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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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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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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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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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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칸 영화제.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황금종려상 수상 결과는 이변이라면 이변일 수도 있었다.

<전생을 볼 수 있는 분미 삼촌>.

제 63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었다.


“태국영화라서?”

“아시아 영화라서 낮춰보는 것은 아니고.....”


태국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시아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나온 것은 1997년 <우나기>와 이란영화 <체리향기>가 공동수상한 이래 13년 만이다.


“디렉터 위세라세쿨은 몇 년 전에 <열대병>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았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국제영화제는 자신들이 발굴한 감독을 밀어주는 경향이 매우 짙다.

그럼에도 <엉클 분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하긴 심사만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예상하는 것이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영화제 기간에 나오는 유럽의 믿을만한 비평가들과 영화 전문기자들의 리뷰를 확인하면 대강의 작품을 추려낼 수가 있다.

그것들을 토대로 그간의 영화제 관행에 대입해 보면 수상작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사실 <분미 삼촌>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신과 인간>은 영화제 기간 내내 비평가와 언론으로부터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두 감독은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경험이 있다.

수상경험까지 있다.

태국의 위라세타쿤 감독은 2002년 <친애하는 당신>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004년 <열대병>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이미 칸의 기대주로 부상한 바 있다.


“그래도 경쟁 부문 본상 받고 6년 만에 최고상까지 거머쥔 것은 확실히 이례적이긴 해.”


공교롭게 두 영화의 상영일정이 금요일에 잡혔다.

일반적으로 영화 상영에서 황금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스케줄이다.

영화제가 강력하게 미는 영화라고 대놓고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 방!

최근 태국에서 반인권적인 사건이 있었다.

반정부 시위를 공권력이 유혈진압하면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

본래도 국제영화제들은 자신들이 밀어주는 감독들과 유대감이 매우 끈끈하다.

거기에 자국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국가에서 분투하는 영화 예술가를 대접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영화 <패왕별희>가 황금종려상을 받기 전에 칸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경우는 일본영화들 뿐이었다.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카게무샤), 이마무라 쇼헤이(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가 주인공이다.

이후로 홍콩, 대만 감독들 중에서 씨네아스트 대접을 받는 경우가 종종 나왔지만, 아직까지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지 못했다.

이번 <엉클 분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태국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이자, 13년 만에 아시아 영화가 거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 3대 국제영화제의 아시아 구애가 눈물겨워 보이는 것은 류지호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한중일 삼국에 이어서 태국까지 아시아에서 주목 받는 국가가 된 것인가..... 필리핀 영화도 국제영화제에서 약진하고 있다고 하고.”


앨런 포스터의 말처럼 아시아 영화가 90년대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확실했다.

그것에는 디지털 영화가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영화산업이 위축된 것은 고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예술영화가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미학적으로 또 도전적 태도를 보이는 씨네아스트들이 여전하다는 것에서 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


‘귀감은 될지언정 선도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유감이지만.’


짝짝짝.


황금종려상 시상을 끝으로 모든 영화제 공식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마침내 폐막작 상영시간이 찾아왔다.


Tri-Stellar Entertainment.


페가수스가 날개를 활짝 펼치자, 객석에서 휘파람과 환호가 나왔다.


“......?”


<Christmas Cargo> 관계자들은 관객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트라이-스텔라 브랜드가 영화팬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어서일지.

아니면 시상식이 지루해서였을지.

객석의 반응이 다소 들 떠 있는 것 같았다.


“......”


JHO Pictures 로고가 떴을 때는 객석이 다시 고요해졌다.

타이틀 시퀀스는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실제 다큐멘터리 필름이 아니다.

출연 배우들로 새롭게 재구성한 영상이다.

때문에 형식미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일부러 4:3에 더 가깝게 화면비율을 맞췄다.

본편의 시작은 어김없이 류지호의 시그니처로 시작됐다.

원 씬 원 쇼트의 향연이 펼쳐졌다.

