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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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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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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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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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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애쓰면 뭐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후우.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어요....”


한국에 들어온 류지호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했다.

Rehman사태 이후로 한국의 연예계가 불황에 빠져 있단다.

가요계·영화계·방송계 등 엔터업계 사람들이 조금만 모이면 온통 ‘불황’ 이야기뿐이다.

제작자들이 돈을 구하러 동분서주하지만 매번 헛걸음이다.

연예인들은 출연작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단다.


“쯧쯧.”


류지호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안타깝기는커녕 한심하게 보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엔터테인먼트의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자본이 연예계에 유입됐다.

모두가 입을 모아 ‘불황’이라고 떠드는 이 시기도 여전히 자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연예계가 새삼스레 불황이라고 모든 이들이 입을 모을까.


“스스로 자초한 거야.”


김재욱의 말에 류지호가 ‘요놈 봐라‘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영화, 방송, 가요계가 분야별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해를 바꿔가며 분야별로 호황을 누렸어. 영화만 봐도 90년대 대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를 이동통신사와 창투사가 대체했지. 방송과 가요계의 경우는 코스닥에 우회상장하면서 증권시장의 자금이 유입됐고.”


업계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호황기 때마다 거품이 형성됐다는 거야. 먼저 연예인 몸값. 코스닥 시장에 엔터주가 테마주로 형성되면서 매출을 위해 너도나도 연예인을 영입했어. 이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계약금이 엄청나게 뻥튀기 됐지. 조금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면 계약금으로 1~2억 받는 것이 기본이니까. 스타급은 계약금만 최소 5억에서 10억까지 받고 있고.”

“연예계 비즈니스의 속성이기도 해.”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네가 보기에 그것이 산업의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업계에 돈이 넘쳐날 때 기획사들이 연예인들을 잡기 위해 한 대에 억 소리 나고, 한 달 유지비가 수천만 원이 드는 고급 밴을 주고 전담 코디니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붙여주면서 엄청난 비용을 연예인에게 쏟아 부었어. 한 번 그렇게 시스템이 만들어지니까 되돌릴 수가 없게 된 거야.”


한국의 매니지먼트 업계의 시스템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스타’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서 정작 기업의 투자 대비 수익 비율이 취약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들도 거시적인 안목보다는 당장의 경쟁에 매몰되어서 인기 있는 배우를 잡기 위해 엄청난 개런티와 수익분배 계약을 남발했지. 돈이 썩어날 정도로 자본이 유입되었으니까.”


당연히 제작비와 비용이 급작스럽게 상승했다.


“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한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비용증가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너무 점프를 시켜버린 거야.”


김재욱의 분석에 류지호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평균제작비 7,000만 달러 업계에서 A-List 배우가 2,500만 달러를 출연료로 받고 흥행수익의 5%를 가져가는 것과 23억 평균제작비 업계에서 8억을 주연배우가 차지하는 것은 그다지 건강한 구조는 아니다.

참고로 한국영화 평균 총제작비는 2006년 40억 2000만원을 기록한 이후로 매년 줄고 있다.

작년에는 23억 1000만원, 올해는 21억 안팎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화계가 불황이라는 근거로 활용되는 통계 중에 하나다.


“거기다가 스타라는 것들이 주제넘게 갑질을 해대고 불합리한 계약을 밀어붙였다가 영화나 드라마가 폭삭 망한 후에는 서로 ‘네 탓이네‘ 떠들어대는 꼴이 참 가관도 아니었지. 거품이 배우에게만 낀 게 아니야. 감독이고 작가고 개나 소나 다 퍽 하면 류지호급이래. 나 참 웃기지도 않아서.”


김재욱이 한국의 엔터산업에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쉬지 않고 씹어댔다.


“제작자들이 이름값 좀 있는 작가나 감독 입도선매하겠다고 개런티에 거품을 막 그냥... 웬만한 이름 있는 작가나 감독 계약금이 얼만 줄 알아? 10억이야 10억.”


