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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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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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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불한당(不汗黨).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핵실험이 아니라 직접적인 군사도발이라....”


정의국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핵실험은 외교문제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NLL 인접 섬에 대한 포격이라든가, 서해해상에서 함정에 대한 기관총 공격이라든가...."


류지호는 다음 말을 강조하기 위해 살짝 뜸을 들였다.


“잠수함 어뢰 공격이라든가.... 북한 내부 결속을 위해 그 보다 좋은 수단은 없을 거라 미국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지 뭡니까. 핵실험은 대중들과 동떨어진 이슈지만, 직접적인 군사충돌은 곧바로 국지전으로, 심할 경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대중에게 선사하니까요. 예를 들어서 잠수함 공격 같은 경우는 외교적으로 얼마든지 잡아뗄 수도 있는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류지호는 다소 과장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래야 뭐라도 조치를 취할 것 같아서.

막상 일이 닥치기 전까지 관료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경우가 없다.

책임을 져주는 리더가 없는 한 먼저 나서서 일을 하는 집단이 절대 아니다.

언제나 ‘설마‘하다가, 혹은 전문가들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관료사회다.

나만 아니면 돼.

관료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풍조가 일반 대중들 전반에까지 널리 퍼져있다.


“재난, 전염병,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예방조치는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정부가 양치기 늑대소년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실제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청와대나 여당에게도....”


정의국 대통령의 표정은 크게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류지호의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최근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부터 신종플루 대유행까지 류지호의 사전경고와 잔소리로 인해 정부가 준비와 대응을 잘해낸 것도 있고, 그를 통해 지지율도 나쁘지 않았기에 신세를 진면이 없지 않았기에.

게다가 동해의 북한 잠수함 전력 일부가 서해로 이동했다는 첩보가 90년대 후반에 이미 알려졌다.

그와 관련해서 NLL에서의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해군 측으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대답을 듣기도 했고.


“류 의장, 올해도 한국경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하시는 일들 다 잘되시길 기원합니다.”


류지호는 (주)나래안전 시스템을 통해 해군과 해병대 고위인사들에게 서해 해상에서의 모든 북한 잠수함과 함정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을 경고했다.

특히.


“밑져봐야 본전이잖아. 뛰어난 대잠능력 있는 함정 배치하는 게 뭐가 어려워?”

“선배님 말씀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NLL에서 우리 해군은 완벽한 감시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별 일이야 있으려고요. 걱정 하지 마십시오.”


야전에서 구르는 많은 장교들은 참여정부 시절 수립한 국방개혁 2020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방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에 올인하는 정의국 정부는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을 전면 재검토 및 축소하는 기조로 돌아섰다.

그 여파로 해군은 제때 차세대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이 당시까지 한국 해군의 주력은 1,200톤 급인 포항급 초계함이었다.

호위함인 울산급에 비해 건조비가 저렴한 반면에 화력이 크게 뒤지지 않아서 1980년대 초부터 6차 사업에 걸쳐 총 28척이 건조되었다.

오랫동안 대침투작전의 선봉에 섰던 함정이었다.

북한의 반잠수정 격침 및 두 차례 연평해전에 참전해 북측 경비정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도 했다.

문제는 대잠수함작전 수행능력이다.

해상에서의 대응능력은 준수한 편이다.

다만 북한 잠수함의 잠망경 정도나 탐지할 수 있는 수준의 레이더를 장착한 채 서해상에서 작전 중이라는 것이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해군에서는 인천급이라고 명명된 2,300톤급의 호위함과 손원일급 잠수함을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로 인해서 기존의 노후 함정에 고가의 탐지레이더나 함정 생존능력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

서해에서 북한의 잠수정과 잠수함이 활동하는 것을 알면서도 실질적으로 대잠수함 작전에 취약한 함정을 대잠초계 작전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고 사고가 나도 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


“우리 오야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 이 사람들아!”