칠면조 요리를 옮기는 취사병에서 시작해서 사령부 막사에서 홀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알몬드 군단장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면서 유엔군 캠프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작전실의 서류 업무에 특화되어 있으며 맥아더의 딸랑이였던 알몬드 장군은 실제 역사에서 장진호 전투 전에 해병 1사단 지휘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야전임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로 된 보가 덮인 테이블 위에 은식기,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메뉴 그리고 서비스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부하들이 죽어나가는데, 전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치였다.

게다가 작전지휘부에만 있다 보니 미 제1해병사단의 상륙장갑차(LVT)를 처음 봤는데.


“저 무거운 게 정말로 물에 뜨는 것인가?”


미군에서 최첨단 장비가 가장 먼저 지급되는 부대가 해병대다.

야전 지휘관들은 알몬드의 신기해하는 모습에서 경악을 넘어서 이후로 아예 경멸했다고 한다.

암튼 전쟁영화로는 어울리지 않게 평화로운 추수감사절 풍경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다만 추수감사절에도 공군의 정찰비행은 멈출 수 없었다.

시점이 미공군 F4U 콜세어로 옮겨간다.

시작 3분 만에 Eye-MAX 특유의 화면을 만끽할 수 있는 항공촬영 영상이 나온다.

한국전쟁 판 <탑건> 예고편을 감상한 관객들은 개마고원 일대에 매복하기 시작하는 중공군을 보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하겠거니 기대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병력.

실제로 함경도 장진호 부근에 투입된 중공군은 약 20만 명이었다.


[야전에서 싸우는 지휘관이나 병사는 오히려 인간적이고, 적에게나 아군에게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 전쟁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명령과 전술을 강요하는 자들은 다 후방에 있는 인간들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조지 오웰이 한 말이었다.

중공군 총사령관 팽더화이는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전투.

그것만이 세계 최강의 미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 확신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장진호를 향해 다가오는 미군을 함정에 몰아넣고 완벽하게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다.

2차 세계대전에서 무적이라 불렸던 미 제1해병사단이다.


[그들을 섬멸하면 미국은 전쟁에서 발을 뺄 것이다!]


중공군 최고 지휘부는 변변한 화기 지원 없이 전장에 내몰린 20만 중공군의 희생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적의 미 제1해병사단을 몰살시킬 수만 있다면.

참고로 한국전쟁에 동원된 중공군에는 조선족(조선의용군)도 있었는데, 한국전 발발 전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으로 참가한 경우가 5만 5천여 명, 중공군으로 참전한 경우가 2만 명으로 모두 8만 명 가까이 된다.

그들 가운데는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간 이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참전한 경우도 있었다.

초고에는 귀순하는 중공군 가운데 조선족이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최종고에서는 빠졌다.

미군 vs 중공군의 단순한 대결구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서양인들은 중공군과 조선족(혹은 북한군)을 구분할 수 없기도 할 테고.

암튼 뛰어난 행정가였지만 전투지휘관으로는 실격이었던 알몬드 군단장과는 달리 미 제1해병사단의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한 명의 병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반기까지 들고, 지휘체제를 무시한 채 워싱턴 사령부에 직접 한반도 전쟁 상황을 적은 서신을 썼던 책임감 있는 군인이었다.

<Christmas Cargo>에서는 흥남철수 전까지 올리버 스미스 vs 팽더화이의 지략대결이 제법 치열하게 묘사된다.

한편으로 부하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애쓰는 올리버 사단장과 병사를 장기판 졸(卒)처럼 사용하는 팽더화이를 대비시킨다.

거기에 내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알몬드 군단장을 가미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먹이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앨튼 로스는 맥아더 총사령관과 알모드 군단장을 영웅시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긴 했지만, 잘못 건드리면 흥행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앨튼 로스와 류지호 모두 맥아더를 묘사하는데 있어 셀프검열이 없었다.

실책을 저지른 것을 잘했다고 포장할 순 없으니까.