류지호가 우려했던 것이 똑 같이 반복되었다.

한 작품 뜨면 곧바로 스타 작가나 감독이 되었다.

감독과 작가를 떠받칠 수 있는 시스템도 없는 주제에 유명 감독과 작가의 파워가 날로 커져갔다.


“우리는 안 그런데... 다른 데 보면 이상하게 영화나 드라마가 망했는데 그 책임에서 작가와 감독이 빠지는 거야. 돈 많이 받는 배우가 옴팡 뒤집어쓰거나 배급사 탓을 하는 이상한 현상도 벌어져.”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거둔 나라다.

모든 산업분야에서 그랬는데, 대중문화 산업도 마찬가지다.

단계적 성장이 아닌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퀀텀점프의 성장을 하다 보니 그 성장통의 강도가 제법 크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전반의 급격한 고도성장의 그늘 중에 하나가 ‘부동의 1위의 자살률‘이라면 연예산업의 그늘은 ‘휴먼 리스크‘다.

자본, 산업적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소위 ‘사람관리 실패’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

즉 ‘창작‘과 ’자본주의적 소유와 경영‘ 개념이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구시대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코스닥 시장의 투기자본이 썰물처럼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헌데 그것으로 연예계가 온통 패닉이다.

엔터산업 종사자들은 빠져 나간 자본에 대해서 ‘의리’ 없음을 성토한다.

고통분담을 하자면서 인건비를 줄이자고 호소한다.

그 고통분담에는 ‘나‘는 빠져있고 ‘너‘ 밖에 없다.


“몇몇 스타배우들이 스스로 개런티를 깎고 있긴 한데... 내가 볼 땐 의미 없어.”


한껏 거품 낀 몸값은 배우 자신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한번 높아진 몸값은 쉽게 내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제작사들은 애매한 포지션의 배우 캐스팅을 꺼리게 된다.

즉 검증된 배우만 주구장창 기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고예산영화와 중간영화, 저예산영화에 고르게 출연하면서 필모그래피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니까. 말들 참 안 들어. 사람들이.....”


류지호는 친한 톱스타 지인들에게 고예산영화만 출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예산규모에 따라 출연료가 유연하게 책정될 수 있도록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라고 누차 강조해 왔다.

그래야 출연료 책정과 작품 선정에서 다양한 옵션과 융통성이 생길 수 있다고.


“요즘 영화제작편수가 쪼그라들자, TV드라마에 학을 떼고 영화만 하겠다던 배우들이 다 드라마로 몰려가고 있어. 걔들이 드라마를 찍어서 성공이라도 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이 망하고 있다는 거야.”


이미 류지호가 예상했던 흐름이다.

더 큰 문제는 스타들의 몸값 거품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대다수의 조단역급 배우나 스태프라는 사실이다.


“스타들은 막말로 시나리오 다시 쌓일 때까지 벌어 놓은 돈이 있으니까 쉬어도 그만이잖아. 작품 활동은 안 하면서 광고만 찍으면서 대중들로부터 잊히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WaW 엔터테인먼트는 90년대부터 금융위기나 경기침체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안정적인 투자·제작·배급 구조를 만들어 외부 요인에 의해서 작품 수가 급격하게 줄지 않도록 기반을 다져놓았다.

케이블TV 사업 부문에서는 수백억 원의 적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늘리면 늘렸지 불황에도 전혀 줄이지 않고 있다.


“백날 업계를 위해 WaW가 애쓰면 뭐하냐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놈 없는데.....”


WaW 엔터테인먼트는 이전 삶의 BS그룹처럼 한국의 미디어와 모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시기획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관련 분야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지상파와 대기업 계열 케이블 채널들이 자사 인기 프로그램을 수도 없이 재방송할 때, 다솜미디어는 계속해서 신규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다.

