 달랐다.

<Christmas Cargo> 스크립트를 읽는 것만으로 영화의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줄만 쭉쭉 그으면 그대로 콘티가 될 정도로 섬세하게 작성되어 있고.

심지어 류지호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프리비주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감독이다.

배우들은 프리비주얼만으로도 촬영현장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역 배우들도 긴장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더라구요.”

“여기 애들은 평소에도 긴장 잘 안 해. 항상 여유가 있지.”

“....?”

“비결이 뭔 줄 알아?”

“....”

“잘 놀면 돼. 잘 노는 사람은 항상 얼굴에 여유가 넘쳐. 배런 저 녀석이 아역배우 출신이라서 여유가 있는 게 아냐. 잘 놀아서 그래. 구김살도 없잖아. 너희가 직업배우로 살아 갈 것이라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 배우가 긴장하면, 그걸 관객이 무조건 알아챈다는 거야. 물론 현장에서 감독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겠지만.”


두 배우는 잘 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다.

항상 여유가 있다.

긴장감이란 게 없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렇다.

할리우드 배우들을 카메라에 담으면 부담스럽지가 않다.

연기 못하는 배우도 마치 연기를 좀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뻣뻣하지 않으니까.

매사 릴렉스가 된 상태니까.

연기 이전에 태도와 마음가짐 때문이다.


“가자. 여기 애들이 파티에서 어떻게 노는 지 한 번 경험해 봐.”


류지호가 두 명의 한국배우를 다른 층에 마련된 파티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의 ‘swag’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단역배우조차 자신만의 여유와 멋 그리고 약간의 허세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

겸손이 미덕인 한국의 영화계와 방송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 ❉ ❉


아이오와주 (Iowa State).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미국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주다.

때문에 미국의 심장부(American Heartland)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중부 지역은 '프레리(prairie)'라고 하는 광활한 대평원이 몇 개 주에 걸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이오와주도 그 대평원 지역에 들어가 있다.

아이오와주 어디를 가더라도 지평선을 볼 수 있지만, 산이나 절벽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험준하고 광활한 산악지역은 없지만, 고만고만한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인 지대가 북동부 지역에 존재하고 있다.

그 지역에도 파커 가문의 사유지가 존재한다.

무려 제주도 크기에 달하는 면적 두 군데가 사유지다.

사유지 일부만 와인농장이고, 대부분은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 방치된 수십만 평의 구릉 지역과 평원 전부가 <Christmas Cargo>의 야외 세트로 변했다.

폐허가 된 북한 마을.

논두렁을 연상시키는 좁은 길.

눈으로 덮인 농지를 구불구불하게 관통하는 길.

흙길에 파손된 북한군 탱크 잔해와 까맣게 탄 나무 그루터기.

고증에 입각해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하갈우리 미해병대 캠프.

트럭, 탱크, 지프, 장갑차, 포대와 기타 막사들도 보였다.

심지어 건물 5층 높이의 야트막한 구릉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놨다.

장진호 수문, 다리가 끊어진 개울,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마을, 폐허 한쪽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와집 등.

평원 곳곳에는 한국 논의 벼밑둥까지 재현해 놓았다.

추후 폭발 장면에서 벼밑둥이 튀어 오르는 것까지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이클 리바는 북한지역의 식생까지 연구했다.

민둥산 곳곳에 불에 그슬린 나무라든가, 전봇대, 말라붙은 수풀까지 한반도 북부 생태계에 맞춰 재현해 놓았다.

이렇게 재현해 놓은 곳곳은 폭설에 뒤덮인다.

그럼에도 감독이나 프로덕션 디자이너나 둘 모두 눈 밑에 숨겨진 부분까지 신경 썼다.

왜?

바람에 눈발이 날리거나 폭발로 감춰진 곳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Eye-MAX....!’


오리지널 Eye-MAX 영화는 CG를 활용하기 힘들다.

있는 그대로를 65mm 필름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80년대나 활용되던 백랏용 초대형 벽을 세워놓았을까.

즉 5층 높이의 수십미터짜리 초대형 광고판이 곳곳에서 세워져 있는데, 광고판에는 장진호 주변의 산세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이 광고판의 용도는 일반적으로 스크린 프로세스 촬영기법이나 CG 합성용이다.

그런데 망원렌즈를 사용할 경우 광고판의 포커스가 흐릿할 때 그림이 실제처럼 화면에서 보이는 착시가 있다.

CG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그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다.

