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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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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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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화

DUMMY

과연 이 양반들이 신선이 되려고 수행하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어른처럼 보이는 분의 중재 덕에 오늘 가져온 건 같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혈인의 구조를 조심스럽게 파악하자는데 다들 동의하셨지만, 일이 늘어나고야 말았다.


각기 다른 도맥(道脈)을 이은 두 지파에 하나씩 그리고 도맥으로 분화하기 전의 무맥(巫脈)을 이은 지파에 하나를 가져다주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다.


“미안하네. 저분들은···.”


아무리 일대제자라지만 문파 내부에서는 항렬이 깡패다. 항렬 높은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항렬을 무기 삼은 사람에게 휘둘렸다는 공통점 덕에 장 진인과 금세 친해졌고, 장 진인은 손님에게만 짐을 지울 수 없다며 사람을 추천했다.


“막내 사질을 데려가게나. 나이도 어리고 성품이 조금 특이하지만, 자네가 할 일에 도움이 될 걸세.”


성품이 특이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음 날 아침 그의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이해했다.


“대련하자며! 그런데 왜 누워있는 건데!”


“제가 언제 대련하자고 했습니까. 도우께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신 일이잖습니까.”


“혈인을 무찌르고 오면 한 판 붙자며! 그래서 혈인을 무찌르고 왔잖아! 게다가 정중하게 시간도 정했고! 그런데 뭐가 막무가내라는 거냐!”


두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답답한 심정을 해소하려는 듯 가슴을 두드리는 청년은 허리춤에 도를 패용한 데다가 큼직한 덩치로 미뤄보아 하북팽가의 대공자 혹은 맏이가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눕듯 앉아서 졸린 듯한 목소리로 적당히 대꾸하는 모습인지라 말씀해주신 이대제자임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게을러 보이고 의욕도 없어 보이는 친구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비책도 받았으니 제대로 권유해야지.


“실례하겠습니다. 여기가 장규보 도사께서 머무는 곳입니까?”


“제가 장규보입니다만, 누구십니까.”


예상대로 늘어져 있던 도사가 장규보였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몸을 일으킨 게 기특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뿐이었다. 여전히 머리는 산발인 데다 졸음 가득한 눈도 그대로니 역시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줘야겠다. 그 전에 용건을 제대로 전달해야지.


“무명소졸 백도진입니다. 귀파의 일대제자이신 장진모 진인께서 귀하를 추천하셨습니다.”


“으엑.”


내가 아무리 친근한 얼굴이라지만 명색이 손님인데 싫다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네. 도사로서 훌륭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인으로서는 빵점짜리 태도다. 그래도 대책이 있지.


“장진모 진인께서 때려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 주먹에 맞으면 아플 걸 직감했는지 몸을 일으켰다. 역시 마음먹으면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곧장 몸을 돌려서 숲속으로 도망쳤다.


거참, 잽싸기도 하지.


홈 어드벤티지를 이용하면 날 따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소실봉을 오르며 경공을 익혔다.


각오해라.


***


청성파 이대제자 장규보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크다는 범주를 넘어선 체구는 물론이거니와 손가락에 스치기만 해도 어디 한 군데 탈골될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손을 지닌 괴물에게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돌아다니던 청성산인 만큼 눈 감고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기에 최대한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고, 한 식경 동안 경공을 펼치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 돌렸다.


“그런 괴물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네.”


아직 바람이 차갑지만 해가 잘 드는 남쪽 능선을 타고 도망친 만큼 봄이 찾아오는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었기에 장규보는 그대로 주저앉아 햇살을 만끽했다.


청성산이 습격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괴물을 피해서 도망쳤는데 괴물들을 만나다니 일진이 사납네.”


상대가 하나라면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피할 수 있지만, 셋이 상대라면 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백도진에게서 도망치느라 체력과 심력을 골고루 소비했기에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청성의 제자답게 싸우다 죽기로 마음먹었다.


백도진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뭐야. 한참 더 올라가야 할 줄 알았는데.”


“도와주십시오!”


백도진은 혈인이 안 보이는지 장규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서도 별다른 반응 없이 손가락을 세 개까지 꼽다가도 아차 싶었는지 제 이마를 때릴 뿐이었다.


“이런 젠장. 진인 말을 믿을 걸 그랬네.”


장진모가 장규보를 추천해주며 했던 말은 간단했다.


‘혈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이건 예리한 감각이나 날카로운 기감을 지니고 있어서 혈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장규보를 쫓아왔을 뿐인데 혈인 셋을 발견한 백도진은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조언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 자신을 질책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백도진은 계속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덧 장규보 앞까지 다가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지라 장규보는 멍하니 백도진을 올려다봤고 혈인들은 백도진과 장규보를 한꺼번에 덮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백도진은 팔을 휘둘러서 손등으로 혈인들을 한꺼번에 후려쳤다.


“거참, 시끄럽네. 일단 처리할 테니까 상의만 벗어놔.”


장규보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 전에 백도진은 움직였다.


하나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몰아넣을 수 없지만, 하나를 상대하는 일이나 셋을 상대하는 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지라 백도진은 성실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먼저 하나를 걷어차서 밀어낸 다음 주먹과 팔꿈치를 써서 칼같이 거리를 유지했다.


