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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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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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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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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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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Life Goes On.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스테디캠을 이용해 가볍게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장편영화를 찍어버렸다.

보통 40분이 넘으면 중편, 60분이 넘으면 장편영화로 분류하는 편이다.

사실 명확한 기준은 없다.


[영화의 길이는 인간 방광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히치콕 감독이 한 말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인터미션(중간휴식)이 없다.

관람 시에서는 비디오처럼 ‘pause'를 누르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없다.

영화가 태동되는 초창기에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15분을 넘지 못했다.

1,000피트 필름 한 릴이 곧 러닝타임이었다.

관객들은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영화로 보길 원했다.

하지만 필름을 이어 붙여서 상영하는 영사기술이 당시에는 없었다.

관객들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15분짜리 1편씩을 엮어 공개하는 연작 개봉방식이다.

요즘으로 치면 한 주에 한 편씩 방영하는 연속극을 극장에서 본 것이다.

마침내 1930년대에 가서야 관객들의 몰입을 유지하면서 할리우드 수익까지 극대화할 수 있는 러닝타임을 90분으로 정하게 됐다.

안타깝지만, 미국에 경제공황이 불어 닥쳤다.

관객 수가 줄 수밖에.

할리우드는 이에 대한 대처법으로 영화 두 편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동시상영을 유행시켰다.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려면 9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에다 극장의 하루 상영회차를 늘려 관객을 더 많이 받기 위한 전략도 더해졌다.

이후로 할리우드 영화의 러닝타임이 꾸준히 늘었다.

그럼에도 2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회 상영 시 관객 입장 및 퇴장, 정리정돈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극장의 입장에서 2시간이 가장 이상적인 러닝타임으로 간주되었다.

러닝타임이 2시간 이내일 때 첫 회차부터 마지막 차까지 총 6회를 걸 수 있는 데 반해, 그 이상일 경우 4회밖에 상영을 못 하게 된다.

당연히 수익이 줄어든다.

또한 관객의 편의도 고려되었다.

밀폐된 극장 환경에서 편안한 관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45분 안팎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실 전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잘 만든 영화는 최적화된 러닝타임으로 얻는 수익보다 관람객의 증가로 얻는 수익이 더 클 것이고,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관객이 느끼는 체감 러닝타임은 실제 러닝타임보다 짧을 것이다.

영화제작의 주도권이 프로듀서(제작자)에게 있는지 아니면 감독에게 있는지에 따라서 러닝타임도 달라진다.

<늑대와 춤을>이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투자·제작을 했다면 4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정도에서 멈출까....?”


<Life Goes On>을 준비하면서 그런 고민을 했다.

장편영화 데뷔를 이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생각해보니 이번 영화가 불만족스럽게 나온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바로 학생작품이라는 점이다.

스무 살 청년이 만든 영화치고는 썩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자신은 있다.

한편으로 이전 삶에서 세 편의 장편 연출작이 있었는데, 굳이 장편데뷔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의문도 들었다.

따라서 쿠엔 태런티노처럼 충격적으로 데뷔할 게 아니라면, 단편이든 장편이든 대수인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냥 찍었다.

장편영화 최소 러닝타임으로.


“4월에 개봉을 할 수 없다고요?”


류지호의 물음에 알버트 마샬이 대답했다.


“파라맥스 상반기 라인업은 이미 스크린을 다 확정했다네. 디렉터 류.”


미스터 류도 아니고, 지호도 아니고, Jay도 아니고, 호칭이 디렉터 류다.

알버트 마샬은 오너와 최고경영자의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감독과 프로듀서의 관계로 대화하고 있었다.


“하아....”


류지호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16mm로 촬영한 필름을 35mm로 블로우-업(blow-up) 할 것까지 고려해 작업했다.

헌데 내년 상반기 파라맥스 라인업이 확정되었다는 설명이다.


“지역 소도시 극장이나 드라이브인 극장은 찾아보면 잡을 수 있을 걸세.”

“다른 곳은 몰라도 캘리포니아 주요도시에서 최소 30개 스크린은 잡아야 합니다. 그럴 생각으로 41분짜리와 49분짜리 두 편으로 편집한 겁니다.”


편집 포인트를 계산해 촬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버린 장면들까지 모두 영화에 집어넣으면 60분 이상도 가능했다.

동어반복적인 느낌의 에피소드 등 쳐낼 걸 쳐내버리고 최종 편집한 것이 40~50분 대 두 개 버전이다.


