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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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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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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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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만능이 되어볼까 합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아 ‘Korea Town’이라 불리는 지역은 사우스센트럴 LA 중심부 플로렌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15분, 도보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미국 LA 다운타운에서는 서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윌셔스트리트와 웨스턴애비뉴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반경 3km에 걸쳐서 형성되어 있다.

서쪽으로 LA 최고 부촌인 베벌리힐스가, 북쪽으로 스튜디오 시티가 있다.

한인타운 서쪽과 북쪽은 주로 백인들이 살고 있다.

남쪽으로는 흑인 밀집 지역이 주로 분포된 사우스 센트럴 LA다.

따라서 백인과 흑인 모두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에는 한인타운이 형성된 윌셔가 일대가 LA에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인타운 남쪽에 위치한 아드모어 공원(나중에 서울국제공원) 바로 옆 블록.

탐정&경비보안업체 Pinkerton Corp. LA지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버뱅크에 있던 사무실을 한인타운으로 옮겨왔다.

모회사 Garam Invest의 회장 류지호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표면적인 명분은 한인타운 상권에 대한 영업력 확대.

류지호의 내심은 추후 발생할지 모르는 LA폭동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Pinkerton Corp. LA지점만으로 광활한 사우스 센트럴 LA 지역의 한인 상점들을 보호할 수도 없을뿐더러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인타운조차 지키지 못한다.

사우스센트럴 LA에서 영업 중인 한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최소한 본진만큼은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아드모어 공원이 사우스센트럴 LA에서 한인타운으로 들어오는 관문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장병력이 방어선을 펴고 있다면 폭도들이 섣불리 한인타운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LA폭동 대비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가장 먼저 고순희씨 가족을 오렌지카운티로 이주시켰다.

그 때문에 흑인소녀 총격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백인들에게 향할 분노를 한국인에게 돌릴 때 이용하게 되는 빌미 하나를 제거한 것이다.

비슷한 사고가 어딘가에서 일어나지는 않을까 촉각을 세웠다.

강절도 사건은 수시로 벌어졌다.

한국인 상점주인에 의한 흑인소녀 총격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사건을 막았다고 해서 폭동이 안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다.

기어코 로드니킹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과속 차량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 4명이 흑인 용의자 로드니킹을 무자비한 폭행을 한 사건이다.

이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연히 흑인사회가 분노했다.

7월 9일에 경찰 위원회가 과잉폭력 인정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문제가 잘 해결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종차별, 불경기, 날로 피폐해져가는 흑인 거주지역의 상황, 지방 정계 복잡한 사정 등을 보았을 때 언제고 흑인사회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한낱 개인일 뿐인 류지호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폭동발생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지만, 한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폭동이 발생했을 때 흑인과 히스패닉 폭도들이 정확하게 어떤 행로로 움직이며 어떤 지역에서 주로 약탈과 폭력을 행사할지 모른다.

다만 Pinkerton Corp. LA가 터를 잡고 있는 한인타운 남쪽 지역만큼은 무장 경비원들이 상주하기 때문에 폭도들도 감히 얼씬거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폭도들이 접근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위협사격을 할 수도 있다.

또한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 메뉴얼을 만들어 한인들에게 계몽·배포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인 류지호가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와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 했다.

상점주들에게 Pinkerton을 홍보하고 고객을 유치할 셈이다.


“프랭크 클락입니다.”

“지호 류에요.”


악수를 청하는 손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살짝 드러난 팔뚝에도 부대 문신을 지운 흔적이 남아 있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다부진 인상 그리고 뚝심 있는 눈빛.

얼마 전까지 군에 있었던 게 틀림없다.

Pinkerton Corp. LA의 지부장 프랭크 클락(Frank Clark)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니,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회사를 위해 사명을 다 하겠습니다.”


역시 군대물이 빠지지 않았다.

부동자세로 한 손만 내밀어 결의에 찬 눈빛으로 절도 있게 말하는 그를 보니 류지호는 왠지 신뢰가 갔다.

이어 나머지 팀장급 인물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페드로 곤잘레스입니다."


