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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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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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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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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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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칸 영화제.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거 참 실망이네....”


폐막작이 상영될 뤼미에르 대극장을 둘러보던 류지호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뤼미에르 대극장은 무려 2,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영화 관람은 물론이고 개·폐회식까지 치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도 잡음도 없었다.

이번에 초청된 영화가 한 편이 문제가 됐다.

바로 <Christmas Cargo>다.

영화 상영 전문 극장이 아니기에 관람 환경이 그다지 좋진 못했다.

특히 Eye-MAX 관람환경으로는 최악이다.

<Christmas Cargo>는 오리지널 Eye-MAX 포맷으로 제작된 영화다.

제대로 갖춰진 전용관에서 상영되어야 본연의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다.

복합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은 제대로 된 Eye-MAX 관람환경을 제공해 줄 수 없다.


“이래서 내가 칸에 영화를 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인데.....”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류지호와 그의 영화에 출연한 초특급 할리우드 스타들을 영화제로 불러들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뤼미에르 극장에 한시적으로 Eye-MAX 상영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Eye-MAX Corp 측에서 협찬 개념으로 시스템을 설치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아두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Eye-MAX 시스템을 한시적으로 운영해보았던 경험도 있고.


“그래도 이건 아니야....!”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류지호를 향해 앨런 포스터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

“괜히 칸에 영화를 보냈다고 후회하는 중이야.”

“.....?”

“<Christmas Cargo>를 이런 극장에서 봐야 하다니....”


JHO Pictures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Christmas Cargo>를 위해 칸영화제가 Eye-MAX 시스템까지 동원해서 폐막작으로 상영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특별 대접이라면 특별 대접이었으니까.


“후우~”


Eye-MAX 필름 프로젝션만 가져다 놓았지, 특유의 곡선형 스크린을 물론이고 사운드 시스템이나 최적의 좌석 경사도조차 기대하기 힘든 환경이다.

류지호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점은 오리지널 화면비 1.43:1의 일부가 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1층 맨 앞쪽 좌석의 관객들과 3층 끝자락에 앉은 관객은 <Christmas Cargo>가 전하고자 하는 혹한의 광활한 화면의 느낌을 받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앨런!”

“응?”

“배급사 스크리닝은 어떻게 한대?”

“드뷔시 극장에서 디지털로 할 걸?”

“배급팀에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고 해.”


차갑게 가라앉은 류지호의 목소리에 앨런 포스터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알겠어.”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칸영화제가 출품작과 일반 관객을 배려하는 영화제가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영화관계자들을 위한 영화제다.

심지어 영화과 학생을 배려하는 배지 시스템은 있어도, 일반 영화팬을 위한 티켓 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풍조가 있다.

매년 칸영화제를 찾는 각종 매스컴 관계자만 최소 6천여 명.

필름마켓만 따로 방문하는 영화 관계자는 그 몇 배에 달한다.

티켓 배분에서 영화제 배지를 소지한 이들부터 먼저 기회가 주어진다.

화제작들의 경우 일반 관람객들은 언제나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부분만 기사화해서 내보내기 때문에 실제 현지 분위기를 잘 모른다.

특히 칸영화제를 취재하는 유럽 영화비평가와 기자들의 독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류지호는 고전적인 내러티브보다는 미장센이나 톤 앤 매너, 음향 그 밖의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총동원해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유형의 감독이다.

게다가 <Christmas Cargo>는 철저히 오리지널 Eye-MAX 포맷에 맞춰서 제작된 영화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얼굴 클로즈업이 시네마스코프와 비스타비전 포맷과 다를 수밖에 없다.

와이드스크린 화면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듯이, 1.43:1 화면 비율(4.29:3)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비스타비전과 시네마스코프 이전 고전영화들과 수십 년 동안 모든 TV시리즈에서 미학과 영상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던 영역이 바로 4:3 화면비다.

