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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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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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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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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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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재난영화 탈을 쓴 고발영화?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장마가 물러간 7월 말.

류지호는 박건호 대표, 전하영 PD, 오동석 실장과 함께 피카디리 극장에 와있다.

오늘 개봉하는 WaW와 일영영화사가 투자/공동 배급하는 영화 <그 여자, 그 남자>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류지호에게 오래토록 추억 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영화는 아니다.

감독과 주연 배우들 격려 차 첫 회 상영을 보기로 한 것.

관객들이 제법 많이 찼다.

솔직히 류지호의 감상은 그저 그랬다.

감독의 전작 <결혼 이야기> 만큼의 흥행은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피카디리가 밀어주고 WaW 픽처스 배급망까지 함께 하니 망할 걱정은 없다.

서울에서 10만 명만 동원해도 성공했다고 하는 것이 이 당시 한국영화 흥행이다.

류지호의 기억에 20만은 넘겼던 것 같다.

그 것만으로 꽤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역시 남자는 박중환, 여자는 강주연 누님인가....?’


영화계에서 강주연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오죽하면 영화제목이 <그 남자 그 여자>에서 <그 여자 그 남자>로 바뀌었을까.

크레디트도 남자 주인공보다 여주인이 먼저 나온다.

엔드 크레디트(end credits)가 스크롤되기 시작했다.


우루루.


관객들이 서둘러 극장 안을 빠져나갔다.

영화 관계자들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류지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엔딩 음악과 크레디트를 끝까지 봤다.

자신의 이름을 보기위해서?

스태프들의 이름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전 삶의 추억을 반추하기 위해서?

아니다.

엔드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는 것은 영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한국에서는 영화가 끝나면 습관처럼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심지어 극장 측에서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극장 안의 불을 일제히 켜버린다.

그렇게 나갈 것을 은근히 종용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전 삶에서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 갔다가 아예 엔드 크레디트를 서둘러 끊어버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류지호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무대로 올라온 감독의 표정은 당혹감 그 자체였다.

명색이 국제영화제고 감독까지 초청한 마당에 엔드 크레디트를 서둘러 끊어버리는 일이 단순히 습관화된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봐야 할까.

사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행동이었다.

명색이 국제영화제에서.

그래서 류지호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영화제 측에서 감독님 영화 엔드 크레디트를 중단시켜버렸는데, 기분은 괜찮으십니까?”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나... 뭐라 말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 영화제 측을 이해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때 그 감독의 당혹스러움을 류지호 본인도 데뷔영화에서 똑같이 겪었다.

비록 극장의 반도 관객으로 채우지 못했지만.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자마자 극장 안에서 나가버리자 극장 영사실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엔드 크레디트를 끊어버렸다.

그때의 그 참담한 기분이란...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배급하는 영화가 상영되는 미국의 극장에서 영화 본편이 끝났다고 극장 불을 켜거나 마지막 영화사 고정형 로고가 뜨기 전에 엔드 크레디트를 끊는 걸 본 적이 없다.

외국 극장들은 관객이 서둘러 나가는 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최소한 불을 먼저 켜지도 않고 엔드 크레디트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영화인들은 엔드 크레디트에 애착이 있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 분야의 창의력이 융합된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엔드 크레디트에는 영화에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열거된다.

참여자들의 서명 같은 거다.

개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빼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영화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사람들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고, 그것이 스태프들의 경력이 된다.

엔드 크레디트를 끝까지 봐주는 행위는 그들의 수고에 대한 하나의 예의가 될 수가 있다.


“......?”


류지호가 숫제 앞좌석에 팔을 걸친 채 턱을 괴고 크레디트에 시선을 뒀다.

오동석이 슬그머니 다가와 귓가에 대고 물었다.


“감독님, 안 일어나십니까?”

“아직 엔드 크레디트가 끝나지 않았어요.”

“감독님 이름은 앞 쪽에 이미 지나갔습니다만?”

“어차피 100분을 영화 보는데 투자했는데, 5분 남짓한 엔드 크레디트를 보는 게 뭐가 대수겠어요.”


작정하고 흥행성만 내세운 영화도 엔드 크레디트에 깔리는 음악은 바로 영화 전편에 걸쳐 있는 분위기를 대변해 주는 주제곡이다.