훤칠한 키에, 마른 체형,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삼십대 후반의 남자다.

프랭크 클락과는 달리 편안하게 악수를 하는 페드로다.


"반갑습니다. 보스."

“다음 해리스 에드워드.”

“잘 부탁드립니다. 보스. 월급 주신 만큼 합니다.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삼십대 중반으로 썩 잘생긴 미남이다.

씩씩하게 말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은 넬슨 마르티네스입니다."

"다음은 앨런 베이커입니다."


다음은 데이비드 또 다음은....

이름을 하나하나 소개하는데, 모두가 적당한 절도와 여유가 적당히 섞인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 프로필 달라고 해서 외워야겠어.‘


주요 직책의 팀장급 이상이 10명이나 되다보니, 한꺼번에 모두를 머릿속에 저장하기가 힘들었다.


“모두 반가웠습니다. 일단 오늘은 인사만 나누고 다음에 함께 파티라도 합시다.”


프랭크 클락이 군대처럼 명령조로 말했다.


“해산!”


팀장들이 우르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한 덩치 하는 남자들이 빠져나가자 회의실이 더욱 크고 넓게 느껴졌다.

데본, 도널드, 프랭크 세 사람만 떠나지 않고 남았다.

류지호가 살짝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입을 열었다.


“일단 자리에 앉죠.”


세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도널드 제이콥이 입을 뗐다.


“경비 및 순찰업무를 담당하는 인력경비업체는 현재 1만개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은 대략 100억 달러. 인력 없이 경보서비스만 하는 업체의 수는 대략 1만 3천 개, 매출액은 45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보서비스업은 주거용 경비시스템의 가격이 저렴해지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본래 뉴욕의 Pinkerton Corp. 헤드쿼터에서 보고를 받아야했다.

류지호의 일정이 빡빡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회사 체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본사는 방문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LA폭동 문제는 군입대 다음으로 류지호를 괴롭히는 고민이다.

때문에 Pinkerton Corp. LA 지사만큼은 직접 챙기기로 했다.


“경비 장비제조 및 판매업 분야는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 매출 10억 달러, 46억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연 10%이상 성장세를 보이며 작년 26억 달러 서비스 매출과 117억 달러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향후 10년 후 80억 달러의 서비스 관련 수익과 240억 달러의 매출고를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류지호는 Pinkerton Corp.을 인수한 후로 미국의 시큐리티 산업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민간경비라고 한다면, 경호 및 순찰서비스를 떠올린다.

민간경비의 다양한 분야들 중에서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접촉하게 되는 유일한 경비 부문이기 때문이다.

실제 경호 및 순찰 서비스를 가장 많은 민간경비업체가 영위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눈에 잘 띄고 전체 민간경비업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시큐리티는 다양한 사업영역을 가지고 있다.

경호 및 순찰서비스를 기본으로 자체경비업, 경보서비스업, 사설탐정업, 무장차량 서비스업, 경비장비 제조 및 유통업, 자물쇠제조업, 경비자문업, 경비견, 마약검사, 법의학적분석, 거짓말 탐지 등 다양한 사업영역이 시큐리티에 포함된다.


“Pinkerton Corp.은 그 모든 분야를 다 합니까?”

“경비장비 제조 및 유통업과 자물쇠 제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주력사업 분야는 뭐죠?”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설탐정 서비스와 무장차량 서비스,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시큐리티 서비스입니다.”

“탐정업으로 독보적이라고 하던데....?”

“Burns Security 정도를 빼고 비교 대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대형 법률회사와 보험회사들이 꾸준히 Pinkerton Corp.을 이용하고 있으며, 신용 조사 등의 배경 조사, 내부 도난사건이나 기타 근로자들의 범죄 조사, 비밀 마약 조사, 도난 물품의 소재 파악 및 반환업무, 민사·형사 재판에 이용될 증거 확보 등의 업무를 서른 개 이상의 지부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금수송도 합니까?”

“모든 주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력 서비스 중에 하나인 것은 맞습니다.”


