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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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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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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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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22,097

작성
21.12.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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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글자
21쪽

Goodfellas.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번쩍!


류지호의 눈이 떠졌다.

잠에서 깨자마자 류지호가 반사적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익숙하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방이 맞았다.

류지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까지 확인했다.


“휴우~”


류지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야!‘


어제 교감에게 맞은 부위가 여전히 아팠다.

류지호가 거실 한편에 놓인 GOLD STAR 상표가 붙은 2단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냈다.


벌컥벌컥!


주둥이를 입에 대고 물통 한통을 깨끗하게 비웠다.

다시 방으로 들어갈까.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누울 수도 없고.

차라리 바람을 쐴 겸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류지호는 식구들이 깰까봐 고양이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 싸구려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유독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류지호의 눈에 밟혔다.


‘아침부터 기분 꿀꿀하네....’


집을 나선 류지호는 인적 없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언덕길 보안등이 좁은 골목길을 비추고 있다.

수봉산 자락에 자리한 서민동네.

류지호의 눈에는 이 동네 전부가 아련한 풍경이다.


“쓰으읍!”


맑고 깨끗한 공기가 코 속으로 스며들자 류지호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른 새벽 시간 탓에 언덕길은 인적이 없었다.


“으으”


엉덩이에서 살짝 통증이 밀려왔다.

어제 얻어맞은 대가가 약간의 통증으로 나타나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걸음걸이가 상당히 우스웠다.


“하하하.”


이런 것마저도 류지호는 유쾌하게 느껴졌다.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 실제라는 걸 알려주는 증거니까.

약수터로 향하는 소로에 부지런한 할아버지 몇 분과 마주쳤다.


"약수터 가는 모양이지?"

“학생이 부지런도 하지.”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류지호가 수봉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가자 등줄기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젠장, 나이만 열일곱이지 몸은 영 부실하네.’


류지호는 저질 체력을 절감하면서 턱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냈다.


“하아압.”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깨끗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전몰 용사를 추모하는 현충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류지호는 현충탑 주변을 천천히 거닐며 공원을 구경하다가 2층 높이의 정자로 향했다.

정자 2층으로 올라간 류지호는 난간에 우두커니 서서 80년대 인천의 시내 풍경을 눈에 담았다.

서민밀집 지역의 낮은 건물들 너머 저 멀리 구월동쪽으로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스모그하고 미세먼지도 없고, 공기가 이렇게 깨끗하구나.’


류지호는 30년 후 미세먼지와 스모그로 가득할 도시에 애도를 표했다.

정자 구석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엉덩이가 조금 불편했지만 타이거밤의 효과 때문인지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후우우우우~!”


들숨과 날숨을 규칙적으로 내쉬며 가슴까지 들었던 손을 배꼽 아래로 내렸다.

용연국민학교 태권도부 시절 홍 관장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단전호흡을 흉내내봤다.

어린 마음에 호흡을 따라하면 내공도 생기고 장풍도 쓸 수 있냐며 물었다가 홍 관장에게 호되게 꿀밤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홍 관장은 무협지가 여러 사람 버려놨다며 혀를 끌끌 찼더랬다.

류지호는 국민학교 5,6학년 2년 동안 학교 대표 선수로 태권도를 배웠다.

용연국민학교 단체체육이 태권도였다.

전교생이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에 홍 관장의 지도로 태권도를 배웠다.

홍 관장과 사범 몇 명으로 전교생을 봐줄 수 없었다.

5,6학년 각 학급에서 한명씩 선수를 선발해 속성으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류지호는 공짜로 태권도를 가르쳐 준다는 소리에 태권도부에 합류했다.

그리고 6개월 속성으로 품새와 기본기를 배워 전교생의 태권도 조교가 되었다.

명색만 학교 대표선수였다.

단 한 번도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6학년 때 간신히 부모님을 졸라 승단시험을 치러 1품을 땄다.

류지호는 겨루기 한번 해본적도 없이 오로지 품새만 주구장창 연습했다.

결국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태권도를 그만 두었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참 동안 호흡과 씨름하던 류지호는 이내 시들해졌다.

동녘에서 장엄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집중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른 것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류지호는 홀린 듯 일출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관장님도 찾아뵈어야지.’


홍 관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류지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수봉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정돈되지 않은 길로 가면 제법 험했다.

류지호는 약수터에서 물까지 한바가지 떠먹고, 집의 반대방향으로 수봉산을 내려왔다.


“이곳에 신문보급소가 있었던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기억에 없었다.

류지호는 신문보급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보급소장에게 신문배달 일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물었다.