“....”

“또 알아? 우리 오너가 공군에 레이더 싹 교체해 주는 것처럼 통 크게 이지스함이라도 한 척 사서 떡하니 기부해줄지.”

“이지스함이 얼마인데 그걸 기부합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

“작년 9월 건조를 시작한 서애류성룡함이 1조 3천억 원짜리입니다.”

“그건 좀 무리군. 암튼 최신 고성능 대잠레이더라도 바꿔줄지 모르지.”


한국 해군의 주력인 충무공이순신함급(4,800톤) 구축함의 건조비는 약 5,000억 원이다.

일반 구축함 건조엔 무기 비용을 포함해 톤당 평균 1억 원가량이 소요된다.

이지스함은 고가 첨단 장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2배가량 더 소요된다.

특히 세종대왕함(2007년), 율곡이이함(2008년)에 이어 세 번째로 건조되는 이지스함 서애류성룡함은 함정 건조비용과 탑재한 무기를 합한 총 건조비가 1조3,000억 원에 달했다.

제 아무리 류지호가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더라도 10억 달러짜리 이지스함을 기부할 리가 없다.

그것도 전쟁무기를.

암튼 (주)나래안전의 전직 해군출신들과 미국의 싱크탱크 인맥들을 총동원해 한국 해군에 다양한 방식으로 압력을 넣었다.


“서해상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 우리 오너는 신기가 있단 말이야. 가끔 툭툭 던지는 말이 다 들어맞았어.”

“의장님한테 공군만 편애하지 말고 해군에도 좋은 일 좀 하라고 잘 좀 말씀해주십시오.”

“해군이 우리 오너한테 도움 되는 게 뭐가 있다고?”

“당장은 없지만.... 혹시 압니까?”


류지호는 공군 레이더 교체 사업은 물론이고 전주에서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준고속철 사업비의 일부를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해군입장에서는 어차피 하는 서해상에서의 대잠초계작전이었다.

류지호의 충고를 따르는 생색을 낸 후에 은근슬쩍 전력증진 사업 가운데 하나를 기부체납 받을 수 있다면 해군으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떡 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었지만.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 따른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라는 말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종종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서구권에서는 도덕성을 인질삼아 개인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강한 힘(부)을 가질수록 그 영향력이나 범위도 다른 법이다.

사회를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감과 도덕성이 필요하긴 하다.

류지호 정도 되는 거물이 제 잇속만 챙기며 못된 일을 일삼게 된다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입게 된다.

반대로 류지호 입장에서는 작은 호의에 불과하지만, 받는 이들에게는 큰 혜택이 될 수도 있다.

지인들은 류지호가 하도 기부를 많이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을 거라 말하곤 한다.


[류지호-레오나 부부가 아이티 지진 참사에 대해 깊은 조의를 표하며 구조 노력에 도움이 되고자 1억 달러를 기부했다고 부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자선재단 J&L Foundation이 밝혔다. 부부는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쳤으며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무척 안타깝지만 인간인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며 “우리가 힘을 모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J&L Foundation에서는 올해 안에 1억 달러를 더 마련해 전달할 예정이라면서 피해아동들의 교육, 보건, 아동보호 분야에서 중·장기적인 재건복구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아이티 피해 가정과 아동이 일상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카리브 해에 위치한 아이티에서 지난 1월 12일(현지시각) 진도 7.0의 강진이 발생해 20만여 명 이상의 사망 추정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국내에서도 오성과 가온, 경일, 금성 등 대기업들이 아이티 지진에 대한 구호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 류지호 미국인 되더니 기부도 많이 하네...

└ 한국인일 때도 기부 많이 했거든요.

└ 지금까지 3조 인가 기부하지 않았나?

└ 공군 레이더 사주고 고속철 깔아주면 5조 금방 됨.