모두가 ‘불황’을 푸념할 때 가온그룹 산하의 투자·배급사와 미디어에서는 외주제작이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그로 인해 업계가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다.


“누가 알아달라고 하냐?”

“그냥 억울해서....”

“억울하기는. 다 WaW와 다솜 잘되라고 투자하는 거야.”

“속절없이 돈 꼬라박는 게 무슨 투자야? 얻는 건 없고 돈만 쏟아 부으면서.”


케이블TV 업계에서 경영실적과 시청률에서 톱10을 살펴보면, 재방송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나 지상파 계열 PP들은 자체 제작비율이 4%~14%에 그친다.

지상파 계열 PP 가운데 매출이 가장 높은 MBS 드라마넷의 경우 매출이 950억 원, 순이익 62억 원을 기록했는데, 케이블 채널 자체적으로 제작한 드라마는 전무했다.

오로지 재방송만으로 기록한 매출이다.

반면에 자체 제작 비율이 높은 다솜미디어와 BS미디어의 영업이익은 매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다솜미디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다솜의 연간 자체 제작 콘텐츠 시간이 어떻게 돼?”

“다솜이 200만 분이 조금 안 되던가 할 거고, BS가 160만 분 정도 될 거야.”


반면 20개 안팎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지상파 3사 계열사들이 제작한 콘텐츠 분량은 BS미디어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지상파 공채 코미디언 출신의 국민MC가 진행하는 MBS의 간판예능 <무한도전>은 일주일 내내 MBS 계열 케이블 채널에서 68회나 재방송되고 있다.

일요일에는 하루 동안 13회나 재방송된다.

<무한도전>이 일 년 동안 재방송된 횟수가 5개 채널에서 무려 2,133회나 된다.

케이블TV의 존재목적을 의심케 하는 도가 지나친 재방송이다.

물론 다솜방미디어 계열에도 WoWTV라는 재방송 전문 채널이 있긴 하다.

자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일주일 내내 주구장창 틀지는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케이블 채널들에서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구매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오죽하면 2010년 기준으로 한 번이라도 콘텐츠를 제작한 채널이 전체의 절반에 불과할까.

즉 187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중에서 자체 제작 실적이 있는 곳은 전체의 51%인 96개에 불과했다.


“그런 걸 보통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지 않냐?”

“90년대부터 뿌렸던 씨앗들이 뿌리를 내려 2~3년 안에 싱그러운 열매를 맺을 거다. 기다려 봐.”


참고로 10개 채널을 보유한 BS 미디어의 경우 작년 한 해 매출 1,590억 원, 손실 336억 원을 기록했다.

16개 채널의 다솜미디어는 매출 2,490억 원, 손실 287억 원을 기록했다.

홈쇼핑 채널을 뺀 실적이다.

사실 두 거대 케이블TV 사업자에게 홈쇼핑 채널이 없었다면, 손실 규모는 몇 배가 되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국내 시장 가지고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던 거야.”

“...한류?”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보내오는 보고서 좀 읽어. 아프리카 서부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아프리카는 돈이 안 되잖아.”

“6~70년대 할리우드가 돈이 돼서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에 영화를 팔았겠냐?”

“......?”

“각 나라 국민들에게 미리부터 우월한 문화상품으로 길들인 거 아니겠어. 결국 80년대 말 영화직배를 시작으로 미국 엔터 기업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가고 있냐?”


한국에서는 ‘한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와 다솜미디어로 인해 일찍부터 양질의 콘텐츠들이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도대체 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거야?”

“사극 같은 경우는 우리의 유교적 문화와 정서가 그들의 문화에 거슬리지가 않아. 특히 대가족 문화에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아프리카에도 방송국을 차렸다면서?”

“한국계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정도? 케냐와 에티오피아 방송 콘텐츠에 스폰을 조금 하고 있기도 하고.”

“케냐판 <전원일기>가 아프리카에서 대박이라던데?”