[미군은 좌우로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겨우 트럭 한 대나 지나갈 좁은 산악도로를 따라 종대로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항아리 모양으로 미군을 넓게 포위한다. 미군이 항아리 안에 들어오면 산골짜기를 이용해서 그들의 좌우로 병력을 내려 보낸다. 또 후방으로 침투한 우리 부대가 미군의 보급부대와 포병을 먼저 습격해 처리하고 퇴로를 차단한다. 그 다음 파상공세와 인해전술로 미군을 섬멸한다. 미군이 탈출하려고 해도 도로는 거의 외길이고 양쪽 비탈 위에는 우리 군이 새카맣게 포진하고 있을 것이다. 탱크조차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팽더화이는 자신감에 차 있다.

미군은 좁은 산악도로를 타고 진군하는데, 주변은 온통 중공군으로 뒤덮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은 중공군 지휘부의 전략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매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진군 속도는 굼벵이처럼 느렸다.

곳곳에 진지를 구축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활주로와 보급품을 쌓아두었다.

맥아더 사령관의 독촉을 의식한 알몬드 군단장이 시도 때도 없이 진군속도를 올리라고 재촉한다.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은 무시한다.

마침내 해병 2개 연대병력이 중공군 9병단 6만 명이 매복한 장진호 깊숙이 들어간다.

장진호는 일제가 댐을 건설하며 만들어진 인공호다.

오이처럼 남북으로 길고 홀쭉한 형태다.

주인공이 포함된 부대가 전장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중공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첫 날에 감행된 최초의 기습은 완벽한 성공으로 묘사된다.

역사적으로 7연대 1대대의 대대본부가 순식간에 궤멸됐고 대대장이 전사했으니까.

그 부분은 영화에서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다.

바버 대위(클리프 레저)가 지휘하는 F중대와 장진호 건너 카투사들이 함께 참전한 배런 렌프로 보병부대 위주로 묘사했다.

Day for Night 촬영기법을 메인으로 한 야간 전투시퀀스는 Eye-MAX의 뛰어난 화질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치이익! 중국군 진지가 서남부 전선과 도로 남북에 널려 있다. 해병 1사단이 포위됐다!]


정찰기로부터 전해진 무전은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야 말로 혈전(血戰)!

류지호의 지독한 디테일은 중공군의 무장에서도 드러났다.

일본군-만주군이 항복함으로서 입수한 일제 무기, 국민당군이 공여 받았던 미제 무기,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 심지어 독일제 무기까지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었다.

개판이었던 탄약수급 상황까지도 묘사했다.

중공군은 애처로울 정도로 무기가 빈약했다.

영하 30도를 오가는 강추위 속에서 홑옷을 입은 중공군은 낡은 박격포와 수류탄에 의존한다.

다만 수류탄만큼은 차고 넘칠 정도로 풍부해서, 중공군 한 명 당 여러 개를 소지하고 돌격해서 한꺼번에 투척하는 전법을 고증에 따라 묘사했다.

수류탄 투척거리가 30m를 넘지 못하는 모습까지도 섬세하게 그렸다.

미군 코앞에 다가와 수류탄 던지고 중공군이 쓰러진다.

밤새도록 줄을 잇는 중공군의 수류탄 투척에 미군은 경악한다.


[적들은 어떻게 죽여도,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것인가!]


참호에 웅크리고 소총을 난사하는 미 해병대를 향해 중공군이 공격할 수단은 오로지 방망이 모양의 수류탄뿐이다.

곳곳에서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이 해병 참호로 빗발처럼 날아든다.

그 중 한 발이 참호 안으로 떨어진다.

병사 한 명이 반사적으로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는다.


꽝!


그 충격으로 병사가 튕겨져 날아가 참호 맞은 편 벽에 부딪힌다.


꽝!


연이어 다른 수류탄이 또 터진다.

참호 안이 아수라장이다.


[윌리! 야! 윌리 이 새끼야!]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윌리란 이름의 병사는 대답할 수가 없다.

양쪽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한쪽 팔은 다행히 움직일 수가 있다.

축축해서 옷에 손을 문질렀더니 피가 흐르고 있다.