“디렉터 류의 영화를 위해 다른 영화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네.”


기업은 수익창출이 목적인 곳이다.

장-삐에르 주네 감독의 <델리카트슨>.

류지호가 뉴욕에서부터 친분이 있었던 토머스 디실로 감독의 데뷔작 <쟈니 스웨이드>.

그 같은 영화를 까고, 그 자리에 자신의 영화를 넣는 것은 어려웠다.

토머스 디실로는 존 자무슈 감독과 친구다.

이번 영화에 브래들리 피츠가 출연했다.

브래들리 피츠의 상업영화 데뷔작을 포기하고, 자신의 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누군가의 영화를 빼고, 내 영화를 넣고 싶진 않아요.”

“하반기에 개봉하는 건 어때? 9월에 한 편 더 개봉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의미 없어요.”


1992년 4월 29일.

LA폭동을 후일 4·29 폭동이라 부르게 된다.

류지호의 <Life Goes On>은 그 전에 개봉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물론 이 영화로 흑인들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다.

그들의 분노의 방향을 다른 인종이 아닌 미국사회 시스템으로 돌릴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그런 영화로 치부되어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다 떠나서 영화를 만든 의도를 생각했을 때, 4월에 개봉해야 의미가 있다.


“4월 달에 내가 모르는 기념일이라도 있나? 마틴 루터 킹의 날은 1월에 있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기념일은 2월로 알고 있는데. 남북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5월이지 않나?”


알버트 마샬은 4월을 고집하는 류지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1~2월, 5월은 그런 기념일로 인해 미국인들이 인종문제를 한번 쯤 생각해볼 겁니다.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을 하겠죠. 하지만 3~4월에는 그런 것 따위는 잊어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 패트릭스 데이나 부활절 축제를 즐길 겁니다.”

“꼭 그 기간에 영화를 공개하고 싶은 건가?”

“예.”


류지호의 단호함에 알버트 마샬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융통성을 발휘해보지.”

“어떻게요?”

“디렉터 류와 파라맥스의 계약과 관계없이 먼저 단편영화로 공개하는 걸세.”

“스크린 확보가 문제라고 하지 않았어요?”

“4월과 5월 초에 국제규모의 영화제가 여럿 개최되지.”

“출품한다고 해서 수상이 보장된 것도 아니잖아요. 이슈몰이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긴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디렉터 류의 영화가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거나, 그 곳에서 큰 이슈를 끌어 모으는 걸세.”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 중 하나다.

이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할리우드까지도 들썩인다.

본선 상영작으로 공개되면 할리우드 관련 언론매체에서 주요 이슈로 크게 다뤄 준다.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출품해야 이슈가 되지 않겠어요?”

“12월 초가 마감인 것으로 알아. 그때까지 60분 이상 러닝타임의 장편영화를 완성할 수 있겠나?”


류지호로서 할 말이 궁색해졌다.

2주 안에 분량을 늘려 포스트 프로덕션을 마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서두르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하면 영화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16mm 필름을 35mm로 블로우-업(blow-up) 하는 과정과 색보정 작업은 꽤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영화제 수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이 디렉터 류의 영화를 보길 바라는 것, 맞지?”

“네.”

“디렉터 류의 영화를 파라맥스가 많은 극장에 배급한다고 해서, 빈민가 사람들이 영화를 봐주지 않을 거야. 그들은 오락영화나 블랙필름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디렉터 류의 영화는 중산층, 지식층이 즐기는 영화일세.”


류지호로서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롱테이크 스테디캠, 스텝프린팅 등 제 아무리 스타일리쉬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스타가 나오지 않고, 장르적 흥미를 끌 요소가 없다면 일반인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상업영화는 특정 타깃층을 명확히 하고 기획·제작을 한다.


“일단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해 봐야지. 그리고 파라맥스에서 장편영화로 만들 거라고 발표를 하는 거야. 그러면 주목을 끌 수 있을 걸세. 거기에 감독이 미스터 류라는 걸 또 한 번 공개해야겠지. 아, 파라맥스보다 트라이-스텔라가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겠군.”

“현재도 장편 분량이 나옵니다만.”

“크레디트 빼고 본편만으로 60분을 채울 수 있겠나? 몇 장면 더 추가한다면 영화가 흔들리나?”

“곁가지 같아 찍지 않은 장면이 세 개가 있긴 합니다. 그걸 찍어서 붙이면 65분은 어찌어찌 넘길 수 있긴 하겠네요.”

