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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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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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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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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hristmas Cargo. (7)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27일 오후.


중공군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대위님, 어디 가십니까?]


클리프 레저가 호주 출신의 후배 배우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자신들은 선발대로 먼저 유담리에 들어왔다.

그의 중대 병력은 아직 덕동고개에 도착하지 않았다.

바버 대위는 자꾸만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그래서 홀로 덕동고개로 향했다.

유담리까지 진격하며 수집한 첩보도 그렇고, 포로로부터 심문한 내용도 그렇고.

한가하게 시간을 죽일 수만 없었다.


[......!]


유담리와 하갈우리 사단본부를 연결하는 도로는 암석으로 된 하나뿐인 일차선 흙길이다.

그 중간 즈음에 덕동고개라는 중요한 요충지가 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노면은 동결상태다.

차량 이동과 병사의 행군 모두 곤란해 보였다.

이 도로는 유담리로 들어온 해병 2연대의 유일한 보급로다.


[덕동고개에는 C중대를, 1.8마일 떨어진 산 정상 무명고지에 F중대를 배치한다.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 지역을 사수하도록.]


대대 지휘부로부터 명령이 하달되고, 바버 대위는 덕동산 서남방 북쪽 고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로 한다.


[어디 가십니까? 대위님.]

[얼른 진지 공사를 마무리해라.]


바버 대위는 대담하게 혼자 산지를 돌아다녔다.

지형을 조사하고 병력 배치방식을 구상했다.

대대 지휘부에서는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되면 곧바로 철수해서 병력을 집결한 후 반격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공군의 포위전술에 대해선 전혀 감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중대가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에야 F중대원들이 덕동고개에 도착했다.

바버 대위는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혼자 오들오들 떨다가 중대를 맞이했다.

언제 추위에 떨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중대원들을 그냥 재울지, 아니면 전술교범대로 참호부터 파고 재울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덕동산 고지는 화강암 바위산이다.

땅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유난히 추운 이런 날씨에 참호를 파는 것은 끔찍한 작업이다.


[얼마나 파야 합니까?]

[전술교리대로!]


최소한 1m는 파야한다는 소리다.

꽁꽁 얼어붙은 땅이라서 60Cm 깊이를 파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젠장....!]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병사들은 혹한 속에서 반나절 꼬박 행군했다.

녹초가 돼 있었다.

병사들은 FM 대로 하려는 중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적의 해병1사단은 자존심도 드높고 거칠었다.

이때까지도 바버 대위는 병사들 모두의 신임을 얻진 못했다.

곧 벌어지게 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진호 전투와 철수작전을 거치며 중대원 모두가 하나가 되어간다.


[일단 재우고 내일 아침 일찍 진지를 구축하죠.]


소대장들이 부하들을 재우자고 건의한다.

중대장이 거친 병사들을 통솔하려면 인간적인 신뢰가 필요한 법.

그런데다 아직은 후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대장들이 보기에 잠시 머물다가 이동할 것이 확실했다.


[.....음.]


클리프 레저의 연기는 어딘지 미묘했다.

갈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딴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중대원들과 갈등이 발생할 법한 미묘한 분위기다.

클리프 레저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다이얼로그 타이밍을 늦췄다.

연기는 밀당이다.

상대 배우와 또 관객과.


[이곳은....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전장이다.]

[제기랄!]

[꼴통같으니라구!]


바버 대위는 초저녁에 참호를 파라고 명령한다.

혹시나 중대원들이 제대로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진지구축을 일일이 감독한다.

사격구역도 꼼꼼히 지정한다.

중화기 거치지역을 몇 번이나 옮기도록 지시한다.


[완벽합니다. 더 이상 뭘 더 합니까!]


말 그대로 야전교범대로다.

소대장들까지도 ‘상골통’이 중대장으로 걸렸다며 투덜거릴 정도다.

해병은 해병.

병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중대장의 명령에 복종했다.

참호파기와 진지배치는 밤 9시가 돼서야 끝난다.

10시가 되어서야 막사로 들어가 몸도 녹이고 교대로 취침에 들 수 있었다.