주제곡이 괜히 주제곡이 아니다.

간혹 엔드 크레디트에서 곡이 바뀔 때는 그것조차 감독과 영화음악가가 의도한 것이다.

물론 음악의 길이가 모자라 새로운 곡으로 채우는 경우도 많지만.


“오 실장, 관객에게 엔드 크레디트를 봐달라고 강요할 수 없죠. 하지만 영화인들끼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어차피 저기 스태프들 거의 다 아는 사람인데 뭘 새삼스럽게....”

“우리가 먼저 동료들에게 예의를 보이자고요. 그래야 우리도 똑같이 존중 받죠.”


좌석을 벗어나려던 전하영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도로 의자에 붙였다.

류지호처럼 엔드 크레디트를 보고 있던 박건호 대표가 허허 웃었다.

자신은 꼰대 소리 들을까봐 젊은 사람들에게 못하는 말이다.

이십대 청년이 그리 말하자 제법 설득력 있게 들렸다.

WaW 픽처스 식구들만 극장 안에 남아 끝까지 엔드 크레디트를 봤다.

돌비사운드 마크를 마지막으로 WaW 픽처스 고정형 로고가 뜰 때까지 오동석은 류지호 곁에 우두커니 서서 엔드 크레디트를 봤다.

영사실에서는 크레디트의 오타라도 확인하는 줄 알고, 중간에 끊지 않았다.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았다면 진즉 엔드 크레디트를 끊어버렸을 것이다.


“건너편 커피숍에 감독님과 배우분들 계신데 가보시겠어요?”

“오늘은 제작진들끼리 즐기도록 놔둡시다.”


류지호와 WaW 픽처스 주요 수뇌들이 강남 사무실에 다시 모였다.

WaW 픽처스가 제작 하는 한국영화에 류지호는 제작자 크레디트를 받았다.

실제 영화사 대표인 박건호의 이름은 제작총괄이라는 충무로에서만 통용되는 크레디트로 올라갔다.

그 외에 투자만 진행한 외부 영화의 경우에는 제공 크레디트로 올라갔다.


“트라이-스텔라 영화에 감독님 크레디트가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던데요?”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돈 댔다고 그렇게 올려주더라고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크레디트는 제작비의 25% 이상을 투자했거나, 영화의 스토리 등에 아주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딱히 프로듀싱을 했다기보다 돈을 대거나 하는 식으로 물심양면으로 프로듀서를 도왔다는 의미다.

간혹 G&P의 제임스 파커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제작 영화에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타이틀을 받기도 한다.

G&P 부자펀드 일부를 운용해서 영화에 투자하는 장본인이니까.

영화 제작의 총책임자인 Producer는 모리스 메타보이 이름이 주로 올라갔다.

캐롤코나 락캐슬, 리젠시 같은 제휴영화사들의 작품 프로듀서 타이틀은 당연히 그들이 가져간다.

제휴영화사 작품인 경우 류지호는 또 하나의 크레디트를 받고 있다.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 크레디트다.

할리우드 영화 크레디트에서 협력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 공동 프로듀서(co-producer), 보조 프로듀서(assistant producer) 크레디트를 받는 사람들은 프로듀싱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프로듀서가 영화를 제작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 정도로 보면 된다.

배우들이 이런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면 거의 100% 자기 돈을 댔다는 의미다.

아니면 자신이 받게 될 출연료 상당부분을 영화제작비로 돌렸거나.

암튼 류지호와 WaW 픽처스 수뇌부가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제작 크레디트로 대화를 나누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감독보다 프로듀서로 먼저 데뷔할지도 모를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바로 워킹 타이틀 <붕괴collapse> 프로젝트로.


“240억짜리 영화는 한국에서 무립니다.”

“<서편제>가 초대박이 터졌는데도 태양영화사가 얻은 수익이 50억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감독님이 만들 영화를 일 년 내내 극장에 건다고 해도 투자비 전액은커녕 절반도 회수 못한다고요.”


박건호, 전하영, 오동석이 차례로 말했다.

류지호가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충무로에서는 그 정도는 들지 않겠죠.”

“그래도 한 100억은 잡아야 할 겁니다.