“미스터 류는 단편영화로 편집해서 영화제에 출품을 하게. 남은 것은 메타보이씨와 내가 알아서 하겠네.”


단편영화 규정은 영화제 마다 각기 다르다.

보통 40분 이하로 작품을 출품 받는데, 30분 이하로 규정하는 곳도 많았다.


“혹시 영화제 측 프로그래머에게 로비를 하려는 건 아니죠?”

“자신의 영화에 자신이 없나?”

“대상 수상은 몰라도 본선 초청작에는 들어가겠죠. 그 정도는 충분히 자격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미스터 류는 시카고와 클레르몽-페랑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지. 이번 영화 역시 그것들 못지않게 잘 나왔다고 생각해. 솔직히 영화제에서 미스터 류를 단편영화 작가로 특별초청해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

“겨우 두 작품 가지고요?”

“조금 일찍 영화가 만들어져 영화제 한 곳 정도에서 더 수상했다면,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디렉터 류의 특별전도 가능했을 걸.”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영정사진>과 <Help Me, Please>는 올해도 세계 곳곳의 단편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고 있다.

국제영화제에서 주목 받은 작품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영이 된다.

류지호는 유럽의 영화잡지에서 주목할 만한 단편영화 감독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담으로 쿠엔 태런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은 내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을 시작으로 10월에 극장개봉 전까지 각종 영화제에서 무려 100회 이상 상영되는 진기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일단 본선 경쟁작이 되면 트라이-스텔라와 파라맥스가 언론플레이를 좀 할 걸세.”

“지난 번 할리우드 데뷔 때처럼 이요?”


류지호가 할리우드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선제적으로 언론보도용 자료를 배포했었다.

얼마나 포장을 잘 해놨던지, 류지호는 얼굴이 다 뜨끈해졌던 경험이 있다.


“개인이 아니라 영화 위주로 이슈를 몰아주세요.”

“이번에도 미스터 류에게 ‘은둔’ 타이틀이 따라 붙겠군.”

“무리하진 말고요. 개인적인 일로 영화사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네요.”


류지호는 일개 감독 신분이 아니다.

할리우드에만 TV 부분까지 네 개의 프로덕션을 소유한 기업인이다.

소위 오너 리스크라는 것이 있다.

오너의 언행, 행동 때문에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문제가 크게 일어나면 날수록 좋아.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게 될 테니까. 그리고 작가는 현실의 문제를 예술행위로 세상에 까발리는 걸세. 나 같은 이들이 그걸 팔아서 이익으로 바꾸는 거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별말씀을. 영화가 형편없다면 아무리 미스터 류가 오너라도 내가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지.”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모리스 메타보이, 파라맥스의 알버트 마샬, 트라이-스텔라 TV의 얀 호퍼, 디멘션 필름의 로브 웨인스타인 사장은 류지호의 부하직원이 아니다.

충성을 바칠 이유도 명령을 따를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회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될 뿐.


“내년 한국영화 라인업도 대략 윤곽이 잡혔다네.”


알버트 마샬이 화제를 돌렸다.

류지호가 딱딱했던 분위기를 풀고, 편안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수입한 한국영화에는 뭐가 있죠?”

“<Once upon a time in koreaⅠ>, <North Korean Partisan In South Korea>, <Black whistle>을 개봉할 예정이네.”


영문 타이틀의 한국영화 오리지널 제목은 각각 <장군의 아들Ⅰ>, <남부군>, <검은 휘파람>이다.

파라맥스 해외영화팀에서는 <장군의 아들>의 영문 타이틀을 <Gangsta's Paradise>로 제안했다.

단박에 거부했다.

그 시절 서울 종로가 깡패들의 천국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야쿠자의 천국이라고 해도 문제고.

설사 그런 제목을 붙일 법한 영화라 하더라도 한국의 이미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북미 관객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더 많은 영화들이 소개된다면 모를까.


“해외영화팀에서 <Black whistle>을 선택한 건 의외네요.”


파라맥스에서 충무로 B급 액션영화 <검은 휘파람>을 선택한 것은 예상 밖이다.


“마샬 아츠와 갱스터 필름 장르는 비디오 시장에서 나름 수익을 낼 수 있다네. 파라맥스는 초창기부터 6~70년대 홍콩 액션영화, 일본의 야쿠자 영화나 사무라이 영화 등을 수입했더군. 북미 시장에서 블랙필름처럼 일정 수요층이 존재하지.”


쿠엔 태런티노 감독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미국 비디오 시장에는 아시아 액션영화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큰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제법 수익이 나온다.