더듬더듬 참호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철모를 주어 다시 쓴다.

그 스스로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위생병이 윌리에게 다가온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피가 흐르는 윌리의 머리와 눈을 씻어 준다.


[괜찮아?]


윌리는 대답할 정신도 없다.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싸워야 한다.

윌리는 머리가 멍한 상태에서 소총을 쥐고 소대원에게 포복해 다가간다.


[제기랄! 세열 수류탄이 아니라 폭풍수류탄이었던 것이 행운이었어.]

[미치겠네! 저 개자식들이 또 몰려와! 또 온다고!]

[도대체 어디서 저 많은 것들이 쉬지 않고 몰려오는 거야?]


윌리와 대화를 나누는 카라타 상병은 소대에서 가장 덩치가 컸다.

꽤나 골치 덩어리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카타라는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이 참호 안으로 떨어지면 집어 들어 중공군에게 되던진다.

행동이 조금 꿈 뜨게 되면서 여지없이 수류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죽어! 개자식들아!]


카라타는 손이 불구가 됐음에도 욕을 퍼붓기 시작하면서 소총에 실탄을 재장진해 탄알을 모두 소모할 때까지 사격한다.

실탄을 모두 소모하자 소총을 야구 방망이 다루듯 휘둘러 날아오는 수류탄을 쳐낸다.

모든 수류탄을 쳐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카라타의 동료 역시 그 못지않은 용맹함을 떨친다.


꽝!


수류탄이 바로 옆에서 폭발하면서 안경을 날려 보내 잠시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소총을 사용할 수가 없자 참호 바닥에 널려 있는 실탄 클립을 손으로 더듬어 주워서 카타라에게 전달해 준다.


[이제 보여?]

[아니 안 보여! 그러니까 닥치고 내가 주는 탄 클립이나 받아!]


동료는 카타라의 소총에서 빈 클립이 튀어 나오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계속해서 클립을 주워 건넸다.


“오오!”


짝짝짝.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프닝 시퀀스 못지않은 처절한 전투 장면 묘사에 많은 관객들이 흥분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다.

한국에서는 영화관에서는 무조건 정숙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있지만, 미국의 여느 극장만 가도 영화가 선사하는 기쁨, 슬픔, 공포, 충격 등의 반응으로 다양한 감정에 웃고, 울고 때론 소리까지 지르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영 도중 퇴장하는 관객도 많다.

<Christmas Cargo>를 보며 미 해병의 필사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여지없이 객석에서 리액션이 나왔다.

대부분 미국인이다.


“힘내라! 카타라 상병!”


그들의 오버가 관람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도리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칸영화제 분위기는 베니스와 베를린과 또 달랐다.

정색하고 진지하게 관람하는 분위기도 있겠지만.


‘<Christmas Cargo>가 폐막작이서 그런가? 오버들이 심하네.....!‘


영화에 몰입해서라기보다는 폐막작 상영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오늘이 지나면 1년 후에나 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비평가들과 기자들은 그런 리액션에 동참하진 않았지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해한다는 듯이.

얌전히 영화를 관람하며 영화를 낱낱이 해부라도 하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간간이 뭔가를 메모할 뿐.


[지겨운 놈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밤까지 계속된 유담리 전투.

미 해병들의 매서운 투지가 빛을 발한다.

​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미 해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병력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의 공격을 끝내 격퇴했다.

<Christmas Cargo>는 일반적인 전쟁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컷과 컷을 짧게 가져가는 편집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호흡조절을 통한 엇박자 편집이 일품이다.

카메라가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갔을 때는 긴장, 공포, 현장감이 극대화 된다.

그런데 한창 전투묘사가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다가 느닷없이 롱쇼트가 등장하곤 한다.

마치 소외효과를 노린 것처럼.

전쟁의 폭력이 선사하는 시각적 쾌감에 찬물을 부어버리면서 관객의 정신을 초기화 시키는 것 같았다.

롱 테이크와 롱 쇼트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류지호답게 중요한 시퀀스가 시작할 때는 어김없이 롱쇼트 부감으로 시작된다.

