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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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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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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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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화

DUMMY

“형님!”


“끼어들어서 미안.”


“아니에요. 고마워요.”


거참, 적인파는 전멸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런 데서 튀어나오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그래도 개방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 테니 전해줘야겠다. 그 전에.


“육합창만으로 혈인을 격퇴하다니 많이 성장했구나. 잘했다.”


마지막이 허술했다는 건 나보다 정수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 그러니 여기서는 칭찬해야지.


“고마워요.”


“고맙긴. 부족한 점을 발견했으니 열심히 수련해서 보완하면 그만이잖아. 마침 여기서 좋은 이야기도 들었고.”


“좋은 이야기요?”


어쩐지 정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그게 아니라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을 만큼 지쳐서 목소리도 떨리는 거겠지. 조만간 닥칠 수련이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닐 거다. 암, 그렇고말고.


“남자는 하체와 허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괜찮지만, 혈인이 더 많이 튀어나오면 연달아 싸워야 할 테니 미리미리 수련해야겠지.”


“하, 하하···. 하하하.”


정수가 웃는 사이 뒷문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아까 봤던 높으신 분도 정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 마무리되어서 훈훈한 분위기지만, 할 일은 해야지.


“개방에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라면 굳이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곧장 전하셔도 괜찮을 텐데요.”


“일단은 고용된 몸인 만큼 지부장에게도 말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나 할까요.”


“어머, 알겠어요.”


방금 말한 대로 도리를 따르는 일인 만큼 미소 지을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높으신 분이 미소를 지었다. 기특한 일을 한 아이에게 보여주는 미소 같아서 뭔가 이상하지만, 내 착각이겠지.


아무튼 높으신 분에게 전한 보람이 있는지 차 한 잔을 마시기 전에 지부장이 도착했고, 이야기를 듣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승낙했다.


물론 호위를 맡은 만큼 내가 움직일 수는 없으니 회담 장소는 기루 뒤뜰이다. 이게 못마땅한지 분타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


“크흠, 무슨 일이십니까.”


“혈인이 남아있습니다.”


역시 개방도답게 바로 알아듣네.


혈인이 돌아다닌다는 소리는 혈교의 끄나풀이 아직 남아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걸 어떤 식으로 파헤치느냐에 따라 여론을 흔들 수 있겠지. 물론 혈교의 이름을 꺼내면 정리는 쉽겠지만, 그만한 파급력을 지닌 일을 일개 지부가 결정할 수 없는 만큼 시간이 걸릴 게 분명하다.


그래도 지금 개방을 괴롭히는 소문을 누가 퍼트렸는지 알려준 셈이나 다름없는 만큼 나는 개방에게 은혜를 베푼 셈이 된다.


“감사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머리가 여러모로 복잡한지 분타주는 곧장 자리를 떴고, 지부장은 근엄하던 표정을 풀고서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선금조차 안 받고 보내셔도 괜찮으십니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괜찮습니다.”


사파랑 다르게 정파에는 신의라는 게 있다. 물론 이런 신의나 의리처럼 달콤한 말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되었지만, 저쪽에서 갚을 생각이 없으면 나름대로 받아내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나는 개방에 빚진 게 없고, 개방은 내게 빚진 게 가득하니 거리낌 없다.


그런데 지부장은 영 미덥지 않은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거참,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괜찮다고 말해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하지 않은 지부장을 설득하기 귀찮아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오후에 식료품 상인 오는 일 빼면 약속된 손님이 없으니 오늘도 느긋하게 몸을 관조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정문을 두드리는 놈이 있네. 기루는 해 질 때 여는데 오늘도 돼먹잖은 놈이 왔구만.


“네놈이랑 할 말 없으니 가서 누주부터 불러와라.”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서 돼지처럼 생긴 게 시작부터 반말질이네. 아니지. 이렇게 얼굴로 지적하면 이상한 사람 같으니까 찬찬히 살펴보자.