└ 전라도 대통령도 못한 걸 부자 한명이 전라도 발전시킬 힘이 있네^^


- 류지호에게 1억 달러는 일반인 기준으로 십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 내가 봤을 때 부자의 차이가 아닌 나라의 차이임. 한국인은 돈 욕심이 너무 많아서 저렇게 하기 불가능함.

└ 류지호도 따지고 보면 한국인인데?


-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번것도 대단하지만,,,그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도 대단하다..

└ 오죽하면 기부하려고 돈 번다는 말까지 있겠음?

└ 과연 류지호가 자선가일까?

└ 내 재산 500조면 나도 5조씩 기부할 자신 있다.


- 쑈를 해라..


- 나보다 어린 사람이지만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아도 기부하기 힘듬니다. 류지호는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기 잇속에만 돈을 쓰지 않고 인류에 기여하는 모습이 보니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존경합니다.


- 요즘 커뮤니티에서 일루미나티 운운하며 류지호 까던데 참~ 모자란 인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간들과 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다. 어쨌든 미국시민권 땄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인 류지호.... 훌륭하다 언제나 응원한다.


- 후우 대한민국은 업는 사람들이 더 잘 나누며 사는 사회인 듯.

└ 한국 기업은 이와중에 세금 깎아 달라는데... 우리나라 기업이 우물속 개구리인 이유 ㅠㅠ.

└ 우리는 가난한 놈들이 부자들 세금걱정하는데 기부는 무슨 얼어죽을....


- 왜 외국부자가 기부한다고 우리나라랑 비교를하나 굳이?

└ 류지호한테 이중국적 허용한다고 합니다. 다시 한국인 됩니다.


- 미국 부자들은 자기들이 너무 많이 벌면 양극화가 심해져 사회 불평등이 일어나는걸 걱정한다고 함.. 자기가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준 자유시장경제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도 팍팍 내고 기부도 많이 한다고 함.


마지막 댓글은 한국인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슈퍼리치 대부분이 기부하는 곳은 대체로 재단들이다.

에드워드 버펫이 헨리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고, 그 반대로도 기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두 사람이 지배하는 자선재단은 어지간한 글로벌 기업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부유하다.

미국 슈퍼리치들은 기부를 통해 절세를 하고, 상속·증여세도 피하고, 재산도 지키고, 정부도 못 건드리는 자선재단을 통해 자신이 창업한 기업의 지배권도 자손대대로 유지할 수 있다.

재단 명목으로 하고 싶은 사업도 운영하면서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는 막대한 연봉을 수령하면서 자손대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류지호가 구호만 그럴 듯한 ‘The Giving Pledge‘ 캠페인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다.

암튼 류지호가 <불한당> 촬영에 복귀하고 며칠 후 1월 12일.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8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나라가 아이티다.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에 허술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지진이 발생하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안 그래도 가난한 나라였던 아이티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국가 시스템마저 붕괴했다.

뉴스 속보를 확인한 류지호는 즉각 부부의 명의로 총액 1억 달러 상당의 기부금과 긴급구호물자를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한국의 가온재단과 다울재단에도 아이티 구호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여담으로 류지호가 보고받기로 지진 피해규모가 아이티 1년 예산의 1.2배인 79억 달러에 달했다.

JHO와 가온그룹 산하 경제연구소들에서 추산한 아이티 재건과 복구에 최소 115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적으로는 최대 400억 달러가 필요하고.

류지호 부부는 할리우드 지인들과 함께 꾸준히 아이티에 대해 지원을 하게 된다.

특히 피해아동을 보살피는 부문에 집중하게 된다.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이틀 뒤에 또 하나의 비보가 전해졌다.

진실한 기독교인이자 자선가가 삶을 마감했다.

한국인들에게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잘 알려진 요한 세레자 신부가 선종한 것이다.

류지호와는 딱히 인연이 없었다.

다만 류지호가 아프리카 곳곳에 병원과 학교를 짓는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요한 신부였다.