그런 사이....

무려 3만 명에 육박하는 중공군이 유담리와 덕동고개 사이의 도로를 차단한다.

1개 연대 규모 병력이 소리 소문도 없이 F중대의 진지를 포위하기 시작한다.


23시 00분!


탕... 탕....탕!


대대 지휘소의 병사가 A중대 진지에서 들려오는 산발적인 소총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우려했던 중공군의 공격이 막 시작될 조짐을 보였지만, 지휘소 병사는 그 총소리가 큰 사단의 시초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밤에 A중대 진지에서 약간의 교전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중공군 하나가 생포되었다.

나머지는 뿔뿔히 흩어졌다.

심문결과 적의 정찰대였다.

중공군 정찰대는 1시간 동안 해병 연대 여러 곳의 방어선을 정탐했다.


자정 직후.


삐리리리!

빰빠라라라빰!


피리소리, 징소리, 나팔 소리, 고함치는 소리.

혼이 쑥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소음이 온 전장을 흔들었다.

A중대 방어선에서 첫 총성이 울린 지 2시간 후, 중공군의 본격적인 야간공격이 시작되었다.


[......!]


기관총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수가 잠에서 깼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그는 벙커 밖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덮고 있던 판초를 옆으로 밀어제쳤을 때, 해병대원은 달빛 속에서 털모자를 쓴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뭔데?]


탕탕.


그는 앉은 자세로 사격을 가했으나 그 전에 중공군이 수류탄을 벙커 안으로 던져 넣었다.


[빌어먹을!]


A중대의 최초 교전을 시작으로 C중대, D중대도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시간을 거슬러 F중대가 공격받기 2시간 전.

바버 중대장은 진지를 순찰했다.

낮에는 영하 20도 야간에는 4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다.

꽁꽁 얼어붙은 진지에서 수하(誰何)하는 병사가 한 명도 없었다.

엉망이었다.

바버 중대장은 소대장들을 집합시켰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잠만 자고 있나! 눈을 크게 뜨고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


중대장이 호통을 치고 잠시 후 분대장에게 전파되었다.

그러자 02시가 가까워지는 새벽 시간에 진지 곳곳에서 욕설과 짜증이 섞인 소리들이 뒤섞여 들렸다.

누군가 얻어터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렇게 바버의 F중대가 밤잠을 설쳐가며 경계에 나서고 있을 때.

유담리 인근 중대와 대대 캠프에 대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막 시작되었다.


02 : 30!


F중대를 향해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된 시각이다.

대략 1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이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서·남·북 세 방향에서 밀려왔다.

몇 시간 전부터 중공군이 산 위에 숨어서 F중대의 진지 구축과정을 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진지의 공략지점도 전부 파악했다.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주로 노린 지점은 중앙과 왼쪽에 배치한 소대의 연결 부위였다.

이곳을 뚫고 들어와 두 소대를 포위 섬멸하겠다는 작전이었다.

그 연결부위의 참호는 4명의 사병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중공군의 수류탄 투척으로 손가락이 날아갔다.

어둠 때문에 적군이 보이지 않았지만, 손이 멀쩡한 병사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 참호에서는 수류탄이 날아들면 몸으로 덮쳐 동료를 구하면서까지 진지를 사수했다.

그날 밤.

실제 역사에서 이들은 2개 소대의 중공군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생존자는 단 한 명뿐.

상병 계급장을 단 중기관총 사수는 거의 혼자서 자신이 맡은 구역을 지켜냈다.

다른 상황....

중공군 한 무리가 기관총 사대를 향해 험준한 산비탈을 올라오기 시작한다.

개미떼다.


[......!]


두려움은 없다.

자신은 명예롭고 용감무쌍한 해병1사단 용사였기에.


“너무 오버하는데....?”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촬영현장 분위기다.

실감나는 분위기 때문에 스태프들까지 덩달아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하는 모양이다.

다소 흥분된 모습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추위 때문에 모두가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인지.

배우들이 다소 과한 연기를 펼쳤다.


“.....음.”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

류지호가 ‘NG’를 외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니까.