20억 예산의 <하얀 메달>이 블록버스터 대접을 받는 것이 충무로 현실이다.

오동석이 역시 사정하듯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그렇게 영화를 하면 안 됩니다. 감독님!”


전하영이 진지하게 충고했다.


“맞아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는 충무로에서 못 찍어요. 차라리 졸업하고 트라이-스텔라에서 하세요. 그게 올바른 판단일 것 같아요.”


워킹 타이틀 <붕괴collapse> 프로젝트는 도저히 한국에서 촬영할 인프라가 없다.

CG는 차치하고라도, 미니어처 촬영, 세트 미술, 배우 숫자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씨네-누보가 준비하는 <구미호>의 프리프로덕션을 보면서 류지호는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미국에서 들여온 최신 사양이라며 류지호에게 워크스테이션을 자랑했다.

류지호가 UCLA에서 단편작업하면서 계약한 작은 업체가 사용하는 제품보다 사양이 떨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씨네-누보 아카데미에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의 최신 워크스테이션을 사주고 싶을 정도로 딱해 보였다.

참고로 <터미네이터Ⅱ>와 <쥬라기 공원>에 사용된 워크스테이션이 실리콘 그래픽스 제품이다.

이 시대 일반인들이 꿈도 꾸지 못할 컴퓨터 사양의 워크스테이션 제품으로 유명한 실리콘 그래픽스는 최저 가격이 3만 달러, 영화 CG기술에 사용된 사양은 10만 달러를 상회했다.

단 한 대 가격이다.

이 당시만 해도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은 최첨단 비주얼 기술의 상징이다.

류지호는 아날로그 특효기술의 실험장인 <우뢰맨> 촬영장에도 가보았다.

미래를 살다 와서 그런지 눈높이가 할리우드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할리우드에서도 풀 CG로 건물붕괴를 구현하지 못하긴 할 겁니다.”


현재 할리우드 VFX업체들도 먼지, 미니어처 폭발·붕괴, 실사 배경 등 소스를 촬영한 후 컴퓨터에서 이를 합성하고, 보조수단으로 CGI 기술을 입히는 정도다.

세계 최고의 영화 VFX 기술을 가진 LMI에서조차 <터미네이터Ⅱ>와 <쥬라기 공원>에서 실사촬영을 꽤 많이 한 후에 합성과 실사에 그래픽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쥬라기 공원> 못 봤어요?”


오동석의 물음에 류지호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봤죠.”

“예산이 많이 들겠지만, 못할 건 없을 것 같은데요?”

“된다고 쳐요. CG를 포함한 VFX 예산만 최소 1천만 달러 이상은 잡아야 할 텐데.....”

“80억! 한국영화가 도대체 몇 편이야?”


오동석이 혀를 내둘렀다.

전하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리 그냥 그 돈으로 한국에서 8편 제작하면 안 될까요?”


하하하.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영화 투자·제작은 이제 WaW 자체적으로 가능하잖아요. 가온GP 영화투자펀드도 있고. 트라이-스텔라를 경험하고 왔다고 의욕이 넘치는 모양인데,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한국영화 시장이 그런 제작편수를 감당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류지호가 의욕 넘치는 전하영을 다독였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 최초라고 할 만한 CG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씨네-누보는 K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협력으로 한국 최초의 CG영화를 표방하는 <구미호>를 제작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무척 고생스럽다.

막상 실제로 곁에서 지켜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하영은 좀 더 산업이 성숙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류지호는 <구미호>에 대해서는 지켜만 보고 있다.

WaW 픽처스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신강 PD가 KETRI에서도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서 엄청 헤매던데......”

“Garam Invest가 적당한 규모의 할리우드 VFX를 물색 중입니다. 만약 미국에서 VFX 회사를 인수하게 되면 당연히 인건비가 싼 한국에 지사를 세워야 하겠죠. 그렇게 하청일감을 맡아 하면서 기술력과 실력을 쌓아가는 겁니다.”


끄덕.


전하영이 수긍했다.

남편이 준비 중인 영화에 WaW 픽처스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전혀 섭섭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WaW 픽처스가 충무로가 개척하는 길을 똑같이 따라 갈 필요는 없다.