다행히 보급소장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비교적 친절하게 알려줬다.


‘1구역을 자전거로 돌면 한 시간 정도 걸리고, 4만원 받는다고 했지. 석간은 야자 때문에 안 되고, 조간신문만 돌려야 한다는 건데.’


공중전화 20원, 자장면 값이 대략 500원~700원 정도, 라면은 90원~200원. 버스비가 120원이니까 고등학생에게 4만원이면 작은 돈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시급으로 500원도 안 된다.

하루 8시간 일하면 약 4천원이다.

한 달 30일 쉬지 않고 일을 해도 12만원이 안 된다.

그래서 아버지 류민상이 고되고 힘들어도 잔업과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다.

류지호는 내친김에 근처에 있던 우유보급소에도 들렀다.

분주했던 신문보급소와 달리 일하는 사람이 적은지 우유보급소는 한산한 편이었다.


‘돈 벌기가 쉽지 않아. 고등학생 신분으로 막노동을 할 수도 없고, 신문배달과 우유배달도 죽어라 해봤자 푼돈 밖에 안 돼.‘


물론 매일 새벽 4시부터 3구역 정도를 돌리고, 등교했다가 야자에서 빠져 석간도 그 만큼 죽어라고 배달한다면 류민상 만큼 벌 수 있긴 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직업이 되는 셈이다.


‘고민을 좀 해보자. 운동도 되고, 동생들 용돈도 챙길 수만 있다면, 부모님 짐도 조금 덜어드릴 수 있겠지.’


류지호는 상념을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덜컹!


이제 막 남매를 깨우러 방을 들락날락하던 심영숙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류지호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물었다.


“얼래? 언제 나갔어?“

“수봉산에 올라가서 운동하고 왔어요.“

“지호야, 너 진짜 엄마 아들 맞지?”

“그럼요.“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다 하고...”

“운동하면 키도 자라고 건강해지잖아요.”

“별일이네.”

“부지런하면 좋은 거죠 뭐.”

“우리 장남이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철이 드나봐.”


심영숙은 기특한 마음에 류지호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아, 아파요. 어머니!”


류지호가 엉덩이를 가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 얼른 씻고 오렴.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아버지는요?”

“벌써 출근하셨지.”


평일에는 새벽에 출근하는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이 땅의 가장들은 언제나 돈을 벌어야 했기에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

부모가 일찍 퇴근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생 자녀와 마주하기도 힘들다.

야자나 학원순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미래에 어떤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다.

류지호는 저녁이 있는 삶은 어른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는 노동환경뿐만 아니라 교육제도도 함께 변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류지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알게 된다면, 고등학생이 별 고민과 걱정을 다한다고 꾸짖을지 모른다.

어쩌랴.

이전의 삶과 현재가 자꾸만 비교되는 걸.


“오빠아앙~”


잠에서 덜 깬 류아라의 목소리가 류지호의 상념을 깨웠다.

어김없이 류지호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우리 이쁜 막내.”


류지호는 아침식사 전까지 여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자꾸 아라 응석 다 받아줄거니? 버릇만 나빠져.”


심영숙이 류지호를 타박했다.


“8살이잖아요. 어리광 부릴 수도 있죠.”


류순호가 밥상을 가져와 거실 중앙에 놓았다.


“아라도 큰오빠랑 밥 차리는 거 같이 할까?”

“응. 좋아!”


류지호가 부엌에서 반찬을 가져와 밥상에 놓는 것을 보고, 류아라가 숟가락통을 가져왔다.

엄마와 둘째 오빠 말은 귓등으로 들어도 큰오빠의 말에는 고분고분한 류아라다.

류지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류아라는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으며 억척스러움만 남은 아줌마였다.


‘아라야, 이대로만 자라자.’


류지호가 류아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헤헤.”


류아라는 큰오빠의 다리에 매달려 배시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 ✻ ✻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시기가 중요하다.

십대에 노느라 공부를 등한시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서야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게 되어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30대가 넘어서 공부에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도 존재한다.

또한 고령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입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십대의 시기가 공부의 적기라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류지호는 이름 있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었다.

명문대는커녕 부모님의 간곡한 권유가 아니었다면 고졸에 머물렀을 확률이 높았다.

류지호는 학연이며 지연, 혈연 같은 인맥에서 완전히 배제된 아웃사이더였다.


‘출세하려면 명문대에 진학을 해야겠지. 그게 현실이니까.’


이전 삶의 실수를 이번 삶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한다.

마음만으로 될 리가 없다.