즉 1.43:1 화면 비율로 무심한 듯 미장센 된 미디엄 쇼트 이상의 꽉 찬 쇼트들에서 와이드 스크린으로는 쉽게 번역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다.

<복수의 꽃>이 유럽에서 인정을 받는 지점이 바로 영화에서 클래식이 되어버린 4:3의 화면비율을 되살려서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10년도 더 된 <복수의 꽃>은 최초의 Eye-MAX 상업극영화라는 기념비적인 기록 외에도 와이드 스크린 시대에 4:3(에 가까운) 화면비로 영상 표현의 새로운 표현 지평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럽 비평계에서 분석되고 해석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같은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영화를 읽고 분석해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의 영화비평을 하는 이들이 영화에서 4:3 포맷이 가진 의미를 그냥 넘기는 건 류지호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문가들의 기준은 결코 일반 소비자의 기준과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을 전문가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암튼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권의 비평가들이 뤼미에르 대극장 환경에서 <Christmas Cargo>를 관람하게 된다면.


‘온갖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는 기사들로 온 유럽 매스컴을 도배하겠지.’


<Christmas Cargo>는 이전 삶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처럼 드라마틱한 전개나 반전의 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니다.

마치 전쟁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을 느끼도록 의도한 영화다.

때문에 1.43:1의 위아래로 더 넓은 화면 속에서 때론 이마가 잘려나가고 대신 입매와 턱선이 더 강조되는 클로즈업으로 배우를 따라가기도 하면서 캐릭터의 은밀한 영역까지 들어가 더욱 깊은 심리표현도 가능했다.

영화역사에 등장한 다양한 화면 비율에 대해 충분한 학습이 되어 있다면 때로 4:3 화면비율이 2.35:1보다 등장인물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전투 시퀀스는 Eye-MAX 스크린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때문에 자칫 칸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로모션을 하려다가 부정적인 기사만 양산하지는 않을지 류지호로서는 우려가 들 수밖에 없었다.

류지호는 집행위원회에 부탁해서 테스트 상영을 부탁했다.

다시 한 번 뤼미에르 극장의 관람 환경을 꼼꼼히 점검했다.

2,300석의 대극장의 좌석 경사도.

스크린 사이즈 18m×9m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류지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


영화제 관계자들도 덩달아 표정이 굳었다.

영화제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조르쥬 펜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문제라도.....”

“드뷔시 극장 상영을 취소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

“배급사 스크리닝을 취소하고 대극장 상영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은 조르쥬 펜저가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집행위와 논의를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앨런이 집행위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해.”


앨런 포스터가 불퉁댔다.


“단 한 번 상영하는 거 가지고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거 아닐까?”


그러다 칸영화제에 찍히는 거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도 있고.


“그 단 한 번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수도 있지.”

“알겠어. Eye-MAX에서 협찬한 거라서 집행위는 돈 한 푼 안 썼으니까 뒷말은 좀 있어도 영화제에 데미지는 없을 거야.”

“그럼 됐네.”


앨런 포스터는 칸영화제 측에 <Christmas Cargo>를 Eye-MAX로 상영하기 위해 노력해 준 것은 감사하지만, 폐막식 외에는 어떤 상영도 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베를린영화제는 메인 상영관 외에 보조 상영관으로 계약된 멀티플렉스가 있고, 그곳에 유럽 최대 스크린 사이즈의 Eye-MAX관이 있다.

모스크바에서 개장할 G.O.M의 러시아 현지합작 멀티플렉스 브랜드에서 유럽 최대 사이즈 타이틀을 건네주게 되겠지만, 현재까지 유럽에서는 베를린 가온센터(구 소닉센터) 내 멀티플렉스가 오지니널 Eye-MAX 포맷이 상영 가능한 전용관(GT)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류지호의 Eye-MAX 영화가 베를린이나 베니스에서 무리 없이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도시에 전용관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폐막식 상영 외에 모든 <Christmas Cargo> 상영이 취소됐다.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언론보도가 나갔다.