이전 삶에서 <울지마 톤즈>를 너무 감명 깊게 봤기 때문에.

류지호는 살레시오회와 특별한 인연을 없었지만, 요한 신부 장례미사에 참석해 고인의 생전의 삶을 기렸다.

종교든, 봉사든, 예술이든.

평생을 어떤 한 분야에서 온 몸을 바쳐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봉사를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대화를 한다 해도.

어떤 활동이든 어떤 일이든지.

마음만으로 감동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적인 개념의 봉사는 불우하고 어려운 사람을 무작정 돕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봉사와 기부가 삶의 질을 높이고 자아실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만족감이 큰 것은 틀림없지만, 류지호는 접근방식이 조금 달랐다.

류지호가 기부를 시작한 첫 번째 목적은 두려움과 자기암시 때문이었다.


‘나에게 찾아온 과거 회귀라는 초현실적인 현상이 사라질까봐.....’


홀로 잘 먹고 잘 사는 꼴이 미워서 큰 고난과 시련을 내려줄까봐서.

기부를 통해 선행을 쌓는 이유였다.

즉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류지호의 경우는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는데 남까지 함께 행복해지게 된 것 셈이랄까.

아무려면 어떤가.

자신이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 만족감으로 누군가를 이롭게 하면 되는 것을.


❉ ❉ ❉


사실상 촬영섭외가 불가능한 곳이 몇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재판장과 교도소다.

그간 한국 영화·드라마는 고증과 전혀 맞지 않은 서대문 형무소를 교도소로 등장시켜왔었다.

그러다 여주에 WaW종합촬영소가 들어서면서 그곳의 대규모 교도소 세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현행법상 실재 교도소의 설계를 그대로 재현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국 각지 교도소의 이런저런 구조를 조금씩 가져다 세트를 구성했다.

허투루 설계하지 않았다.

전직 교정시설 관계자들과 재소 경험이 있는 이들로부터 철저한 고증을 받았다.

실제 재소 경험자까지 섭외해서 설계했기 때문에 세트 곳곳에 재밌는 설정들이 제법 많았다.

교도소는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건물이다.

그러한 특수성 탓에 건물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고 복잡하다.

사동, 운동장, 작업장, 면회실 기타 시설들이 모두 높은 울타리로 구분되어 있고, 각각의 구역 통로마다 철문과 무장경비원인 경비교도대가 배치되어 있다.

오죽 복잡하면 신입교정공무원이 교도소에 처음 배정 되면 헤매기 일쑤일까.

원칙적으로 교도소 내부 지도를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교도소 내부에 울타리나 철문이 워낙 많고 자물쇠도 그만큼 많이 잠겨있어서 안쪽 깊숙한 사동에서 생활하는 재소자가 면회를 나오려면 여러 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거나 짧게 보여줬다.

<불한당>에서는 아니다.

당시 조직폭력배들의 수감생활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어쨌든 <불한당>은 조직폭력배를 다루는 드라마이기에 경찰서, 유치장, 구치소, 법정, 교도소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 세트가 WaW종합촬영소에 모두 갖춰져 있다.

따라서 여주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후에 진득하게 촬영분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 서로 죽일 듯 싸우다가도 감방안에서는 서로 도우며 뭉치는 것이 건달들의 생리다. 최양동과 김대천도 다르지 않았다. 3년 전쟁이라고 명명한 살벌한 전쟁을 치룬 둘은 쓰리꾼들이 장악하고 있던 서울구치소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77년 가을의 일이다.]


서울구치소 감방 안.

최양동과 김대천이 담배를 피우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술안주는 각종 중국요리다.

민간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호화스런 감방생활.

영화 <보스>에서도 묘사되긴 했지만, 드라마 <불한당>에서는 더 사실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최양동과 김대천이 동시에 서울구치소로 들어온다.

두 사람의 감방으로 수시로 전국의 건달들이 방문한다.

