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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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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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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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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할리우드 파티는 비즈니스의 연장선.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를 태운 차량이 복합상영관 MovieMark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1984년에 텍사스, 유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극장체인을 운영하기 시작한 MovieMark는 류지호가 죽기 전 시점에서는 미국 멀티플렉스 3위 업체였다.

현재는 1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 할 정도다.

올해부터 MovieMark 일부 상영관에서 스포츠 경기장 스타일의 계단식 좌석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 영향으로 다른 대형극장 체인의 극장 좌석이 경기장 좌석 스타일로 바뀌게 된다.


찰칵찰칵!


영화매체 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TV방송국 리포터들이 극장 로비에서 영화 <피셔킹>의 감독 및 주연 배우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류지호가 프리미어에 참석한 인파들을 헤치며 상영관 안쪽으로 향했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

“일찍 오셨네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근사하게 차려입은 류지호를 슥 훑어봤다.

자리 혹은 지위가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는 걸까.

아니면 돈의 위력일까.

평소와는 달리 류지호의 모습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멋지군.”

“Moe 역시 오늘 따라 더욱 근사하네요. 그 배만 어떻게 하면 더 좋을 텐데.”

“하하. 이 배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네.”

“내년에는 올 해 보다 더 배가 부르겠죠.”

“항상 내가 할 말을 선수 치는군.”

“누가 하면 어때요?”

“하하하. 그렇지.”


류지호는 모리스 메타보이를 시작으로 극장에 나와 있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런 류지호의 모습에 시선이 모여들었다.

일부러 거들먹거리고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류지호의 행동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런 장소, 분위기가 무척 익숙하다는 듯.


“오늘은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스터 류와 인터뷰 혹은 취재는 차후에 따로 연락을 주십시오.”


사진이 찍히고 영상에 담기는 것은 가만히 놔두었다.

대신 취재진과 대면 인터뷰는 프리미어 행사임을 감안해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한국에서 알면 크게 보도될 일이다.

한국인이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 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언론에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한국 취재진은 물론 단 한군데 아시아 언론사 취재진이 없었다.


영화 <피셔킹>.


좋은 영화다.

감독의 연출이 일반적이지 않음에도 영화 전편의 정서가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하면 입이 아프다.

류지호는 맥클로린 윌리엄스가 얼마나 멋진 배우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UCLA 동문회인가?’


뒤풀이 파티가 열리는 호텔 리셉션장으로 이동해 류지호가 처음으로 든 생각이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인사를 시키는 사람들이 주로 UCLA 동문들이다.

<스타트랙> TV시리즈의 각본을 쓴 감독이자 제작자 하브 피쉬만(Harve B Fischman).

최근 <포레스트 검프>의 각본을 작업한 에드워드 로스(Edward Roth).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투자·제작·배급할 예정인 <어퓨 굿 맨> 작업을 마친 감독 겸 제작자 노먼 라이너(Norman Reiner).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버지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배우 로이 스커릿(Roy Skerritt).

<마스크>의 각본을 작업하고 있는 마이클 웨브(Michael Werb).

<백 투 더 퓨처>를 촬영한 레이몬드 컨디(Raymond Cundey).

<리쎌웨폰>의 각본을 쓴 존 블랙(John Black) 등.

하나 같이 대단한 이들이다.

이들 외에도 꽤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 제휴영화사 관계자들, 독립 프로듀서들도 많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공통점은 비단 UCLA 출신이라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모리스 메타보이와 알게 모르게 연결된 이들이다.

참석자들이 인맥의 꼭짓점에 모리스 메타보이가 위치하고 있다.

암튼 유명인사들이 총출동한 덕분에 기자들만 신이 났다.


휘유~


맥클로닌 윌리엄스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류지호에게 농담을 건넸다.


“알래스카 카트마이 국립공원에 와 있는 착각이 드는군.”


카트마이 국립공원의 잡목림에 불곰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CLA의 상징은 불곰.

자칭타칭 UCLA 학생은 부루인스라고 불린다.

그것을 빗댄 것이다.


“모두 <피셔킹> 개봉을 축하해주기 위해 왔다고 좋게 생각해 주세요.”

“나야 오랜만에 낯익은 사람들을 만나서 반갑다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맥클로닌 윌리엄스가 류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피셔킹> 잘 부탁해.”

“메타보이씨에게 말하셔야죠. 저는 그저 주주일 뿐입니다.”