게다가 자신의 보스는 한국영화 전체 시장규모를 훌쩍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할리우드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다.

VFX회사뿐만 아니라 더한 기업을 인수해서 한국에 지사를 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박건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재난영화를 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암아파트상가가 무너진 걸 뉴스에서 보고, 끔찍한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고 생활하는 이 공간들이 과연 그러한가.... 매년 태풍이 오면 십만 명의 이재민이 생기는데, 만약 지진이라도 나면 우린 과연 안전할까?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우리는 한 번도 그런 의심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 뉴스를 보고는 지금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당장 이사 나오라고 하고 싶었다니까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이야기입니까?”

“자연재해가 될지 인재가 될지 아직 구체적이진 않아요.”


류지호는 성급하게 아이디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제작할지 미국에서 할지 아직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황.

성급하게 아이디어를 공개할 필요는 없다.

박건호 대표 진지하게 조언했다.


“미리부터 예단하지 말고, 마음껏 영화를 구상하세요. 예산 생각하고 환경 따지다보면 좋은 글 안 나옵니다.”

“지금은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만 있을 뿐이에요. 취재도 좀 더 해보고, 관련 지식도 공부해야 되고. 시놉 나오면 그때 다시 회의를 해봐요.”


모두가 한마디씩 응원을 보냈다.


“힘내세요.”

“기대할게요.”

“이번에도 죽이는 책 한 번 뽑아보세요.”


류지호는 현재 가진 능력으로 <붕괴 : collapse> 프로젝트를 통해 충무로의 한계를 몇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

문제는 연속성이다.

영화 한편이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해서 충무로가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류지호다.

앞으로 WaW 픽처스가 충무로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

류지호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충무로가 금방 따라올 수 있을 정도만 앞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규제와 독점이 생기는 순간 망한다.

창의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다양성만이 시장을 키우고 살찌우고 확장시키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WaW 픽처스는 모든 걸 다 먹어치우는 괴물이 아니라 시장을 선도하는 영화사가 되어야한다.

그 같은 류지호의 철학을 과연 WaW 임직원들이 멋들어지게 구현해줄지 알 순 없지만.


❉ ❉ ❉


<붕괴 : collapse>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제작사를 결정하고 못해 류지호가 표류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손님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건축공학 및 구조공학 전문가였다.

류지호가 미국에서 전문가를 데리고 온 도널드 제이콥에게 물었다.


“며칠 일정으로 방문한 겁니까?”

“5박 6일입니다.”

“하루는 호텔에서 푹 쉬라고 하세요.”

“예.”


두 전문가는 강남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묵었다.

시차적응을 겸해 하루를 쉰 전문가들은 따로 삼봉백화점을 둘러보진 않았다.

대신 나래안전 조사원들이 그 동안 촬영한 사진이나 설계도면, 그림 자료 등을 꼼꼼히 검토했다.

고작 3일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전문가들은 부족한 자료임에도 많은 것을 알아냈다.

그런 후 리츠칼튼 호텔 객실을 잡아 류지호를 위한 특별과외를 했다.


“여기 건물 옥상에 설치된 에어컨 냉각탑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3개군요. 추정치지만 냉각탑 자체 무게만 해도 대략 36톤, 만약 냉각수를 채운다면 87톤에 달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설계단계에서 그 하중을 견딜 수 있게 계산했다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건축공학자의 말이 끝나자, 나래안전 직원이 류지호에게 부연설명을 했다.


“개장 초기부터 미세한 진동을 느낀 업주들이 많았고, 물이 새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초에 옥상 동쪽에 설치되어 있던 냉각탑을 반대편으로 옮겼답니다.”

“멀쩡한 걸 왜 옮겼대요?”

“냉각장치가 가동되면 소음이 어마어마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장난 아니었답니다.”


삼봉백화점은 설계 변경으로 하중을 한참 넘기던 상황에서 거론 된 냉각탑이 건물의 치명타가 된다.

이 냉각탑이 사실상 건물 붕괴의 결정적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건물 고층에는 무거운 짐이나 시설물을 올리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미스터 류는 미국의 백화점을 가봤습니까?”

“맨해튼의 유명 백화점은 다 가봤을 겁니다. 어떤 분 때문에.”