큰형님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어디어디에 누구요 하며 큰절을 올리는데, 호남이 가장 많고 그 외에 온갖 지역의 건달들이 망라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에 있을 때보다 감옥에 있을 때 더 위세가 등등한 모습.

한국 조폭세계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암튼 두 사람은 서울구치소를 장악하기 위해 잠시 협력한다.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펼친다.

매일 1시간씩 재소자에게 운동시간이 허용된다.

그 시간 각자가 건달 영입작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서울구치소를 장악하기 위해 힘을 합친 두 사람은 아예 같은 감방에서 생활한다.

둘이 누울 정도의 공간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고, 함께 방을 쓰는 다른 재소자들은 구석에서 짐짝처럼 포개져 잠을 잔다.


[어이!]


잠이 오지 않는지 뒤척이던 김대천이 최양동에게 말을 건다.


[형님이라고 불러. 새끼야~]

[나이가 내가 두 살 위야. 형님은 니미.]

[나이가 건달밥 먹여주든? 센 놈이 형이다.]


최양동과 김대촌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쫓고 쫓기는 ‘3년 전쟁’을 치르며 경쟁이라도 하듯 대형사고를 수시로 터뜨렸다.

마치 누가 더 큰 사고를 치는지 자존심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결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이다.

교도소에서 만나 화해했다가도 출소하면 또 등지고 원수가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틈만 나면 강조하곤 했다.


[왜 불렀냐?]

[나가면 또 날 죽이려고 애들 보낼 거냐?]

[.....]

[우리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면 엄한 놈들만 좋은 거 아니냐?]

[그래서?]

[형님으로 만충이형 모시고, 그 위로 벼락 형님 그 위로....]

[만충이는 안 돼. 만약 만충이가 한 칼 먹으면... 그때 가서, 내가 벼락형님 모시지.]


목포 출신 주먹이 결성해 서울에서 호남 주먹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 벼락파다.

1988년 일본 야쿠자와 칠성파 두목이 의형제를 맺는 사카즈키배 의식에 범호남파 회장 자격으로 벼락파 두목이 참석하기도 했다.

또 1989년에는 경기도 파주의 한 기도원에서 휘하에 있던 김대천 등 조폭 400명을 모아 ‘신우회’를 결성하는데도 주축이 된 인물이 벼락파 두목이다.

90년대에는 대한태권도협회 요직을 맡으며 협회장의 측근으로 여러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만충이형이 오다 내린 거 아냐. 그게 그 형이 결정할 문제가 돼? 그 윗선이야.]

[윗선 누구?]

[밖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우선 나갈 궁리나 하자. 여기서 나가야 힘을 합치든 말든 할 것 아니냐.]


두 사람은 구치소에서 한 방을 쓰면서 지난 일은 화해하고 먼저 나가는 사람이 옥 수발을 하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배신과 협잡이 일상인 깡패들에게 그 같은 약속이 지켜질 리가 없다.

집행유예로 먼저 출소한 최양동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최양동이 출소한 것은 1978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고 풀려난다.

반면에 김대천은 2년 실형을 살게 된다.

최양동과 김대천의 일명 ‘3년 전쟁’은 이미 찍어두었다.

2회 분량의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로 실제 조폭역사나 드라마 스토리에서 중요했다.

12부작 <불한당>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특히 남성 시청자들에게 가장 흥미진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두 개의 조직이 용호상박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묘사했기에.

두 사람의 전쟁은 서울 주먹계를 매우 시끄럽게 만들었다.

주먹계 선배들도 그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1977년 어느 날 전북 주먹계의 대부가 최양동을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낸다.

전북지역 주먹계 선배의 주선으로 두 사람이 한 방에 마주앉았다.

하지만 화해하기에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

대화는 소득 없이 끝났다.

일어서면서 잠시 서로의 몸이 스친다.


툭!