준비하는데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카메라를 돌렸으면, 끝까지는 가봐야 한다.


“그건 아니지... 이 사람아!”


배우가 중기관총을 들어 올려 양팔에 안고는 중공군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류지호 입장에서는 <배달의 기수> 스타일의 설정과 연기였다.

아니면 <람보>를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했다.


“감독님, 사격탄도가 적들이 기어 올라오는 경사도와 일치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격이 정확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시 병사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았습니다.”


자기 딴에는 고민한 끝에 만들어낸 상황 설정이었다.

고증을 위해 현장에 나와 있던 실제 장진호 전투 참전 노병이 털옷 사이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고 류지호에게 말했다.


“디렉터, 실제 한국전쟁에서 저 배우가 했던 상황이 많았다네. 기관총 사수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어.”


고증을 위해 파견 나와 있는 해병대 작전관이 노병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해병 간부들은 그간 한국 지형에서 익힌 전술로서 전투 전개 전 유담리 주변 고지들은 모두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미술 스태프들이 장진호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이 지역 고지 선점의 전술이 중공군 격퇴의 중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병이 깨알같이 미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미해병1사단은 세계 최강 보병부대를 자부한다네. 전투력은 우리 해병의 발군의 무적 자산이지. 해병 간부들은 태평양 전투에서 표독스럽게 목숨을 내치고 저항하던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경험한 전투의 베테랑들이었다네. 병사들 한 명 한 명이 다 일당백이었어.” ​


류지호는 대꾸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실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자신도 두 번이나 군대를 경험했다.

인간에게 액면 그대로의 추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스푼의 양념이 첨가되고 어느새 빛이 바랜 부분에 새로운 이미지가 덧칠해지기도 한다.

방금 찍은 장면이 실제로 당시에 있었던 일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반대로 실제가 극적으로 가공된 이야기보다 더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3일.


F중대의 덕동고개 사투 장면을 촬영한 날짜다.

모두 Day for Night 촬영기법으로 한낮에 촬영했다.

류지호는 <복수의 꽃>에서 ‘우금치 전투‘를 재현한 적이 있다.

<REMO> 시리즈에서 벤자민 베이 감독 못지않게 때려 부순 경험이 있고.

대규모 아날로그 폭발씬도 제법 경험해 봤다.

그때는 컴퓨터 그래픽까지 마음껏 활용했다.

이번에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찍고 있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실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사투를 벌였다.

당사자가 아닌 구경꾼 입장에서 매 장면 촬영과정이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 ❉ ❉


교전 초기 북쪽에서 능선을 따라 물 밀 듯이 들이닥친 중공군으로 인해 북쪽 방향에 배치되어 있던 F중대 2개 분대가 순식간에 쓸려버렸다.

무려 27명이 죽거나 다쳤다.

후방의 돌출부에 위치하고 있던 2선 부대 역시 황급하게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북쪽 고지가 중공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소총을 줘! 멀쩡한 총을 달란 말이야! 빨리!]


카투사 킴(조현석)은 혼이 날아가 버린 사람 같았다.

잠결에 튀어 나왔는지 군화를 신고 있지 않은 양말 바람이다.

손이 시려 연신 입김을 불어가며 방아쇠를 당긴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조준사격으로 10명 이상의 적을 쓰러트린다.

M1 소총은 금방 작동 불능이 되어 버린다.


[야! 총, 총! 건 달라고 건!]


부상병이 조현석에게 자신의 소총을 건네준다.

때론 죽어있는 전우의 탄약을 주워서까지 사격한다.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을 발로 걷어차기도 한다.

조현석이 배치된 진지 쪽에서는 근접전까지 벌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삶과 죽음의 고지전이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류지호는 장진호 전투에서 싸운 카투사 선배 분량을 조금 더 신경 썼다.

이런 활약상을 통해 영화 후반부 흥남부두에서 킴이 데면데면 헸던 F중대 생존자들로부터 해병대 전우로 인정받는 것과 연결된다.


[지휘소 전방에 배치된 포병이 전부 전투불능입니다!]