Pinkerton Corp.은 중무장 차량과 무장 경호원 등이 수행하는 고액의 현금, 귀금속, 신용카드 등의 고가품을 수송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데, 현금자동지급기사용 증가와 도시 내 주차기의 주차비 수거를 민간의 무장 차량 서비스로 대체하려는 추세, 고액의 현금을 소지해야하는 상인 및 회사에 대한 경호업무 수요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었다.

국가 공권력인 경찰에 의해 수행되어왔던 범죄 관련 서비스들은 헌법상의 권리와 주로 연관되기 때문에 민간경비로의 이전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공공건물 경비, 주차 관련 경비 업무, 공원 순찰 업무, 동물 보호 및 통제, 특별 행사의 경호, 장례식의 경호, 법원의 경호, 죄수의 호송 업무, 공공 주택의 순찰 업무 등 이미 상당 부문의 업무는 민간업체로 이전한 상태이다.

Pinkerton Corp. 또한 주정부들과 계약으로 공공 영역의 시큐리티 서비스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CCTV와 방범센서, 출입통제장치 같은 장비들의 발전속도가 빨라서 경비인력이 감축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인건비 감소로 수익구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프랭크 클락이 어림도 없다는 듯 반론을 폈다.


“실제 가드가 있는 것과 감시 장치만 있는 예방효과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계식 장치는 대원의 임무를 보조하는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리 감시 장치가 발전한다고 해도 경비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만 변경될 뿐 인력 변화는 없을 겁니다.”


프랭크 클락이 바램인지 전망인지 모를 말로 마무리했다.

류지호가 가만히 듣고만 있는 데본 테럴을 힐끗거렸다.

그는 특별히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한인타운 자율방범대 활동은 어때요?”

“현재 3개 방범대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20명으로 시작해 각각 50명 규모까지 늘어났으며 한국군 출신 남성들이 그들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입니다.”


인원이 늘어났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평상시에는 범죄예방을, 유사시에는 조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경대원으로.

특히 해병전우회, 베트남 참전용사회, 특전사전우회 등 기존의 한인 친목모임을 유사시 자경단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한인타운 방어에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인타운 자율방범대에 무엇을 지원하고 있죠?”

“Garam Invest의 이름으로 유류비와 저녁 식대조의 활동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큰돈은 아닙니다.”


순전히 자비를 들여 봉사활동으로 방범대원을 하던 이들이다.

류지호가 끼어들게 됨으로써 자율방범대는 자비 부담 없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장학금은 아직인가요?”

“선별 중입니다.”

Garam Invest는 자율방범대원 자녀 가운데 성적우수학생들에게 소정의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율방범대의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데본 테럴이 슬쩍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총기소지 허가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방범대원에게는 면허를 딸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한국군 예비역이며 팀장들은 장교 출신이거나 하사관 출신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체계만 잘 잡으면 꽤나 훌륭한 자경단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율방범대원 가운데는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직접적으로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장을 경험했던 한인 자율방범대원들에게 총을 쥐어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사실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나마 장교 출신들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체계만 잡힌다면 총기류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서와 협조는 잘되고 있습니까?”

“적어도 한인타운에서는 범죄율이 감소하고 있으니까, 그들로서는 무척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재난대비 매뉴얼은 마련되었구요?”

“지진,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 매뉴얼과 화재 및 블랙아웃 매뉴얼, 폭동 같은 소요사태와 테러에 대응한 매뉴얼 이렇게 세 가지를 마련 중입니다.”


류지호는 LA폭동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LA 지역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빙자한 명령을 내렸을 뿐.


“매뉴얼을 자율방범대에 수시로 교육해주세요. 그들은 한국의 민방위 시스템을 경험했기 때문에 금방 숙지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용부담 때문에 CCTV를 설치하지 못하는 점포에는 내년 봄까지 무조건 가짜 CCTV라도 설치하라고 하세요. 촬영 중이라는 표시도 큼지막하게 써놓으라고 하시고요.”

“모형 총기 구비하고도 연관 된 겁니까?”

“로드니킹 재판이 어떻게 진핼 될지 단언 할 수 없지만, 분명 한인타운 너머 동네 친구들의 성에 차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겠죠. 폭력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혹시 폭동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죠.”