“영화제 측에서 많이 아쉬워하더라.”

“더 많이 영화를 상영하지 못해서?”

“그런 건 별 관심도 없어 보였어.”

“그럼 뭔데?”

“만약 <Christmas Cargo>가 개막작이었으면 영화제 내내 이슈가 되었을 거 아니겠어. 미스터 할리우드가 칸의 극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영화 상영을 거부했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되는 거지.”


이번 영화제는 마땅한 화제작이 없었다.

몇몇 작품의 정치적 논란은 영화제 흥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영화제 분위기가 조용한 편이다.

만약 Eye-MAX 포맷의 상영을 두고 류지호와 영화제 측이 갈등이 불거졌다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한 활기가 돌았을 지도 몰랐다.

류지호가 관계된 일이라 그 파장이 상당했을 테니까.

양측의 공식 답변 외에 온갖 추측성 기사다 넘쳐남으로써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디지털 영화와 Eye-MAX 같은 대형 사이즈 영화를 화두로 논쟁이 벌어졌다면 금상첨화였을 거고.”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를 영화제와 영화 비평가들은 영화 포맷에 대한 논쟁적 화두로 승화시켰을 수도 있다.


“앞으로 Eye-MAX나 3D영화는 칸에 출품하지 말자.”

“또 찍게?”

“응.”

“......!”

“앞으로는 토론토에 보내는 것이 좋겠어.”


세계 영화시장이 TCU 같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시리즈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필름마켓인 칸영화제의 영향력 축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었던 칸영화제 초청 거절 사태도 빈번해지는 추세다.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작품들은 시기적으로 너무 먼 칸영화제보다는 8월 베니스영화제와 9월 토론토영화제를 선호하고 있다.

특히 상업적으로 영향력이 큰 토론토 영화제가 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영어권 작품들에서 특히나 칸영화제 탈피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집행위에서는 왜 심사위원 초청을 거절하냐고 나한테 묻던데?”

“오스카 후보작들 챙겨보는 것도 일이야.”

“심사위원장 시켜주면 안 할 거야?”

“여유가 생기면. 당장은.... 내 영화하기도 바쁘잖아.”


국제영화제마다 류지호를 심사위원을 모시고 싶어 한다.

누가 뭐래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심사위원장이 된 감독은 그만한 자리에 오를 만큼 ‘대가’로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감독이 국제영화제 심사를 하는 것은 그저 유명세를 팔아먹는 것 밖에 안 된다.

즉 영화제가 류지호의 이름값을 이용하는 것이다.

류지호가 심사위원이 된다면 그의 ‘지성‘과 ’안목’ 보다는 명성에 주안점을 둔다는 뜻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암튼 2,300석의 대극장인 뤼미에르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규모가 크다.

다만 좌석이 좁고 불편한 편이다.

사실 영화를 하면서 칸영화제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기회는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영화를 공개하는 감독과 배우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자 틀림없는 영예다.

저녁 7시 이후에 뤼미에르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정장을 입어야 한다.

일반 관객도 남자들은 나비넥타이에 검정색 양복을, 여자들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그럴 정도로 완고한 암묵적 룰이 있다.


“1억 5천만 달러짜리 블록버스터 <Christmas Cargo>는 저예산 예술영화들이 각광받는 칸영화제에 어울리지 않았어.”

“그런데도 초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널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거잖아.”


이번을 계기로 칸영화제는 류지호에게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컸다.


“칸에서 수상하면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거 아니야?”


한국인으로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한 감독이 있다.

다만 류지호처럼 아카데미와 토론토에서까지 수상한 영화인은 없었다.


“몰라. 관심도 없고.”

“배급사 스크리닝을 안하게 되면 필름마켓 세일즈는 어떻게 하라고?”

“월드프로모션 하면서 해당 지역 배급사들을 초청하는 것으로 해 봐.”