내년에는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천지개벽>부터 <장군의 아들Ⅱ>, <베를린 보고서>, <낙타는 따로 울지 않아> 등을 배급할 예정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수익이 발생했을 때에 그렇다.

돈이 안 되는데, 한국영화를 수입해 배급할 수는 없다.

류지호가 파라맥스 오너라고 하더라도.


“태런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은 개봉이 잡혔어요?”

“10월에 19개 극장이 잡힌 것으로 아네.”

“선댄스가 1월이죠?”


대답을 듣고자한 질문이 아니다.

류지호는 머릿속으로 쿠엔 태런티노의 90년 영화의 연대기를 떠올려보았다.

<저수지의 개들>은 감독을 알린 영화지, 수익을 내는 영화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하는 것은 <펄프 픽션>부터다.


‘A Band Apart 프로덕션은 퀸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고언 형제가 문제네. <허드서커 대리인>은 분명 망할 텐데.... 뉴욕에 방문하면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해 줄까?’


아직까지 고언 형제는 프로덕션을 만들지 않고 있다.

쿠엔 태런티노에게 했던 것처럼 형제에게 독립프로덕션을 설립 해 주고, 파라맥스와 장기투자/배급 계약을 하게 해 두면 파라맥스가 그들 영화를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다.

류지호는 고언형제 문제를 고민하며 파라맥스 LA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영화제마다 단편영화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는 50분미만을 단편으로 인정해 준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 밖의 영화제는 대체로 40분으로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류지호는 <Life Goes On>의 러닝타임을 40분에 맞추기 위해 영화를 손 봤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41분짜리 버전에서 메인 배우와 스태프를 소개하는 타이틀 시퀀스를 줄이고, 엔딩 크레디트가 스크롤 되는 속도를 빨리해서 정확하게 40분에 맞췄다.

본 편을 건드린 것이 아니기에 ‘스텝프린팅’이나 사운드 믹싱을 처음부터 다시 할 필요는 없었다.

단편영화제 출품 러닝타임 버전을 만든 후, 주요 배우를 불러 콘티 단계에서 날려버린 장면을 몇 개 촬영했다.

별 것 아닌 내용들이다.

후레쉬의 가방을 탈취해 간 디에고를 따라가는 장면.

새미가 주유소에 잠시 들렀을 때 백인 사장에게 돈을 지불하는 장면.

한국 조폭들과 흑인 갱단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장면.

세 개 장면을 새롭게 촬영했다.

UCLA 영화과 친구들도 기꺼이 이틀 동안 시간을 내줬다.

그렇게 해서 재촬영분, 버렸던 씬들을 모두 붙였다.

결과적으로 6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의 버전 하나를 만들어냈다.

영화음악을 만들어줬던 DJ겸 힙합 프로듀서가 늘어난 러닝타임에 맞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왔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샘플링으로 해서 랩 음악을 만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스 큐빅을 디스하고 싶지만... 잘 참은 거야.’


‘블랙 코리아’라는 노래로 한흑 갈등을 부추긴 아이스 큐빅.

그를 디스하는 랩을 영화에 삽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류지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스 큐빅이 속한 N.W.A(Niggaz With Attitudes)와 척을 질 필요가 없으니까.

만약 둘 사이에 긴장관계가 만들어지면 N.W.A는 이득을 볼지 모르지만, 류지호로서는 명백히 손해다.

류지호가 잃을 것이 더 많으니까.

여담으로 ‘블랙 코리아’는 LA 폭동에서 한흑 갈등을 사주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노래다.


[술 한 병 사러 나가고 싶을 때마다

두 동양인이 푼돈을 일일이 세는 가게로 가야 하지

이놈들은 흑인을 열 받게 해 소동이 일어나지

흑인들의 주먹에 경의를 표해라

안 그러면 너희 상점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 테니

우리의 게토를 블랙 코리아로 만들 수 없다]


고순희씨를 오렌지카운티로 이주시켰다.

따라서 아이스 큐빅이 이 노래를 발표하지 않을 줄 알았다.

오산이다.

아이스 큐빅은 노골적으로 한인들에 대한 증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돈이 된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이 센 줄로 착각하는.

전형적인 양아치 근성이다.

LA에서 소위 갱스터 힙합 좀 한다는 래퍼 중에 그런 양아치들이 상당히 많다.

어쨌든 아이스 큐빅의 노래가 발표되고 한인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인타운 상인들 맞대응에 나섰다.

