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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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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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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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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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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필요한 초능력은 재력(財力).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 윌리엄 할아버지.... 제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전 미성년자라 증권계좌를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동의하시면 계좌를 만들 수 있대요.


류지호가 서툰 영어로 윌리엄에게 말했다.


- 지호 학생, 주식은 전문가가 해야 해.


신효정이 영어로 우려를 나타냈다.


- 주식 투자를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된다면 경영과 함께 경제를 읽을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주가는 항상 시장보다 먼저 움직인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만약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면 여기 파커 패밀리가 있잖아요. 나중에 저에게 투자할 곳을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허허허.

윌리엄이 거침없는 류지호의 말에 웃어 버렸다.


- 내년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무섭게 오를 거래요. 이건 제가 예측한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거예요. 반도체의 신흥강자 오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무시무시한 우량주가 되지 않을 까요?


류지호는 단정 짓는 말투를 쓰지 않았다.

확신에 찬 태도는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대답을 유도하는 화술이다.


- 이제야 윌리엄의 말씀이 이해가 되네요. 지호, 미국으로 와요. 미안하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지호가 성장하기에 좁고 작아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꿈을 펼쳐 봐요. 내가 아니 파커 가문이 지호를 키워줄게요.

- 절 너무 높게 평가하진 말아주세요. 세상 물정을 몰라 용감한 걸지도 모르니까요.

- 아니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어요. 장기투자는 주식투자에 있어서 올바른 자세에요.

- 주식투자는 잘 모른다니까요.

- 지호, 미국으로 와서 마음껏 공부하고, 꿈을 키워 봐요. 우리가 도울게요.


캐서린의 말은 파격적이었다.


- 제게 왜 그런 제안을 하세요? 동북아시아 변방의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인데....

- 인재니까.

- 아니지. 지호는 영웅이야.


윌리엄이 단호하게 말했다.


- 할아버지, 영웅 타령은 그만 하세요.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니까요.

- 지호는 우리 가족의 은인이에요. 지호와 가족 역시 파커의 가족입니다.


캐서린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저, 잠시만.......”


얼굴이 뜨끈해진 류지호가 급하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더 앉아 있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다.


- 민상.


윌리엄이 근엄한 얼굴로 류민상을 불렀다.


- 부모에게 자식이란 신이 주신 선물이지만,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전가해서는 안 되는 거네. 자식은 부모를 통해 세상에 나오지만, 자기의 인생을 살아야 해. 부모의 역할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네.


류민상은 특별한 반응 없이 신효정의 통역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


- 민상이 지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산다는 것, 자기 인생과 관련한 모든 것은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 삶의 궁극적 목표는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상까지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것. 이것이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류민상이 윌리엄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 파커 가족은 지호에게 우산이 되어 줄 것이네. 그것도 굉장히 견고한 우산이.


류민상과 심영숙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난생처음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렸다.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었다.

파커 가족은 식사 내내 류지호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딸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해도 미국으로 돌아가면 남남 아닌가.

아들 녀석의 태도도 묘한 구석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잘나간다는 파커 가족에게 전혀 기죽지 않았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침착했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하루가 다르게 부쩍 성장하는 큰아들이다.

류민상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보호하고 훈육해야 할 시기를 지나 부모 품에서 벗어난 허전함.

섭섭함은 그런 허전함에서 기인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큰아들은 자기 주관을 세우고 자기 삶을 찾을 시기가 온 것이다.


‘그래도 영어만 잘한다고 능사는 아니지. 명심보감을 다시 가르쳐야겠어.’


더는 가르치고 뜻을 강제할 수 없다면, 머리가 더 커지기 전에 올바른 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류민상은 국민학교 때까지 강제로 암기하도록 했던 명심보감을 다시 읽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명심보감은 조선시대에는 초학 입문용 교재로 쉬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한문 학습을 돕는 역할을 했던 책이다.