“알겠어.”


참고로 Eye-MAX 오리지널 포맷을 제대로 상영할 수 있는 Eye-MAX GT(Grand Theatre)는 전 세계적으로 몇 곳 되지 않는다.

류지호가 개입함으로써 주요 영화시장 10개 국가에는 한 개 이상 Eye-MAX GT가 들어가 있다.

1.90:1 화면비를 상영하는 스크린은 Non-GT라고 표기한다.

Eye-MAX는 Non-GT라도 최소 24.5m×14m 스크린 사이즈를 권장하고 있다.

참고로 시드니 달링하버의 Eye-MAX 스크린이 35.7m×29.4m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32m×23m 스크린을 보유한 미국의 뉴욕 링컨스퀘어, 호주 멜버른, 한국 부산 센텀시티 등의 Eye-MAX GT가 뒤를 잇고 있다.

한국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Eye-MAX가 도입된 G.O.M 강남점과 코엑스점은 각각 25m×19m, 26m×19m다.


✻ ✻ ✻


JHO Company 베이스캠프 호텔에서 영화 <Christmas Cargo>의 프레스 컨퍼런스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감독 류지호 외에 클리프 레저와 배런 렌포르, 제라드 깁슨 등이 참석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클리프 레저와 렌포르는 류지호와 함께 세계 각지를 돌며 월드 프리미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 기자 1천여 명이 몰렸다.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호텔 로비부터 3층까지 기자들이 줄을 서야 했을 정도.

당초 호텔 측에서 마련한 좌석 규모는 350석.

서둘러 좌석을 500개까지 늘렸다.

그럼에도 모여든 기자 절반 정도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다수의 한국 취재진이 입장을 시도했다.

미리 배부한 티켓을 받지 못한 언론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부 유럽 기자들이 미국 언론사만 편애한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 영화 첫 공개를 앞 둔 소감을 들려 달라.

“여러분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왔다. 현재 기분을 표현한다면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표현할 수 있다.”

- 벌써 세 번째 Eye-MAX 영화다. 영화를 촬영하며 어려움은 없었나?

“나는 캐머론이나 루카스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예전 <벤허>나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도 매우 좋아한다. 오리지널 Eye-MAX 영화를 찍다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수시로 찾아온다. 안되는 게 너무 많다. 나는 그 과정에서 예전 영화인들이 70mm로 어떻게 찍었을지 떠올린다. <Christmas Cargo>는 현대적인 물건만 컴퓨터로 지우는 선에서 찍고 싶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 당신은 디지털 영화 선구자이자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필름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Eye-MAX 작업은 영화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다. 할리우드 제작 현장은 갈수록 교활해진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난 할리우드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에 한 명이다. 예전에도 말한 것처럼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내겐 도구다. 무엇이 더 적절한지가 중요할 뿐.”


제작 현장이 교활해 진다는 말은 디지털 작업으로 인해 예산을 깎으려는 스튜디오의 시도를 빗댄 말이다.

류지호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

할리우드 연예매체 Variety의 칼럼리스트가 쓴 표현이다.


- 앞으로 Eye-MAX 필름 영화를 계속 작업할 생각인가?

“Eye-MAX 뿐이겠는가.... 뭐든 다 하고 싶다. 아니, 다 할 거다.”

- 필름 산업이 망하면 못할 수도 있다. 이미 아그파가 망했고, 푸지는 필름 사업을 거의 접은 상태다. 이제 Kojak만 남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고 한다.

“만약 Kojak이 필름 사업을 매각한다면 내게 팔았으면 좋겠다. 내 휴대전화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지만. 비서실 전화번호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제발, 내게 팔아줬으면 좋겠다.”


하하하.

회견장에 웃음이 터졌다.


- 디지털영화가 매체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디렉터 류가 소유한 StreamFlicks는 관객의 영화 관람 접근성에 대해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디지털화로 인해 극장이 사라질 것이란 성급한 전망을 내놓고 싶은가?”