흑인 무장강도에게 늘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항의 한번 조직적으로 해보지 못한 한인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강한 반발과 함께 구체적인 자구책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LA 시내의 모든 음반을 취급하는 한인상인들이 불매운동을 결의했다.

한인식품상협회도 아이스 큐빅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맥주를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일각에서 한인들의 조직적인 행동으로 인해 흑인들의 집단반말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웃긴 일이 벌어졌다.

LA 지역의 주류 판매 70%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한인들이다.

그들이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나오자 해당 맥주회사가 난리가 났다.

크게 놀란 맥주회사에서 사장이 직접 한인들을 만나 광고 중단 약속했다.

인종갈등이나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연예인을 모델로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평소에는 교포사회에 무관심한 대한민국 LA 총영사관이다.

모처럼 한인들이 단결하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비상대책회의 따위의 영양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한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자, LA시장까지 음반제작사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시늉을 했다.

모국인 한국 9시 뉴스에서도 아이스 큐빅과 관련된 뉴스가 보도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류지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얼마나 수동적이고 사회 속에 녹아들지 못했는지 파악할 수가 있었다.

당하고도 가만있으면 호구 잡힌다.

만고의 진리다.

수십 만 한인들은 미국에서 세금을 내고 있다.

국가와 공권력으로부터 권익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자식이, 사과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기만 해봐라. 내 영화사들이 제작하는 영화에는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까.”


류지호는 아이스 큐빅이 한국인을 폄하하고 조롱한 것에 대해 사과가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다.

일단 자신이 소유한 영화·TV매체에는 절대 출연을 못하게 할 생각이다.

만약 분수도 모르고 계속해서 까분다면, 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Pinkerton Corp.을 동원해 혼내줄 생각도 가지고 있다.


“데본.... 만약 아이스 큐빅이나 N,W,A 애들이 계속해서 한인들을 공격하라고 선동한다면 그들을 감옥에 보내버릴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해주세요.”

“갱스터 랩하는 아이스 큐빅을 말하는 겁니까?”

“얼마 전에 ‘블랙 코리아’란 노래를 발표했더라고요.”


류지호의 엉뚱한 지시에 데본 테럴은 대답을 유보했다.

자신의 상관이 어울릴만한 레벨이 아니기에.

암튼 LA폭동이 일어나는 4월 전에 녀석을 감옥에 보내더라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게 LA 폭동의 책임을 모두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스타의 행동과 언행은 그를 추종하는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십대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아이스 큐빅 같은 래퍼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LA 타임스와 경찰 놈들이 가장 큰 문제야.”


분하지만, 류지호로서는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파커가문에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그들의 대답은 뻔했다.


- 네 일이 아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LA 한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 외에 류지호와 접점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들이 류지호를 위해서 해준 것도 없다.

차라리 류지호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했으면 했지.

모른 척 한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문제는 내 일 아니라고, 남 일로 치부해 넘겨버린다면.

류지호로서는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았다는 점이다.


‘나도 할 만큼 했다....!’


류지호가 돈도 쓰고, 시간도 투자하고, 영화까지 찍은 이 모든 것이 저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양심의 가책.

그 놈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다.

게다가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는 류지호라고 해서 자유로운 수 없기도 하고.


“Don에게 말해서 콤프턴을 포함해서 사우스 센트럴 지역 청소년 센터에 1만 달러 더 지원하라고 하세요.”

“매달 말입니까?”

“네. 매달!”

“알겠습니다. 전부터 지원금을 보내고 있으니, 1만 달러는 현물로 지원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웨스트우드 오피스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네. 보스.”


걸프전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희생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뭐라도 해볼 수 있을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차라리 한국에서 몇 십 억대 건물주 놀이나 하면서 살았다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어찌되었든, 알버트 마샬의 충고대로 <Life Goes On>을 서부에서 개최되는 샌프란시스코 국제 영화제와 시애틀 국제 영화제에 출품했다.

그리고 동부에서 개최되는 내쉬빌 영화제와 로체스터 단편영화제에도 각각 출품했다.

모두 4월에 열리는 북미의 대표적인 영화제들이다.

내쉬빌 영화제에서 단편영화가 입상 하게 되면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는다는 것이 특이사항이다.


“이제 학기말시험만 끝나면 또 한 학기가 끝나는 구나.”


류지호의 입에서 한숨 섞인 투정이 튀어나왔다.

시험이 끝나면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류지호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군대 영장이 집으로 배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한주 잘 마무리 하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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