디지털 영화의 선구자인 류지호가 과거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 아이러니가 <Christmas Cargo>에서 자주 보이게 될 예정이다.

촬영 필름을 스캔한 후 CG 작업을 거쳐 다시 필름에 옮기는 키네스코프 (Kinescope)를 하게 되면, 원본 화질의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

Eye-MAX에서 화질 손실은 치명적이다.

모든 단점을 커버하는 유일한 장점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영화 <Christmas Cargo>는 CG가 거의 없는 영화다.

1.43:1 오리지널 Eye-MAX 화면비로 95%를 소화하고, 불가피하게 CG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머지 5%은 1.9:1 DMR 화면비로 나오게 된다.

두 화면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 차이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류지호는 경험이 상당히 많았다.

해결책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촬영감독 데온 비베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류지호 사단은 적어도 Eye-MAX 분야에서는 최고의 팀이라고 할 수 있다.

류지호와 벌써 세 번째 대형 포맷을 작업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해서 제작비도 충분하다.

그 덕분에 촬영용 실제 스케일 전투기 2대, 5:1 스케일 RC 비행기 4대, 구동하는 실 스케일 탱크 3대, 구동하지 않는 탱크 2대 등 온갖 대형 소품을 제작했다.

샌피드로 항구에 전시되어 있는 레인 빅토리호(SS Lane Victory)까지 바다로 끌고 나와 촬영에 동원할 계획이다.

매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가장 비슷하게 생긴 화물선을 임대해서 고증대로 겉모습을 개조했다.

<타이타닉>에서 실물 선박을 재현한 이후로 가장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M1 소총을 비롯한 각종 프롭(Props) 소총만 1,200정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의상 디자이너는 3,000벌의 군복, 2,000 켤레의 군화를 제작했다.

그 모든 소품들은 많이 사용한 티를 내기 위해서 짓밟거나 수십 차례 세탁을 해서 특유의 디테일까지 살렸다.

류지호가 전쟁영화를 찍겠다고 나서니, JHO Security Service의 군출신들이 돕고, JHO Pictures와 의장 비서실에서 전 세계 대형 밀리터리 단체들과 접촉했다.

박물관 소유가 아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물품을 빌려주겠다는 연락이 각지에서 쏟아졌다.

이메일로 접수된 개인소장 물품을 확인하는 직원을 따로 뽑을 정도였다.

넘어가도 될 만한 디테일까지 챙기는 류지호에게 앨런 포스터가 사정했다.


“관객들은 그딴 거 몰라. 적당히 타협하자, 제발!”

“Eye-MAX 영화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해 봐서 알잖아.”

“1억 5천만 달러에서 멈춰줘. 제발~”

“노력하고 있어. 잔소리 좀 그만 해.”


<Christmas Cargo>의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것은 Eye-MAX 때문도, 미술·소품 예산 때문도, 긴 여정의 프로덕션 일정 때문도 아니다.

오로지 인건비 때문이다.

<Christmas Cargo>의 총 인건비가 7,000만 달러에 달한다.

웬만한 중급 규모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한 편 제작할 규모다.


“계약금을 줄이고, 인센티브 계약을 하자고 내가 누차 말했잖아!”

“제작비 가지고 쩨쩨하게 굴지 마. 프로듀서 포스터!”

“손익분기점이 터무니없이 높게 잡히니까 그렇지!”


예산초과분까지 감안하고 마케팅 비용까지 합하면,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3.7억 달러를 극장에서 벌어들여야 본전이다.


“본전치기만 해도 만족이야. 매번 돈을 벌 순 없잖아.”

“다들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벌써부터 오스카에 아부하는 영화를 찍는다고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어.”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할 뿐이다.

그런데 할리우드 매스컴은 촬영 시작도 하지 않은 영화에 재를 뿌리고 있다.

영화감독으로써 거품이 끼었다면서 헐뜯고 비난하기 바빴다.


“그 짓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야. 언제부터 그런 자들을 신경 썼다고. 우리는 우리 할 일에만 집중하자.”

“돈 처발라서 영화 찍는다고... 돈과 오스카를 바꾼다고. 그런 이야기 듣고 화 안 나?”

“1.5억 달러면 돈 처바르는 거 맞잖아. 캐머런씨는 2.5억 달러 예산 영화도 잘만 찍고 있어. 내가 가만있는데, 앨런이 왜 화를 내?”

“아휴~”


무소불위(無所不爲).