“아프리카 북서부 국가들과 남부의 보츠와나까지 인기가 퍼지고 있다고 듣긴 했어.”

“그룹 경제연구소에서 내는 보고서 보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속성장을 한다고는 하는데. 소비력이 얼마나 따라줄지.....”

“어쭈? 경제보고서도 볼 줄 알고?”

“간부들은 무조건 읽어야 돼. 시험만 안 보지 완전....”


김재욱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암튼 이 시기의 한국방송산업 규모는 대략 89억 달러다.

세계 8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디어 기업들의 글로벌화에서는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작년 미국 PP들의 수출액은 대략 115억 달러다.

반면에 한국 PP의 수출액은 580만 달러에 불과했다.

수출 콘텐츠 대부분이 다솜과 BS가 제작했거나 방영한 작품들이다.

수출국가도 제한적이다.

수출 방송 콘텐츠 중 95%가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수입해 오는 방송 콘텐츠의 80%는 미국과 일본이고.

공영방송 KBC는 일본 위성방송과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고, 위성방송 EchoSatellite 서비스를 통해 미국에도 방영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KBC는 71개국에 위성과 케이블 채널을 운영 중인데, 해외에서 600만 가구를 확보했다.

문제는 형편없는 시청률이다.

반면에 SBC, MBS, YNTV, 다솜미디어 등은 미국의 최대 위성방송 JHO/DirecTV와 계약해 미국에서 자사 채널을 운영 중인 곳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BS미디어는 PARKs계열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아시아 8개국에 진출했다.

BS그룹은 홈쇼핑 채널의 동남아시아 진출에 이어 케이블TV 채널도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떻게 봐?”

“뭘?”

“국내 미디어들의 해외진출.”

“한국의 방송사들이 각개전투로 백날 해외시장 개척해봐야 성공하기 어려울 거야.”

“영화계처럼 단일 창구를 만들어야 할까?”

“해외시장을 뚫으려면 우선 킬러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뒤 채널을 진출시켜야 해. 24시간을 커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콘텐츠가 필요하겠냐?”


국내에서도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는 케이블 채널들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에 진출하면서 국내처럼 재방송만 주구장창 틀수도 없는 노릇인데,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몇몇 작품만 가지고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은 치기일 뿐.


“다솜이 BS미디어와 합작을 했어야 했나?”


류지호는 진작부터 이희경 부회장에게 다솜과 올미디어, BS미디어가 연합해서 해외시장을 개척해 보자고 제안했었다.

두 대기업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장시간 내보낼 수 있고,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킬러콘텐츠들을 모아서 한 개의 채널로 통합해 내보내야 그나마 경쟁력이 있을 텐데. 그런 방식으로 현지인들이 시청 습관을 갖도록 문화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야.”


두 개의 거대 미디어는 일찍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데다 어느 정도 네트워크도 보유한 다솜미디어만 좋은 일 시켜줄 것이란 지레짐작 때문에 합작을 꺼려했다.

작년 한 해 한국의 187개 케이블 채널의 연간 제작 편수는 5,700여 편이었다.

미국에서는 565개 채널에서 9만3,600여 편을 만들었다.

인구, 시장규모, 소득 수준, TV시청 경향 등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그런 환경을 가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약자들끼리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한 것이 현실이다.


“방송 제작자들은 항상 정부로부터 콘텐츠 펀드를 받을 생각만 하고, 세제혜택만 바라지.”


정부기관이 아님에도 가온그룹은 각종 연구자료를 일반에 공개하는 편이다.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공동 제작하는 등 미국이나 유럽 방송사들의 아주 좋은 협력 모델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그 같은 성공 사례를 배울 생각들을 안 한다.


“사실 WaW의 현지화 전략처럼 해외시장에서 현지 업체와 현지어 방송콘텐츠를 공동 제작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공감대는 형성하는 것 같지만 누구 하나 나서질 않아. 도전정신이 없어 사람들이....!”