“자, 말해보게. <피셔킹> 잘 될 거 같은가?”

“이미 베니스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잖아요.”

“오호라, 그럼 오스카도 기대해 봐도 되겠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미스터 류가 선택한 영화들 결과가 모두 좋았다면서?”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류지호는 한참을 맥클로닌 윌리엄스와 담소를 나눴다.

고등학교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했던 말을 교내 방송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맥클로닌 윌리엄스가 껄껄껄 웃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Carpe diem.”

“Carpe diem.”


맥클로닌 윌리엄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류지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즐거운 시간 보내게.”

“좋은 시간 되세요.”


맥클로닌 윌리엄스가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

류지호는 동료들과 대화하며 웃는 맥클로닌 윌리엄스를 바라봤다.


‘마약에 손을 대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 잘 이겨내실 겁니다. Mac....“


내심 중얼거린 류지호가 발길을 돌렸다.


“Van...”


류지호가 밴스 길리엄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일 년에 다섯 편의 영화에만 그린라이트를 켤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

“현재는 그렇습니다.”

“현재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나중이라....”


밴스 길리엄이 팔짱을 끼고 서서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뭔가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런데 망설이고 있다.

길리엄 감독은 영화 제작 과정이 심각할 정도로 곡절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피셔킹> 또한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카데미상에 집착하는 모리스 메타보이가 <피셔킹>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가져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길리엄 감독의 영화 이력에서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영화 <브라질>을 개봉할 때였다.

이 영화는 평론가와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SF 영화를 거론할 때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등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영화다.

당시 배급사였던 유니벌스 스튜디오와 길리엄 감독은 영화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유니벌스는 <브라질>의 내용을 난도질했다.

해피엔딩의 연애물 비슷하게 편집해 개봉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길리엄 감독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유니벌스 스튜디오와 강하게 부딪쳤다.

때문에 미국 내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니벌스의 갑질에 길리엄 감독 역시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미 연예잡지 ‘버라이어티’에 광고를 냈다.


[친애하는 셰인버그 사장님, 내 영화 <브라질>은 도대체 언제 개봉해 줄 겁니까?]


유니벌스 스튜디오에 항의하는 내용의 광고였다.

소용없었다.

결국 유니벌스 측에서 142분의 긴 러닝타임을 대폭 줄이고, 암울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피엔딩으로 수정한 후 일방적으로 개봉해버렸다.

당연히 영화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엄청 욕을 먹었다.

독특하고, 기괴하며 뭔가 뒤틀린 자신만의 철학과 영화관을 가진 밴스 길리엄의 영화는 평론가와 지식인들에 엄청난 환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대중적이지 않다는 약점도 있다.

때문에 기획한 영화마다 저주처럼 한 번씩 엎어질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아무런 홍보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개봉한 영화도 있다.

바로 <바론의 대모험>이다.

흥행에 대참패했다.


“내게 15분의 시간을 내줬으면 하네.”


길리엄 감독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실제 주인이라는 꼬맹이에게 사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분?”

“내 영화를 자네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게.”

“트라이-스텔라가 아니라 저란 말인가요?”

“짜증나지만 어쩌겠나. 스튜디오의 고위 임원이란 작자들은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을.”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를 영화에서 풀어내는 감독들에게는 당연했다.

3,000만 달러 이상 들어가는 영화에서 수익을 내야하는 스튜디오의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양측이 원활히 의사소통이 되면 좋겠지만, 언제나 ‘갑‘은 스튜디오다.

길리엄 감독처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감독에게 스튜디오는 횡포를 부리는 탐욕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여전히 유니벌스와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까?”

“겉으로는 화해한 척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

“파라맥스도 괜찮다면.... 피칭할 기회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길리엄 감독은 고민에 싸였다.

파라맥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라기보다는 독립영화 배급사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영화의 투자·배급이 가능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류지호 역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밴스 길리엄이 연출한 영화 몇 편을 좋아한다.

다만 악명이 높은 <돈키호테> 프로젝트 같은 걸 하겠다고 하면 난감해진다.

결정적으로 그의 영화는 돈을 못 번다.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어온다면 모를까.


“디렉터 길리엄....?”

“으응?”


와인을 홀짝이며 고민에 싸여있던 길리엄 감독이 정신을 차렸다.


“혹시 돈키호테에 관한 영화인가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모르는 게 이상하죠.”