류지호가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했을 때 캐서린이 뉴욕의 웬만한 명품 백화점은 다 데리고 다녔다.

가족이 뉴욕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 백화점 중에서 가전제품이나 가구 매장, 여러 개의 레스토랑이 고층 어떤 한 층에 모여 있는 걸 봤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서점, 가전제품, 가구 등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진열하는 매장은 기본적으로 고층에 배치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반드시 안전을 확인한 후 보강이나 하중을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 분명히 하고 실행합니다.”


굳이 건축공학이 아니더라도 상식이다.


“더욱 문제는 뭔 줄 압니까?”

“.....?”


문제가 한두 가지 일리가 없다.

천재지변으로 무너질 건물이 아니니까.


“특별히 보강 공사를 한 이슈가 없음에도, 이 그림과 도면에는 맨 꼭대기 층에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군요. 레스토랑에는 당연히 중량이 많이 나가는 냉장고와 가스 시설, 식품보관 창고, 테이블과 의자 등 기본적으로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설계단계에서 그런 모든 걸 고려했다면 상관없습니다. 공법자체는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안전한 기술이니까요. 하지만 설계가 변경되었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건축공학자는 계속해서 비관적인 설명만 늘어놓았다.

당연했다.

비유하자면 삼봉백화점은 성냥으로 쌓은 탑 위에 물이 가득 담긴 주전자를 올려놓은 꼴이었으니까.


“이 건물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죠?”

“.....?”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한 건 아닙니다. 난 그저 미스터 류의 궁금증만 해결해 줄 뿐.”

“.....!”

“솔직히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1년 이상을 버텨온 게 용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계변경, 냉각탑, 매장배치의 문제 기타 등등.

그것만으로 심각한데 몇몇 기둥을 아예 제거했거나 남은 기둥들의 지름까지 깎았다고 한다.

처음 설계한 건축사무소에서 32인치로 설계했다면 실제 삼봉건설에서는 8인치 정도를 줄여서 기둥을 세운 것이다.

자재를 줄여 공사비용을 줄인 공사관계자가 그 돈을 착복하기 위해서다.

이쯤 되면 건물을 폐쇄하고 정밀한 안전진단과 후속 대책을 세우는 것이 상식적인 조치다.

전문가라면 당연한 주장이다다.

탐욕에 눈이 먼 백화점 회장과 관계자들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작년 삼봉백화점은 매출액 937억 원, 올해는 1000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고객은 강남 부유층 주부들이다.

수입 의류와 호화 가구 등 고가의 제품을 판매해 명품백화점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 상황에서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위해 몇 달 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몇 백억의 매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땜질식 보수를 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류지호를 위해 특별 과외를 해준 전문가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문하는 대가로 꽤나 짭짤하게 챙길 수 있었다.

GARAM Ventures와 10년 간 비밀을 유지한다는 계약서도 따로 작성해 두었다.

두 전문가는 자신들이 자문한 건물이 삼봉백화점인 줄은 몰랐다.

실제 건물이 붕괴되고 나서 알게 될 것이다.


❉ ❉ ❉


미국에서 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대략적인 트리트먼트를 작성했다.

주인공과 조연들의 캐릭터 히스토리도 짰다.

삼봉백화점 붕괴와 관련된 타임테이블, 갈등의 큰 줄기, 위기상황의 아이디어도 만들었다.

이제 그런 것들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결국 <Collapse>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도저히 충무로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에 영화를 개봉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초고가 나와야 했다.

시나리오 쓰는 법.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다.

시나리오 작법 관련 서적이 한국 서점에는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제법 많이 출판되었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핵심은 누구나 다 안다.

비현실적이거나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현실화하는 기술에 있다.

한마디로 포장술이다.

세계영화 역사 초반은 프랑스 영화가 전 세계를 석권했다.

그 시기를 지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끊임없이 이 포장기술이 발전해 왔다.

그런 시도들이 쌓여 소위 공식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할리우드 상업영화 공식은 대강 이런 식이다.

첫째가 주인공을 영웅화한다.

주인공이 악당이든 정의의 사도든 상관이 없다.

감독과 촬영감독은 촬영술, 조명, 음향, 특수효과 등을 총동원하여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려낸다.