바버 대위는 재빨리 지휘소와 60mm 박격포를 수습해 경사면 위쪽으로 이동시킨다.

경사면 위쪽에 위치를 잡은 바버 대위와 지휘부는 중기관총의 무차별 사격과 박격포탄을 개미떼처럼 밀려드는 중공군에게 퍼부었다.

개전 초반 60mm 81mm 박격포의 하사관들이 모두 전사 또는 부상으로 이탈했다.

바버 대위는 박격포를 살아남은 일등병에게 맡겼다.

치열하다는 말로 부족한 전투였다.

최초 중공군에게 넘겨주었던 고지를 탈환할 때는 가지고 있는 화력을 모조리 투사해서 겨우 되찾아올 수 있었다.


아침 6시 30분 경.


전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중공군들이 퇴각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악몽 같았던 밤이 지나갔다.

과연 안도할 수 있을까.

감독 류지호는 관객들에게 마음을 놓지 말 것을 경고한다.

중공군이 물러나고 날이 밝기 직전.

어딘지 괴기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지난 밤 열심히 파놓은 진지 맨 끝에 있는 개인호에서 병사 한 명이 머리가 없이 앉아 있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다.

카투사다.

머리 없는 카투사의 무기와 탄약까지 사라지고 없다.

공격이 막 시작될 무렵 자거나 졸고 있는 카투사에게 중공군이 포복으로 접근하여 그를 죽이고 머리를 가져간 것으로 추정했다.


[.....!]


중대원들의 시선이 바버 대위에게 모인다.

전날 매정하게 참호를 파게하고, 새벽까지 진지를 구축하게 하고, 경계근무까지 FM대로 서게 했던.

바버 중대장의 그런 준비가 없었더라면.

엄청난 사상자를 냈을 터.

중공군들에게 중대가 몰살당했을지도 몰랐다.

상투적이고 진부해 보이지만.

이런 것이 전투고 전쟁이다.

류지호는 미군기록에 남아 있는 자료와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가 저술한 각종 저서들, 마지막으로 덕동고개에 참전한 노병들로부터 교차로 고증을 받았다.

연출이나 영화적인 설정이 양념처럼 들어가긴 했지만.

가능한 감정이입 없이 전투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여 개의 시체 더미와 부상자를 연기하는 엑스트라들....


따로 촬영했음에도 배우와 스태프들은 실제로 덕동고개 전투를 경험한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 ❉ ❉


F중대원들이 중공군 시체 사이에서 혹시 모를 생존자를 수색한다.

또한 아군 사상자를 수습한다.

첫 날 중대의 피해는 전사 20명, 부상자 54명.

중공군의 사체는 대략 450구로 파악되었다.

수류탄도 박격포탄도 아낌없이 소모했다.

바버 대위는 해병들의 사상자와 중공군 전사자가 지녔던 화기, 탄약, 수류탄 등을 주워 모을 것을 지시한다.

54명의 부상자 처리가 골치다.

모든 부상병을 천막에 수용할 수가 없다.

중대원들이 위생병을 도와 눈 속에서 구멍을 팠다.

그 안에 침낭을 깔아서 부상병을 수용했다.

난방시절이 된 천막은 부상자와 멀쩡한 병사가 교대로 사용했다.

위생병은 마약성 진통제 주사약을 입에 물고 호호 녹여가면서 부상자 구호를 위해 뛰어 다녔다.


[혈액이 부족해! 젠장!]


엄청난 추위 때문에 혈액이 꽁꽁 얼어붙었다.

품속에서 녹이고 난리를 쳐보지만, 제때 수혈을 받지 못했거나, 맞는 혈액을 구하지 못해 살리지 못한 병사도 꽤나 되었다.

보통 전쟁영화는 전투 후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Christmas Cargo>에서 전투 직후 상황도 비교적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이 전쟁의 최대 적은 중공군의 총칼이 아니라, 추위였으니까.


부우웅.


오후에 미군 전투기가 장진호 주변 지역을 비행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하갈우리 사단 본부 방향에서도 포격지원이 실시되었다.

이후 F중대 진지 상공에 미해병 더글러스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지에 박격포탄과 위생기구를 공중투하하고 사라졌다.