한국어로 제작된 콘텐츠를 그대로 수출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막보다는 더빙을 더 선호한다.

누구나 자국 언어와 문화가 담긴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마련이라서.

따라서 현지 사정에 맞추어 리메이크 하는 방식도 충분히 고려할만 했다.

현지화가 성공하면 뒤늦게 오리지널의 매출도 발생하게 된다.


“도전정신이 없어서겠냐? 자금 사정과 정보가 취약해서겠지.”

“난 국회의원들이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해주네 마네 하는 것도 골 때리지만. 콘텐츠 사업자들의 대형화도 함께 제도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봐.”

“복합미디어그룹 모델을 말하는 거야?”

“퇴출 기업들을 자유롭게 인수·합병할 수 있게 길을 좀 터줘야 하지 않을까? 지호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몇 개 회사만 남을 걸? 그냥 대놓고 독점기업이 정치·사회·경제·문화를 좌지우지 하게 될 거야.”

“솔직히 미국의 빅 세븐이 M&A를 통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거잖아. 한국의 가온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없지 않나?”

“워너-타임이 지금까지 몇 번의 M&A를 한 줄 알아?”

“한... 삼십 번?”

“130번 정도라고 들었어.”

“무시무시하구만.....”

“GTE 알지?"

"응.“

“거기는 400번도 넘게 기업 사냥을 했지.”

“와우~”

“최근에는 Googol고 GMG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을 죄다 빨아들이고 있지.”


몇 년 전부터 류지호는 조 단위의 M&A만 보고 받고 있다.

대형 M&A만 언론에서 소개되기에 JHO Company가 초대형 M&A 계약만 이루어지는 줄 알기 쉬운데.

자잘한 인수·합병 혹은 사업권 인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JHO Company Group은 5년, 10년 주기로 새로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짠다.

기존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구조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맞춰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강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를 꾀하고 있다.

이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식이 M&A나 신생기업에 대한 투자다.

그를 통해 끊임없이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를 가진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암튼 연예계는 정신 좀 차려야 돼. 만날 경기불황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되돌아봐야 한다고 봐. 정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야 돼.”


오랜만에 김재욱이 진지했다.

반면에 류지호는 시큰둥했다.


“만날 반성 타령은.... 반성문 썼다고 진짜 잘못을 뉘우치는 거 봤어?”

“잘못을 고치려면 반성부터 해야지. 그냥 잘못된 길로 계속 가야 돼?” “반성이고 나발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야. 또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주제파악을 하라는 거냐?”

“업계 리더들이 장밋빛 희망으로 사람들을 호도하지 말아야 돼. 바닥을 인정하고 그 바닥에서 실력을 키워 도약할 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


리더들은 툭하면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다.

연예계는 특히 심하다.

류지호가 보기에 한국의 연예계는 다소 부풀려진 거품과 청사진으로 대중들을 호도한 경우가 많았다.

기업에 대입하면 매출보다 외부에 보여지는 씀씀이가 컸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한 방을 노리기 일쑤다.

한국의 연예계 생태계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복권당첨을 바라는 심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획사 대표들도 문제라고 생각해.”

“문제없는 곳을 찾는 게 빠르지 않겠냐?”

“그래도 일부라서 다행이잖아.”


류지호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냉소했다.


“일부 좋아하시네.”

“내가 누구라고는 말 못하겠는데..... 얼마 전에 제작자 한 명이 지분을 위장 분산시키고 회사 돈을 횡령했거든. 그 작자 감옥에 가게 생겼어. 이놈에 나라는 무슨 삥땅에 나라야 뭐야. 왜 다들 남의 돈을 주머닛돈 쌈짓돈처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오! 재욱이가 이제 좀 철이 들었네? 남의 돈 귀한 줄도 알고.”

“나도 낼모레 쉰이다!”


이제 마흔이다.

반올림도 적당히 해야지.