하지만 간결한 문장 안에 담긴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선인들의 말과 글은 인격 수양을 돕고, 나아가 인생의 수양서이자 잠언이 되어 줄 터.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건 보기 정말 좋구나....!’


두 가족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남산타워를 구경했다.

케이블카도 탔다.


“우와!”

“큰오빠, 하늘을 날고 있어!”


류순호와 류아라 남매는 신세계를 경험한 듯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신나 했고, 명동을 돌아다니다 지쳐버린 부모님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 조심히 돌아가세요.

- 오늘 즐거웠어요.


류지호 가족을 배웅한 캐서린이 신효정에 지시를 내렸다.


“혹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국출신의 투자자문이 있나 알아봐 주세요.”

“네!”


신효정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지고 있는 인맥을 총 동원해 8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여러 금융회사에서 자문역을 해주고 있는 스탠리모건 출신의 로버트 듀이라는 금융전문가와 연락이 닿았다.

제임스는 뉴욕의 G&P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애널리스트 팀장 폴 매튜섹에게 한국의 증시전망 분석 자료를 취합해 한국으로 보내줄 것을 주문했다.


“관망만 하도록. 우리는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볼 거야. 아무래도 뭔가 대형사고가 터질 것 같아. 대규모 군비확장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국제수지 적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니까.

- 연방준비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거라 소문이 무성합니다. 보스.

“프로그램 선물거래 쪽은 어때?”


제임스는 성격 좋은 아저씨에서 어느새 전문가로 돌아와 있었다.

윌리엄이 위스키를 빈 컵에 따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캐서린?”

“침착해요. 16살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건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였어요. 정신감정을 받아보게 하고 싶을 정도로.”

“하하하. 사이코패스 성향일까 봐서?”

“말이 안 되잖아요. 겨우 16인데.... 윌리엄도 알지만 난 변호사로서 별의별 인간 군상을 다 경험했어요. 그 중에는 범인이 이해하지 못할 천재도 있었고, 잘못 풀리면 연쇄살인마가 될지도 모를 어린이의 사건도 다뤄봤어요. 그런 나조차 소년을 판단할 수 없었어요. 정말 미스터리 같은 소년이에요.”

“맞아. 미스터리한 소년이지. 다만 사이코패스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 공감능력이란 게 애초에 없지. 그것이 중요하지.”

“그러니까요.”


오해다.

어른스러운 것과 어른은 다른 것이다.

차분한 것과 침착한 것 또한 다르다.

성격적으로 차분할 순 있지만, 매사 감정의 큰 동요 없이 침착하기란 쉽지 않다.

살아보면 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따라서 류지호는 또래 다른 친구들처럼 미래에 대해 낙관도 불안도 없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파커의 호의에 대해서 흥분할 이유가 없다.


“보상금이라는 돈을 쥐어줄 수도 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일단은....”

“트레이더나 애널리스트로 키우고 싶어? 집요하고 분석적인 성향 때문에?”

“이 시대 영웅의 자리는 트레이더 차지잖아요.”

“쯧. 탐욕의 화신들.”


윌리엄이 위스키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끌끌‘ 혀를 찼다.

야망과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이 트레이더를 선망하며 불나방처럼 월가로 몰려들고 있다.

단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어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하고 섹시한 여자들을 주렁주렁 거느리며 저택과 별장과 요트에서 긴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욕망이 아이비리그를 뜨겁게 달궜다.

윌리엄은 청년들이 월가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태도가 한심하고 저주스러웠다.

자신의 세대는 위대한 미국을 위해 땀을 흘렸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전쟁터에서 피 흘리며 싸웠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탐욕에 젖어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을 월가로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

“월가의 맛을 보면 소년도 별 수 없을 거예요.”

“글쎄. 월가의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된다면 소년도 그곳에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는데 내 훈장 하나를 걸지.”

“호호호. 윌리엄은 몇 번 보지도 않은 소년이 무척 마음에 드셨나 봐요.”

