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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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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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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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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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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겨두자.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캐롤코 픽처스 CEO 피터 웰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Collapse>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모회사의 대주주라고 해서 일일이 간섭하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없다.

다만 <Collapse>의 기획의도, 제작방향, 반드시 살려줬으면 하는 영화적 장치들에 대한 약속을 받아놨을 뿐이다.

<Collapse>에 관해 피터 웰스 사장과 류지호는 꽤 깊은 토론을 나눴다.

다행히 대화가 통하는 프로듀서였다.

감독과 작가를 적당히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영화에 관한 확고한 철학을 토대로 자신의 뜻을 류지호에게 전달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설득을.

물론 류지호가 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기 꽤 마음에 들었다.

거장이 아닌 이상, 할리우드 감독은 프로듀서와 협의 없이 작업을 진행 못한다.

도저히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감독이 프리프로덕션에서 하차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곳이 할리우드다.

특이한 케이스의 프로듀서와 감독의 관계도 있다.

레온 부룩하이머와 작업한 감독들의 경우 촬영 내내 그의 무자비한 간섭과 일방적인 의사소통에 치를 떤다.

막상 영화가 흥행에 대성공하고 나면, 감독은 안면을 싹 바꾼다.

언제 신경전을 벌였나 싶게 친한 척 굴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면 레온 부룩하이머와 그를 거쳐 간 감독들의 사이가 안 좋을 것 같다.

실제로는 영화에 연달아 실패한 감독들이 제일 먼저 찾는 프로듀서 가운데 한 명이 레온 부룩하이머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와 연줄이 확실하고, 흥행을 시켜줄 수 있는 보증된 프로듀서니까.

그런 꼴 당하지 않으려고 류지호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 공을 들이고 한국에서 WaW 픽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PD와 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닫고 아집에 사로잡힐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감독의 고유권한을 존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예술영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세계에 갇혀 시야가 좁아지는 부분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걸 대비해서 돈을 벌고 영화사를 소유한 거니까....’


할리우드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충무로 역시 주도권이 변화하고 있다.

바로 감독의 시대에서 프로듀서의 시대로 흐름이 옮겨가고 있다.

세계적인 거장이라 할지라도 스튜디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감독이 연이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자신의 이름을 건 독립 프로덕션부터 설립한다.

적어도 제작과정에서 만큼은 스튜디오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투자·배급사인 메이저가 그린 라이트를 켜야 영화제작에 들어가고 편집권까지 메이저가 행사하는 한계가 있지만.

암튼 힘이 없는 작가나 신인감독이 프로듀서에게 휘둘리는 것은 세계 어디나 똑같다.

쿠엔 태런티노가 자신의 영화를 찍어보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팔았던 두 편의 영화.

<내추럴 본 킬러>와 <트루 로맨스>.

그 시나리오를 감독들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윌리엄 스톤 감독은 <내추럴 본 킬러>에서 태런티노의 맛을 완전 배제하고 자기 스타일대로 시나리오를 뜯어 고쳐서 영화를 찍었다.

반면에 앤소니 스콧은 <트루 로맨스>에서 태런티노 특유의 맛을 유지하면서, 상업영화가 추구해야할 몇몇 공식을 추가하고 그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입혔다.

쿠엔 태런티노가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이 완전히 박살난 <내추럴 본 킬러> 슈팅 스크립트와 크레디트 통보를 받았을 때 강하게 반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윌리엄 스톤은 별 볼일 없는 젊은 감독 지망생의 반발을 가볍게 씹었다.

자신이 고친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완성했다.

반면에 앤소니 스콧은 완전 초짜 쿠엔 태런티노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엔 태런티노는 영화 권리를 회수하겠다고 두 영화사에 통보를 했다.

윌리엄 스톤은 그런 항의를 완벽하게 무시했다.

앤소니 스콧은 주연배우까지 데리고 찾아가 쿠엔 태런티노에게 허락을 구했다.

이후, 쿠엔 태런티노는 기회만 되면 윌리엄 스톤을 대놓고 비난했다.

그런데 앤소니 스콧에 대해서는 공식석상에서 감사를 표했다.

만약 쿠엔 태런티노가 세계적인 감독이 되지 못했다면, 그의 비난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뿐더러 수많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횡포에 놀아난 힘없는 작가의 사소한 피해사례 쯤으로 조용히 묻혔을 터.


‘피터 웰스 일점 획득!’


나중에 할리우드에서 데뷔하게 된다면 캐롤코 픽처스에서 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는 류지호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는 모리스 메타보이와 함께 일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스타배우를 데리고 올 수 있다.