“암튼! 이번 기회에 퇴출될 곳은 퇴출되고 사라져야 할 인간들도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없어져야 할 인간, 누구?”

“있어, 그런 사람들이.”

“그러니까 누구?”

“알아서 뭐하게?”

“치워야지.”

“아휴~ 니가 무슨 <대부>의 돈 콜레오네냐! 넌 영화만 집중해 쫌!”


류지호가 목소리를 변조해 <대부>의 멀론 브란도우를 흉내 냈다.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호화 저택에서 외동딸 코니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같은 시간, 어두컴컴한 응접실에는 정치권과 법조계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거물로 성장한 혼주 돈 콜레오네가 갖가지 고민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주고 있다.

양아들로 삼은 조니로부터 한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때 돈 콜레오네가 조니에게 한 말이다.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것이라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영화 대사 2위에 올라있는 명대사다.

영화제작자는 돈 콜레오네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게 되는데.

자신의 침대 속에서 피범벅이 된 애마의 머리를 발견하고 혼비백산한다.

결국 양아들 조니는 원하던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더 뒷담할 거 남았어?”

“뒷담화로 들렸냐?”

“인천 내려 갈 건데, 같이 갈래?”

“인천에는 왜?”

“관장님 뵙고, 가볍게 몸 좀 풀어볼까 하고.”

“우찬이 비번이라는데 불러서 회 안주에 소주 한 잔 때릴까?”

“영웅이도 연락해 봐.”

“오케바리!“


인천 신흥동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김준우도 부르고, 군산과 서울을 오가고 있는 황재정까지 술자리에 합류했다.

실로 오랜만에 사인방이 인천 연안부두의 횟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왁자지껄.


류지호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기에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들이지만.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뭔 일이야 있으려고.”


경호를 늘리자는 요구가 꾸준히 있어왔다.

드라마 <불한당>이 건드리는 인물들이 주로 어둠의 세계 사람들이기에.


“준혁이도 함께 왔다면서... 울 조카들에게 험한 꼴 보여주고 싶냐?”

“우찬이와 경호팀을 믿어. 그리고 노이즈 마케팅이 되려면 조폭들이 협박도 좀 해주고, 프로덕션에 쳐들어와 난동도 부리고 그래줘야 하는 거 아닐까?”


황재정이 단박에 핀잔을 줬다.


“미친 놈!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류지호의 UCLA 선배이자 동료이며 (나이를 떠나서) 친구이기도 한 프랭크 코폴라 감독은 제작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기행을 일삼던 40대 중반의 멀론 브란도우를 노인 역할에 캐스팅했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신인 알프 J 파치노를 과감하게 캐스팅함으로써 탁월한 안목을 입증했다.

<대부>가 개봉하기 전, 제작자와 감독은 수도 없이 마피아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마피아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영화관계자들의 차에 폭탄을 설치하고 제작을 포기하도록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하고 나자 마피아들이 프랭크 코폴라 감독의 연출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불한당>에서 실존 조폭들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사회 각층의 관계된 이들을 가감 없이 낱낱이 묘사되었다.

제작과정에서 조폭은 물론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귀여운 협박이 있긴 했다.

류지호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조폭계의 3대 패밀리라 불리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행동대장이었던 이들이 독립해 사업가 행세를 하고 있다.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인물 중 한 명은 해외도피 중이고, 한 명은 투병 중이다.

그들은 <불한당>을 보며 과거 잘 나갔던 시절을 회상할 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영화 <대부 I>과 <대부 II>의 필름이 최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원되었다.

30년 가까이 패러마운틴 필름 창고에 상처투성이로 보관되던 <대부>의 필름 상태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필름을 재작년에 꺼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

1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되어 최근 재개봉되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류지호도 그 작업에 한 손 보탰다.

비록 남의 영화사의 작품이었지만.

극장에서 과거의 명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씨네필에겐 축복이자 선물이기에.

씨네필인 류지호가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지 간에.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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