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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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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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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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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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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불한당(不汗黨).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갱스터가 등장하는 미국 TV시리즈나 영화에서는 마약 거래가 반드시 등장한다.

그것이 갱스터들의 주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폭들의 주요 사업은 나이트클럽을 비롯한 유흥업소 보호비 갈취다.

따라서 한국 갱스터 영상물에서는 반드시 나이트클럽과 룸살롱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강남이 뜨기 전 서울 유흥가는 단연 무교동과 명동 일대였다.

해당 지역을 잡고 있는 폭력조직이 한국 최고·최대 폭력조직으로 통용됐다.

이권이 가장 큰 지역이기에.

<불한당> 제작진은 과거의 스탠드바나 나이트클럽 분위기를 내는 곳을 찾아 전국을 샅샅이 뒤졌다.

다만 액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세트는 따로 지었다.


끼이익!


나이트클럽 앞에 크라운 자동차가 멈춘다.

과거에 (주)신진지프가 일본에서 들여와 조립·생산한 모델이다.

70~80년대 한국의 고급차 시장의 패왕으로 군림했던 차량이다.

고위직들의 관용차로도 많이 이용되면서 1970년대 시대극에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장면마다 주로 등장하는 차량 모델이다.

70년대만 해도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가용이 웬 말이고. 거기에 외제차가 웬 말이냐!”


일반 국민의 비난도 비난이거니와 언론에서 외제차를 타는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당시에는 외제차를 수입해서 타려면 찻값의 255%를 세금으로 물렸다.

따라서 외제차 밀수가 극성을 부렸다.

보다 못해 당국이 단속의 칼을 빼 들었다.

1971년 자진신고 된 외제차는 6,000여 대에 달했다.

그 중 500여 대가 밀수 차량으로 확인되어 수억 원의 세금이 부과됐다.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도 소용없었다.

당국의 단속과 그를 무릅쓰고 외제차를 모는 사람들의 신경전이 상당했다고.


“1800CC 이상 차 타는 놈들은 고관대작 아니면 건달이야.”


세간에 이런 말이 돌기 시작한 것도 1970년에 들어서고부터다.


[웜마! 큰형님 타시는 차가 거시기허요.]

[서울시장이 머큐리 타고 다니다 국무총리헌티 불려가 허벌나게 깨졌다는 소리 못 들었어?]

[고것이 막는다고 되간디....]


대본에서 당시 외제차를 단속하던 사회 분위기를 슬쩍 언급하기도 한다.

당시의 국회와 종합청사 주차장에는 외제차 일색이었다.

총무처 장관은 크라이슬러, 문공부 장관은 비크, 통일원 장관은 폰티악, 상공부 장관과 건설부 장관은 링컨콘티넨털, 체신부 장관은 올스모빌, 서울시장은 머큐리... 등.

당시에 국무총리가 국산 승용차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소용없었다.

소위 고관대작들은 입으로만 국산품 애용을 외쳤을 뿐.

서슬 퍼렇던 단속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한국의 영화·드라마 소품 차량을 책임지고 있는 업체로 유명한 곳이 금오라는 곳이다.

브리샤, 레코드, 크라운, 푸조, 그라나다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60~70년대 배경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검정색 지프는 사실 (주)신진지프의 지프 모델과 다르다.

당시 생산된 신진 지프가 한 대도 남아있지 않기에 각코란도 모델에 검은색 도색을 해서 군사정권의 관용차로 등장시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주)신진지프자동차를 인수한 가온 모터스에도 69~74년까지 생산된 지프 첫 번째 모델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조용!”


붐맨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RED ONE 기종의 A, B, C 3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동원되었기에 촬영현장이 다소 산만했다.


“레디... 카메라... 사운드...”


조감독 이동화가 촬영 개시를 알리는 사인을 목청껏 외쳤다.


“액션!”


감초배역을 주로 소화하는 배우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나이트클럽 안쪽에서 나온다.

그의 등 뒤로 거구의 사내가 따라 나온다.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똘마니가 크라운의 차문을 열어주면 최양동이 거만하게 빠져나온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다짜고짜.


[어이! 동생들 내보냈담서?]

[그, 그게...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긴말 않겠어. 다 내 보내. 오늘부터 다시 우리 애들이 맡을 거야.]

[아니 그것이....!]