“그렇지.”


밴스 길리엄 감독이 씁쓸함을 입가에 달고 대답했다.

<돈키호테>는 그가 1989년부터 구상한 프로젝트다.

스튜디오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인 상황.

때문에 개발지옥에 빠져 있다.

류지호는 <12몽키즈>에 대한 프로젝트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영화와 밴스 길리엄 감독 사이의 접점이 없을 시기니까.


“메타보이씨에게 말해 놓을 게요. 트라이-스텔라에서 피칭을 해보세요.”

“고마워.”

“고맙긴요. 오늘 길리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브라질>을 다시 볼 생각이에요.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네요. 좋아했던 영화였는데.”

“영광이군.”


찌푸려있던 길리엄 감독의 미간이 활짝 펴졌다.

자신의 영화를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감독은 세상에 없다.

길리엄 감독이 악수를 권했다.

류지호가 그의 손을 맞잡고 입을 열었다.


“만나서 영광이었어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길리엄 감독과 헤어진 류지호가 파티장의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 영화는 아쉽게 2억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놓치게 될 것 같아. 이게 다 <터미네이터2> 때문이야.”

“난 이번에 4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어.”

“뉴욕에 방문했다가 마르틴 스콜체제를 만났다네.”

“이번 영화는 20세기 팍스와 4,000만 달러를 쓰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할 것 같아.”


파티장에서 류지호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자신 자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놨다.

그걸 듣고 있으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할리우드에서 나름 한 자락 하는 사람들.

태연하게 말하는 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그저 근황일 뿐이다.


‘확실히 문화가 달라.’


류지호가 살았던 주무대는 대한민국이다.

그곳에서는 겸손이 미덕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동네는 그런 게 없다.

자신을 드러내야 더욱 인정을 받는 분위기다.

물론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이 영원히 현재의 지위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그랬다.

친구도잘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고.

류지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헤이.”

“헤이.”


류지호에게 말을 걸어온 남자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백인이다.

눈빛이 오만하고, 몸가짐이 거만했다.


“오랜만이다.”

“....음.”


류지호는 남자를 가만히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에 없는 남자다.

남자가 약간 짜증스런 어투로 물었다.


“설마?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럭키 보이?”

“미안합니다. 혹시 우리가 뉴욕에서 만났었습니까?”

“이런 빌어먹을!”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남자의 행동에 류지호는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그를 무시하고 다시 파티를 즐기려고 했다.


“즐거운 시간.....”

“케일 미첼이다.”

“지호 류라고 합니다.”


자신을 케일 미첼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황당하군.”


몇 년 전 그레이엄 가문의 자선 파티에서 류지호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청년이다.

자신이 귀족가문의 일원임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렸고, 류지호에게 인종차별적인 언행도 거리낌 없이 내뱉은 바 있다.


“난 너와 그레이엄 가문의 자선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랬습니까?”

“.....!”


때린 놈은 기억을 못해도 맞은 놈은 기억하는 모양일까.

류지호의 기억 속에 케일 미첼이란 남자는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류지호가 때린 놈이란 의미가 되는데.


“매튜의 친구입니까? 아니면 캐서린? 그도 아니면....?”

“앤서니의 친구다.”

“아, 앤서니.... 만나서 반갑습니다. 케일.”


류지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


류지호는 당당했다.

어깨가 펴져 있었고, 허리는 꼿꼿했다.

눈동자도 맑고 또렷할 뿐만 아니라 말투도 부드러운 가운데 힘이 느껴졌다.

자신감을 가슴에 품었다는 증거다.

케일은 이런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은 이상 나오지 않는 태도.’


3년 동안 파커가의 럭키보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케일은 당장 묻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케일, 우리가 친했습니까? 아니 친했으면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지.... 그렇다면?”

“자꾸 내 물음을 회피하지 말고! 네가 이 자리에 왜 있는 거냐?”


케일의 안하무인으로 구는 태도에 류지호가 예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레이엄의 저택에서 벌어졌던 특별했던 자선파티.

인종차별 발언을 면전에서 서슴지 않았던 전형적인 졸부의 자식.


“아! 그때 그 케일이었군요? 졸부 2세, 앤서니 그레이엄의 병풍.”

“병푼? 그건 어느 나라 말이야?”

“당신은 여전하군요? 하하.”


류지호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라고 했다.