프랭크 클락이 슬쩍 우려를 드러냈다.


“보스, 그렇다면 굳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이곳에 사무실을 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베벌리힐스 쪽으로 옮기는 것이....”


류지호가 농담을 던졌다.


“권총 한 자루 쥐어주면 스무 명도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겉모습만 그런 겁니까?”

“하하하. 제가 겁먹은 것으로 보입니까?”


류지호가 대답 대신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단지 회사 재산이 손상되거나 입지 않아도 될 인명피해를 상기시키는 겁니다.”

“불미스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다 해도 이곳을 공격할 만한 간 큰 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인타운 전체를 방어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건물 보호와 주변의 한 두 블록 치안유지는 우리 자원으로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우리 직원들은 실전경험까지 갖춘 유능한 대원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믿음직하네요.”


하하하.


프랭크 클락이 호탕하게 웃었다.

실제 호방한 성격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 처음 봤으니까.

다만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타입인 것 같았다.

데본 테럴이 별다른 평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간신배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아닐 듯 싶다.


“데본, 한인 점포들의 보험 가입률은 어떤가요?”

“보험들은 다들 가입한 편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자율방범대를 통해 보험 가입과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영주권 신청을 하도록 설득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총기 소지가 문제네요.”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가 강한 편에 속한다.

그로 인해 LA폭동 당시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사용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한인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다.

한인 사회 내부에는 영주권자 시민권자가 섞여있고 사회적 지위도 달라서, 무기 소지에 대해 모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다.

현재 한인사회 내부는 미국사회에서의 위치, 한국인으로서의 가치관 등이 혼재되어 총기 소지 문제 등에서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전 삶에서는 수많은 가게가 약탈당하고 건물들이 불타고 동포가 살해당하고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한인들이 총을 들었다.

큰 역할을 한 것이 AM 라디오 방송 ‘라디오 코리아’였다.

실시간으로 폭동상황을 LA 전역의 한인들에게 알렸으니까.

그를 통해 한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어쨌든 이전 역사처럼 똑같이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총을 소지하면 그걸 쓰고 싶어집니다. 특히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데본 테럴이 총기에 관해 심사숙고할 것을 충고했다.


“알아요. 하지만 앉아서 당할 순 없잖아요.”

“일단 로드니킹 사건은 봉합되는 분위기니 지켜보는 것으로 하죠.”

“조금 예민했네요. 그나저나 현재 경찰의 주요 수뇌부가 거의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라고요?”

“시 당국 고위층에도 상당히 많은 흑인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살았던 류지호가 몰랐던 사실들이다.

무려 5선의 흑인 시장이 LA 시정을 움켜쥐고 있으니 흑인 측근을 요직에 앉힌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시정부와 경찰 당국 내부에서 LA폭동 때 흑인들이 폭동을 통해 분노를 토해내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조한 데는 흑인 수뇌부들의 동의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재밌는 것은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선거구 대부분에서 흑인이 시의원으로 재직 중이라는 겁니다. 한인타운이 속해있는 선거구의 시의원 역시 흑인인데 그의 정치후원금 대부분이 한인커뮤니티에 나오지만 정작 한인들의 의견을 의정에 반영하는 것은 없지요. 한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만한 창구가 없는 상황에서 그저 개미처럼 일만 합니다.”


데본 테럴이 신랄하게 LA 한인들을 비판했다.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자리 잡으려면 단순히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정치력도 신장돼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처음부터 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겠습니까?”


류지호는 데본 테럴의 비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한인타운 단일 선거구 개정에 대해 생각해봤다.

한인타운 내에 히스패닉도 상당히 많이 유입되었다.

한인타운이 단일 선거구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계가 시의원으로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계 정치인을 배출하는 기회는 될 것이다.


‘내가 뭐라고 LA 한인동포들까지 챙겨야 하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 이민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려면 고학력과 어느 정도의 재력이 필수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이미 중산층인 사람들이 미국 이민자 대열에 오르게 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타지에서 먹고 사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 단합도 잘 안되고 미국사회에 제대로 안착할 궁리조차 못하고 있다.