마치 인간이 발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떼들을 무심히 지켜보는 것처럼.

<Christmas Cargo>에서는 사망 플래그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본래 이름 없는 병사지만 류지호는 매우 세심하게 묘사했다.

그런 인물이 허무하리만치 황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가 죽을 것임을 알게 되고.

그 같은 예감을 하는 자신에게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럴 타이밍에 귀신같이 정적인 부감이나 익스트림 롱쇼트가 나온다.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롱쇼트나 부감 쇼트로 보이는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일 때가 있다.

류지호의 내러티브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커트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공군 지휘관 쑹쓰룬이 담배를 피우며 저 멀리 장진호 방면의 전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의 뒷모습과 함께 저 멀리 화염이 한 화면에 잡힌다.

쑹쓰룬은 안전한 높은 산봉우리에서 마치 스포츠를 관람하듯 전장을 구경한다.

심지어 포격 현장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말이 필요 없는 장면이다.

그에게 병사들은 소모품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도 몇 개 나온다.

상황판에서 병사 모양의 깃발이 쓰러지는 것과 전장에서 총에 맞아 죽는 중공군이 디졸브 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표현된다.

그에 반해 윌리엄 스미스 사단장은 지휘본부를 박차고 나와 헬기를 타고 전장으로 날아간다.

전장에 도착해서는 정확하게 지휘관으로써 모습만 보인다.

일반 병사를 붙잡고 신파 따위 안 찍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으로 달려가 중대, 소대 지휘관들로부터 직접 상황을 전달 받는다.

현황을 파악한 후에는 곧바로 지시를 내리고 전장을 이탈해 이후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모습은 휴머니즘을 발휘하거나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으로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냉철한 지휘관답게 묘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영웅적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타이틀 시퀀스에서 맥아더가 인천상륙에 앞서 어떤 사진구도, 어떤 모습으로 인천 갯벌에 상륙하는 모습을 종군기자 앞에서 연출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과 완벽하게 대비가 된다.


“저 코리안은 일반 병사와 신분이 다른가....?”


어떤 관객의 호기심처럼 류지호는 한국의 전투경찰 소대(카투사)의 장렬한 모습 역시 틈틈이 묘사했다.

서양 관객들을 위해 카투사의 모습이나 무장을 중공군과 철저히 구분했다.

날이 밝고, 중공군이 덕동고개에서 썰물처럼 물러난다.

F-중대 참호 곳곳에 수없이 많은 시체가 쓰려져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운 카라타(헥터 카페라타), 동료(케네스 벤슨)는 실제 역사에서 적 2개 소대 병력을 전멸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그 외에도 F중대원 다수가 덕동고개 전투의 공훈을 인정받았다.

1950년 말 개마고원에는 어느 때보다 지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장병들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수통의 물도, 캔 속의 전투식량도 얼었다.

수류탄은 불발되기 일쑤였고, 차량은 시동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혹한 속에서 F중대는 음산한 나팔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격렬하게 싸우며 부대의 퇴로를 열었다.

카투사의 용감한 모습도 충분히 전달했다.

류지호가 카투사를 일부러 용감하게 묘사한 것은 장진호 전투 전에 중공군의 공세를 처음으로 보고 받고도 주위 아군에게 알리지 않고 패주했던 국군 7사단의 부끄러움도 한몫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류지호의 카투사 선배들이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무사히 고토리까지 퇴각한 숫자는 겨우 50여 명.

류지호는 고증을 받는 과정에서 장진호 우측 유담리에서 영웅적으로 전투를 치룬 해병대와는 달리 호수 건너편에서 참패를 기록한 미육군 7사단의 경우는 마치 그들의 패배가 미숙한 한국의 카투사 탓인 것처럼 비난하는 의견이 꽤나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1950년대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현지 군인을 최강의 미군과 섞어 놓은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군으로 인해 장진호 전투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진실은 언제고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장진호에서 싸운 카투사들은 몸을 사리거나 도망치는 오합지졸이 절대 아니었다.