중경에서 구하기 힘든 남색으로 물들인 비단으로 옷을 지었고, 눈에 확 띄도록 금실로 자수를 놓았네.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헤진 기색이 없으니 진짜 부자가 맞다.


그런데 올려다보는 행위가 불쾌한지 눈살을 코가 찌푸린 자태나 한겨울에도 육수를 흘리는 자태가 참 못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오늘 출입을 허가받은 건 식료품 상인뿐이니 쫓아내야지.


“잡상인 안 받으니 좋은 말로 할 때 썩 꺼지십시오.”


“이놈이!”


“귀 안 막혔으니까 꿀꿀거리지 마시고.”


“이놈을 죽여서 본보기를 보여줘라!”


역지사지가 안 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하지만 참을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놈에게 역지사지의 참맛을 보여주려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지.


일단 무작정 달려드는 놈의 턱을 걷어차고, 발이 땅에 내려오며 생긴 회전력을 그대로 이용해서 다른 놈 관자놀이에 팔꿈치를 먹여줬다. 여기서 멈추면 먼저 기절한 놈이 아쉬워할 테니 공평하게 주먹밥을 먹였다.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더 달라는 사람이 사라졌다. 이제 돼지두루치기를 만들 시간이지만, 그전에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봐야지.


심도 있고 밀도 있는 시간이 될 테야.


“흐아아아악!”


어이쿠, 엄청나게 기뻐서 친근한 얼굴의 위력이 배가된 모양이네. 일단 진정해야지.


“크흠. 도원루는 문 닫았는데 어쩐 일로 오셨소?”


“어제 사람을 보냈는데 감감무소식이라 직접 찾으러 왔다! 당장 문 열고 순순히 협조해라!”


내가 말하기 전에는 맞을까 봐 벌벌 떨던 양반이 말로 하니까 곧장 큰소리치네. 그런데 주저앉아서 큰소리치면 위엄을 느낄 수 없잖아. 오히려 하찮지.


“이봐, 자네. 이리 좀 와줄 수 있나.”


“무슨 일이십니까?”


내 부름에 지나가던 하오문도 한 명이 잽싸게 다가왔다. 정중한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손색 있지만, 그래도 친근한 얼굴이라서 좋네.


“어제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왔냐?”


“아뇨. 교대할 때도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크, 좋다. 내가 사람을 강조하자마자 바로 알아듣고서는 오리발 내미네. 역시 뒷골목에서 살아남은 놈답게 눈치가 빨라.


“잘 들었겠지. 어제는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았소. 알아들으면 좋은 말로 할 때 썩 꺼지시오.”


“그럴 리가 없다! 그놈이 문을 부수고 여기로 들어오는 걸 내가 봤는데 무슨 개소리냐!”


음음, 그러니까 이놈이 혈인을 도원루로 보낸 원흉이라는 소리네. 그렇다면 진짜로 심도 있고 밀도 있는 시간이 필요하겠어.


“거참,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 가서 특실 좀 마련해달라고 전해주게나.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좋은 술도 한 동이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생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푸줏간 주인에게 이놈이라고 불렀더니 한 근짜리 고기가 반 근밖에 안 나오고, 김 씨라고 불렀더니 한 근이 그대로 나오고, 김 서방이라고 불렀더니 한 근 반이 나왔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서 돼지처럼 생긴 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나한테 이놈 저놈 하거든.


“네 이놈! 당장 풀지 못할까! 내가 누군 줄 알고 무례를 저지르느냐! 후환이 두렵지 않더냐!”


귀를 살짝 열자 또 꿀꿀거리니 냉큼 귀를 닫아야지. 그런데 돼지가 매달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배가 고파진다.


저기에 불 피워서 훈연하면 훈제 햄이 될 텐데.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금화햄이 있지 않을까? 엄청나게 비싸고 엄청나게 맛있다는데 전생에서는 구경도 못 했지만, 여기서라면 구경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쓰읍.”


아무래도 내가 미쳐버린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평소였다면 자릿값만으로도 몇십 냥짜리 자리에 앉아서 한 병에 몇십 냥짜리 술을 물처럼 들이키고 있는데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이제 술도 들어갔겠다 슬슬 입이 열리겠지.”