- ....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30년 안에 그런 날이 올 것 같진 않다. <Christmas Cargo>를 시드니, 베를린, 뉴욕, 부산의 Eye-MAX GT에서 감상해 보길 바란다.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Eye-MAX 상영이 예정되었다가 취소되었다. 이유가 있나?

“필름 상영은 때론 곤란한 문제를 유발한다. 이번 일은 JHO와 트라이-스텔라의 불찰이다. 좀 더 세심했어야 했지만... 기대했던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 일반 상영과 Eye-MAX가 차이가 큰가?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캐머론의 <아바타>를 보았을 것이다. 두 영화는 사정상 모든 장면을 Eye-MAX로 작업하진 못했지만. 나의 <Christmas Cargo>는 다르다. 95%가 오리지널 필름 포맷이다.”

- 경쟁부문 출품을 하지 못했다. 아쉬울 것 같다.

“전통과 위엄 그리고 기품이 서린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그 시간은 내 삶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다.”

-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영화계에도 그 여파가 미치는 것 같다. 올해 영화제들이 아트필름을 초청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것과 예술영화 침체가 관계가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나? 당장 거울을 볼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삶이 팍팍한 것이다. 관객의 상태에 민감한 스튜디오는 몸을 사릴 수밖에. 아쉬울 따름이다.”

- 그 전부터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창의적인 영화에 투자하기보다 영웅이 등장하거나 프랜차이즈 시리즈에만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예술영화와 매표구에 아부하는 영화가 다양하게 포트폴리오 목록에 올라왔다. 빅7이 예년에 비해 영화 투자와 제작을 축소하면서 제일 먼저 목록에서 사라지는 영화가 아트필름이지 않나.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스튜디오를 옹호한다고 들리기겠지만. 그들로서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돈을 따고 싶지, 잃고 싶진 않잖은가.”

-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튜디오의 주인이다.

“난 오직 다섯 편의 영화에만 간섭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이 아름다운 도시에 왜 왔는지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난 영화감독으로서 초청을 받아 이 자리에 와있다. 나는 영화를 예술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주주들로부터 낭만주의자라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

- 그런 면에서 디렉터 류가 소유한 스튜디오 가운데 ParaMax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젊고 잠재력 있는 감독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ParaMax가 망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 미스터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잡아먹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워너 형제도 월트의 후계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나 역시 못한다. 아니 애초에 그럴 마음조차 없다. 내 돈이든 남의 돈이든, 그것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면 될 뿐. 시장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도 능력도 없다."


<Christmas Cargo>를 홍보하기 위한 프레스 컨퍼런스였다.

그런데 세계 영화계 현안과 관련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할리우드 빅 세븐 그 중에서도 빅 원인 트라이-스텔라의 주인이기에 더욱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컨퍼런스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자 프랑스의 비평가들이 류지호의 전작들을 끄집어냈다.

한동안 감독 류지호의 영화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질문이 쏟아졌다.

진지하고 다소 오만하기까지 한 일부 평론가들이 고약한 질문을 던진다거나, 비난하는 것 같은 말투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류지호는 능숙하게 그들의 질문에 대처했다.


✻ ✻ ✻


류지호가 프레스 컨퍼런스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칸영화제 폐막식 날이 밝았다.

폐막식이 열리는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이른 시각부터 수천 명 몰려들었다.

류지호가 클리프 레저, 배런 렌포르, 제라드 깁슨 등 <Christmas Cargo>팀과 레드카펫을 밟자.


“여배우가 한 명도 없으니까 분위기가 삭막하네.”


사진기자 한 명이 투덜거렸다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폐막식 한 시간 전부터 한껏 정장과 드레스로 멋을 부린 관객들이 입장했다.

2,300석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 미스터 할리우드는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시설에 크게 실망했다. 


결국 류지호가 배급사 스크리닝을 취소한 이유가 밝혀졌다.