운동이나 공부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류지호의 주변에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던 김석민.


‘문제는 석민이가 이기적인 녀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절한 놈도 아니라는 거지.‘


참고서를 노려보듯 집중하고 있는 김석민의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지는 것 같았다.


‘징그러운 놈.’


톡톡.


류지호가 김석민의 참고서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고개를 번쩍 쳐든 김석민이 화난 얼굴로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넌 공부 어떻게 하고 있냐?”

“잘!”


류지호는 한 대 쥐어 박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눌렀다.


“책상에 교과서, 참고서를 펼쳐놔. 그리고 그냥 하는 거야. 공부를.”

“그건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거고!”

“잠자는 시간 빼고 쭈욱 하는 거라니까.”

“너만의 비법 없어?“

“비법? 그런 게 있으면 나 좀 가르쳐줘.”

“그냥 무작정 교과서하고 참고서를 봐?“


김석민이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가소롭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그럼?“

“죽어라고 해야지. 죽어라.”

"......?"

"공부는 한만큼 머리에 남는 거야. 잠자는 시간 빼고 죽어라 해야 돼."


류지호는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반박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전교 1등하는 녀석은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없다.

서울대 수석 입학 학생들이 항상 하는 말.


-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그 뿐이에요.


입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는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의자에 붙어 있는가가 입시의 당락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가 한다는 말까지 있지.’


이 시기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입시전쟁이 치열해질 터.

평균경쟁률이 5대1에 육박하고,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도 류지호가 입시를 치루는 시기부터다.

미래에는 입학생이 없어 폐교하는 대학도 생긴다.

이때는 80만에 가까운 수험생 중에서 오직 20만 명만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나 수학 좀 가르쳐줄래?”

“싫어.“


김석민이 단칼에 거절하고, 참고서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럴 줄 알았다! 열심히 해라.”


김석민이 방송실을 나가려는 류지호를 불러 세웠다.


“너도 중학교 때 공부 좀 했을 거 아냐?”

“아마도.....”


류지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송부처럼 몇몇 서클은 비공식적으로 자체적인 성적 커트라인이 있다.

신포고 방송부에 뽑혔다는 사실은 성적이 영 맹탕은 아니라는 거다.


“중학교 수준의 공부는 인내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거지 어려워서 못하는 거 아냐. 물론 고등학교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김석민은 짐짓 진지하게 말하고는 참고서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공부는 죽어라 하는 거지. 한다. 죽어라!’


일찍 준비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자가 나중에 웃는 것.

그 중에 하나가 대학입시다.

류지호는 오늘 밤부터 당장 중간고사를 대비한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류지호가 본관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왁!”


뒤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깜짝이야!“


류지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띨빡아~ 교감한테 개기다 몇 대 더 맞았다며?”


류지호는 고개를 들어 짝다리를 짚고 서있는 남학생을 올려다보았다.

일명 사인방 중 한 명인 고우찬이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열일곱 살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험악한 얼굴에 186cm에 이르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

녀석과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이후로 신포고까지 함께 배정을 받았다.

류지호의 둘도 없는 불알친구다.


“끙.”


류지호가 고우찬이 내민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친구 고우찬은 이전 삶의 기억 속에서 류지호 못지않은 불행한 인생이었다.

험악한 인상처럼 주먹을 제법 썼는데,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불같아서 고등학교 졸업 후 뒷골목 세계로 빠졌었다.

건달들과 어울리다가 살인사건에 연루돼 죄를 옴팡 뒤집어썼다.

결국 무기징역형을 살게 되었고, 류지호가 죽는 날까지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삶을 살았었다.


“과거로 돌아온 김에 이놈부터 갱생시켜야겠어.”

“누가 누굴 갱생시켜?”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돼.”


다시는 친구를 그렇게 감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면 류지호 본인부터 변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설득이 쉬울 테니까.

류지호를 위해주던 유일무이한 친구가 사인방이다.


‘내가 죽었을 때 그나마 장례식장에 찾아와 준 건 사인방 밖에 없었지.’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자신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이상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이번에는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짓 절대 안한다! 죽어도!”

“그래 힘내라. 엉아가 바보 같이 굴면 한 대 씩 때려줄게.”


고우찬이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험악한 인상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너나 바보같이 굴지 말고, 똑바로 해!”


✻ ✻ ✻


교문에서 황재정과 김준우가 합세했다.

류지호가 반가움이 가득 묻어있는 얼굴로 김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냐?”

“어.”


김준우가 얼떨결에 류지호와 악수를 나눴다.