그 같은 진실들이 속속 증언과 보고서 등으로 밝혀졌다.

하갈우리에서 고토리까지 퇴각하는 과정에서도 미군보다 앞 서 길을 열었던 것이 카투사다.

먼저 도로 옆 마을을 수색하기도 하고, 산 위의 중공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다만 초기에는 다소 우왕좌왕했다.

모습까지 거짓으로 묘사해선 안되기에 진실에 가깝게 풀어냈다.

일단 경찰출신들을 급조해서 편성한 부대라 영어를 할 줄 하는 카투사가 극소수였다.

미군들과 같이 섞어서 편성하게 한 일명 ‘​Buddy system’으로 개전 초기 손발이 맞지 않았다.

만약 이들 카투사들을 혼성 편성이 아니라, 리더십도 뛰어나고 전투 능력도 있는 한국군 장교에게 지휘를 맡겼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국뽕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킨 내 망상이지만....’


류지호는 <Christmas Cargo>를 준비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영웅들을 접하게 되었다.

유담리에서 미 해병대와 함께 혈전을 치렀던 카투사 중에도 있었다.

배우 조현석이 연기한 인물은 길원갑 경위를 모티브로 했다.

길원갑은 한국인 전투경찰 1개 소대를 노련하게 지휘를 했고, 그들 카투사들이 장진호부터 흥남까지 퇴각하며 발휘한 전투력은 미 해병대 역사에도 제법 인상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서 카투사와 한국인을 병풍으로 처리할 이유가 없다.

하갈우리 헤드쿼터에 중공군 움직임과 위치, 병력 규모 등 생생한 정보를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하갈우리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알려준 알토란같은 정보를 토대로 중과부적에 맞설 작전을 수립할 수 있었다.

영화 곳곳에 주민들의 협조 장면을 깔아놓았다.

군과 양민이 함께 헤쳐나간 전투였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때로는 피란민 사이에 중공군이 끼어들어 습격하는 장면도 넣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지막에 피란민들을 배에 태워야 하는지 갈등요소로 작용토록 이야기를 짰다.

또한 미군 지휘부가 피란민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곳곳에 깔아두었다.

한국군 지휘부의 설득도 아니고, 미군 최고 지휘부의 너그럽고 관대한 결정도 아니었다.

피란민을 외면하면 알몬드 군단장은 쓰레기가 되어버릴 수 있도록 인과관계를 짜놓았다.

만약에 미국 감독이었다면 하갈우리부터 따라온 피란민들을 그저 아둔하고 불쌍하며 연약하기만 비루한 아시안 정도로 묘사했을 것이다.

류지호는 피란민 전체에 어떤 정체성 혹은 캐릭터를 부여했다.

지금껏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철수작전을 하는 길게 늘어선 행군대열.

미 해병대원들이 긴 파카를 입고 더부룩한 수염에 고드름을 단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피로에 지쳐 전날의 악몽을 되새기며 걸어간다.

제아무리 용맹한 미해병대라고 할지라도 추위에 맞서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느닷없이 민요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카투사들이 부른 노래다.

카투사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추위와 맞선다.

그에 질세라 클리프 레저가 별안간 해병대가를 흥얼거린다.


[몬테주마의 홀에서 트리폴리 해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조국의 권리를 위해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싸운다네!]


F-중대 생존병사들이 해병대가를 부르며 행군한다.

사기충천한 모습은 아니다.

해병대 만세를 드러내기 위해 장면을 넣은 것도 아니다.

살기위해서.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혹한 추위 속에서 행군하며 낙오하거나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쥐어짜서 부르는 군가.

애절한 아리랑과 결기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해병대가가 전쟁의 피로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장면 바로 다음에 미국과 참전국 내부 상황이 이어진다.

유담리에서 흥남 항구까지의 거리는 약 130km.

전 세계는 제1 해병사단의 악전고투의 퇴각작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1사단의 전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각국의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기사 등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부각한다.


작가의말

이어지는 에피소드라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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