UCLA 사회학 교수가 류지호에게 말했다.


“한국의 소위 증산층은 소외계층을 전혀 이해하지도 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 아마도 일본의 식민지배, 한국전쟁, 군사정권, 다른 가치를 모두 희생한 후에 얻게 된 경제개발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남보다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생존본능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어.”


류지호는 그 교수의 말에 동의를 하지 못했다.

본인이 어렵고 굶주려도 빵 한 조각이라도 이웃과 나누려는 민족성을 가진 것이 바로 한민족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미국에 와서 접한 동표들을 보면 그 교수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한국계 이민자들은 똑똑하게 굴어야 합니다. 단순히 2세들을 좋은 대학 보내고 안정된 직장에 보내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한국계 2세들이 더 많이 정부 기관으로 나아가야 하고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류지호도 다 아는 이야기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인사회 유력자들에게 강조하기도 했고.

어쨌든 고향이 없는 사람들은 한이 많다.

쉽게 노하지만 분이 삭으면 빨리 체념한다.

한인들은 한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민 1세대는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겪으며 이역만리 미국 땅에 자리를 잡았다.

또는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전쟁을 겪고 고향을 떠나왔다.

미국에 와서는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가며 피눈물 나는 삶의 투쟁을 했다.

흑인들도 한이 맺힌 사람들이다.

사정이 딱한 것도 똑같다.

한인과 흑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한인들은 비록 삶이 고달프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마음에 그리는 고향이 엄연히 존재한다.

뿌리가 살아있는 것이다.

반면 흑인들은 뿌리가 뽑힌 사람들이다.

게다가 한국 이민자 중에 이기적이고 못된 심보를 가진 이들도 많다.

다른 인종이라고 다를까.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인종 간 거리를 좁힐 여지는 충분히 있다.


“상황은 예의주시하되 한인들 스스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세요.”

“네.”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은 힘이 없다.

백인에 치이고, 흑인에 치이고, 이제 히스패닉에게도 치인다.

만만하니 인종의 충돌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인 이민 1세대들은 억척스럽게 지난 세월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왔다.

첫 세대는 내 몸 부서지는 것 아랑곳하지 않고 자식들 크는 것 보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한인 교포 사회도 두 번째 세대로 접어들었다.

살아남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면 이제부터는 백년 천년 이곳에 뿌리를 완벽하게 내릴 수 있는 토대를 준비해야 할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어쩌면 류지호가 LA폭동에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기존 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사건이 벌어져야 혁명적인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류지호라고 본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비록 파커와 그레이엄이라는 엄청난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언제 어떤 일을 미국에서 당할지 알 수 없다.

만만하면 희생양이 된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3개 조로 운영되는 경호원으로 제 한 몸 지키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가장 소중한 가족, 그리고 자신의 꿈까지 지켜내려면 강력한 뭔가를 갖춰야 한다.

재력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심지어 폭력적 수단이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PS. k5509_pruto님, noodles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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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6.02 09:13
    No. 1

    일개인인 ㅡ 일개 개인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트뤼포
    작성일
    22.06.05 10:37
    No. 2

    수정/보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6.02 09:23
    No. 3

    당시 엘에이 살았는데 다행히 제가 살던 동네는 살짝 교외라 연기가 보이는 정도였죠. 이후 우리 세대 교포들은 참 많이들 고민하고 뭐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시대가 좀 변한게 십년전쯤 뉴저지 경찰들이 은퇴하고 자기들을 경비로 고용하지 않으면 911 전화를 해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그쪽 주민들, 특히 한인들을 협박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미 한인들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상태라 대형로펌 다니는 그들 자녀들이 소송걸고 해서 이겼다고 하더군요. 별 연관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생각이 나서 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6 valette
    작성일
    22.06.02 09:38
    No. 4

    많이 바뀌었네요. 감사하며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6.02 09:41
    No. 5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6.02 14:37
    No. 6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6.03 14:04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9 엠텍
    작성일
    24.03.14 20:48
    No. 8

    한말 또하고 또하고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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