류지호가 활짝 웃으며 김준우의 악수한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온몸을 메이커로 도배하고, 제법 귀티가 나는 인상의 김준우는 사진부다.

부잣집 외아들이었는데 위로 누나만 셋이 있었다.

부모님이 인천에서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 중이었는데, 부유한 집안형편 때문인지 고가의 카메라를 세 개나 가지고 있었다.


“준우하고 포옹 안 해?”

“미친 놈, 뭔 헛소리야.”


류지호가 황재정에게 톡 쏘아붙였다.


“......!”


황재정은 멍한 얼굴로 류지호를 바라볼 뿐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준우야, 가자!”


류지호는 태연하게 김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음을 옮겼다.

황재정이 걸어가는 류지호의 등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안 가?”


고우찬이 황재정의 겉을 지나가며 물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지호 이상한 거 못 느껴?”

“난 모르겠는데?”

“나만 이상한가?”


황재정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류지호의 뒤를 따랐다.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신포고 학생들이 동인천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가득 채웠다.

류지호와 친구들도 그 무리에 섞여 언덕길을 내려갔다.


‘오랜만에 우리 사인방이 모두 뭉쳤구나.‘


류지호는 사인방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기분이 남달랐다.

돈이 없어도, 만날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그냥 만날 수 있는 친구.

특별한 일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


‘이때 친구가 진짜 친구지.’


류지호는 사인방 친구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야자에 지친 신포고 학생들이 바쁜 걸음으로 사인방을 스쳐지나갔다.

잘나 보이는 녀석, 못나 보이는 녀석, 착하게 생긴 녀석, 못되게 굴 것 같은 녀석, 모범적일 것으로 보이는 녀석, 있는 집 자식 같은 녀석, 가난한 집 자식 같은 녀석, 불량해 보이는 녀석.....

류지호는 각양각색의 학생들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더 이상 잃을 게 뭐가 있겠냐? 꼭 금수저 물고 태어났어야 인생에 꽃길만 걸으란 법 없는 것이고. 아직은 자수성가도 가능하고. 하기에 따라 남부러울 것 없는 멋진 인생 못 누릴 것도 없고.‘


피식!


류지호는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야! 거기! 내가 우습냐. 씹새야?”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불량한 복장의 학생이 다짜고짜 류지호를 향해 욕을 날렸다.


후우.


류지호는 흥이 깨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쭈? 이 새끼 웃긴 놈이네?”


황당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불량학생은 2학년 가운데 싸움으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박광렬이란 신포고 꼴통 중에 상꼴통이다.

박광렬의 뒤로 다섯 명의 똘마니가 건들거리며 따르고 있다.

박광렬이 신포고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똘마니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 부류는 주먹으로 또 다른 부류는 돈으로 구워삶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충성하는 패거리의 덩치를 계속해서 키웠다.

지금은 신포고 내에서 머릿수로는 따를 패거리가 없었다.

그래봐야 인문계 폭력서클일 뿐이었지만.


“따라와. 도망치면 죽는다.”


박광렬이 협박하자 그의 똘마니들이 류지호와 친구들을 둘러쌓다.


“저기 골목 쪽으로 가.”


박광렬과 똘마니들이 사인방을 골목 안으로 몰았다.

다른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듯 보고도 못 본 척 제 갈 길을 재촉했다.

골목 바깥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의 골목길이다.

이후 수순은 뻔했다.

소위 ‘삥’을 뜯기는 것이다.

김준우와 황재정의 주머니에서 오천 원이 나왔다.

류지호는 자신의 바지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이며 개털임을 증명해보였다.


“우찬아....”


‘으드득‘ 이를 가는 고우찬이 순순히 류지호의 말을 따랐다.

녀석도 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이며 돈이 없음을 보여줬다.


“거지새끼들!”


똘마니들이 냉큼 박광렬에게 돈을 보여줬다.


“니들 앞으로 형들 보면 구십도로 인사해라.”

“......!”

“안 그러면 그날로 뒈지는 거야.”


퉷!


박광렬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애고 어른이고 불문하고 양아치들의 전형적인 시그니처다.

똘마니들이 킥킥거리며 바쁘게 박광렬의 뒤를 쫒아갔다.


‘찝찝하네~’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계속 엮일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교감에 이어 불길한 징조다.


“후우.”


기분이 더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류지호는 이맘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빼빼 마른 체형과 174cm 키를 가진 평범한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


‘이대론 안 돼. 변해야 돼!’


영문은 모르겠지만 과거로 돌아왔다.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현실로부터 도망쳐서도 안 된다.


뿌드득!