케일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등장하자 차라리 반가울 지경이다.


“내 물음에 대답을 하란 말이야.”

“오늘 프리미어 행사를 한 <피셔킹>에 투자한 사람입니다.”

“뭐?”


류지호는 자세한 설명은 삼갔다.


“네가 그 소문의 트라이-스텔라의 오너란 말이야?”

“소문은 모르겠고. 아마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긴 하군요.”

“그린라이트를 켜는 영화마다 모두 성공했다는 그....?”

“그것도 맞을 겁니다. 하하.”

“망나니 매튜가 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맞고?”

“CEO로 영입했죠.”

“도대체 3년이란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한 거냐?”


류지호는 뉴욕 사교계에 데뷔만 하고, 이후로 LA에서만 지냈다.

모를 수도 있겠거니.

그렇다고 해서 류지호가 케일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이유가 없다.


“혹시 파커 어르신께서 네게 엄청난 달러라도 안겨준 것이냐?”

“당신은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거금을 선뜻 내놓을 수 있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없지.”

“뉴욕에 투자회사를 만들었고, 그 회사를 통해 트라이-스텔라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트라이-스텔라는 할리우드에서 꽤 실적이 좋지요.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걸 네가 이뤘다고?”

“나 혼자 했겠습니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지요. 그러는 당신은 이 파티에 어떻게 참석하게 된 겁니까?”


영화 관계자들만 초청된 파티다.

친분이 있다고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단 의미다.


“<피셔킹>의 주요 상영관들이 우리 집안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케일 미첼은 MovieMark 멀티플렉스 창업자의 손자였다.

또한 캘리포니아 총괄매니저이기도 했다.


“MovieMark 극장체인을 당신의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었군요.”

“그렇다.”

“트라이-스텔라와 좋은 파트너 관계가 되길 기대합니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류지호를 보며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놈을 골려주려고 서클 픽처스에 고언형제를 추천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밀러스 크로싱>이다.

다행히 부가시장에서 손실을 보충해 겨우 본전치기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투자·제작비를 회수하는데 걸린 기간이 무려 3년이라는 사실.

말이 본전치기다.

잃어버린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손실만 본 투자였다.

류지호가 똑같이 고언형제의 영화에서 손해를 봤다면 그나마 덜 기분이 나빴을 터.

<바톤 핑크>가 칸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도 있지만, 지난달에 개봉해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당연히 승리할 것 같았던 게임에서 자신은 패배했다.

반면에 행운의 꼬마라고 무시했던 놈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의 친구인 서클 픽처스 회장에게 듣기 싫은 소리만 잔뜩 들었다.

류지호는 케일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돈을 잃었다.


“케일, 품위 없이 왜 넋을 놓고 있는 게냐?”

“아, 아버지....”


50대 후반의 혈색 좋은 백인 남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MovieMark의 창립자이자 현 CEO 로이 미첼이다.

로이 미첼이 아들을 무시하고 류지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네. 로이 미첼이라고 하네.” “처음 뵙습니다. Garam Invest의 지호 류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숨지 않고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나 보군.”


모자란 아들과는 달리 그의 아버지는 확실히 큰 기업을 일구어 낼만 했다.

류지호에게 대해 얼추 파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숨은 적 없습니다. 귀찮아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뿐입니다.”

“귀찮다?”

“이 동네가 어떤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렇지. 할리우드는 온갖 말이 넘쳐나는 곳이지. 팩트를 쓰는 기사보다 가십이 넘쳐나는 곳이지.”


끄덕.

류지호가 대꾸 대신 가볍게 고갯짓으로 동의했다.


“아직 학업을 다 마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전면에 나서는 건가?”

“굳이 트라이-스텔라 경영진에게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믿을 만하고, 유능하니까요.”

“하하하. 리틀 버펫이라는 말이 틀린 것이 없군.”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펫(Edward Buffett)은 최고의 투자가라 불린다.

수많은 자회사외 계열사를 두고 있는 투자지주회사 Berk-Hath Inc 외에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미첼은 그런 면에 빗대어 칭찬을 한 것이다.


“제가 버펫씨의 닉네임을 받기에는 백년은 이릅니다.”

“그렇다고 해두지. 그래... 이제 우리에게도 영화를 더 많이 줄 생각인가?”

“최고경영자인 메타보이씨가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류지호는 로이 미첼 회장의 제안에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대답을 회피했다.