“파커는 돈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본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하지.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삐져나오게 마련이니까. 캐서린도 그레이엄 가문의 장신구들을 빨리 벗어버려야 할 거야. 그래야 돈보다 사람이 보일 테니까.”

“아빠에게도 그렇게 말씀해보세요.”

“욕심 많은 그 늙은이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야.”

“그럼요. 두 분은 서로 잘 통하는 지기(知己)시죠.”


캐서린은 자신의 부친인 그레이엄가의 가주와 시아버지인 윌리엄이 서로 극과 극의 성격으로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까.”

“네네.”


캐서린이 잠든 레오나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윌리엄은 위스키를 단숨에 털어 넘기고 다시 컵에 위스키를 따랐다.


“윌리엄, 과음은 안 좋아요! 방금 따른 것으로 만족하세요!”


침실에서 캐서린의 따끔한 충고가 들려왔다.

윌리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위스키 병의 뚜껑을 닫았다.


“소년은 말이다. 마치 ‘내일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확신에 차있단다, 캐서린. 그러니 침착할 수밖에.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결코 정신과 육체에 힘을 뺄 수가 없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년은 타고난 것인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이 이완된 상태 같았다.

둘 중 하나다.

죽기 일보 직전이던지.

미래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있던지.

윌리엄은 어쩐지 후자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흥미가 동하고, 관심이 간다.

걸리는 것이 영 없지는 않았지만.


❉ ❉ ❉


세상의 모든 부모의 바람은 한결같다.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 부자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집안까지 빛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아이는 부모의 얼굴이다.

그 말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자식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과도 같다.

부모가 자신들의 일 때문에 제대로 자녀를 돌보지 못했거나 자녀교육에 소홀할 경우 그의 자식은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가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반면에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부모라도 자식들이 남부럽지 않게 자라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외국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다면 그 부모는 언제나 남들 앞에서 당당해진다.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절로 나고, 사는 것도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


류민상이 거실에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공부는 잘하지만 이재에 어두워 가난하게 사는 사람,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 공부는 잘 못했지만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 공부도 못하고 이재에 어두워 가난한 사람 네 가지 정도의 유형이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두 번째나 세 번째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은 자칫 엘리트주의에 빠져 오만할 수도 있고, 반대로 공부는 못했지만 이재에 밝아 부자가 된 사람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피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도 모든 부모들은 두 번째 유형을 바란다.

공부도 잘하고 커서는 부자로 살았으면 하는 게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이재에 어두워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옛날에는 통했지만, 사회가 고도화 되면 순진한 사람으로 무시당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부도 못하고 이재에 어두워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모든 부모가 가장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부자가 된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존경받는 사람이다.

존경받는 부자, 존경받는 기업인, 존경받는 교사, 존경받는 학자, 존경받는 정치인.

사회 각 분야에서 저마다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살만한 사회일 것이다.


‘우리 지호가 이재에만 밝아 돈만 밝히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


중학생 때에는 과연 커서 뭐가 되려고 놀 궁리만 하나 걱정이 들만큼 철이 없던 큰아들이다.

그랬던 녀석이 불과 반년 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스로 알아서 영어도 공부하고, 그 어렵다는 경제 공부도 독학을 하고 있다.

파커 가족에게도 기죽지 않고 무척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대견함을 넘어 진짜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똑똑한데다가 부자로 산다면 뭘 더 바랄까마는...’


류민상은 집안의 어른들이 고조부의 유산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선비 가문이라는 자신의 집안 어른들조차 재산을 놓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데, 줄곧 가난하게 살아온 자신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류민상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담배를 찾는 것이다.

88라이트가 손에 잡히자 한 개비를 꺼내 피워 물었다.


‘경주에 사는 최 아무개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다지.’