[인사들 해라.]


최양동 뒤에 시립하고 있던 네 명의 듬직한 사내들이 넙죽 인사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슴다!]


<불한당> 제작팀은 한동안 전국을 돌며 오래된 나이트클럽과 스탠드바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몽타주 방식으로 간단하게 처리한다.

드라마 <불한당>에서는 아니다.

십여 개의 나이트클럽을 접수하는 에피소드에 각각의 내용을 알차게 만들었다.

70년대 조직폭력배들은 호텔을 구역(나와바리)으로 삼았다.

조선호텔을 비롯해 도쿄, 센추럴, 반도, 코리아나, 백남 등 시내 주요 호텔의 나이트클럽을 호남출신의 조폭들이 다 장악했었다.

사보이관광호텔 사건 이후 최양동의 광주 출신들이 4대문 안을 거의 장악했다.

다만 무교동 다운타운의 경우 전주 출신이 잡고 있었는데, 이들 또한 최양동의 관리 하에 있었다.

알려지기로 양동이파 전성기 시절 서울의 절반을 장악했었다.

그에 비견되는 김대천의 광진파 나와바리는 이태원의 해밀턴호텔 등 매우 제한돼 있었다.

그럼에도 소수정예 특공대를 운용해 최양동의 구역을 빼먹기도 했다.


“누구 허락 받고 찍는 거요?”

“책임자 나와 보라 하소.”


간혹 지역 깡패들이 <불한당> 촬영팀에 시비를 걸기도 했다.

불쌍한 깡패들은 <불한당> 촬영장에 해당 도시의 경찰서 정보과 직원들이 자문을 핑계로 상주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자마자 꼬리를 말았다.

최양동 계열의 조폭들이 WaW 엔터테인먼트에 협박을 하는 일도 있었다.

과거의 호남계 3대 조폭 관계자들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라는 여의도 찌라시가 돌았다.

제작을 막기 위해서 협박을 서슴지 않았는데, 도리어 경찰 내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해프닝도 있었다.


[1974년 12월 30일.]


서울의 주먹 판도를 뒤흔들 대사건의 빌미가 된 사건이 터졌다.

명동황제 신장현.

한국전쟁 당시 헌병대에 근무하다 상사 계급으로 전역해 주먹계에 투신했다.

1950년대 명동을 장악하고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에 맞섰던 이화룡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했는데, 정치깡패들이 모두 휩쓸려나가고 1965년부터 10년간 신상사파를 이끌었다.

일명 신상사파는 서울의 노른자위인 명동·충무로·을지로 일대를 장악했다.

누구도 명동의 터줏대감 신상사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교동 일애데 이른바 범호남파라는 호남 지역을 연고로 한 상경 조폭들이 자리를 잡았다.

일찍부터 서울 중심가에 뿌리를 둔 신상사파에 범호남파 주먹들은 열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에 사보이관광호텔에는 신상사파의 두목이 사무실처럼 쓰는 방이 있었다.

범호남파 건달과 똘마니들이 신상사파를 찾아와 이권과 관련해 격렬하게 항의한다.


[사정을 좀 봐주소.]

[시방 배째라는 거요?]


어음 만기가 돌아왔는데, 신상사파가 결재해주지 않고 있었다.


[니미 배때기를 확 째 주까?]

[.....!]


두목인 신상사는 코빼기도 못 본다.

부하들에게 각목으로 구타당해 만신창이가 된다.

류지호는 조직폭력배들의 주장과 달리 실제 역사에서 사보이관광호텔 습격사건 이전부터 이미 폭력배들 사이에서 각목 같은 흉기들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걸 보여줄 예정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미 자유당 시절부터 각목을 비롯해 쇠파이프는 폭력배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두목인 신상사의 얼굴도 못 본 채 똘마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쫒겨난 동려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범호남파 주먹들이 들고 일어선다.

무교동과 명동 일대에 범호남계 조폭들이 풀리며 긴장이 고조된다.


[광주 나왔습니다. 형님!]


행동대장급 동생이 최양동에게 수화기를 건넨다.


[전쟁이다. 야문 애들로 스물만 뽑아서 오늘 안에 올려 보내.]


화신8인조 시절부터 함께 하고 있는 형기는 불만스럽기만 하다.