극장과 배급사의 관계는 미묘하다.

슈퍼스타가 출연했거나 대작영화를 배급하는 스튜디오는 ‘갑‘이 된다.

반대로 스타가 나오지도 않고, 중저예산 영화를 배급할 때는 ‘을‘의 위치가 된다.

따라서 빅6는 일 년치 라인업을 가지고 전년도에 극장 측과 협상을 벌여 비시즌에 상영할 영화도 적당한 수의 스크린을 확보한다.

Moviemark 극장체인은 AMT나 United Artists Theatres처럼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극장체인은 아니다.

비교적 신생업체다.

전국적인 체인은커녕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와 유타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이제 막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고 시내 중심가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전통의 극장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

Moviemark가 영업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극장들을 M&A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암튼 배급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극장체인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시설은 어떻던가?”


미국 극장 최초로 스포츠 경기장 스타일의 경사 좌석을 시도한 것에 대해 로이 미첼이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물었다.


“미식축구장 좌석의 경사도를 참조해 관객의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지.”

“새롭게 리모델링한 극장은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이 미첼의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불만족스러웠던 점이라도 있나?”


말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라고 하는데, 얼굴은 듣기 싫어하는 표정이다.


“다 좋은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뭔가?”

“스크린, 사운드, 관객석의 경사도 다 좋은데, 장애인 배려가 없더군요. 제 생각에 이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휠체어를 타고 극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극장 진입부터 좌석 그리고 스크린을 향한 시야 확보까지 무척 곤란할 것 같더군요.”

“......?”


이 문제는 미국의 멀티플렉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상영관이 가진 문제다.

몇 년 후 한국 역시 멀티플렉스가 활성화되면 문제가 된다.

당연하지만 어영부영 소리만 요란하다가 흐지부지 된다.

장애인 배려보다 대기업 우선주의가 만연해 있는 시기니까.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꽤 오랜 시간 극장과 장애인 단체, 법무부 간의 법적 분쟁을 겪게 된다.

류지호는 의도적으로 떡밥을 던졌다.

낚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케일 같이 권력 하나 없는 피라미와 상대할 필요가 없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빚을 지어두면 언제고 그 보답을 받을 수 있다.

단 류지호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경우에.


“만약 장애인이 이 문제로 소송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흠.”

“법무부도 움직이겠지요?”


로이 미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미국에서는 충분히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문제다.

개인이 할 수 있고, 단체가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이제 막 시도하는 터라 스포츠 경기장식 좌석으로 리모델링한 극장은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단 두 곳 뿐이지만, 모든 체인에 적용된다면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법률 자문을 받아보십시오. 만약 소송이 크게 이슈화된다면, 극장의 설계를 바꾸게 되실지 모릅니다.”

“장애인들을 맨 앞쪽 좌석으로 안내하면 되지 않겠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을 텐데요?”


류지호 역시 대략적인 것만 알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6년 후에나 벌어질 일이다.

실제 장애인 몇 명이 Moviemark에 소송을 걸게 된다.

좌석 배치가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미국 현행법에 저촉되는 지가 쟁점이다.

첫 재판은 Moviemark가 패소하게 된다.

이후로 Moviemark는 총력을 기울여 항소법원과 대법원에서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을 받아낸다.

하지만 미 법무부가 나서게 된다.

기업 입장이 아닌 장애인들의 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결국 Moviemark와 미국 법무부 간 합의를 보게 된다.

장애인 좌석을 별도로 둔다는 조건으로 경기장 방식의 좌석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 다른 멀티플렉스 체인들도 상영관 좌석배치 설계를 변경하게 된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설계를 바꾸는 문제도 아니고, 법률 검토와 장애인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 되는 일 아닙니까?”


만약 로이 미첼이 자신의 충고를 받아 들여 확인을 하게 된다면, 그의 호감도를 대폭 끌어 올릴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아니어도 배급사와 극장은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하기에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지만.


“좋은 충고였네. 누구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어.”


대형극장 체인들의 과열경쟁과 중복투자 등으로 90년대 말부터 줄줄이 파산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굳이 그런 부분까지 그에게 이야기 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로이 미첼과 헤어진 류지호는 이후로도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과 안면을 텄다.

이곳에서 편안하게 파티를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다.

모두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로 비즈니스다.

할리우드 파티는 즐기는 장소가 아니다.

비즈니스의 연장선이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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