“술은 너 혼자 처먹었잖아!”


거참, 남의 집에 무작정 쳐들어온 주제에 쩨쩨한 데 신경 쓰기는.


“그래서 당신이 보냈다는 게 시뻘건 놈이오?”


“그래. 독특한 무공을 익혀서 식객으로 받아들였지. 분명 내 서찰을 들고 여기로 들어간 걸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단 말이다.”


좋네. 술맛도 좋고, 범인도 잡았고. 그런데 이놈이 혈교랑 엮여있다기에는 너무 잔챙이라서 문제다.


잘 쳐줘도 쓰다 버리는 팻감인 만큼 이놈한테서 정보를 캐내 봐야 쓸모없을 테고, 이놈을 개방에 넘겨주자니 빚만 키워주는 꼴이네.


“흐으으음.”


딱히 써먹을 곳도 없고, 풀어주자니 괜히 보복할 것만 같아서 처분 방안을 두고 고민하던 와중에 지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실례는 무슨 실례. 일단 왔으니 술 한 잔 받으시오.”


비싼 술이라 그런지 호쾌하게 드시네. 그래서 무슨 용건으로 여기까지 올라오셨을까.


“이자의 처분을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처분을 두고 고민했으니 반가운 일이지만, 이유는 들어봐야겠지. 그러니까 한 잔 더 받고 시원하게 털어놔.


“이 작자는 저희랑 비슷한 족속입니다. 고리대금업자처럼 사람 인생을 망가트리고 재물을 불리는 데 희열을 느낍니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만.


“즉, 이 작자의 재산은 빼앗긴다고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이만한 놈이면 관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을 텐데 후환은 감당할 수 있소?”


“후환은 제가 아니라 이 작자가 직접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커다란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켠 지부장은 품 안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돼지를 품평하듯 쿡쿡 찔렀다. 저런 식으로 아무리 찔러 봐야 따끔할 뿐이겠지만, 묶인 채 대롱대롱 매달린 돼지는 다르게 느꼈는지 벌벌 떨고 있다.


“어제 네가 써먹은 시뻘건 쓰레기는 개방이 찾던 놈이야.”


“거지들이?”


“너도 눈이 달려 있으니 거지들이 눈깔 뒤집고 거리를 들쑤시는 건 알고 있겠지. 그런데 너 때문에 개방의 명예가 똥통에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거지들이 널 가만히 놔둘까?”


“아니야! 나는 아니야! 그냥 선물 받아서 쓴 것뿐이라고!”


“그건 중요하지 않지. 암 그렇고말고.”


협박을 업으로 삼았는지 솜씨가 예술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는 못 이기지.


“넌 장대에 매달린 채 조롱당할 거고, 거지들이 네 창고를 탈탈 털겠지. 네 목이 달아나고 창고에는 은 부스러기마저 남지 않을 텐데 선물 받은 게 중요할까?”


“아, 안 돼!”


“돼.”


그러더니 지부장은 술을 한 잔 따르더니 돼지에게 먹였다. 자칫 잘못하면 이승에서 마시는 마지막 술일 텐데 저렇게 흘리면 아깝지도 않나?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정중한 권유는 이게 끝일 테니까 심사숙고해서 말하라고. 네 목숨과 전 재산의 9할. 뭘 선택하겠나.”


“목숨! 살려만 주게!”


저 돼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거에 내 돈 모두와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지부장도 그렇게 느꼈는지 비릿하게 웃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좋아. 계약 성립이로군. 깨끗하게 세탁해서 넘겨줄 테니 안심하라고. 우리는 힘이 부족하지만, 힘 대신 다른 잡기로 지금까지 중경 뒷골목에서 버텨온 놈들이니까.”


힘없는 가장, 듬직함을 연기하는 큰형 그리고 닳고 닳은 뒷골목 양아치까지. 지부장의 얼굴은 참 다양했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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