[겨우 세 놈 잡는디 보당(버튼) 누를 것 까정 없잖여.]

[명분이 섰다.]

[먼 명분?]

[신상사를 재낄 수 있는 명분.]

[워~ 메. 먼 소리래 시방.....]


최양동의 광주 부하들이 서울역 막차 시간에 맞춰 올라온다.

다음날부터 최양동과 삼십 명의 건달들이 명동 일대를 수색한다.

건달들 사이에 지게꾼들도 섞여 있다.

미리 뿌려놓은 정보원들이 속속 신상사파의 행적을 알려온다.

순찰을 도는 경찰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잠시 긴장감이 감돈다.

별다른 검문검색도 없이 지나친다.

최양동과 부하들이 신상사파가 주로 출몰하는 커피숍, 술집 등지를 샅샅이 훑는다.

실내로 진입하기 전에 최양동의 부하들이 일제히 지게꾼에게 모여든다.

사실 지게꾼이 지고 다니던 물건은 연장(무기)이었다.

지게 안에는 각목, 쇠파이프 같은 각종 무기들이 수북이 담겨 있었는데, 습격 전에 부하들이 그것들로 무장하는 것이다.

즉 경찰과 시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게 안에 무기를 숨기고 돌아다녔던 것.

암튼 신상사가 있을 법한 장소들을 습격하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만다.


[양동아, 인자 그만 해.]


명동 일대를 쑤시고 다니던 최양동에게 범호남파 선배들이 철수를 지시한다.

1월 2일에 열리는 신년하례식에서 두 진영 선배들이 화해를 하기로 했다면서.


[그럴 수 없지.]


최양동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인자 그만 혀. 우린 할 만큼 혔어.]

[일단 광주에서 올라온 애들은 돌려보내. 연장 잘 쓰는 애들 열만 남겨 두고.]

[열 명은 왜?]


최양동은 선배가 당한 것에 대한 분노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명분에 집중했다.

판을 뒤집어 버릴 명분.

선배들이 구타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면....


[신상사파 그늘에서 절대 못 벗어나. 이때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1975년 1월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의 최고급호텔 사보이관광호텔에 신상사파 거두들이 모였다.

신년하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당대의 주먹들이 모두 모인 ‘위풍당당’한 연회가 커피숍에서 벌어졌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엮여 있던 범호남파 주먹들도 몇 명 참석했다.


“내가 취재를 해보니까, 사보이호텔 사건이란 게 내용이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진 면이 있더라고.”


최양동과 부하들의 습격으로 신년회장이 피바다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다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는 것이 정설.


“한명은 신상사파 실세 중 한 명이었고, 다른 한 명은 최양동의 호남 선배였대.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 말을 들어보니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주먹들이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피해 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부상자 중 한 명인 범호남파 주먹 선배는 최양동 부하의 오인 가격으로 부상을 당한 것이란다.


“신상사의 후원자에는 일본 야쿠자도 있었대. 그때 습격한 최양동 똘마니 중에서 일본 야쿠자하고 그 호남계 선배 주먹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서 잘 못 알고 때렸다고 그러더라고.”


실제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은 불과 2~3분 만에 끝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양동을 포함한 심복 십여 명이 회칼, 쇠파이프, 각목으로 무장한 채 전격적으로 연회장을 급습했으니 제아무리 쟁쟁한 주먹들이 모여 있었다고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금까지도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조폭계에 ‘칼’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암튼 최영웅은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을 담백하게 디자인했다.

화려한 날아 차기나 쇠파이프에 다리를 가격당해 텀블링 하듯 나자빠지는... 그런 것 없다.

3분 리얼타임으로 매우 현실적인 싸움으로 묘사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 <비열한 거리>의 유명한 패싸움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

<불한당>은 조폭 미화 드라마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최양동의 모습을 화려하게 연출할 필요가 없다.

사보이호텔 사건 자체를 극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될 뿐.

실제로도 최양동은 신상사파의 신년하례식을 망친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 이상을 거뒀다.

이 사건 이전에는 감히 누구도 대들지 못할 당대 최고 두목이 신상사였다.

일 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를 일개 행동대장이 망친 것이다.

신년하례식이 엉망진창이 된 것만으로 이미 전국적인 대망신이다.

하물며 새까만 후배에게 당했다는 것은 망신을 넘어 귄위마저 훼손된 일대 사건이었다.