적어도 JHO Pictures에서 류지호가 그렇다.

누구도 류지호에게 뭐라고 직언을 못한다.

영화에서만큼은.

딱히 직언할 것도 없었지만.

다만 앨런 포스터 입장에서 자신만은 직언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다.


“돈 이야기 좀 그만해. 내가 딴 영화로 돈 잘 벌어다 주잖아!”

“누가 영화사 망할 거 걱정해?”

“그럼 뭔데?”


직원들이 보기에 마치 미국 일반 가정에서 부부가 나누는 대화 같았다.


“다른 영화 프로듀싱해서 돈 벌래? 문제는 네 영화잖아.”

“<REMO>는 이번 영화보다 더 썼어. 갑자기 유난스럽게 굴긴....”

“3D였잖아. 퍼펙트하게 상업적이었고!”


할리우드는 산업적으로 성장이 감소하는 추세다.

새로운 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90년대부터 그것에 해답을 제시하는 이가 바로 미스터 할리우드였다.

그의 비전은 Eye-MAX였고, 3D였으며, 3D Eye-MAX영화였다.

VFX와 D-Cinema가 비용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면, Eye-MAX와 3D영화는 스튜디오의 수익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번 영화는 3D가 의미가 없어.”


못 할 건 없지만, 안한다는 말이다.


“비극적이고 처참했던 당시의 전쟁 상황을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

“더 효율적으로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기도 하고.”

“제작비를 더 써서 3D 버전을 만들 수도 있잖아.”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돈 되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자.

Eye-MAX, 3D, Eye-MAX 3D 등 <Christmas Cargo>를 티켓값이 비싼 상영관 모두에서 개봉하자고.

영화사 CEO이자 공동 프로듀서로서 제작비를 회수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당연했다.


“3D 영화가 할리우드의 완벽한 미래는 아니야. 차라리 Eye-MAX나 과거 65mm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더욱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올지도 몰라.”

“....?”

“안경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극장용 3D가 나오기 전까지 앨런도 3D 영화보다 Eye-MAX 영화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좋을 거야.”


왜 이스트우드 감독이 <허드슨 강의 기적>을 Eye-MAX로 찍고.

왜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우직하게 Eye-MAX로 작업했을까.

3D 영화로 만들었으면 돈을 더 벌었을 텐데.

서사가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안경을 써야하는 엄청난 불편함도 없고, 갑자기 화면이 흐려지거나 포커스가 나가는 어지러운 액션 장면도 없고, 그러니 두통을 유발하지도 않으면서, 3D 영화 못지않은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

서사로,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흡입력 있는 배우의 연기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훌륭하게 구현했다.

그것들을 극대화 시켜준 것이 인간의 시각을 극대화하는 Eye-MAX 화면 포맷과 특유의 사운드 시스템이었다.

괜히 폼 잡으려고 Eye-MAX 포맷으로 영화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대형 포맷 영화는 단순히 엄청나게 큰 화면 때문에 시도되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해상도, 더 광범위한 컬러 스펙트럼, 아날로그 필름 특유의 룩, 섬세한 클로즈업 표현력 등 뚜렷한 장점이 있다.

실내 장면에서 울트라 파나비전이나 Eye-MAX의 장점을 모르겠다는 관객들이 많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한 화면에 많은 캐릭터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캐릭터 간의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미장센을 통해 서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객 입장에서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처럼 한 화면에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Eye-MAX는 현장감과 생동감까지 얻어낼 수 있다.


“전쟁영화가 액션영화였던 시절은 끝났어. 화려한 총격전과 폭파 그리고 전투만으로 더 이상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게 되었거든.”

“전투 시퀀스를 그저 화면의 배경으로 쓸 거라면 왜 굳이 Eye-MAX를 사용하는데? 낭비야 낭비.”

“누가 배경으로만 쓰는데?”

“스크립트가 그렇잖아.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을 사로잡는 초대형 전투씬도 없고, 왜 Eye-MAX를 쓰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왜 쓰는지 보여줄 게.”

“꼭 엑스트라를 2,000명까지 불러야겠어?”

“응.”

“마네킹이나 사람 모습의 보드를 쓰면 안 돼?”

“안 돼.”

“왜?”

“롱 쇼트가 많으니까.”

“1,000명!”

“2,500?”


류지호가 베팅을 늘려고 하자 앨런 포스터가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만!”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아이오와주에서 엑스트라를 모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도인 디모인의 인구는 20여만 명이며, 연예계 종사자 숫자도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밀워키, 미니애폴리스 등 인근 주의 대도시에 보조출연자를 모집하고 있다.