투자를 받아오는 것에 문제가 없다.

배급과 관련해 다른 메이저와 교통정리가 가능한 비즈니스 능력이 있는 제작자다.

반면에 피터 웰스는 모리스 메타보이에 비해 몇 수가 떨어지는 프로듀서다.

그 약점을 류지호가 일정 부분 채울 수 있긴 하겠지만.

데뷔 문제는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글 쓰는 것도 재밌지만, 빨리 영화 찍고 싶다.’


류지호의 시야에 달력이 들어왔다.

벌써 10월이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가는 법이지.’


<Collapse>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후 류지호는 여유가 생겼다.

비로소 다른 부분에 눈을 돌릴 수가 있게 됐다.

한국의 사업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나래안전시스템은 ‘93대전엑스포박람회’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주를 따기 위해 임직원들이 가진 인맥을 총동원했고, 다온 법률사무소까지 힘을 보탰다.

결론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행사기간 동안 별다른 큰 사고 없이 끝마침으로써 항간에 우려했던 민간 경비업체의 능력을 재평가 받을 수 있었다.

이를 발판으로 영업력이 크게 신장됐다.

자연스럽게 나래안전시스템의 거래처가 증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WaW 픽처스의 극장업 진출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보스.....”

“왜?”

“MovieMark라는 곳에서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면서?”

“응.”


그레이엄가문 자선 파티에서 좋지 못한 인연을 맺은 케일 미첼이 한국으로 연락을 해왔다.

자신의 가문이 운영 중인 복합상영관 브랜드 MovieMark가 류지호가 준비 중인 한국의 멀티플렉스 사업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타진을 해왔던 것.

거절했다.

그러자 그의 부친이자 회장인 로이 미첼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리젝트 하는 거야?”

“응.”

“왜?”

“필요 없으니까.”


황재정은 류지호와 둘만 있을 때는 영어로 묻고 영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류지호 또한 친구의 영어실력 향상을 도왔다.


“상영관 설계는 어떻게 하고?”

“건축가가 알아서 할 수 있대.”


WaW 픽처스의 첫 번째 복합상영관 빌딩설계는 1992년 대한민국 건축 대상을 수상하고, <예술의 전당>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가 맡았다.

설계에 극장설계도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투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극장 운영 노하우도 전수 받을 수 있을 텐데....”

“외국자본의 한국극장산업 진출의 총대를 우리가 멜 필요는 없어.”

"WaW가 10개관이 넘는 복합상영관을 운영할 능력이 될까?“

“쉽지 않겠지.”

“다른 것은 치밀하고 효율을 더럽게 따지면서 이번에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뭐 그런 거냐?”

“외국 자본 덥석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왜?”

“그들의 투자를 받는 순간 한국의 극장업 문호를 개방하는 꼴이 되니까.”

“직접 진출은 법으로 막혀 있는데?”

“합작회사는 가능하잖아. 그렇게 댐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터지는 거야.”


외환위기 전후로 해서 외국자본의 한국 극장업 진출이 완화된다.

그로 인해 외국 업체와 국내 대기업이 합작한 멀티플렉스 체인이 들어서게 된다.

그때부터는 머니게임이다.


“공사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도 서로 대출하겠다고 난리라며? 그냥 자체적으로 해보는 걸로. 오케이?”


그 외에 수입외화들의 매출도 좋았고, 한국영화 투자·제작 부문도 안정적이다.


“근데 멀티플렉스 들어가는 복합빌딩에 예식장은 안 될까?”

“안 돼.”

“......?“

“거기 안 그래도 교통지옥이야. 주차문제부터 교통사고까지.... 웨딩홀 사업하고 싶으면 차라리 그 위쪽에 있는 리치칼튼을 사서 호텔 뷔페와 묶어서 영업하는 게 나을 걸?”


후우.

절레절레.


“한숨에 도리도리까지. 보스 앞에서 비서실장이란 놈이 잘하는 짓이다.... 쯧.”

“더 시키실 일은.....?”

“없어.”


류지호가 손을 훠이훠이 흔들었다.


“나가서 업무 보세요. 실장님.”

“예. 보스!”


황재정이 집무실을 나가고 류지호가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뒀다.

모니터에 하이텔 창작연재 Serial 화면이 떠 있다.

지난 7월에 한국형 판타지소설 <퇴마기록> 연재가 시작됐다.

아직 편수가 쌓이지 않았다.

좀 더 두고 보다가 연말 즈음 작가와 영화판권 계약을 하라고 WaW 픽처스에 지시해 두었다.