경주 최부잣집은 12대에 걸쳐 300년간 존경받는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

특히 이들이 쌓은 부(富)의 쓰임새와 부자로서의 도덕성에 있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써 후세에게 교훈을 준다.

벼슬은 하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쌓지 마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 육훈의 가르침이 300년간 이어졌다.

더욱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는가하면 마지막에는 대학설립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음으로써 부자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안타까운 사실은 전 재산을 기부해 대학을 세워 모 재벌 회장에게 무상양도 했지만, 최고 대학을 만들겠다던 재벌 회장은 약속을 저버렸다.

재벌 회장은 양도 받은 대학을 독재정권에게 헌납했고, 독재정권의 통치자는 대학 이름을 바꾼 후 자신의 딸에게 물려주었다.


“후우.”


류민상는 복잡한 심사를 담배연기에 실어 내품었다.

문득 류민상은 거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당에서 큰아들 역시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잡생각에 빠져 있다.


‘......’


골똘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 류지호는 제법 진지했다.

파커 가족 앞에서 했던 말들을 되돌아보며 실수한 것은 없는지 반추했다.

강한 척은 다 하면서, 류지호는 언제나 혼자 궁상을 떨곤 했다.

비밀을 가진 자는 들킬까봐 전전긍긍 댄다고 하더니 류지호가 그 짝이다.

외가식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미리부터 주변에 여러 암시를 깔아놔야 한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사람, 유능한 인재 등등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할 장치도 필요하다.

류지호는 내심 파커 가족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길 기대했다.

파커가문의 지원으로 꽃길을 걸어가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파커가문에게 속박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수준이나 위치가 대등해야 상대를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기꾼이라도 오성이나 경성자동차 그룹 회장을 속여 먹을 순 없다.

모든 행운이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론 그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못 만들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의 중견기업 회장 집안과 인연이 이어져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더 대단해 보이는 미국 가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 하나 때문에 세상사까지 뒤집어지진 않겠지만, 내 주변의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하늘만 알게 될 거야.’


류지호의 삶이 바뀌면서 고등학교 시절 주요 사건들이 틀어졌다.

죽마고우인 사인방들은 또 어떤가.

술·담배를 하며 툭하면 야자를 빼먹고 동네 양아치들과 어울리던 고우찬은 성실히 신문을 배달하고 태권도장을 다니고 있고, 호구나 잡힐 것 같았던 김준우는 성적도 오르고 제법 성실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황재정 역시 아웃사이더로 겉돌았던 것과 달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당장 내 눈앞에 닥친 상황도 내 의지대로 풀어 갈수 없는 주제에 역사가 웬 말이고, 닥치지도 않은 미래까지 걱정할 건 뭐냐.’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바뀐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느리지만 바뀌고 있다는 것.


후우웁.


류지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아직까지 잘못된 것은 없다.


- 똑똑한 사람일수록 상대가 성공하도록 도와준다. 남을 더 많이 도와줄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윌리엄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해 준 말이다.

이 한마디가 자꾸 류지호의 마음 한구석을 간질였다.

하지만 곧 뺨을 때리면서 쓸데없이 정신 팔리는 것을 멈추었다.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거기서 뭘 멍하니 있는 거야?”


현관 쪽에서 류민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민상이 나무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여기 앉아 봐라.”


류지호가 옆에 앉자, 류민상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큰아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분명 생긴 것은 자신과 아내를 빼다 박았다.


‘같은 씨에서 나와도 성격이며 개성이 천차만별이라더니.’


자신을 껴안고 펑펑 울던 날부터였던 것 같다.

큰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상님들이 보살피시기라도 하나 싶었다.

망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라고 장남을 일찍 철들게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다 떠나서 품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장남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듬직하고 든든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종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색하는 것은 무익하며 배우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셨다.”


마당에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긴 류지호의 궁상을 꼬집는 것이다.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했어요.”


류지호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공부하고 태권도하기도 바빴을 텐데 언제 정치와 경제에 까지 관심을 가졌어? 아빠는 우리 아들을 다시 봤어.”