두 사람의 품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각자 몸에 지니고 있던 칼끼리 부딪치는 소리다.

실제 그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극적인 과장이다.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를 따로 넣어 사운드를 과정할 계획이다.

드라마 <불한당>에서는 최양동과 김대천은 물론이고 부하들까지 ‘3년 전쟁’ 기간 내내 회칼을 품에 지니고 다닌 것으로 설정했다.

마치 미국 마피아들이 권총을 소지하고 다니던 것처럼.

두 조직은 마주치면 무조건 싸움을 벌였다.

회칼과 쇠파이프가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실제 죽는 사람은 없다.

대신 허벅지, 엉덩이 등에 수십 차례 회칼이 난자당하는 모습은 너무 자주 나와서 식상할 정도다.

미국 갱스터 영화에서 총격전이 일상인 것처럼 드라마 <불한당>에서도 ‘사보이호텔 사건’ 이후로 조폭들이 회칼을 기본 무기처럼 사용하는 식으로 묘사했다.

미국 사회가 총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무감각해지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한국의 조폭세계도 회칼 등장 이후 높은 폭력수위가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동시에 또 점차 무감각하게 될 것이란 걸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니 방송심의를 받을 수가 있겠냐고!”


사보이호텔사건 에피소드 이후로 매회 회칼이 등장하고, 또 난도질이 한 번씩 묘사된다.

그대로 내보내면 사실상 한국에서 방영불가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형님께는 매우 미안하게 됐습니다.]

[인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부렀응게... 느그들 살 길은 느그들이 알아서... 휴우~ 씨발 나도 인자 모르것다. 불똥만 우리 쪽으로 안 튀게 허고.]

[들어가십시오, 형님.....]


전북지역 주먹계 선배 캐릭터는 실제 태권도 전국제전 우승자이자 해병대 태권도 감독을 맡는 등 태권도계의 실력자였던 인물이다.

백주대낮에는 태권도인으로 행세하고, 한편으로는 주류도매업을 하면서 주먹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태권도인보다 주먹계 선배라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정치권과도 연줄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하고.

중요한 사실은 이 캐릭터는 실제 현실에서 여전히 전북지역 유지행세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만금간척지개발 프로젝트에도 한 발 걸치려던 걸 잘라내기도 했는데, 감히 가온그룹에는 앙심을 품지 못하고 애꿎은 지역 건설사만 잡도리했다는 비사가 있다.

암튼 <불한당>에서는 조직폭력배를 중심으로 당시 이권마다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체육계 인사들과 영화 및 연예계 사람들까지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명예훼손과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당하는 작품이 될 거야.”


송진한 작가가 호언장담할 정도다.

일반인도 알만한 원로 연예인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만약 일반 드라마 PD가 실존 조폭 두목이나 체육계 그리고 연예계 거물급 인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면 수많은 협박과 위협에 시달렸을 것이다.

실제 송진한 작가는 <두목> 시나리오를 쓰면서 협박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거물을 대놓고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영화감독은 류지호뿐이다.

세계 최고 부자에게 까불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대통령까지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너무나 바쁜 나머지 약자의 고충을 신경을 못 쓴다.

그런데 있는 자, 지위가 높은 자가 관계된 사안에는 아무리 바빠도 온 힘을 동원해 해결해 준다.


[억울하면 출세해!]


이전 삶에서 BS그룹 부회장은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는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와병을 핑계로 미국으로 돌아가 수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을 못했다.

30대 기업에 속하고 범오성가문 직계자녀임에도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강제로 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시에 탈세 및 비자금 조성 등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 회장이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류지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먼지가 나와도 알아서 그 먼지를 없던 것으로 해줄 테니까.

적당한 부와 적당한 힘은 언제든 도전을 받는다.

감히 도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알아서 고개를 조아리게 되어 있다.


“태권도 선배들은 건드리지 말지....”


고우찬이 태권도계는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작가의말

한 주 활기차게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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