기억에 의하면 소설의 영화판은 대략 98년 쯤 개봉했었다.

95년부터 기획하면 얼추 이전 삶의 개봉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를 쓰고 맞출 생각까지는 없지만.

무엇보다 류지호가 직접 프로젝트에 개입할 생각이다.

그에 따라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투입할 생각이다.

할리우드 CG 슈퍼바이저와 크리에이터도 붙여줄 생각이다.

또한 이전 삶과 다른 배우, 다른 스태프 심지어 감독 교체도 고려하고 있다.

원작자를 영화화 각색 작업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영화화 전 과정에서 류지호가 직접 지휘할 생각이다.

첫 편의 성적이 좋다면 시리즈도 생각 중이다.

<장군의 아들>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원작 소설이 한창 인기를 끄는 시점이라 부담감은 있지만, 그걸 극복하기만 하면 WaW 픽처스는 좋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확보하게 된다.

더해 한국영화에 장르가 하나가 새롭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바로 퓨전판타지다.


‘1세대 작가들의 정통판타지보다는 퓨전판타지 쪽이 영화화가 조금 수월하려나? 퓨전무협 소설도 틈나는 대로 확인해 보라고 말해 둬야겠어.’


현재 하이텔 창작연재 Serial에 이어서 내년 1월부터 서비스 되는 나우누리 게시판에 SF & Fantasy도 생긴다.

류지호는 WaW 픽처스 기획실에 한국의 다양한 출판 저작권의 영화권리를 확보하라고 지시해 두었다.

현재 출판물만 모니터링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만화 쪽도 틈틈이 확인하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국경의 갈까마귀>, <각시탈>, <야수라 불린 사나이>, <용호취>, <추혼 시리즈>, <구공탄 시리즈> 등등.

그 외 이규호 작가의 사극물, 방학기 작가의 작품들, ‘만화광장’ 같은 성인만화 잡지에 연재된 작품들도 수집하고 있다.

한국의 만화작가들의 초기작품들은 표절문제가 불거질 수가 있다.

그림체나 캐릭터가 표절 논란에 휩싸인다면 영화화까지 논란이 이어질 수가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생각이다.

다만 80년대 중후반부터 연재된 만화들 가운데에서 찾아보면 작가의 스타일로 확고히 자리 잡힌 캐릭터와 한국적인 정서가 잘 녹아있는 작품들이 꽤 많다.

영화화해도 손색없는 작품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영화화의 관건은 각색 작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발굴할 것이냐 키울 것이냐.

류지호는 WaW 픽처스 프로듀서들과 작가 문제를 놓고 토론 중이다.


“그나저나 내가 추혼 시리즈는 몇 절까지 봤더라?”


류지호는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한 번도 만화방에 가보지 못했다.

비서들에게 말해두면 뭐든 구해오겠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만화방에 가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만화들을 확인했다.


‘오! <귀문도>...!.’


1982년의 그림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장대산 화백의 무협만화다.

귀문검류 시리즈의 시작인 이 작품은 이후로 <파검>, <소림사의 바람>으로 이어진다.

주인공 이름은 ‘류‘,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은 신비의 섬 귀문도의 최고 살수가 섬을 떠나 임수수행 중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부모님의 원수가 자신의 사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복수를 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장대산 만화가의 세 작품 영화판권을 구입해 주세요.”


만화방에서 80년대 한국만화를 살펴본 류지호가 박건호 대표에게 장대산 만화가의 귀문검류 세 연작 만화 판권 구입을 부탁했다.


“무술영화라도 찍어보시게요?”

“당장은 아니고... 일단 확보부터 해 두세요.”

“언제 제작할 계획이신지.....”

“영화판권은 10년짜리로 확보해주세요. 그 기간이 넘어가면 자동적으로 영화판권이 작가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계약하면 될 것 같네요.”

“......?”

“장대산 만화가에게는 TV대하드라마로 기획하려고 한다고, 준비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거라고 적당히 둘러대시구요.”

“알겠습니다.”


박건호 대표는 류지호가 부탁을 빙자한 지시를 내리면 반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노파심에서 가끔 조금만 신중해 줄 것을 부탁하는 정도.

그것도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만 그렇다.

영화 기획과 관련해서는 어떤 토도 달지 않았다.

WaW 픽처스 전 직원 아니 충무로 전체 영화인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혜안과 창작재능을 가진 이가 류지호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현제 화백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기에 비교적 쉽게 <귀문도>, <파검>, <소림사의 바람> 세 편의 연작시리즈 영화 판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식 무협영화나 드라마로 기획할 생각은 없었다.