그로인해 최양동은 일약 전국구 건달의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자기들이 유교에 찌든 선비도 아닌데, 건달들은 유독 체면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신상사는 급습 당시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어 직접적인 화는 모면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신상사의 체면을 더욱 구기게 된다.

전국구 건달 족보에도 오르지 못한 새카만 후배의 습격을 피해 화장실에 숨었다는 것으로 소문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상사가 길길이 날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흐른다.


[잡아와! 산채로!]


신상사파는 모든 휘하세력을 동원해 최양동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최양동과 심복들은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춘다.

완벽하게 잠수를 탄다.

당시만 해도 교통과 통신이 지금만 못하던 때라 마음먹고 숨으려고 들면 찾기 쉽지 않았다.


[한창 사보이호텔 폭력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최양동이란 깡패를 서울지검장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키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다부진 체격에 절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래봐야 깡패 새끼일 뿐이었지만.... 쫄았냐고? 천만에. 난 대한민국 검사다.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무서워할 것은 검찰조직 외에는 없다. 깡패새끼는 우리의 출세를 위한 땟감 중에 하나일 뿐..... 이후로 최양동은 일본대사의 집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수사본부로 파견되었다. 깡패 싸움에 수사본부가 설치된 것도, 전국적으로 수배전단이 뿌려진 것도, 그때가 처음이다.]


당시 범호남파 주먹들은 동향 출신으로 구성된 인맥이 나름 탄탄했다.

최양동과 그의 심복들은 선배 주먹들이 마련해 둔 도피처를 전전했다.

사보이호텔사건 수사를 위해 꾸려진 수사팀에 합류한 한동준 검사는 범호남계에서 최양동과 그의 심복들을 떼어낸다.

그리고 ‘양동이파’라고 따로 명명한다.

검사에 의해 새로운 한국마피아가 탄생하게 된다.

게다가 한동준은 최양동과 심복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규모를 과장한다.

검찰이 발표한 내용에 언론에서 선정성을 추가한다.

범호남파의 일개 행동대장이 전국구 조직의 두목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경찰, 검사, 언론이 일조한 셈이다.

그 같은 사연을 알고 있는 조폭 업계에서는 ‘매스컴이 키운 보스’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리고 그 같은 행태는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는다.

검사가 깡패 집단에 명칭을 부여하면 언론이 그것에 스토리를 입힌다.

십여 명의 말썽꾸리들이 의기투합해 갱스터를 흉내 냈을 뿐임에도 검사가 작업하고 언론이 거들면 거대한 야쿠자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다.

조폭은 사법권으로부터 거물이라는 명예훈장을 수여받고.

검사는 실적을 얻어 승진의 밑거름으로 삼고.

언론은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돈을 챙긴다.

송진한 작가와 류지호는 <불한당>에서 그 같은 관점을 시청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야그 들었냐?]

[......]

[무장공비 잡을 때 보다 살벌허담서? 전라도 말씨만 쓰면 무조건 잡아들일 정도라든디. 인자 으짜 쓰까.]

[신상사 동생이란 새끼가 청와대에다 코를 풀었은게 그라지.]

[애들아.]


불안한 듯 주절거리던 심복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양동에게 모여든다.


[나 서울 간다.]

[미쳤어? 서울 갈 생각언 꿈도 꾸덜 말어.]

[짭새고 뭐시고 일단 잽히믄 넌 뒈진다고 봐야 혀.]

[나와바리도 다 깨지고 이렇게 도망만 다녀선 안 될 것 같다.]


최양동은 일부러 한동준 검사팀에 체포된다.

그리고 짐짓 거래를 제안한다.


[경찰이나 헌병대에서 고문 안 받게 해주십시오. 사나이로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면 협조하겠습니다.]

[어쭈? 이 새끼 봐라. 고춧가루물에 푹 담궈봐야 현실을 파악할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어떻습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신사적으루 대해주니까 대한민국 검사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누굴 원하십니까? 아니 어떤 급으로 원하십니까? 큰형님급만 아니라면 호남계에서 두 명까지는 적극 협조할 수 있습니다.]


범호남파 행동대장급으로 두 명을 검찰에 넘기겠다는 제안에 한동준이 흔들린다.

사보이호텔 폭력사건의 수괴인 최양동이 어느 순간 단순가담자가 된다.