선과 악의 뚜렷한 이분법 속에서 주인공과 악당 모두 영웅화된다.

이런 영웅화된 선악 대립구도의 조절을 통해 갈등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영화전개 속도를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향해 속도감 있게 질주하다가 해피엔딩으로 결론을 낸다.

미국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불행한 결말, 여운을 남기는 결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분명한 결과를 확인하는 걸 선호한다.

2000년대로 넘어가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또 하나의 공식 혹은 법칙은 ‘영화 시작 5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아라’다.

일명 ‘5분의 법칙’이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상업영화 오프닝은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든 현란한 액션 시퀀스를 펼치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든 최고인기스타의 매력을 극단적으로 어필하든, 5분 안에 뭔가를 보여준다.

그렇게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었더라도 이후로 관객에게 지루함을 주게 되면 영화는 실패한다.

3분, 최대 5분을 넘기지 않는 에피소드들을 끊임없이 이어나간다.

관객이 영화적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계속해서 사건들을 이어나가며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관객들의 흥미 유발을 시키기 위해 긴박감, 위기감, 감동, 전율, 공포 등의 강도를 계속해서 끌어올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폭발시킨다.

원리와 구조는 쉽다.

실제 쓰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할리우드의 모든 스튜디오는 공공연하게 이러한 공식을 작가들에게 요구한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시나리오 검토 직원들은 첫 다섯 페이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첫 다섯 페이지를 읽고 흥미가 생겼다면 이 후 10페이지까지 읽는다.

중간 내용을 건너뛰고 마지막 다섯 페이지를 읽는다.

그렇게 검토한 시나리오들을 분류해서 따로 놓는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시나리오, 다시 읽어볼 시나리오, 모두가 읽어볼 가치가 없는 시나리오, 분쇄기로 들어가거나 작가에게 반송해야 할 시나리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시나리오에는 각자 마음에 들었던 씬에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를 해 둔다.

그런 식으로 기획팀을 거쳐 최종적으로 임원에게 올라오는 시나리오에는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어있다.

메이저 스튜디오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은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사니리오가 한정적이다.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부서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해 올리면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페이지만 읽게 된다.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만 하더라도 읽어야할 시나리오가 하루 열편이 넘는다.

물론 논스톱으로 최고위 임원으로 향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유명 감독, 유명 프로듀서가 가져왔거나 스타급 배우가 가져 온 시나리오다.

류지호의 <Collapse> 시나리오 역시 직통으로 임원들에게 배달될 것이다.

오너이자 투자자가 추천하는 영화니까.

신인감독이나 작가처럼 익명으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 소포로 접수한다?

류지호는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편하게 영화를 하려고 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벌고 있는 것도 본인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없다.

류지호는 창피하지 않을 수준으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기만 하면 된다.

임원들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유능한 작가를 데려다 시나리오를 고치면 된다.

그런 후에 유능한 프로듀서가 근사한 영화로 제작해 줄 터.


“참 쉽죠?”


EBS에서 방영하게 될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노먼 로스가 하게 되는 말이다.

누군가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다.

어쩌랴 류지호에게는 쉬운 일인 걸.

참고로 할리우드에서는 시나리오의 부분별 시퀀스만 전담하는 작가팀이 존재한다.

쿠엔 태런티노는 앞으로 여러 상업영화 시라리오 윤색에 많이 참여하게 된다.

주로 영화 패러디 아이디어와 대사를 많이 만지게 된다.

그 때문에 쿠엔 태런티노가 시나리오에 참여했던 영화에는 각색 크레디트를 받지 못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윤색 정도로는 시나리오 작성에 공헌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여의도 가온GP투자신탁 대주주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청계천 조립 컴퓨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팔려나기 시작하는 최신 386 컴퓨터다.


탁. 타탁. 타타타타타타탁!


류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찍히는 단어들은 주로 영어다.

부정확하거나 세련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은 부분은 한글로 썼다.

단편영화 시나리오와 장편영화 시나리오는 당연히 호흡이 다르다.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마치 시를 쓰는 것 같았다면,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

더위가 물러날 때까지 류지호는 <Collapse> 시나리오에 몰두했다.


작가의말

기계적으로 연재예약을 걸어놓다보니 200회인 줄도 몰랐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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