역사드라마나 사극으로 풀어볼 생각이다.

한국 역사상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던 시대.

바로 고려 무신집권기다.

무신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군벌이라고 쓰고 조직폭력배라고 읽는 무신파벌들 사이에서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귀문도 출신의 암살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당시 무법 자체였던 고려의 시대상을 그려볼 궁리를 해보았다.

류지호 본인이 직접 프로젝트를 실행할지 기획만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무당거미를 UFC버전으로 바꿔볼까....?’


인기 만화들을 어떻게 영화화할 수 있을까.

류지호는 추억에 젖어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 ✻ ✻


최근 류지호는 외박을 나와도 집으로 내려오기 겁났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신경전이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사춘기.

류아라가 드디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진입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과정.

미래에는 중2병이니 하는 비하적인 표현들이 난무하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씩은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사춘기다.


“큰오빠 왔다. 나와 봐.”

“아 몰라! 짜증나! 말 걸지 마!”


어머니의 말에 짜증을 부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류아라다.

심영숙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저, 저...! 내가 미쳐.”

“놔두세요. 어머니.”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왜 자꾸 저런 다니?”

“사춘기잖아요.”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렇지. 엄마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저럴 수 있어?”

“막내가 일부러 어머니를 화내게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싸워봐야 힘만 들고 이길 수도 없어요. 그냥 어릴 때처럼 귀여워해주고 예뻐해 주고 하세요.”

“귀엽고 이쁜 짓을.... 도대체가 해야 말이지.“

“하하하.”

“웃지만 말고. 그래도 큰오빠라면 죽고 못 사니까,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저한테도 신경질 부리던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류지호가 여동생의 방으로 다가갔다.


똑똑.


“큰오빠, 들어가도 돼?”


방 안에서 대답이 없다.

류지호는 가만히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딸깍.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우울한 표정의 류아라가 얼굴을 내밀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오랜만에 큰오빠랑 데이트 할래?”

“무슨 데이트야... 유치하게.”


전형적인 사춘기 반응 중 하나다.

일단 짜증부터 부리며 대화를 회피하려는 모습.


“큰오빠가 아라 옷도 사주고, 갖고 싶어 하던 거 사주려고 했는데... 싫다면 담에 가자.”


류지호가 돌아섰다.


“어디 갈 건데?‘

“부평으로 갈까?”

“부평 어디!”


류지호는 인내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세상에서 큰오빠가 제일 좋다며 볼 때마다 안겨오던 여동생은 이제 세상에 없다.

까칠하고 예민한 사춘기 여자 아이만 있을 뿐.


“동아시티백화점이나 경일백화점이나.”

“알겠어.”


딸깍.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방문이 닫혔다.

류아라는 두 시간 가량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외출을 나가는데 무려 두 시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몸부림을 치던 류지호가 방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킥킥.


류지호는 실소를 터트렸다.

14살이 화장을 할 줄 알기나 할까.

딴에는 화장을 한 모양인데 참으로 가관이다.

어설픈 화장을 한 딸을 보며 심영숙은 한소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또. 당장 화장 지우고 오지 못해. 그 꼴이 뭐야!”

“쳇. 엄마도 화장은 잘 못하면서....”

“뭐라고? 이놈에 기집애가....”


모녀가 한바탕 할 것 같았다.

류지호가 얼른 나섰다.


“자자. 두 여성분들 진정들 하세요. 아라는 일단 화장 깨끗이 지우고 와.”

“이상해?”


류아라가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장에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백화점 가서 화장품 파는 언니들에게 기초 화장법부터 배워보자.”

“지, 진짜?”

“화장을 하려면 제대로 배워서 해야 더 예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심영숙이 발끈했다.


“어린 애한테 무슨 화장을 가르쳐!”

“슬슬 아라도 화장하는 법을 배울 때도 되었어요. 화장이 꼭 꾸미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피부 관리법도 배우고, 여드름이나 잡티를 가려주는 은은한 화장은 중학생도 할 수 있는 거죠.”

“역시! 우리 집에서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큰오빠밖에 없어.”


류아라가 활짝 웃으며 엄마를 보며 말했다.


“아휴. 저 가시네 나중에 누가 데려갈지 걱정이다 걱정이야.....”

“흥!”


류지호가 모녀의 쓸데없는 눈싸움을 지켜보다가 류아라의 머리를 향해 쓰다듬을 듯 손을 들어올렸다.


휙.


류아라가 큰오빠의 손길을 피해 얼른 방으로 되돌아갔다.