고우찬이 박광렬패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뿌득 이를 갈았다.


“약 오르고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지?”

“당연하지. 지금이라도 쫒아가서 패 죽여 버리고 싶어!”

“죽이면 안 되지. 교도소 갈 일 있냐? 오늘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나중에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누구나 경외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


류지호는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에 상황에 어울릴 만한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친구들은 대꾸 대신에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빙글빙글 돌릴 뿐.

류지호를 미친 놈 취급했다.


작가의말

습작 단계에서 길고 다소 지루했던 전반부를 나름 압축하긴 했습니다만 스스로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더 노력해 봐야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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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0

  • 작성자
    Lv.63 fd***
    작성일
    21.12.22 11:26
    No. 1

    다시 읽게 되어서 기쁩니다. 글이 잠겨져서 아쉬웠어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8 그믐달아래
    작성일
    21.12.22 11:29
    No. 2

    작가님 글을 읽다보면 저도 습작 삼아 이번에 글을 써보는데 능력차이가 이리 크구나 느껴지네요.
    그래도 다시 보게되어 기쁩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69 Lafayett..
    작성일
    21.12.24 08:29
    No. 3

    잘 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1.06 17:12
    No. 4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hi***
    작성일
    22.01.08 19:05
    No. 5

    와 5천원..내가 저때 한달용돈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sangom
    작성일
    22.01.11 09:54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장장이
    작성일
    22.01.11 10:09
    No. 7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골목대장님
    작성일
    22.01.15 00:14
    No. 8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n4******..
    작성일
    22.01.15 10:04
    No. 9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냉소적순수
    작성일
    22.05.04 23:26
    No. 10

    무기징역 사는데 장례식을 어케..?

    찬성: 4 | 반대: 2

  • 작성자
    Lv.74 에시드
    작성일
    22.05.05 22:34
    No. 11

    물가가 이상하네요 저시대 소고기라면 90원이었습니다 신상 안성탕면이 100원이구요 즉 100~150원이 아니라 90~100원이던 시절 그리고 짜장면 300원이었어요 저때가 아직 물태우가 물가 말아먹기 전이라...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2.05.06 12:33
    No. 12

    수정/보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4 에시드
    작성일
    22.05.05 22:37
    No. 13

    아 그리고 저녁이 있는 학생이란건... 수면 시간 적으면 사람 죽는다고 했던 어떤 의사가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파이팅
    작성일
    22.05.07 02:01
    No. 14

    자기 장례식에 온걸 어째알아...

    찬성: 0 | 반대: 3

  • 작성자
    Lv.74 에시드
    작성일
    22.06.05 23:17
    No. 15

    중국발 미세먼지는 없었는지 몰라도 스모그는 저때도 있었어요 아니 지금보다 심했을 수도 있어요 년대부터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대기는 탁해지고 강물은 썩어가던 시기가 저때입니다 지금보다 심했다는 말은 저때는 환경보전 이딴 소리 없었거든요 년대부터 환경 어쩌구 시작해서 한강도 복구되고 한겁니다 저시기 서울은 눈이 안왔어요 공해가 심해서리

    찬성: 4 | 반대: 1

  • 작성자
    Lv.42 lo****
    작성일
    22.08.02 12:31
    No. 16

    미세먼지 농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2014년 국제 암 연구소가 미세먼지 및 대기오염을 1급 발암물질로 선정해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말에 미세먼지 예경보제를 도입했죠. 그러고 나서부터 국민들의 미세먼지 경각심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미세먼지 농도가 예전에는 안심했는데 요즘에 심하다는 거짓소문이 나게됩니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42 lo****
    작성일
    22.08.02 12:33
    No. 17

    1990년대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와이셔츠 깃에 녹은 검정때가 이제는 옛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게 대기 중 먼지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뭔데뭐야
    작성일
    22.09.16 18:28
    No. 18

    굳이 왜 고등학교부터인지. 감독 되고싶으면 첫영회 만들때부터 하면 좋은데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80 현판매냐
    작성일
    23.09.12 05:24
    No. 19

    에시드님? 저 국민학교때 서울 살았는데 눈이 20센치 이상 오는 폭설 자주 왔는데요 다만 그 눈이 빨리 녹아서 그렇지 1980년대 서울에 눈 많이 왔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노을녁
    작성일
    23.10.25 04:54
    No. 20

    에시드님 87년이면 겨울에 한강 얼어붙고 매년 눈오든 시절이고 저녁6시만돼도 하늘에 별 보이든 시절인데.. 그시절 사신분 맞나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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