혈인이 핏물로 화하지 않도록 힘 조절하면서도 포박할 수 있도록 적당하게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일은 섬세한 작업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무젓가락으로 달걀을 깨트리지 않고 껍질에만 균열을 내는 일과 다름없지만, 내일도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한지라 백도진은 묵묵히 반복할 따름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백도진의 머릿속일 뿐이었고,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장규보는 땅으로 떨어지려는 턱을 부여잡느라 애썼다.


‘진짜 괴물 앞에서 가짜 괴물은 아무것도 아니로군. 저 지독한 것들이 애처로워 보일 줄이야.’


백도진은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반복 작업을 이어갈 뿐이었지만, 장규보의 눈에는 기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런 기예를 선보일 수 있는 사람은 장규보가 알기로도 극히 드물었다.


무의 경지를 놓고 비교하면 물론 백도진이 밀린다는 점도 알고 있고, 혈인을 죽이는 일이라면 더 나은 사람이 많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맨몸으로 혈인 셋을 동시에 그리고 여유롭게 상대하는 일은 장규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머리에 과부하가 오려던 그 때, 갑자기 백도진의 움직임이 달라지자 장규보는 생각을 멈추고 백도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밀쳐낸 혈인의 팔다리 관절을 차례대로 뽑더니 턱까지 뽑았고, 그 작업을 두 번 더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셋이나 되니까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네. 너는 옷 안 벗고 뭐 했어.”


“예?”


“얘들 감싸서 운반해야 하니까. 옷 벗으라고.”


홀린 듯 옷을 벗고 나서야 백도진이 제게 반말한다는 점을 깨우쳤지만, 되물을 시기를 놓쳤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옷을 건넸다.


“좋아. 내려가자.”


건네받은 옷으로 하나를 포박하고, 제 옷을 찢어서 나머지 둘을 포박한 백도진이 혈인 셋을 둘러메자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두통이 그를 습격했다.


하지만 콧노래 부르며 흉악한 미소를 머금은 백도진에게 따질 만큼 사리 분별 못하지는 않았기에 조용히 내려갔고, 백도진에게 배웅받으며 암자로 되돌아왔다.


“잡혔냐?”


아직도 암자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팽덕규가 귀찮았지만, 반응할 힘마저 없기에 장규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마루에 누웠다.


무례한 행동이지만, 장포가 사라진 데다 누웠다는 표현보다는 쓰러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기에 팽덕규는 산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레짐작하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서운 양반한테 쫓기고도 살아남다니 대단하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팽덕규를 바라본 덕에 옷에 흙먼지가 묻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평소였다면 슬그머니 귀를 닫고 하늘이나 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겠지만, 아까 본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기에 장규보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네가 도망치자마자 그 양반한테 화냈거든.”


팽덕규와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기도 했고, 오늘 아침처럼 이래저래 얽힌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을 원하는 자신과 다르게 팽덕규는 불같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할 줄은 몰랐다.


얼핏 보더라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괴물이건만 화를 내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팽덕규는 찌푸려진 눈살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계속 말했다.


“너랑 다르게 말이 잘 통해서 한 판 붙었는데 삼 초를 받아내더니 단번에 날 제압하더라. 뭐에 맞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가슴에 충격이 오더니 몇 바퀴 굴렀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장규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었다가는 팽덕규가 고래고래 소리칠 게 뻔한데다 백도진과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눈을 감았다.


비록 마룻바닥의 냉기가 여지없이 올라왔지만, 긴장이 풀렸기에 그는 평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장진모는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어르신들이 만족한 건 물론이거니와 청성의 제자들에게도 희망을 보여줬어.”


하루 만에, 그것도 아침 일찍 나가자마자 혈인을 포획해왔기에 장진모는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다.


“과찬이십니다. 진인께서 추천한 장규보 도사의 공입니다.”


“게으른 녀석이라 걱정했는데 자네가 잘 타이른 모양이군.”


“하하하. 아닙니다. 의사소통하는 데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영민한 사람인지라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아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허허.”


백도진은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쳤다고 말할 수 없기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조금 점잖게 말했다. 하지만 청성의 제자가 손님을 보고 도망쳤다는 건 장진모의 상식 범위 안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라 백도진이 막내 사질을 잘 타일러서 일을 해결했다고 확신했다.


“자질은 충분한데 과하게 게을러서 제 사형들의 골치를 썩이던 아이였는데 자네 덕에 희망을 발견했네. 정말 고맙네.”


“하하하.”


할 말이 없을 땐 웃으면 된다는 격언에 따라 백도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 애매하게 웃었다. 그러자 장진모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고비 넘겼지만, 열흘 동안은 계속 싸워야 할 걸세. 게다가 열흘이 지나서 비방이 완성된다고 한들 신선들의 보패가 아닌 이상 우리가 나서서 마무리해야 할 테니 자네의 걱정도 이해가 가네.”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이지만, 너무 진지한 이야기였기에 백도진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설령 일이 잘못되어 제자 하나만 남고 청성이 스러진다고 한들 우리는 자네의, 당가의 도움을 잊지 않을 걸세.”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했기에 백도진은 다른 생각을 양쪽으로 밀어냈다.


“청성(靑城)이라는 이름답게 훌륭한 말씀이셨습니다. 정파를 자칭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성도라거나 중경의 거지굴에 아무리 훌륭한 말을 들려준다고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성도에서 유정이처럼 괜찮은 후기지수가 튀어나온 만큼 훌륭한 말을 들려준다면 감화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장진모는 그런 내막을 몰랐기에 속세에도 훌륭한 협객이 남아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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