가장 문제는 그 많은 인원을 수송하고 재우고 먹이고 하는 일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앨런 포스터는 뉴욕주, 펜실베니아, 밴쿠버 같이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에서 로케이션 하자고 누누이 주장해 왔다.


“기다려 봐.”


씩씩거리는 앨런 포스터를 진정시킨 류지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몇 군데 전화통화를 하고 난 후, 앨론 포스터를 안심시켰다.


“엑스트라는 걱정 마.”

“뭘 어떻게 했는데?”

“주지사가 아이오와 주방위군을 보내주기로 했어.”

“펜타곤 안 거쳐도 돼?”

“응.”


윌리엄 파커의 장남이자 가주인 그렉 파커와 통화한 후, 아이오와주 유력 상원위원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그 후 아이오와 주지사가 직접 류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호언장담했다.

현 주지사는 벌써부터 재선을 염두에 두고 파커가문에 줄을 대고 있는 인물이다.


“몇 명이나?”

“연대 규모 정도... 제34보병사단 제 2여단을 파견해준대.”

“좋았어!”

“이제 아무 문제없는 거다?”

“주방위군 문제는 누구와 이야기 하면 돼?”

“일단 주지사 사무실의 수석비서와 이야기 해봐.”

“오케이!”


캠프 펜들턴의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1st Marine Divison)에 연락을 해도 된다.

장진호 전투는 제1해병사단에게 매우 각별한 역사다.

미해병 1사단은 2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미국 최강의 부대였다.

‘무적’이라 불렸다.

그런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꽤나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현대 전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Christmas Cargo‘ 작전의 주역이기도 했고.

<Christmas Cargo>에서는 미 제1해병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제라드 깁슨)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수행한 F중대(클리프 레저)가 중심축이다.

제1해병사단은 류지호가 당시 해병대원을 멋지게 묘사해주길 바랐다.

영웅적으로 묘사해 주면 더욱 좋고.

옛날 영화처럼 미해병대의 무용을 과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류지호다.

비교적 이견이 없는 정사 위주로 담담하게 찍을 생각이다.

암튼, 아이오와주 로케이션은 주정부, 파커 가문, 미 국방부 그리고 해병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촬영하기 전, 전 세계 군장 마니아들과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소문이 돌았다.

유럽의 군장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군복과 군화 합쳐 5,000벌이 제작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 세계 밀리터리 덕후들은 촬영 후 그것들이 시장에 풀릴 것에 무척 들떠 있었다.

5:1 스케일로 제작된 RC 미공군 폭격기와 전투기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유포되었다.

홍보·마케팅팀이 실수를 가장해서 인터넷에 은밀히 유포했다.

<Christmas Cargo>의 주요 촬영지는 철저히 보안에 붙여졌다.

따라서 배우들도 파파라치를 피해서 은밀하게 아이오와주로 이동했다.


2008년 11월.


아이오와주 북동부 와콘(Waukon)이라는 시골마을로 배우들이 속속 도착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집결하자, 4,000명이 살고 있는 소도시가 갑자기 북적거렸다.

이 작은 도시에는 호텔이 없었다.

파커 가문이 나섰다.

시 소유의 5층짜리 공공건물 두 개를 임대했다.

숙소로 개조해서 <Christmas Cargo> 제작진에게 제공했다.

3개월 간 머물 뿐인 숙소지만, 4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쾌적함을 자랑했다.


“뭐 이렇게까지....”


파커 가문에서 영화 지원을 위해 파견 나온 믹 페이지가 재빨리 류지호 곁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영화팀이 와콘을 떠나면, 모두 시에 기증할 예정입니다.”

“이 시골 호텔에 손님이 있겠어요?”


외지인이라고는 1년에 한 명 올까 말까한 깡촌 중에 깡촌이다.


“미스터 류와 무비 스타들이 사용한 물건들은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고, 그 외에 호텔의 물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나중에 나도 조금 보태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미스터 류.”


이 지역은 한 겨울에는 눈이 멈추지 않고 내린다.

그것이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10Cm 이상의 눈이 온 대지를 포근하게 덮는다.

<Christmas Cargo> 크랭크인을 앞두고, 아이오와주 로케이션지에 눈이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작가의말

가급적 영화 제작 에피소드는 연참을 해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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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12 87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698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34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14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82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58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37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894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52 91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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