[중대는 즉시 현 위치에서 철수. 남쪽으로 철수해서 대대와 합류하라.]


대대와 교신을 마친 바버가 현 위치에서 유담리와 인근 지역을 꼼꼼히 관찰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우리가 여기를 비우게 된다면 유담리에 있는 2개 연대는 완전히 고립될 거야. 사단 본부의 예비연대 및 지원부대 역시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고.]

[명령을 어기기라도 할 겁니까?]

[무전병!]


바버 대위는 명령 변경을 건의하기 위해 무선교신을 시도한다.

교신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쩌시렵니까?]

[후우. 유담리의 연대 병력이 철수 완료할 때까지 이곳을 사수한다.]

[명령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겁니다.]

[전우들이 함정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것 보단 낫겠지....]


그렇게 28일 새벽부터 12월2일까지 F중대는 덕동고개를 사수했다.

기록에는 당시 참전용사들의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또한 장진호 전투 패배 책임이 있는 수뇌부가 실책을 회피하기 위해 전공에 손을 대기도 했다.

때문에 미군 공식기록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한국전쟁의 어떤 전투와 비교해도 매일매일 치열한 전투였다는 사실이다.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매 순간 위기의 연속이었다.

바버 대위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목발을 짚고 때론 들것에 실린 채로 진지를 순회하면서 중대원들을 격려했다.

이 부분에서는 공식 기록 그대로의 고증을 참조했다.


[제5, 7연대는 포위되어 격전 중에 있다. 많은 사상자가 발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밤 사단 본부도 강력한 공격을 받아 포위되었다고 한다. 고토리도 봉쇄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중대가 증원을 받을 가능성은 제로다. 앞으로 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받을 것이다. 대인지뢰와 인발(조명)지뢰를 아끼지 말고 전방에 매설하고 진지를 강화하라.]

[.....]

[다른 건 생각하지 마라. 해병답게 싸운다는 것만 생각하라.]


여지없이 찾아온 새벽 2시.

29일 밤의 덕동고개 고지 주변은 조용했다.


[제군들은 포위되었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와 옷을 준비해 두었다. 투항하면 잘 대우한다. 즉시 항복하라!‘


중공군이 고래고래 영어로 소리쳤다.

새벽이라 악에 바쳐 지르는 투항권고 소리가 더 멀리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바버 대위의 답은 간단했다.

조명탄을 쏘아올린 후, 박격포판 세례와 기관총 난사로 응대해줬다.


30분 후....


[착...거엄!]


중공군 2개 중대 규모가 근접전까지 상정하고 착검한 상태에서 돌격해왔다.

F중대는 낮에 어느 정도 보급을 받을 상황.

압도적인 화력으로 근접전을 불사하는 중공군 2개 중대를 물리쳤다.


셋째 날.


헬기를 타고 올리버 사단장이 전장에 나타났다.

무전기가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장 상황을 직접 눈으로 살핀 올리버 사단장이 진지를 떠났다.

그 직후 다시 눈발이 날렸다.

다섯 시간 만에 10Cm가 쌓였다.


넷째 날.


유담리 방향에서 제 7연대 병력이 군홧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F중대를 구원하기 위해 적진지를 돌파했다.


마침내 다섯 째날.


레이몬드 데이비스 중령이 지휘하는 제 7연대 병력이 중공군의 포위를 돌파해 F중대 진지에 도착했다.

바버 대위와 F중대원들의 활약 덕분에 유담리의 5, 7연대 병력이 탈출에 성공했다.

유담리에 갇혀 있던 미해병대 병력만 무려 8천여 명이었다.

4박 5일 동안 계속된 전투로 237명이던 F중대는 86명만이 살아남았다.

전사 26명, 부상 89명, 나머지는 행방불명이었다.

특히 장교 7명 가운데 부상을 당하지 않은 장교는 단 1명 뿐.

중요한 것은 F중대가 사단급 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했다는 사실이다.

중공군 사상자는 2천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어를 잡으려면 미끼 맛을 보여줘야지.]