한동준은 소위 ‘시나리오를 짜서’ 최양동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영감님... 저 놈 저거 저렇게 풀어 놔줘도 되겠습니까?]

[놈은 두고두고 사골처럼 우려먹을 아주 좋은 국거리니까... 관리 잘 하도록 하세요.]


드라마 상에서 최양동과 한동준 검사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다.

결국 악연으로 결말이 지어지게 되겠지만.

송진한 작가는 사보이관광호텔 커피숍 폭력사건이 벌어진 1975년과 그 전 해인 1974년을 드라마 속에서 중요하게 다뤘다.

이 두 해의 분량만 2회를 할애할 정도였다.

1974~1975년은 전 세계를 물가폭등과 불황으로 몰아 넣은 오일쇼크가 본격적으로 벌어진 해였다.

물가폭등과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무역적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외화보유고가 급속히 떨어지자 한국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달러가 흐르는 중동에 건설 근로자를 파견하는 중동진출을 본격화한 시기가 바로 그 즈음이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대통령 영부인 저격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대통령 영부인이 사망해 국민장이 치러졌다.

대한민국은 마치 국모(國母)를 잃은 듯 비통함의 눈물을 흘렸다.

또한 긴급조치 선포로 민주세력과 언론에 대해 강경 탄압이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외교적으로는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1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

베트남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해이기도 했다.

게다가 코미디TV보다 더 우스운 촌극이 툭하면 벌어지고, 어떤 격투기 경기보다 리얼한 집단 패싸움이 종종 벌어지게 될 대한민국 공식 공개 코미디 공개홀이자 격투기장인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개막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겠지만.

송진한 작가는 1974~1975년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봤던 것 같았다.

조폭 역사의 중요한 사건과 국내외 중요 사건까지 버무려냈다.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1974년 1월 8일 17시.

긴급조치 1호가 시행되었다.

1년이 흐르고, 명동의 사보이관광호텔 사건이 벌어졌다.

연결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다.

그것을 송진한 작가를 ‘폭력‘과 ’권력‘으로 연결 지었다.

논어에서 이르기를...


- 덕(德)이 없어도 복종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스스로 다친다. 폭력으로 복종시키는 자는 자멸(自滅)한다.


라고 했다.

이른바 ‘사보이호텔 사건’은 한국의 폭력세계의 역사를 다시 쓴 사건으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부터 건달 세계의 관행 같았던 1:1 맨손 싸움의 낭만시대를 끝내고, 본격 흉기사용 시대를 열어 젖혔고, 오늘날 조직폭력배의 형태를 있게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 ✻ ✻


<불한당> 촬영에 한창 불이 붙기 시작할 즈음.

여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류지호는 <불한당> 제작진에 일시 휴가를 줬다.

이미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계획된 휴가이기 때문에 일정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게다가 백퍼센트 사전제작 드라마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모두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기간에 일하는 스태프도 일부 있었다.

세트 개조, 섭외점검 등 정비 시간을 갖는 부서도 있었다.

배우들은 일주일간의 꿀 같은 휴식 및 정비기간을 매우 반겼다.

류지호로서는 전혀 강행군은 아니었는데, 배우들은 류지호의 작업 속도와 방식에서 힘이 부쳤던 모양이다.

한번쯤 끊었다 갈 필요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젊은 출연진 대부분이 영화·드라마 경험이 거의 없는 연극배우들이다.

은근히 싸움과 관련한 시퀀스가 많기도 해서 이런저런 부상으로 고생하는 배우들이 제법 많았다.

부상치료와 휴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휴가 기간 류지호는 미국으로 돌아가 임신한 아내와 딸과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이전에 비해 자유롭게 걷기 시작한 류시아를 쫓아다니느라 류지호는 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전혀 싫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한다고 집을 오래 비웠던 미운 아빠임에도 딸 류시아는 애교를 멈출 줄 몰랐다.

류지호는 휴가 기간만이라도 열심히 놀아줘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아이와 놀아준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놀이가 바닥이 나게 마련이다.

노래도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다 보면 목도 아파오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슬슬 졸음도 밀려온다.

새삼 아내 레오나가 위대하게 보일 지경이다.

닷새를 꼬박 딸 류시아와 함께 보낸 류지호가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다.