앨런 포스터의 말처럼 개막작 상영에서 그와 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다면, 영화제 내내 큰 이슈가 될 뻔했다.

폐막 당일에서야 알려지면서 논란으로 번지지 않고 금방 마무리됐다.


짝짝짝!


요란한 박수소리와 함께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작년의 칸영화제 수상결과는 역사상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나쁜 의미에서다.

오죽하면 프레스 센터에서 시상식을 생중계로 지켜본 각국 기자들의 야유가 끊이질 않았을까.

경쟁부문 대부분이 극도의 악평에 시달렸다.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진우 감독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 상당수 기자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작년 칸영화제의 경쟁작들은 한마디로 피와 섹스가 난무했다.

올해는 전혀 다른 양상의 영화들이 초대되었다.

종교, 경제, 사회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개인의 아이러니를 다룬 영화들이 주로 경쟁작 리스트에 올랐다.

또 한 축으로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삶을 성찰하는 드라마였다.

삶을 성찰하는 드라마가 주류를 이룬 터라 논쟁을 불러올 화제작이나 문제작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그 같은 경향이 한국영화의 선전으로도 이어졌다.

<시>가 각본상을 수상함으로써 2002년 임선택 감독 수상이후로 다섯 번째 본상 수상 쾌거를 이뤄냈다.

또 <하하하>가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했다.

칸 필름마켓에서 한국영화 판매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성과도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리스발 유럽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이번 칸영화제 필름마켓은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심지어 류지호까지 Eye-MAX 상영환경이 마음이 들지 않아 배급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크리닝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차갑게 식은 필름마켓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 한국영화가 선전을 펼친 것을 칭찬받아 마땅했다.

특히 <악마를 보았다>를 비롯해 해외에서 지명도가 높은 감독과 배우의 작품들이 촬영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선판매가 된 것이나, 17편의 한국영화가 유럽 배급사들을 중심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이 이전 삶과 많이 달랐던 내용이다.

서너 편의 리메이크 판권 협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결국 두 편의 권리가 판매된 것도 고무적이다.

사실 류지호가 연출한 <Christmas Cargo>는 지난해 주요 필름마켓에서 시나리오와 예고편만으로 135개 국가에 선판매가 이루어진 상태다.

칸 필름마켓에서는 주로 본계약들이 이뤄졌다.

따라서 배급사를 위한 스크리닝을 취소했다고 해서 크게 손해본 것은 없었다.

시상식을 지켜보던 앨론 포스터가 중얼거렸다.


“올해 황금종려상 주인공은 의외의 인물이구만.”


작가의말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새로운 한 달 활기차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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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 애쓰면 뭐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1) +9 24.05.15 1,313 73 26쪽
855 앞으로 한 눈 좀 팔아볼까? +4 24.05.14 1,327 68 24쪽
854 축복 받았어. 이런 오너라니.... +7 24.05.13 1,371 83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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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3) +5 24.05.10 1,321 59 28쪽
851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2) +3 24.05.09 1,297 68 22쪽
850 조금만 더 분발해주세요! (1) +5 24.05.08 1,300 76 23쪽
849 누가 주인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5 24.05.07 1,344 74 26쪽
848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2) +5 24.05.06 1,346 74 23쪽
847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자! (1) +7 24.05.04 1,384 76 25쪽
846 Légion d’honneur. +4 24.05.03 1,407 66 24쪽
845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도 비즈니스다! +6 24.05.02 1,361 65 28쪽
844 자기 과시, 거장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 어디쯤. +4 24.05.01 1,331 83 28쪽
843 칸 영화제. (3) +8 24.04.30 1,286 89 26쪽
842 칸 영화제. (2) +4 24.04.30 1,163 67 26쪽
» 칸 영화제. (1) +3 24.04.29 1,293 77 25쪽
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401 67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405 68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384 66 24쪽
837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380 66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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