피해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중공군 지휘관 쑹스룬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미해병대 1사단을 포위 섬멸할 것이라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11월 27일 전까지 일어난 산발적인 교전은 미해병 1사단을 장진호 안쪽으로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한 기만전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청천강 북쪽에서는 미8군이 중공군의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UN사령부의 안일한 판단으로 중공군은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

비록 화력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화력을 대신할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있었다.

게다가 완벽한 함정과 덫을 놓았다고 자신했다.


1만 2천 병력 vs 8만 여 병력.


특히 유담리에 투입된 중공군 병력만 3만 명에 달했다.

중공군 지휘부 입장에서 질수가 없는 전투였다.

그러나 첫 공격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병력의 우세만을 믿고 이른바 인해전술(Human Wave Tactics)만 고집했다.

미해병 5,7 연대가 자리 잡은 진지들에 대해 돌격만 되풀이 했다.

끝내 돌파를 못했다.

엄청난 사상자만 냈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벌어졌던 장진군 유담리 덕동고개 전투만으로 영화 한 편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류지호는 <Christmas Cargo>에서 러닝 타임 20분을 이 전투에 할애했다.

물론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또 다른 카투사 주인공이 포함된 미육군 31특임전투단의 전투도 중요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던 장진호 참전 노병이 물었다.


“윌리엄 E 바버 대위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다고?“

“예. 어바인에 사셨거든요.”

“잊지 않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항상 고맙게 생각한단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미국 외에 다른 나라 전우들도 챙겨준다고?”

“참전국 가운데 사정이 어려운 용사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 한해서 조금 지원하고 있어요.”

“전우들을 대신해 감사를 표한다, Jay."

"쑥스럽게 왜 그러세요.“


미 해병대의 한국전 영웅들 대부분이 80년대에 고인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덕동고개 전투 영웅 윌리엄 바버는 2002년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류지호는 한국전쟁 영화를 처음 기획하던 90년대에 몇 번 찾아뵌 적이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직은 괜찮아....”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시려고요.”


노병들에게 자신이 경험했던 전쟁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되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류지호는 아이오와주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촬영장에 상주하며 고증을 해주던 노병들을 설득했다.

집으로 돌려보내기 전에는 디모인의 종합병원으로 모셔 일주일 정도 입원을 시켰다.

딱히 아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추위에 노출되었기에 혹시나 싶어 노병들이 건강을 돌보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작가의말

800화 연재였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축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성실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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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또 작두 타는 영화 제작해야 하나? +8 24.03.21 1,671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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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 Christmas Cargo. (9) +8 24.03.20 1,609 85 26쪽
804 Christmas Cargo. (8) +6 24.03.20 1,528 73 23쪽
803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2 24.03.19 1,678 88 23쪽
802 가온그룹의 선전 덕분 아니겠습니까? +3 24.03.18 1,740 95 31쪽
» Christmas Cargo. (7) +9 24.03.16 1,701 101 23쪽
800 Christmas Cargo. (6) +10 24.03.15 1,629 91 23쪽
799 Christmas Cargo. (5) +4 24.03.15 1,498 71 25쪽
798 Christmas Cargo. (4) +8 24.03.14 1,648 86 25쪽
797 Christmas Cargo. (3) +4 24.03.14 1,556 81 25쪽
796 Christmas Cargo. (2) +8 24.03.13 1,724 87 25쪽
795 Christmas Cargo. (1) +8 24.03.13 1,714 82 24쪽
794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3) +6 24.03.12 1,849 94 23쪽
793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2) +3 24.03.11 1,827 90 23쪽
792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기에. (1) +5 24.03.09 1,896 86 21쪽
791 광폭행보(廣幅行步)! (4) +3 24.03.08 1,869 91 27쪽
790 광폭행보(廣幅行步)! (3) +2 24.03.07 1,849 84 25쪽
789 광폭행보(廣幅行步)! (2) +4 24.03.06 1,908 82 26쪽
788 광폭행보(廣幅行步)! (1) +3 24.03.05 1,964 91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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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빅딜 해볼 생각 없어? (3) +8 24.03.02 1,913 8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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