“영어공부 한답시고 미국잡지도 보고 배달하는 신문을 아침 자습시간마다 읽다 보니까 조금씩 알게 되더라고요.”

“국민학교 때 억지로 천자문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그래도 모르는 한자가 많아서 열심히 옥편 뒤지고 있어요.”


웬만한 사람은 읽기가 힘들 정도로 신문에 한자가 많았다.

2000년대로 넘어가야 국한문혼용은 극히 일부의 전문 서적이나 신문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


두 부자 사이에 어색함이 흘렀다.

류민상이 침묵을 깼다.


“삼국지 읽어봤냐?”

“고등학생 필독소설이에요.”

“사회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삼국지는 많은 걸 가르쳐 준다고 하지.”


삼국지의 수많은 군상들의 처세술과 숱한 권모술수는 독자에게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

오죽하면 삼국지를 10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읽어보셨어요?”

“우리 회사 휴게실에 조그맣게 도서관이 꾸며져 있어. 거기 꽂혀있기에 시간 날 때마다 빼서 읽고 있구나.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아.”

“그러셨군요.”

“똑똑한 지호가 아빠가 읽을 만한 소설책 좀 알려줘 볼 테냐?”

“어떤 걸 재미있게 읽으셨는데요?”

“난 너처럼 경제나 정치 이런 건 싫다. 역사를 다루는 얘기라면 질리지 않지.”

“작년에 출간한 ‘소설 손자병법‘ 읽어 보실래요? 아니면 같은 고려원이란 출판사에서 낸 소설인데 ’사조영웅문‘도 재미있어요.”


참고로 ‘소설 손자병법‘은 300만부, ‘사조영웅문’은 8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회사 휴게실에는 최신 소설은 없을 걸...”

“제가 내일 대한서림에서 사올게요.”

“아빠도 엄마한테 용돈을 타 쓰는지라 책값은 엄마한테 받아라.”

“아니에요. 신문배달하고 받은 월급 많이 남았어요.”


류민상의 무뚝뚝한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손권의 휘하에 여몽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무예는 뛰어났지만 소싯적에 경전을 익히지 않아 교양이 부족했다고 하지. 어느 날 손권이 여몽을 불러 ‘광무제는 군무를 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조조 역시 늙어서도 배움이 좋다 하였는데 경은 왜 노력을 안 하시오?‘ 하고 물었어. 여몽이 학업에 열중해 그 경지가 옛 학자들을 뛰어넘었다는 소문이 돌자, 노숙이 찾아와 여몽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돼. 노숙이 여몽의 학식과 식견에 놀라 ’단지 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 보니 참으로 박학다식하오 예전의 그 동오의 아몽이 아니구려‘라고 하자. 여몽이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한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단다.“

“괄목상대(刮目相對)요?”

“아빠가 내 아들의 공부가 나날이 높아져 예전같이 대해서는 안 되게 되었구나.”


류민상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말을 했다.


“광무제처럼 수불석권(手不釋卷)할게요. 앞으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아빠는 신식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독선생에게 한문을 배웠지.”

“사서삼경도 배웠어요?”

“소학, 대학 떼고 논어 마치고 맹자 배우다가 6.25가 터졌지.”


류민상은 학력은 짧았지만 한문을 읽고 쓸 줄 알았다.

한자 글씨도 제법 그럴싸한 탓인지 류민상은 결혼철에는 매주 결혼식장에 불려갔다.

외가친척이건 지인들의 결혼식이건 축의금을 접수 받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하객들이 축의금 봉투에 한문으로 이름을 적어 내밀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어려운 한자를 옮겨 적는데 애를 먹고는 했다.

구정 명절에는 외가 식구 모두의 토정비결을 봐주기도 했다.


“영어만 공부하지 말고, 한문공부도 열심히 해. 명심보감도 다시 꺼내 읽도록 하고.”