쩝.


류지호는 허공에 머물고 있는 빈손을 거둬들이며 아쉬워했다.

이제 류아라는 큰오빠의 스킨십을 거부한다.

마치 딸이 아빠를 거부할 때 느끼는 감정을 똑 같이 느끼는 류지호다.


‘순호도 그렇고 아라도 그렇고 점점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구나.’


남동생 류순호 역시 더 이상 형에게 고민상담을 하지 않았다.

곧 군대에 가야했고, 자신의 진로도 명확하게 정했다.

인천전문대 토목과에 다니며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졸업 후에 미국으로 음악을 공부하러 가겠다고 이미 부모님들께 공언했다.

부모님들도 허락했다.

류순호를 믿어서가 아니다.

장남 류지호를 철썩 같이 믿어서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는 집안이다.

게다가 큰아들은 미국에도 경호회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작은 아들 역시 경호원의 보호를 받을 것이고, 장남 류지호가 부모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어쨌든 작은 아들의 유학은 3년 후에나 벌어질 일.

당장은 치렁치렁하게 기르고 다니는 머리카락이나 좀 잘라줬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이다.


“순호도 같이 올 걸 그랬다. 그치?”

“작은 오빠는 싫어.”

“그래? 오랜 만에 어른들 빼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려고 했더니.”

“작은 오빠는 같이 다니기 창피하단 말이야.”

“순호가 왜 창피해?”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옷도 되게 이상하게 입어서 사람들이 다 쳐다봐.”

“락 음악 하니까 그렇지.”

“태지 오빠는 깔끔하고 단정한데?”

“걔도 옷은 날라리처럼 입지 않아?”

“걔라니!”


류아라가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그럼 걔라고 그러지, 그 분이라고 해? 큰오빠가 태지보다 형인데?”

“나 안 가.”


류아라가 차에서 내릴 듯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오빠가 잘못했어.”

“뭘 잘 못했는데?”

“앞으로는 태지씨라고 그럴게, 됐지?”


‘아휴, 이놈에 기집애......’


류지호는 살짝 류아라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려다 참았다.

남매는 부평에 위치한 동아시티백화점으로 향했다.

95년 즈음 구월동에 하이웨이백화점이 들어서고, 97년 인천터미널과 연결된 뉴월드백화점 인천점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백화점 중에 하나였다.

현재 인천의 대표적인 백화점은 부평 동아시티, 산곡동 경일백화점, 간석동 희망백화점 등이 성업 중이다.

동인천 역사에 자리한 인천백화점과 간석동 희망백화점은 주로 서민형 백화점으로 인기가 높았다.

남매는 제일 먼저 화장품 코너부터 들렀다.


“아무래도 피부에 좋은 화장품이 좋겠죠? 아직 어리니까 아무거나 막 쓰는 것 보다 연령대에 맞는....”

“오빠는 가만 있어봐.”


류지호가 참견하려 하자, 류아라가 대번에 끊고 나섰다.

그렇게 남매는 백화점의 온갖 화장품 매장을 돌아다녔다.

동아시티백화점으로 모자라 경일백화점까지 방문했다.

역시 십대 소녀, 사춘기다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남학생이 근처에 어슬렁거리면, 볼을 빨갛게 물들인다던가.

옷을 고를 때는 노출 있는 옷에 관심을 집중한다던가.

류지호가 보기에 다소 마른 것 같아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은 돼지라며 우울해 한다던가.

그리고 뜬금없이 류지호에게 자신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하면서 미국 남자에게 시집가겠다고 한다던가.


“중학교 수업은 들을 만 해?”

“공부 그까짓 거. 1등 못할 줄 알아? 필요 없어서 안 하는 거거든. 공부 잘하는 애들 가만히 보면 다 찌질한 애들이야.”


라던가.

류지호가 신용카드로 아무렇지도 않게 고가의 상품을 계산하면 턱을 살짝 치켜든다던가.


“큰오빠, 걱정하지 마. 난 다 잘 할 수 있어. 공부만 빼고.”

“좋아하는 남학생 없어?”

“.....”


류지호가 그런 걸 물으면 류아라는 괜스레 얼굴을 붉혔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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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겨두자. (1) +9 22.06.27 6,133 167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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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재난영화 탈을 쓴 고발영화? (4) +5 22.06.25 5,788 152 24쪽
202 재난영화 탈을 쓴 고발영화? (3) +17 22.06.24 6,005 179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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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리더가 꼭 완벽할 필요는 없지.... +7 22.06.22 6,100 182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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