‘연말 영화시상식에 참석하진 않고, 경제인 모임에는 참석하는 영화인이라니....’


연말을 벨에어 집에서 보내고 있는데, 대한상의 회장부터 총영사관까지 온갖 곳에서 전화를 걸어 신년인사회에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미국시민권을 취득하며 한국 재계인사라고 내세우기 애매했는데, 한국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류지호를 여전히 한국인으로 대우하려고 했다.

이전 삶에서 소시민이었던 류지호는 몰랐다.

이 시기 즈음부터 주요 재벌들이 후계구도를 놓고 물밑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온GP는 90년대부터 한국형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시행했다.

GD금융투자로 개편되고도 여전히 패밀리오피스는 중요한 서비스였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에는 가업승계 컨설팅도 포함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한국에서는 GD금융투자와 오성생명 단 두 곳에서만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통해 기업의 후계 승계를 컨설팅하고 있다.

후계 승계 문제가 재벌에게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후계자 문제를 골치를 썩고 있다.

오죽하면 중소기업중앙회 산하에 기업승계지원센터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후계승계와 관련한 지원업무를 수행하고 있을까.

30대 대기업 내부에는 후계자 승계 관련 일을 처리하는 부서가 따로 존재한다.

현재는 해체된 오성의 미래전략실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의 경우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창업주 다음 세대에 대한 승계로 애를 먹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암튼 30대 재벌 창업자 손자들이 그룹 요직으로 승진하기 시작했다.

30대 대기업은 보통 입사 후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평균 6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대부분이 해외유학파인 총수 후계자들은 곧바로 상무 혹은 상무보 정도 지위에서 시작한다.


“코리아 파이팅!”


정의국 대통령과 경제인 1,000여 명이 새해 정진을 다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계 인사와 정·관계, 사회 각계, 주한 외교사절 및 외국기업인 등 각계 주요 인사 1천여 명이 신년인사회에 함께했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련의 사건과 재판으로 오성그룹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류지호는 래리 킴 회장과 함께 참석해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후계자를 데리고 참석한 재벌 총수도 있었다.

류지호와 친분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긴 했지만.

딱히 인연이 깊게 닿을 것 같진 않았다.

대한상의 회장이 기업인들을 대표해서 새해 각오를 밝혔다.


“올해도 경제여건이 쉽진 않지만 창조와 도전의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류지호의 지시로 JHO 보고서가 꾸준히 한국의 주요 기업과 경제연구소들에 전달되고 있다.

그들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이번 년도를 전망한 보고서가 청와대 경제팀에게도 보내졌다.

정의국 대통령이 행사장을 떠나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위해 각계 대표들이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부동산과 관련한 전망은 꽤나 신랄했습니다.”


류지호에게는 콕 짚어 JHO보고서를 언급했다.

JHO와 가온경제연구소 모두에서 2008년 말부터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 자금으로 인해 대략 10여년 후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부동산의 경우 초과잉 유동성, 저금리, 투기열풍으로 초래될 부동산 가격 거품을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런데.... 올해 서해5도에서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는 내용은 뭡니까?”

“보고서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번 경제전망보고서에는 북한의 위협과 후계구도 확정이 가져올 한국경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올해 북한정권의 후계구도가 확정된다.

연초부터 백령도 인근에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것이고, 연말에는 연평도에 포격까지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근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북한은 내부적으로 정치상황이 크게 변할 때마다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을 감행해 왔기 때문이다.

삼대 세습은 북한 권력지형의 일대 사건이다.

당연히 내부 반발을 억누를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북한 내부의 시선 돌리기나 권력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작업에서 남한과 군사충돌은 당연한 선택지일 수밖에.

보고서에서 내세운 논리도 대략 그런 식이었다.

미국 정부도 그와 관련해 많은 예상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대비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기에 일부러 북한 동향 변화에 따른 국지전 도발 같은 전망을 보고서에서 언급했다.

언론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흘러나갔다.

모두가 한결같이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귀에 경 읽기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북한도발 가능성에 대해 외면하는 태도를 취했다.


“서해에서 활동하는 북한의 잠수함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한국 해군에 있는지 모르지만. 미국 쪽 군사관련 싱크탱크가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북한이 반드시 도발을 해올 것이라고.”


류지호가 다시 한 번 대통령에게 강조했다.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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