“명심보감은 국민학교 때 다 뗐어요.”

“인석아, 한자를 외우라는 뜻이 아니고 성현들의 글을 새기라는 말이야.”

“매일은 힘들어요. 학교 공부 때문에.”

“오늘 같이 멍하니 있을 시간에 읽으면 되지 않겠냐.”

“네.”


류민상이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다시 입에 물었다.


“세상은 말이다.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단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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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4

  • 작성자
    Lv.57 이야기숲
    작성일
    22.01.04 12:10
    No. 1

    몇번이나 정주행 했었지만 읽을수록 더 재미있네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요리선생
    작성일
    22.01.04 17:45
    No. 2

    삼국지에는 약 1000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천태만상의 인간들과 각자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대급 역사소설입니다. 어린시절 몇날몇밤을 세며 읽는 재미는 교과서적인 사서삼경과는 비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요.

    찬성: 1 | 반대: 2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1.06 21:39
    No. 3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2.14 21:10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형산운송
    작성일
    22.05.17 06:23
    No. 5

    아는 게 많으면 생각이 많고, 가진 게 많으면 근심이 많다더니 주인공도 고민과 생각이 많네요. 성격상 앞으로 더 그럴 것 같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0 ne****
    작성일
    22.06.16 22:18
    No. 6

    작가도 주인공 아버지 포지션이듯 지루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ne****
    작성일
    22.06.17 01:47
    No. 7

    작가가 너무 지식을 들어내려해서 질림

    찬성: 5 | 반대: 4

  • 작성자
    Lv.55 겨울에핀꽃
    작성일
    22.07.02 10:08
    No. 8

    파커도 회귀자이고 1회차에서는 손녀가 교통사고로 죽었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귀영자
    작성일
    22.07.18 08:43
    No. 9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서 질리네

    찬성: 7 | 반대: 3

  • 작성자
    Lv.99 옳은말
    작성일
    22.09.18 11:24
    No. 10

    너무 지루하다. 레오나 구해주고 그냥 돈받고 깔끔하게 끝나는게 낫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지루한 이야기를 해야하나?

    찬성: 8 | 반대: 2

  • 작성자
    Lv.99 하늘나무숲
    작성일
    22.09.19 17:34
    No. 11

    킬링타임용이면 빠르게 지나가는게 낫지만
    이 생각 저 생각 하기에는 이 소설처럼 곱씹을거리가 많은게 낫죠.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33 wntlaos1..
    작성일
    23.02.22 12:31
    No. 12

    아버지의 구질구질한 명심보감 교육법이 먹히지 않았다는건
    전생을 보면 알지...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94 습관성탈골
    작성일
    24.03.19 14:44
    No. 13

    명심보감 읽으라더니 착한사람을 알아주지않는다?
    그냥 착하고 호구처럼 살라는건가?
    그런말 하려면 자기도 매일 공부해서 돈벌이를 더 해야지.
    자기도 퇴근하면 티비보고 술먹으면서 자식한테는 이것저것 다하라는거잖아.
    그렇다고 자식한테 충고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야.
    하더라도 현실적인걸 해야지.명심보감? 자기도 보냐고.
    소설이 점점 개꼰대같이 흐르네요. 뭐하러 이런얘기를 적지?
    무료니깐 하고싶은거 다 쓰는건가? 보상금 안받는거 정도로 끝내지. 기어이 아버지를 개꼰대로 만들어야 시원했냐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9 스페아
    작성일
    24.04.06 01:46
    No. 14

    글이 너무 안읽히네.. 몰입은 계속 깨지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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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Goodfellas. (4) +10 21.12.23 16,189 281 20쪽
7 Goodfellas. (3) +13 21.12.23 16,706 264 20쪽
6 Goodfellas. (2) +12 21.12.22 17,298 29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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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gain 1987. (3) +25 21.12.21 19,299 32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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